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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은 진실, 그들이 말한 거짓(06)
팩션형 사모펀드 투쟁기
6조8천억은 어디로 증발했나
대낯에 등잔불을 켜고 “나는 인간을 찾고 있다”고 했던 그리스 견유학파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평생 낡은 윗옷 두겹을 끼고 개처럼 소박하게 살았다. 그에게 윗옷은 잠잘 때 이불이었으며, 거리에서 손님맞이 응접실 카페트 용도였다. 지팡이에 물주걱을 끼고 평생 거리의 큰 술항아리에서 살았던 그는 뜨거운 여름에는 모래위에서 몸을 굴리고 겨울에는 눈 덮인 조각상을 껴안는 방법으로 몸을 단련시켰다고 한다. 알렉산더대왕이 술 항아리 앞에 나타나, “무엇이든지 바라는 대로 나에게 말해 보라”고 하자, “햇빛을 가리지 말고 꺼지라”는 일화는 유명하다.
일체의 물욕(物慾)을 버리고 개처럼 살다가, 어느날 개가 혀로 물을 핥아 먹는 모습을 보고 갖고 있던 물 주걱마저 내던지고 개처럼 물을 마시며 살았다. 플라톤의 집에 찾아가“플라톤의 허세를 밟아 주고 있다”면서 깔아놓은 융단을 밝고 다녔다고 한다. 장례식 마저도 자기를 묻지 말고 내던져서 야수들의 먹이가 되게 하던지 구덩이에 던져 흙만 그 위에 덮으라고 했던 화려함과 벽을 쌓고 살았던 철학자 디오게네스도 한때는 통화 변조 혐의로 정든 고향 시노페에서 쫓겨났다. 현대국가 였다면 금융범죄로 처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철학자의 초년기 삶이 금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칼하다.
화폐는 필요한 재화를 얻기 위한 교환의 수단이면서, 끊임없이 탐욕을 부축이는 물적 표지이다. 화폐의 기능은 교환의 매개수단이고 가치를 축적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자본주의 체제에서 화폐는 인간 생존의 기초를 이루는 교환수단 뿐아니라 투기의 수단이고,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괴물이다.
화폐 금융자본은 세계화를 등에 업고 국경을 넘나 들면서 기업들의 생사 여탈권은 쥐고 흔들고, 금융위기, 통화위기, 외환위기를 일으키는 주범이고, 한나라 경제를 위기로 몰아 넣을 수 있을 만큼 위험한 무기가 되어 버렸다. 파생금융상품을 대량 살상무기라고 했던 워렌버핏도, 97년 외환위기 당시 법정화폐 제도가 붕괴될 것으로 예견하고 전세계의 1/3 달하는 백은을 사들였다고 한다.
보편적인 사람들이 사모펀드 피해자들에게 갖게 되는 편견 중 하나는 ‘먹고 살만해서 여유돈 좀 있다고, 위험한 상품에 투자했으면, 그에 따른 손실도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것이다. 좀더 극단적인 시각으로 표현하면 사모펀드라는 것이 원래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추구하는 상품인데, 도박판에서 잃어버린 돈을 돌려달라는 것은 억지 춘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6조8천억에 이르는 대규모 환매중단 사태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 기업은행은 왜, 사실을 밝히지 못할까
피해자들이 두 차례의 집회로 투쟁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기업은행도 발빠르게 피해자 달래기에 나섰다. 은행측은 그동안 꽁꽁 감추어 두었던 정보를 설명회에서 조금씩 풀어놓기 시작했으나 궁극적인 중요정보는 아직도 세상에 드러내기를 꺼려했다.
기업은행은 IBK 투자증권과 함께 설립한 복합점포인 전국의 WM센터를 돌며 피해고객들을 불러 설명회 형식으로 은행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격앙된 감정을 달래기는커녕 분노만 더욱 부채질 했을 뿐이다.
“부동산 담보되어 있고 안전장치가 돼 있다. 안전한 상품이다.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했죠? 또 만기에 지급되지 않은 사유가 펀드가 깨진 게 아니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그랬어요”
“네 맞습니다.” 박정환 회장의 질의에 시화공단 wm센터 유미리 PB팀장이 답변한다. 옆에 앉은 임찬희 부행장은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서 지켜 본다. 유미리 팀장은 안산 시화공단 지역에서 가장 많은 펀드를 판매한 팀장이다. 박회장에게는 지극정성을 다해줬던 성실한 은행직원이다.
시화공단WM센터 설명회에서 박정환 회장은 애써 침착하게 질문을 이어간다.“지난해 11월 달, 오영국 본부장이라는 사람도 나한테 와서 자산이 깨진 게 아니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해결된 게 없어요. 무조건 기다리래요. 어떻게 생각해요”
“죄송합니다.”
“그럼, 이렇게 나한테 기다리라고 그런게 유 팀장 개인 생각이에요? 은행 생각이에요”
“일단 은행에서 저희가 본부에서 내려오는 정보에 의거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또 미국에 갔다 와서 조사 다한 내용이라고 말했죠” 박회장은 젊잖지만, 취조하듯이 유팀장을 다그친다.
“자산운용사 직원들이 2018년에 실사 갔다 온 걸로 얘기를 해서 컨퍼런스라고 이제 저희가 직원들한테 안내하는 방송이 있는데 컨퍼런스 콜을 통해서 실사 갔다 왔다고....”박회장이 말을 끊고
“그러니까 컨퍼런스가 그러니까 교육 방송 아니에요 컨퍼런스에 본사에 가서 설명했을 거 아니야. 2018년에 실사 갔다 온 걸로 얘기를 해서 컨퍼런스라고”
“네, 저희가 직원들한테 안내하는 방송이 있는데 컨퍼런스 콜을 통해서 실사 갔다 왔다고”
숨을 한번 고른 박정환 회장은 임찬희 부행장을 무섭게 노려보면서, “그런데 이제 부행장님 제가 한번 여쭤볼게요. 이 상품 기업은행이 사기당한 거 맞습니까?”
“제가 2월 21일 이제 부임해가지고 상품을 확인 해본 결과 도입 당시에는 이제 모르고 있었는데 나중에 문제가 된 시점에서 사기당한 걸 알았다는 겁니다.”긴장한 듯한 태도로 임찬희 부행장이 조심스럽게 답변을 하자,
“기업은행같은 거대 조직이 말이예요. 그런 은행이 사기를 당했는데, 저희라고 어떻게 그걸 알겠습니까. 기업은행이 같이 사기친거 아닙니까? 이게 지금 2016년도에 생겼으면 디스커버리 자산운용사가 신설회사 아니예요 근데 뭐 내가 듣기로는 5천억 이상을 팔았다고 그렇게 많은 매출을 했는데 이런 자산운용사의 신용평가나 자산 파악도 안 하고 난 참 기업은행하고 자산운용사의 관계가 좀 이해가 안간다고요. 그런 신설 회사에 그냥 쉽게 해준 거는, 뭘 믿고 그 운영사에다가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박회장의 언성이 높아진다. 임찬희 부행장이 묵묵부답, 고개를 숙이고 말을 잇지 못한다.
4월 25일 강남지역 WM센터 설명회에서, 전직 은행원 출신의 60대 피해자 김옥희가 오영국 WM사업본부장에게 목소리를 높인다. “어떤 생각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품을 가지고 우리한테 팔았을까 그러면 장하원씨의 어떤 로비가 있었느냐 엄청난 돈을 받았냐 아니면 장하성씨의 정치적 연줄로 인해서 제일 많이 팔았느냐 이겁니다. 기업은행이 이 상품 판매 순위가 1위였습니다. 운용사의 매출 순위가 167위 였는데, 상품을 말도 안 되는 상품을 기업은행에서 최고로 판거예요.”
2019년 말 기준 디스커버리 자산운용사는 자산총계 또는 자기자본 기준으로 사모펀드 업계 순위가 167위였고, 사모펀드 순자산 총액기준 순위는 88위였으며, 기업은행 판매 상위 10개 운용사 자산규모 가운데 가장 작은 회사였다. 그러나 2018년 이후 기업은행이 판매한 전체 사모펀드 가운데 디스커버리 자산운용사가 차지한 판매 잔고는 5,842억원으로 기업은행 전체 판매액 1위였다. 교보증권 신한금투, IBK투자증권이 기업은행을 통해 판매한 사모펀드는 그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저는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납니다. 기업에서 30억 투자하고 300억 투자한 것보다 저한테는 이돈이 더 커요. 온 일생을 바친 돈입니다. 잠이 오겠습니까? 근데 은행에서 판 직원들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WM본부에서 이렇게 시켰습니다. 그게 누구예요? 오영국 본부장님이예요. 이 모든 것의 핵심은 본부장님 책임이에요”
“드릴 말씀이 없고요. 제가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만큼 장하원 장하성, 저는 그 사람 사실 알지도 못하고요.....”
“그게 말이 되요?”
“저희가 이 상품을 처음에 도입하게 됐던게 2015년도에 자산운용사가 처음 가지고 왔었어요. 금융위원회에 등록이 되지 않아 거절을 했어요. 2016년도 12월에 다시 한 번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판매하기 이전에 문제가 있었다는 부분을 저희가 확인을 못했어요.”
“모르시는 것도 책임지셔야죠. 모르시는게 더 문제 아닌가요?"
”지금 이제 아까 말씀하신 분들은 저희가 2017년 4월달에 판매를 했는데 그 이전에 좀 뭔가 문제가 약간 있었던 부분들을 좀 감지하고 저희가 알았더라면 그랬으면 더 신중하게 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은 정말 남습니다. 근데 사실 저희가 그걸 알았더라면 그러면 저희도 문제가 돼요.”
“알고 했으면 정말 나쁜 놈이고 모르는 것도 능력이 부족한 거죠.”
5. 6 강남WM센터 설명회에서 최창석위원장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오영국 본부장에게 질의를 이어간다. “오영국 본부장은 사기를 당했다고 그랬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맞죠”
“네” 짧게 대답을 하고 나자, “은행은, 자꾸 비겁하게 빠져나가려고 그래요. 사기는 당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당했다. 이제 이런 얘기를 해요. 근데 그 사기 당한게 자랑입니까? 기업은행도 사기당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사기를 안 당할 수 있어요”
“빠른 시간 내에 뭔가 좀 좋은 소식을 가지고 다시 고객님한테 찾아뵐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저희 은행에서는 저희 전무님이랑 행장님도 은행에서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피하지 마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금 하시는 거거든요.”
“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는 거는 지금 일부는 책임을 못 지겠다는 거 아닙니까?”
“오늘 바로 결정돼서 막 일사천리로 다 되는 게 아니고 기업들도 뭔가 한 가지 결정을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지 않습니까? 저희가 그런 부분들 그래서 고객님들께 정말 죄송스럽죠.”
“기업은행에서는 우리에게 속이 다 썩은 수박을 우리한테 판 거야. 우리가 집에 가서 먹으려고 보니까 속이 다 썩은 거란 말이야. 판 사람한테 가져가서 이거 썩었으니까 물러달라면 물러 줘야 당연한거 아니요?"
"그 부분들은 저희들도 똑같은 입장이 있었어요. 저희 행장님도 이제 그런 말씀을 하세요. 말씀하신 것처럼 썩은 사과를 예를 들어서 백화점에 가셔 가지고 사과를 사서 한 박스를 샀는데 집에 가서 열어보니까 사과가 한 반이 썩었어요. 그 사과를 한 박스를 들고 다시 백화점 가서, 야! 사과 썩었으니까 니가 돈으로 돌려주든지, 아니면 멀쩡한 사과로 와서 다시 반환을 해주든지"
“해줘요.”임경옥 피해자가 바로 답변을 한다.
“그렇죠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안에 부실 자산이 있고 지금 말하면 썩은 사과가 있고 이런 문제가 있었어요. 그러면 저도 처음에 은행에서 상품을 갖다 판매를 했으면 은행에서 알았든 몰랐든 간에 은행에서 책임을 져야 되는 거 아니냐, 전무님이나 행장님 같은 똑같은 얘기들을 계속하고 있는 부분들이고 그래서 제가 오늘도 그럼 은행에서 썩은 걸 팔았으니 은행에서 100% 다 돌려주자 정리가 돼야 되는데 정리가 사실 그렇게 안 돼요.”
“할수 있는 방법을 얘기해 줘야죠.”
“그렇게 하는 건 민사상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거고 저희는 민법에 적용받는 부분이 아니라 자본시장법의 특별법에 적용을 받기 때문에....” 안된다는 의미이다.
갑자기 흥분한 70대 노인 한분이 벌컥 화를 낸다.
“진짜 얘기 들어볼수록 뻔뻔스럽네. 너무 뻔뻔해. 처음에 갔을 때 설명하고 너무 다르잖아, 지금 말하는거 보니, 완전히 사기 집단이야. 이 선한 사람들 갖다 놓고 금전적으로 피해 입혔으면 사기야.”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이정섭 대책위 총무팀장이 나선다. “잠시만요. 선생님 일단 몇 가지 질문부터 합시다."
투자제안서의 내용을 꼬치꼬치 짚어가며 문제점을 나열한 후 “은행 시스템에 맞춰서 일을 하셨을거 아니예요. 여기 PB님 당신이 만약 고객이라면 이런 엉터리 제안서 내용을 알고 사시겠어요? 이걸 알았으면, 사시겠느냐구요. 제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인데, 우리 아들한테 설명해주면 아마 '아빠 미쳤어' 이럴 거예요.”
듣고 있던 PB들과 오 본부장이 말이 없자, 더욱 언성이 높아진다.
“여기 투자제안서에 나온 대로 직접 확인하고 미국에 직접 전화해서 1개월 단위 레포트를 받아서 확인을 하든가 아니면 미국에 직접 전화하고 미국에 레포트를 받고 할 생각으로 미리 가셨든지 둘 중에 하나를 했어야 되는 거예요. 근데 우리한테 그런 얘기 안했잖아요. 이제 와서 당신들 거짓말을 우리 보고 믿으라고요?”
거짓말의 역설은 이럴때 하는 말인가. 기원전 6세기 철학자 에피메니데스(Epimenides)는 크레타 섬 사람이다. 그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모든 크레타 섬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다.”그런데 그의 말을 뜯어 보면 그도 크레타 섬사람이므로 그의 말이 거짓이된다. 결국 크레타 섬 사람들은 거짓말쟁이가 아닌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도 역시 크레타 사람이니 그도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인가? 디스커버리 펀드 피해자 대상 설명회는 거짓말쟁이의 역설로 피해자들의 시간을 낭비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던 것은 아닐까? 설명회는 피해자들의 요구를 듣기는커녕, 은행측의 일방적인 입장만 통지하는 변명의 자리였음을 확인해주었다. 설명회이후 피해자들의 답답한 마음은 폭발일보 직전이다.
기업은행 고위임원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창구 직원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허위의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적 행동이다 -조지오웰-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