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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1:1-3(852) 주께 피하오니 2022. 2. 6.
19038년도 노벨문학상을 탔으며 중고등학생들의 필독서로 알려진 소설 대지(The Good Earth)가 있습니다. 소설 대지는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미국 작가 펄 벅이 1931년에 발표한 대표작입니다. 펄 벅은 이 작품으로 1938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합니다. 대지는 중국의 문화와 종교를 그림 그리듯이 묘사하는 작가의 섬세함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대지》속 왕룽의 딸로 그려진 인물은 정신지체가 있던 작가 펄 벅 자신의 큰딸이기도 합니다.
이런 연유로 펄 벅(Pearl S. Buck)여사는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을 좋아해서 이름을 ‘박진주’라고 지었고, 특히 6.25 전쟁 후 펄벅 재단을 설립해서 전쟁 고아들을 보살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드러내었던 분이었습니다.
펄 벅 여사는 어린 시절 선교사였던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선교 사역을 위해 아버지는 다른 지방을 방문하기 위해 집을 비운 상태입니다. 그런데 집에서 일하는 중국인 사람들이 말하기를, ‘마을 사람들이 몽둥이와 곡괭이 등 농기구를 들고 집을 습격할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불편하지 않게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분노하여서 흉기를 들고 집을 찾아온다는 말은 공포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펄벅 여사의 어머니는 중국 사람들에게 마을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물어 봅니다. 그러자 황당한 답변이 돌아옵니다.‘마을에 가뭄이 계속되는 이유가 백인들이 들어와 살아서 부정을 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마을 무당이 하였고, 이 사실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분노하여서 단체로 행동한 것입니다.
이미 벌어진 사태를 수습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아버지는 집을 비운 상태이고, 집에는 어머니와 어린 자녀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집단 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외딴 시골이라 경찰서 개념의 공안의 영향력도 없는 곳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급하게 케익과 쿠키를 굽습니다. 그리고는 케이크와 과일을 접시에 담아 테이블에 올려놓습니다. 찻잔을 꺼내어 준비해 놓습니다. 그리고 대문을 활짝 열어둔 채, 아이들과 함께 태연하게 거실에 앉아 있습니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어머니는 의자에 앉아서 바느질을 합니다.
잠시 뒤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횃불을 든 마을 사람들이 쳐들어 왔습니다. 손에는 곡괭이, 몽둥이, 심지어 어떤 사람은 도끼까지 들고 들어 왔습니다. 이 모든 마을 사람을 본 어머니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웃으면서 큰 소리로 “어서 오세요!”라고 반갑게 맞이합니다. 그리고는 일하는 사람들을 시켜서 따뜻한 차와 케이크, 과일을 대접하게 합니다.
흉기를 들고 집에 쳐들어와서 모든 것을 아작 낼 것 같은 기세로 들어왔던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립니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잠시 멈칫거리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대접을 받게 된 것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를 합니다. 그렇게 팽팽한 긴장이 사라지게 됩니다. 잠시 다과를 나누었던 마을 사람 한 명이 집에서 나가자, 이윽고 한 두명씩 빠져 나가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다 돌아가 버립니다.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기적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마을 사람들이 돌아간 그 말 밤, 신기하게도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립니다. 이 일로 인해 마을에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어머니는 펄 벅이 성장하였을 때, 그날 밤의 일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이 힘들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께 피하여라. 그러면 너의 문제는 해결된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 피함으로 용기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피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또한 내가 하나님에게 피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나의 구원처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환난과 어려울 때에 나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닐 때에 나의 구원처가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 피하므로 안전하고 행복한 2월의 모든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부산지역의 확진자가 1천 2백여명을 훌쩍 뛰어 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나의 구원자가 되시며 나의 희망이 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2월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시편 71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71편의 배경이 참으로 특이합니다. 다윗은 살아 생전에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하면서 아버지의 목에 칼을 들이미는 참담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아들이 칼을 들이밀고 아버지를 죽이려하자, 버선발로 도망하는 비참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바로 이때에 적혀진 시가 71편의 배경입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위기를 만난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늙고 연약해진 다윗은 종이호랑이였습니다. 이렇게 무력하고 연약한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를 극복하게 됩니다. 다윗의 일생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한 삶이었습니다. 또한 문제가 있을 때 마다 여호와 하나님께 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1절,“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여기의 ‘내가 주께 피하오니’는 라는 말은 ‘하나님께 도피하다’라는 뜻입니다. 특히 완료형 시제를 사용하여 ‘나는 이미 하나님 안에 피하여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자 나아갈 때에 현재진행형입니다. 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나님에게 가고 있으니 아직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표현은 하나님에게 피하려고 나아갈 때에, 이미 내가 하나님 안에 피하여 있음을 말합니다. 즉 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나님에게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은 이미 나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나는 현재진행형이지만, 하나님은 현재완료형으로 나의 문제를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바로 든든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다윗은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생명을 의탁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께 피하여 있음을 찬양합니다. 목숨이 위협 당하는 순간에도 약속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이런 다우시의 신실한 모습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입니다.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모두 어려운 시기입니다. 이때에 어떠한 믿음의 행동을 해야 할까요?
1.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2절,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2절 말씀은 한 절의 짧게 기록되어진 문장입니다. 그런데 2절 말씀을 곰곰이 살펴 보면, 3문장이 하나의 문장 형식으로 합쳐진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3구절로 표현되어진 말씀을 한 구절로 짧게 함축되어 기록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3 구절로 표현된 말씀일까요? 2절의 중심 주제어는 ‘주의 의로 나를 구원 하소서’라는 말씀입니다. 이 중심 주제어에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의 모습을 대입시켜 보면 쉽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쉽게 풀어 본 3 구절은 이런 형식입니다.
1)“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Rescue me) 나를 구원하소서.”
2)“주의 의로 나를 풀어주시며 (deliver me) 나를 구원하소서.”
3)“주의 의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turn your ear to me) 나를 구원하소서.”
1)“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Rescue me) 나를 구원하소서.”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나를 건져서 구원해 달라고 다윗은 말합니다. 무엇에서 건져달라는 말인가요? Rescue(구출하다, 구조하다)me 라고 영어로 표현합니다. 죄악으로 만들어진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나를 구조해 달라는 말도 됩니다. 그리고 내가 범한 죄로 인해 내가 갇혀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상황에서, 나를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죄에서 구해달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나를 짓누르고 힘들게 하던 간에, 하나님의 의로움은 나를 구해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너끈하게 건지시며 구원해 주시는 분임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주의 의로 나를 풀어주시며 (deliver me) 나를 구원하소서.”
한글성경에는 ‘풀어주시며’라고 번역이 되어 있지만, 영어성경에는 ‘deliver’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딜리버’라는 단어는 귀에 아주 익은 단어입니다. 무엇을 배달 할 때에 ‘딜리버리’라고 말합니다. 같은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왜 ‘배달하다, 데리고 가다’는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은 죄악으로 인해 죽음에 머물고 있는 나를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으로 나를 옮겨 놓기 때문에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이라 판단합니다. 지옥에 있는 나를 천국으로 배달해 놓았습니다. 고민과 번민 속에 머물고 있는 나를 하나님의 위로와 안식 속에 옮겨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이 나에게 그렇게 역사한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본 나였기에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나를 건지시며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 나를 죄악에서 풀어 주시며,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 놓으신 하나님이, 내가 드리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부르짖는 성도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멸망에 이르는 법이 없습니다. 아울러 하나님께 피하는 성도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도록 구원하여 주십니다. 이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믿으면서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대한민국 여성교육의 선구자였던 김활란(金活蘭)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김활란박사를 거론할 때 긍정적 평가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미국 박사학위를 수여받은 대표적인 엘리트 지식인으로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공적을 남겼으며 여성주의 확산에 기여했다는 평가’입니다.
그녀가 1921년에 지은 찬송가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 345장에 실려 있습니다.
1919년 독립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납니다. 독립운동의 바탕에는 기독교가 주도하고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독립운동 이후 우리나라를 큰 바다에 항해하는 작은 배로 비유하면서 하나님이 구해주실 것을 바랍니다. 그러면서 흔들리는 나라를 하나님에게 맡깁니다. 또한 흔들리는 세상살이의 모습 또한 하나님에게 의탁하면서 지은 찬송입니다.
1.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척이 떠나가니 아 위태 하구나 위태 하구나. 2. 비바람이 무섭게 몰아치고 그 성난 물 큰 파도 일 때에 저 뱃사공 어쩔줄 몰라하니 아 가련하구나 가련하구나. 3. 절망중에 그 사공 떨면서도 한 줄기의 밝은 빛 보고서 배 안에도 하나님 계심 믿고 오 기도 올린다 기도 올린다. 4. 아버지여 이 죄인 굽어보사 성난 풍랑 잔잔케 하시고 이 불상한 인생을 살리소서 오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 5. 모진 바람 또 험한 큰 물결 이제 아무리 성내어 덮쳐도 권능의 손 그 노를 저으시니 오 잔잔한 바다 잔잔한 바다
3.1 독립선언을 하면서 독립의 희망을 모든 백성들에게 알렸지만, 일본은 여전히 한국을 강점하고 있던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이런 때에 만경창파에 힘겹게 떠 있는 배 한척을 떠올립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만경창파 거센 파도를 헤쳐 나갈 것을 희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모진 바람 또 험한 큰 물결이 제 아무리 성내어 우리 모두를 덮친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권능의 손이 노를 저어 잔잔한 바다로 인도하여 주실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손만 부여 잡고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하기를 소망합니다. 나를 항상 건져 주시고, 나를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만 찬송하고 감사하는 2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내가 숨을 바위가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3절,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여기의 ‘나의 바위’는 요동하지 아니하고 매우 든든하게 보호할 수 있는 매우 큰 바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의 바위라는 말은 하나님은‘절대적이고 확고한 피난처’를 의미합니다. 큰 지진이 나서 지축이 흔들린다고 하더라도 그 엄청난 지진까지도 모두 감당할 수 있는 큰 바위를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이런 요동하지 않는 큰 바위 같은 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의 안전한 처소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피난처이십니다. 다윗은 자신의 인생 경험을 통하여 이를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숨을 바위가 되며, 나의 반석이며 나의 요새’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으로 여러분의 피난처로 삼고 있습니까?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르는 현 시점에서 바이러스를 가장 확실하게 막아 주는 것은 신기술로 만들어진 바이러스 백신이 아닙니다. 의외로 간단하게 단돈 몇 백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마스크가 가장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막아 준다고 합니다. 지금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는 오미크론 바이러스도 마스크가 완벽하게 막습니다. 게다가 새롭게 나올 신종 바이러스 또한 마스크가 막아 줄 것입니다.
바이러스를 마스크가 막아 준다고 해서 오로지 마스크만 의지하는 모습은 성도가 행할 올바른 모습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록 마스크를 철저하게 사용하고 손을 씻는 위생을 완벽하게 내개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내 주변에 바이러스가 얼신거리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셔야 가장 완벽하리라 믿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내 곁을 스쳐 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이 나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더더욱 나를 지켜 주시고 나를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의지해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1990년 MBC에서 36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세간의 아주 높은 시청율을 기록하였던 ‘몽실언니’라는 아주 유명한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이 동화였던 ‘몽실언니’를 쓴 분이 바로 아동문학가 권정생(權正生, 1937-2007)이라는 분입니다.
권정생은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 귀국합니다. 귀국 후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1966년 경상북도 안동군 일직면 조탑리에 정착합니다. 새벽 4시와 오후 6시, 하루 두 번 종을 칩니다. 종을 칠 땐 한겨울에도 장갑을 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종을 당기는 줄에 힘이 잘 전달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권정생은 말하기를‘종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최고의 성스러운 일’이어서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종을 치고, 주일이면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창작을 하여 동화를 구연합니다. 이때에 ‘강아지똥. 몽실언니’등의 유명한 동화를 집필하게 됩니다. 하나님만이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자신이 기댈 수 있는 반석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코로나로 인한 위험한 상황 가운데 오직 주께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위가 되시는 하나님을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피하여 소망이 되심을 체험하는 2월의 모든 시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