계간 통일코리아」2015. Vol. 4
‘처음은 창대하였으나 나중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북풍아, 남풍아, 향기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자견 12월 29일, 통일준비위원회 명의로 내년 1월 중에 남북간 상호 관심사에 대한 대화를 가질 것을 북측에 공식 제안했다.
이 제안은 북측의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비서 앞으로 이날 오전에 발송됐고 북측은 이를 수령했다.
류 장관은 이 제안에 대한 브리핑에서 "내년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이 되는 해가 적어도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통일시대로 나가기 위해 남북이 공동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새해 첫 날 발표한 신년사에서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대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하였다.
김 제1비서는 ”새해 2015년은 조국해방 일흔돐(북한은 ’돌‘을 ’돐‘로 표기한다)과 조선로동당창건 일흔돐이 되는 매우 뜻깊은 해“임을 강조하고 ’올해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자. 이것이 전체 조선민족이 들고 나가야 할 투쟁구호‘라고 역설하였다.
김 제1비서의 신년사에는 최근까지 ’선군 ‘강성대국’ 같은 용어들이 많이 등장했으나 올해는 ‘북남이 여덟 번이나 언급되었다.
한 일간지는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새해 벽두부터 초대형 北風“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제목을 보면서 아가서 4장 16절의 말씀이 생각났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 정말 한반도가 북풍과 남풍이 향기를 날리는 동산이 되어 통일의 열매를 따 먹는 날이 속히 와야 하겠다.
남측도 김정저일 제1비서의 신년사에 대해 싫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월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본격적인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 준비에 강력한 개선 드라이브를 걸 것임을 다짐했고, 6일에 열린 새해 첫 국무회의 석상에서는 이 신년사에 대해 “남북 간 대화와 교류에 진전된 뜻을 밝힌 것은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김 제1비서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 의사를 환영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북측의 한․미연합군사훈련과 ‘흡수통일 정책’ 중단요구와 남측은 원칙고수 고집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 나아가서는 분단상황 극복에 기대를 갖게 하는 형국이 조성되고 있다.
이 형국이 점점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래야 한다. 새해이어서, 더구나 광복 70년, 분단 70년의 해이어서 이런 것이 강조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슬그머니 이런 논의가 식고 사라져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신문에서 통일선교 관련 기사들을 스크랩해오고 있다.
매년 1월에는 스크랩되는 기사의 양이 많다.
‘이 해에 통일 문제에 큰 진전이 있었으면…’
‘올해 통일 문제를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올해 통일 문제를 이렇게 풀어가야 한다’
이런 글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1월의 통일선교 파일은 항상 두툼하다.
그러다가 2월이 되고 3월이 되면 얇아지기 시작한다.
6월과 8월은 다시 조금 두터워진다.
그 이유는 잘 알 것이다.
올해는 계속해서 두터워졌으면 좋겠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라는 말씀이 있다. 사업이나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할 때 많이 사랑을 받는 말씀이다.
올해 통일일 분야는 반대로 시작이 창대하다. 더 창대하도록, 계속 창대해지도록 결단할 것은 결단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자.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나중은 미약해지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북녘을 향해 아펜젤러의 기도를!
올해는 분단 70년의 해면서 동시에 선교 130주년의 해이다.
이것은 1885년 4월 5일 오후 3시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가 인천(당시 이름 제물포)에 들어온 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언․아의 입국이 한국기독교 역사의 출발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오래 전부터 이 일을 출발점으로 잡고 여러 행사를 해오고 있다.
이들이 인천에 내린 4월 5일은 그 해의 부활절이었다.
잘 아시는 것과 같이 니케야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춘분 후 첫 만월을 지나고 맞이하는 첫 번째 주일을 부활절로 지켜오고 있기 때문에 매년 부활절의 날짜가 다르다.
부활절에 첫 선교사가 입국한 것도 한국교회가 받은 복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이 사실을 아는 분은 아직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은데 선교 130년인 올해의 부활절도 4월 5일이다.
글쎄, 1885년 이후 4월 5일이 부활절인 해가 또 있었는지 모르겠다.
1970년부터 지금까지는 없었고, 앞으로도 15년은 없다.
이 ‘의미 있어 보이는 일치’는 우리에게 두 가지 과제를 준다.
하나, 우리는 원점에서 새로 출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 우리는 아펜젤러가 한국에 도착해서 드린 기도를 북녘을 향해 드려야 한다.
아펜젤러는 인천에 도착해서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왔습니다. 그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 맨 결박을 끊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여기에서 “이 백성을”에 “북한동포들을‘을 대입해서 기도하자는 말이다.
오, 주여! 북한동포들을 얽어 맨 결박을 끊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와 빛을 주옵소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 여기에 밝혀두려고 하는데 아펜젤러는 토마스 선교사 이후 최초로 평양 땅을 밟은 선교사이기도 하다.
아펜젤러는 입국 2년 후인 1887년 4월 23일에 선교탐색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당시 외국인이 지방을 방문하려면 호조(護照: 여권)을 발급 받아야했고, 많은 불편과 위험을 각오해야 했다.
아펜젤러는 4월 13일에 서울을 출발하여 지금의 국도1호선과 대체로 일치하는 길을 따라 대동강을 건너 평양에 도착하였다.
아펜젤러가 평양에 도착한 날 적은 일기를 여기에 옮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곳 주민들의 윤리의식은 절망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구원하시고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믿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이 이들의 미움을 씻어 죄로부터 구원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처한 현실에 눈을 뜨게 되면서 영적인 것을 구하게 될 것이다. 주님, 그 날을 속히 허락하소서.
이곳에서도 당신을 따르고 배우려는 자들을 만나게 하시니 더없이 기쁜 일입니다. 좋은 씨앗들이 자라나 추수 때
풍성한 결실을 얻게 하소서!
오, 주님, 평양이 영적인 것을 구하는 그 날을 속히 허락하소서!
씨〜원하게 해 주소서
작년의 정부의 통일 관련 일들은 되는 듯하다가 안 되고,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고, 술에 술 탄듯, 물에 물 탄듯 했다.
2015년 국내 10대 뉴스에 통일 관련 뉴스가 들어간 것을 보지 못했다.
작년, 정부의 통일 분야, 한마디로 답답했다.
30년 전쯤의 일인데 교계 중진 인사 한 분의 말과 행동이 퍽 답답했다.
특히 인터뷰 같은 것을 하면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어서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 분이 방송매체의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면 아나운서들이 대담을 맡지 않으려고 다투어 꽁무니를 뺐다.
교계 기자들이 그 분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답답하다’고 하면 어떤 불똥이 튈지 몰라 ‘다비다비하다’라는 신조 은어를 사용했다.
작년의 통일 문제, 대단히 ‘다비다비’했다.
작년에 느닷없이 땅굴 이야기와 12월 전쟁설이 유포되었는데 그 중심에 교회와 관련된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도 다비다비했다.
“이 꼴뚜기들!” 혀를 여러 번 찼다.
지난 12월 23일, 이 계간지를 발행하고 있는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이 ‘땅굴과 전쟁설,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는데 “분명한 책임추궁과 재발을 막을 조치가 필요하다” “이런 것을 근절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문제이다”는 준열한 비판이 있었다.
협동조합의 카카오톡 그룹 채팅에 “씨〜원했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더니 조합의 실무책임자가 “앞으로 자주 씨원하게 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답글을 올렸다.
걸(乞) 기대, 통일코리아 협동조합, 통일 분야를 시원함이 넘치는 광장으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서 2015년을 이끌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