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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의 목적은 도통입니다
대순진리회는 창설한 목적이 있는 종단이고, 우리가 대순진리회에서 도를 닦는 데도 목적이 있습니다. 이 당연한 명제를 다시 한번 상기하고 가야 하는 것은 수도를 하고 있으면서도 도를 믿지 않고 목적을 잊고 방황하는 수도인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먹어야 내 배가 부르고 남이 먹은 것으로 내 배를 채울 수 없듯이 도를 닦는 것은 나의 결정으로 내가 닦아야지 남이 대신해 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너무도 당연한데, 우리는 종종 너무도 당연한 일을 잊고 삽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조 중 경천(敬天)은 ‘잊지 말고’ 또 ‘잊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경천은 하늘을 공경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렇게 정의하지 않습니다. 경천이란 『대순진리회요람』에 명시되어 있듯이 “모든 행동(行動)에 조심(操心)하여 상제님(上帝任) 받드는 마음을 자나 깨나 잊지 말고 항상(恒常) 상제(上帝)께서 가까이 계심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공경(恭敬)하고 정성(精誠)을 다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입니다. 이것이 경천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경천은 막연하게 하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빌어 오신 하느님이신 강증산 상제님을 받드는 마음을 자나 깨나 잊지 않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늘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명심하고 성경신을 다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잊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훈회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에서 저버린다는 것은 잊고 배반함이라 하였습니다. 은혜를 갚지 않는 것은 그 고마움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도를 닦다 낭에 떨어지는 것도 수도의 목적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도를 닦다 난법난도를 자행하는 것도 도의 진리를 망각하고 급기야 도를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전전긍긍(戰戰兢兢) 여리박빙(如履薄氷)’이라는 말이 있는데, 두려워 조심하기를 마치 얇은 살얼음판 위를 걷듯이 하라는 뜻입니다. 흔히 수도를 살얼음판 위를 걷듯이, 칼날 위를 걷듯이 하라는 말은 수도한 지 오래된 분일수록 명심해야 하는 경구입니다. 도주님께서 “일불(一不)이 살육통(殺六通)이라는 옛말이 있는데, 나는 일불(一不)이 살백통(殺百通)의 도수를 쓰리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뜻은 사다리를 오를 때는 한 칸씩 오르되 떨어질 때는 단번에 떨어진다는 뜻이라 하셨습니다. 사다리 타고 오르다 낮은 데서 떨어지면 엉덩이 털고 다시 오르면 되지만 높은 데서 떨어지면 즉사합니다. 도에서 임원일수록 ‘전전긍긍 여리박빙’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류는 한갓 미물인 바이러스 앞에서도 전전긍긍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시계(視界) 제로로 안개가 자욱이 끼어 한 치 앞도 안 보입니다. 이런 때 대순진리회의 앞날은 어떻습니까? 대순진리회 수도인인 나의 앞날은 어떻습니까? 대순진리회와 운명을 함께 하실 건가요? 대순진리회의 앞날은 확연히 예측 가능합니다. 그 운명은 천리(天理)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 운명은 하느님이 정하신 바라 어길 바가 없습니다.
상제님께서 『전경』에 하루는 “교운(敎運)을 보리라” 하시더니 세숫물을 대하시면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을 감고 보라”고 말씀하시기에 모두들 눈을 감고 물을 들여다보니 갑자기 물이 큰 바다가 되고 바닷속에 뱀머리와 용꼬리가 굽이치는지라. 모두들 본 대로 고하니 상제께서 “나의 형체는 사두 용미(蛇頭龍尾)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운 1장 5절) 교운은 도(道)의 운, 대순진리회의 운을 말합니다. 교운을 보신다는 것은 장차 대순진리회의 운이 어떻게 되는지 보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교운의 모습이 사두용미의 형체였습니다. 나의 형체라 하심은 나(道卽我 我卽道), 즉 도의 모습이 사두용미라는 뜻이지 상제님의 모습 자체가 사두용미의 형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시속에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시작은 크고 성대하지만 갈수록 작아져 흐지부지되는 일을 두고 그렇게 표현합니다. 사두용미는 반대로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뜻이 됨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과연 대순진리회의 운이, 전도가 사두용미인 것입니다. 태극도에서 이궁하신 도전님께서는 홀홀 단신으로 혼자 나오셨습니다. 1969년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실 당시는 심히 미약하였으나 26년(1995년)만에 200만호, 800만명의 도인을 양성하셨습니다. 지금은 소강상태로 후퇴한 것 같으나 남은 도인들이 도전님의 말씀대로 올바르게 수도하고 사업하면 이내 크게 발전할 것입니다. 관건은 도인들이 도전님의 말씀대로 꼭 그렇게 수도하고 사업하는 데 성공의 길이 있습니다.
대순진리회의 운이, 전도가 양양하다는 것을 확고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상제님께서 교운을 굳건히 하시고자 이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대순진리회의 전도는 확고부동하게 전도양양합니다. 이것은 무엇인가요? 모든 도인은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 질문에 답을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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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ㅇㅇ입니다. ㅇㅇ이 대순진리회에 있기 때문에 대순진리회의 전도는 양양한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교운을 굳건히 하시고자 말씀하신 것은 ㅇㅇ입니다. 상제님께서 ㅇㅇ은 나의 일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유사이래로 없었습니다. 석가모니도 이것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상제께서 교운을 굳건히 하시고자 ㅇㅇ에 관해 말씀이 계셨도다. “지난날에는 ㅇㅇ이 나지 아니하였으므로 도가에서 ㅇㅇ에 힘을 기울였으나 음해를 이기지 못하여 성사를 이룩하지 못했도다. 금후에는 ㅇㅇ이 나므로 음해하려는 자가 도리어 해를 입으리라”고 하셨도다. (교운 1장 40절)
선천에 도통이 나지 않았던 것은 음해를 이기지 못하여 그랬던 것이고, 금후에는 도통이 나므로 음해하려는 자가 도리어 해를 입게 됩니다. 누구도 도통군자가 될 사람의 앞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도통이 나기 때문입니다. 도주님과 도전님께서 상통군자는 수반에서 많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수도인이라면 장차 도통군자가 될 사람들이기에 서로 지극히 존중해야 합니다. 죄 중에 큰 것이 하느님께 짓는 죄입니다. 하느님께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도통은 상제님의 일인데 도통을 방해한다면, 도인을 음해한다면 그것은 상제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도의 법과 제도는 도통을 위한 규범입니다. 이것을 망가뜨려서 도인들이 도통하는 것을 방해하는 난법난도자는 상제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니 그 죄를 빌 곳이 없으니 참혹하게 망하게 되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시간의 문제일 뿐입니다. 『채지가』에 “난법난도 하던사람 전공은 고사하고 천위신벌 없을소냐”(뱃노래)하였고, 『전경』에 “수운(水雲)가사에 ‘난법난도(亂法亂道)하는 사람 날 볼 낯이 무엇인가’라 하였으니 삼가 죄 짓지 말지니라.”(교운 1장 33절)하신 말씀은 이를 두고 이르신 것입니다.
시속에 ‘청저짐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청(靑)은 모든 비결의 귀결처입니다. 청(靑)을 파자하면 十二月이 되어 도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도전님께서 “이 우주 안에서 우리 도가 아닌 것이 없다.”(1987. 4. 27) 하시고, “이 세상에 아직 도인은 없고, 이번에 우리 도에서 도인이 출현한다.”(1992. 12. 28) 하셨습니다. 수도인이 도통을 하면 도인이 됩니다. 청처짐하다는 말과 같이 우리 도는 맨 나중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진법의 수호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진법은 기차가 달리는 철로와 같아서 이것을 이탈하면 기차가 목적지에 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대형사고가 납니다.
수도의 목적은 도통입니다. 배가 항구를 출발할 때는 목적지가 있기 마련입니다. 목적지 없이 출항한 배는 필경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표류할 것입니다. 수도인이 도를 닦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목적지 없이 바다 한가운데를 표류하는 배와 다르지 않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천지가 쓰고자 할 때 동참하는 것이고 수도인이 이 세상에 온 것은 도통을 하기 위해서 인세에 태어난 것이지 지구상에 한번 인간으로 살아보려고 온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저 재리(財利)와 명리(名利)에 정신을 빼앗겨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영혼이 길을 잃은 것입니다.
대순진리회의 수도인으로 나 자신이 수도하거나 남에게 교화할 때, 우선 대순진리회에 도통이 있는지 확인하고 확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되어야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수도가 가능합니다. 확인하고 확신한 다음은 나 자신이 도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수도의 목적이 도통이라면 수도 과정은 도통할 수 있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그 조건이 대순진리회의 수도법방입니다. 수도는 결국 수심(修心)과 수신(修身)이고, 수심의 요결은 성경신이고 수신의 요결은 안심(安心) 안신(安身)입니다. 성경신을 수도(修道)의 요체로 삼고, 안심 안신을 수행(修行)의 훈전으로 삼아, 무자기를 근본으로 윤리도덕을 숭상하며, 여기에 정신통일이 되어 심령이 통일되면 그것이 영통이며 도통입니다. 인간이 도통하는 법을 이렇게 가르치는 곳은 지구상에서 오직 대순진리회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번에 도통이 있는 줄도 모르고 더욱이 어떻게 하면 도통을 이룰 수 있는지는 더더욱 모릅니다. 이것이 대순진리회에 입도하여 수도하는 것이 왜 그렇게 크나큰 복인지의 이유입니다.
도통을 이루는 지름길은 무자기(無自欺)입니다. 심령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자기를 근본으로 수도해야 합니다. 모든 언행에서 양심을 회복하는 일에 전념해야 하며,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해야 합니다. 무자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순진리회는 윤리도덕을 숭상합니다. 무자기와 윤리도덕이 수도의 근본입니다. 인간과 금수를 가르는 기준은 윤리도덕입니다. 윤리도덕을 숭상하여 완전한 인간이 되는 여기에 도통의 길이 있습니다. 명상을 한다고 산속에 들어가 수도한다고 도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의 법은 상제님께서 속성도를, 진법을 내리신 것으로 무자기로 양심인 천성을 회복하고 사람의 도리인 윤리도덕을 숭상하는 여기에 도통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훈회와 수칙입니다. 해원상생 없이 도통진경에 들 수 없습니다. 훈회와 수칙이 해원상생입니다. 훈회와 수칙이 도통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수도인은 훈회와 수칙을 진실되게 실천해야 합니다. 훈회와 수칙을 생활화하여야 합니다. 훈회와 수칙이 몸과 마음에 배어 저절로 행해지게 해야 합니다.
대순진리회의 목적은 무자기 정신개벽으로 지상신선을 실현하고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개인 수도의 목적은 도통이지만 종단의 목적은 지상천국 건설입니다. 이번의 도통은 삼계도통의 대도가 열리는 것이지 도통이 일 개인의 소원성취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종단에서는 기본사업과 3대 중요사업을 행합니다. 종단이 성공해야 그 구성원인 수도인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도통을 두고 ‘나만’ ‘나부터’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도통도 남이 도통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그 공덕으로 나도 도통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삼계가 도통한다는 것은 하늘도 땅도 인간도 다 도통한다는 것입니다. 천지의 성공은 정해져 있지만, 인간의 성공은 조건부입니다. 참된 자는 성공하고 거짓된 자는 실패에서 더 나아가 멸망합니다. 이번에. 그래서 우리가 수도하는 것입니다. 『전경』에 “이후로는 천지가 성공하는 때라. 서신(西神)이 사명하여 만유를 재제하므로 모든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것이 곧 개벽이니라. 만물이 가을 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 그러므로 신의 위엄을 떨쳐 불의를 숙청하기도 하며 혹은 인애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힘쓸지어다”(예시 30절)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참된 자는 도통할 것이지만 거짓된 자는 멸망합니다. 무자기가 도통의 첩경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순지침』에 “가정화목ㆍ사회화합ㆍ인류화평으로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대순진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자기 – 가정화목 – 이웃화합 – 사회화평 –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대순진리입니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는 것이 대순진리입니다. 지상천국은 도인의 3대 실천사항을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1. 솔선수범, 2. 가정화목, 3. 이웃화합입니다. 도전님께서 “이것이 상생의 법리이며, 우리 종단의 종지인 음양합덕ㆍ신인조화ㆍ해원상생ㆍ도통진경의 근본원리가 되는 것”(1987. 4. 3)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계포덕을 위해 전 세계에 높이 들고 나가야 할 가르침은 바로 ‘솔선수범, 가정화목, 이웃화합’입니다. 이 가르침으로 천하를 평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 코로나로도 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아지고 있는데 진정한 한류는 정신문화에 있고, 대한민국의 정신문화의 원류는 민족종단인 대순진리회의 정신문화적 가르침입니다.
나를 위해서는 수도에 힘쓰고, 남을 위해서는 교화에 힘쓰며, 세계 창생을 위해서는 포덕에 힘써야 합니다. 포덕하는 사람을 도에서 일꾼이라 하고, 수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포덕입니다. 포덕하는 가운데 연성(煉性)이 되어 수도가 되고, 도에서 성공하는 것도 포덕에 있습니다. 포덕이 운수 도통의 길입니다. 도 사업을 하지 않고 글 공부로만 대순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채지가』에 “실지공부 모르고서 말로하면 될까보냐”(초당의 봄꿈)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포덕이 실지공부입니다. 실지공부는 도에서 하는 시학 시법의 진법 공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오직 대순진리회에서밖에 없는 진법 공부입니다. 도통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 도인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 공부입니다. 공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솔선수범, 가정화목, 이웃화합을 이루며 포덕에 성경신을 다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도전님께서 도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대순회보> 45호, 도전님의 마지막 훈시는 “가정화목, 이웃화합 이루며 포덕에 정성을 다하자”라는 제하의 말씀으로 구구절절이 도전님께서 도인들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사업, 일꾼, 일꾼의 포덕하는 정신, 수도의 본질, 종단의 발전은 더욱더 빨라질 것이라는 점, 도인의 책무, 가정화목 이웃화합으로 사회화평, 세계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 포덕에 온 정성을 기울임으로써 상제님의 덕화를 받아 대운대통하는 도인들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대순회보> 45호의 훈시는 늘 곁에 두고 읽고 또 읽고 실천해야 할 훈시입니다.
수도의 목적은 도통이고, 그 지름길은 무자기라는 것, 수도는 무자기와 윤리도덕의 실천을 근본으로 한다는 것,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면서 윤리도덕을 숭상하고 여기에 정신통일, 심령의 통일을 이루면 그것이 도통이라는 것, 나를 위해서는 수도에 힘쓰고 남을 위해서는 교화에 힘쓰며 창생을 위해서는 포덕에 힘써야 한다는 것, 무자기 – 가정화목 –이웃화합 – 사회화평 –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대순진리라는 것, 도인의 3대 실천사항은 ‘솔선수범, 가정화목, 이웃화합’이고 이것으로 천하포덕을 이룰 수 있다는 것, 공부는 종단의 생명이고 도인의 생명보다 소중하다는 것, “가정화목 이웃화합 이루며 포덕에 정성을 다하자” 그리하여 상제님의 덕화를 받아 대운대통하는 도인들이 되라는 것이 도전님께서 도인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라는 것 등을 이 시점에서 가슴 깊이 정립하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