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보기>의 ㉠에 해당하는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보기>-----------------
(㉠ )의 노비인 만적 등 여섯 명이 북산(北山)에 나무하러 갔다가 공사(公私) 노비들을 모아 놓고 말하기를, “장군과 재상이 어찌 타고난 씨가 따로 있겠는가? 때만 만나면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라고 어찌 뼈 빠지게 일만 하고 채찍 아래에서 고통만 당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중략) “각자 자기 주인들을 때려 죽이고 노비 문서를 불태워버리자. 이로써 이 나라에 다시는 천인이 없게 하면, 공경장상을 우리들이 모두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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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교정도감을 설치하여 국정을 장악하는 한편 도방을 통해 군사적 기반을 강화하였다.
②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를 해방하였다.
③ 풍수지리설을 앞세워 서경천도를 적극 추진하였다.
④ 딸들을 왕에게 시집보내어 권력을 잡고 척준경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정답: ①
* 최충헌에 대하여
최충헌(1149~1219)은 전임 집권자 이의민을 타도하고 정권을 잡자(1196~1219 집권), 무신 정권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봉사 10조와 같은 사회 개혁책을 제시하는 한편, 농민 항쟁의 진압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사회 개혁책은 흐지부지되고, 그는 오히려 많은 토지와 노비를 차지하고 사병을 양성하여 권력 유지에 치중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사노비인 만적이 노비의 신분해방을 부르짖으며 난을 일으키기도 하였다(1198)
최충헌은 최고 집정부의 구실을 하는 교정도감(1209)을 설치하여 권력을 행사하였다. 또, 사병 기관인 도방을 설치하여 신변을 경호하였다. 도방은 이후의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이 되었다.
② 광종은 노비안검법(956)을 실시하여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를 심사하여 해방하였다. 이는 왕권 강화와 호족 억제의 목적이었다.
③ 묘청은 풍수지리설을 앞세워 서경천도를 적극 추진하였으나, 개경파의 반대로 실패하자 난을 일으켰으나 이 역시 진압되었다(1135).
④ 고려 전기 최대의 문벌귀족인 경원 이씨 이자겸은 딸들을 예종과 인종의 왕비로 두어 최고의 권력자로 행세하다 국왕의 자리까지 넘보기에, 왕위 유지에 위협을 느낀 인종이 이자겸을 제거하려 하였으나, 도리어 이자겸의 반격을 받아 궁궐이 불타는 등 위기에 처했다. 이를 이자겸의 난이라 한다(1126). 그러나 얼마 후 인종은 이자겸의 부하인 척준경을 시켜 이자겸을 제거하였고, 척준경도 탄핵을 받고 축출됨으로써 이자겸 세력은 몰락하였다. 이자겸의 난은 중앙 지배층 사이의 분열을 드러냄으로써 문벌 귀족 사회의 붕괴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