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詩作)
김 기 태
소갈머리 없는 이의 허튼 소리
쓸개 빠진 사람의 싱거운 소리
그게 詩인 줄 알았는데
보고 돌아서면 캥기는 게 있고
듣고 눈을 감으면 여운이 감돈다
좌뇌보다는 우뇌로
논리보다는 감성으로
사는 이야기 함축해서
쓴 것이 詩 같은데
좌뇌를 걸어 닫고
우뇌를 작동시켜야
나도 시 한 수 읊으려나
쓸개는 빠졌는데
돈두희안(豚頭喜顔)
-건설현장 고사장에서
몸이 없어도 씨잇 웃고 있는
옥황상제가 베어버린 목
豚頭의 주둥이와 코에
세종대왕도 신사임당도
입 맞춤을 한다
오른쪽 귀는 목수양반 드시고
왼쪽 귀는 철근아저씨가 드시고
혓바닥은 말 많은 감리단장 드시고
욕심 많은 주둥이는 뚱땡이 업무 연락관이 드시고
남은 것은 오신 손님 골고루 나눠 드세요
일하는 사람들 안전을 기원하며
나에게 절을 하니
부처님의 염화시중이 부럽지 아니하다
* 충남 서천 판교 출생, 글지이, 부름새, 서각인, (전)계룡건설 토목본부장, 온동 마을 촌장, 수필집 삶의 시방서, 소똥 위에 홍시, 살아보니 어뗘, 그려, 하고집이 등. blog.daum.net/ondong
민들레
바람따라
구름따라 여행하다
내린 곳이 둥지거늘
나뭇잎에 떨어져도 서두르지 않고
빗방울 친구삼아 땅으로 내려와
뿌리를 내렸지
머문 시간이 길어지면
잎이 낙엽되기를 기다려
한해를 기다렸어
돌 틈 사이에 떨어져도
싹 틔울 자신이 있었으니
이슬을 먹고 살아도
온 힘을 다해 키워
바람을 기다렸다
나에게는 꿈이 있으니까
서러운 날
낙엽은 지는데
괜히 초조해지고
지금
잘 살고 있나 싶고
나만
이런가 싶고
멍때리기 즐기다가
한 순간에
친구가 그립고
술집에서 만난 후배가
"선배는 지금 죽어도 호상이여!"라는
말에
눈물 나는 날
가을 옆에서
전 월 득
가을이 왔습니다.
내 사랑하는 가을이
단풍잎 붉게 물드는
심장의 고동 소리에
맞추어
가을이 왔습니다.
아기단풍 살랑이는
가을 언덕에
님의 발소리
뚜벅뚜벅 들려옵니다.
허공에 길을 만들고
님이 혼자 걸어옵니다.
내 사랑하는 가을 옆에 와
말없이 돌아서는
님이시여
사랑하는 님이시여
올해의 가을도
나 홀로 가라시나요?
* 충남 부여 출생, «상상의 힘»(2020) 수필 부문 신인상, jwd5038@naver.com.
주홍감
황량한 바람을 스치며
새움이 돋고
옥구슬 반짝이던
가지마다
생글생글 미소 짓더니
긴 여름날
우박과 천둥을 피하며
잎 새 뒤에 숨어서
알몸을 키우고 있었다
뙤약볕 여름 내내
쉼 없이 펌프질 했던가
감추었던 볼살들이
오동통한 얼굴로
조롱조롱 매달려
결실을 노래한다
파란 하늘을 온통
주홍바다로 만들며
가을비
부슬부슬 내려와
여름을 몰고 가는
가을비
여우비
긴 여름날
까맣게 타버린 멍
후련히 닦아주는
가을비
요술비
고운 물감 풀어놓고
문밖을 서성이는
가을비
예술비
마음은 벌써
천 리를 걸었네
가을비 따라
걸어도 걸어도 닿지 못할 그곳을
가을 연서
사계절이 바뀌는 것은
나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요
가을이 좋은 것은
내가 늙어간다는 것이리
예전에도 가을은 있었고
지난해도 가을은 왔었지
새삼 가을이 좋은 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 커짐이요
흘러가는 세월을
영영 잡을 수 없음이라
세상을 보는 만큼 알아가고
아는 만큼 즐기는 것이 인생이라
서산에 걸터앉은 석양은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리니
때늦은 연둣빛 가을은
어디에
무엇을 향하여 속앓이 하는가
가을은 아직도 서성이는데
는개
이 완 형
구름이 또 세상을 속일 모양이다
는개가 아침농부의 어깨를 부스럭거리는 것이
창가에 빗대서 좀체 나서질 않는 는개
아침농부가 끌끌거리며 텃논을 헤친다
벌써 보름째 하늘을 이고 기다려온 비
밤새 어둠을 울먹이며 컹컹대는 것이 작달비라도 푸는가 싶더니
가슴을 후리고 가는 안개바람이
아침 내 몸을 푼 것은 척척한 는개였다
막걸리로 축축해진 아침농부가 오후 내내 걷어 들인 는개를
새고자리에 얹고 돌아오는 몽당 길
물음이 가득한 눈꺼풀에 멍멍히 잦아드는 울컥 설움
작대기로 오월을 들어 흥얼흥얼 시름을 털어낸다
이미 해거름은 울안을 차고 넘는데도
부엌살이까지 훔치고 들어오는 는개
툭툭 구름을 손사래 치는
아침농부의 곰방대 위로 먼 산이 자욱하다
잠깐 밤도 다 못 채운 여우별이
배 고른 아이들 꿈속에서 뉘엿뉘엿 지는 그믐밤
는개를 실컷 삼킨 누렁이가
몽긋몽긋 새벽안개를 밀어낸다
잠자리를 거두는 아침농부의 잔기침에
이른 하루를 홰치는 수탉
그제야 아침놀을 지고 처마 밑으로 숨어드는 는개
작달비라도 오려나 킁킁 하늘을 떠보는 아침농부
* 대전 출생, 문학박사, 배재대 국문과 겸임교수, 소설 순수, 노래방 전설 등 다수, lwh8259@hanmail.net
코스프레
하루는 원숭이가 됐다
엉덩이가 제 코보다 빨간 리트머스시험지
피에이치 7에서 가장 뜨겁게 튀어 오른다
어제 마신 꿈 때문에 얼굴이 신 탓일까
소화불량에 걸린 구름을 도막 내서 먹은 탓일까
아침을 거른 기관차처럼 레일이 헐겁다
아버지는 늘 해장의 강을 건넜고
기침으로 새벽을 열었고
망치로 시계를 멈췄다
나는 그네를 타면서 스마트폰으로 밤을 풀었고
모바일로 개미들을 심었고
게걸스럽게 시간들을 먹어치웠다
한번은 원숭이가 나 같다고 했고
내가 원숭이였다고 했고
누가 누군지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모르쇠가 됐고
스크럼을 짰고
정년이 되었다
내가 TV한테 물었지만
TV는 나를 외면했고
끝내 서로를 모른 채 세상을 가로저었다
나는 오늘도 그네를 타면서
나를 찾아 거울 속으로 숨어들었다
언제나 반반인 나
쪼개진 문 사이로 나를 닮은 원숭이가 으쓱거리고
원숭이가 나 같이 눈을 치켜뜬 채 세상을 들고 있다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다
아니 반을 얻었으면 반은 버릴 수도 있잖아
아니 그대로 두면 구름을 먹고 비가 될거야
새벽부터 달력 속에 꽁꽁 숨겨논
벌거숭이 나무들이 제멋대로 구겨지는 밤
나는 늑대의 내장 속에 분향소를 차려 놓았다
분향은 오후 내내 거울을 이고 있었지만
빛은 들지 않았다
하루를 쉬고 나는 다시 원숭이가 되었다
아니 원숭이가 나였다
스포
응, 아냐
말했을 텐데 아니라고
아니라고 했잖아
기억이 없는 거야
가만히 좀 있으랬지
언제부터 그랬는데 뭘 안다고 여기까지 온거야
아직도 기회는 있어 늘 그랬잖아
그만 좀 하지 이젠 정말 시작하는 거지
왜 그런 건데 어떻게 하려고
그럼 그렇게 해 벌써부터 그러면 안 되잖아
그건 그렇지 어쩌라고 그래 그럴 걸 뭐하러 언제 건데
처음부터 잘못된 거야 게임성으로 승부를 봐야지
특수부대는 훈련은 제대로 된 거야
내가 뭐랬어 그따위들을 어디서 개봉박두 스페셜 포스
아니라니까
미쳤어 아니라고
아니라는 데도
새봄을 닮은 어머니
김 근 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사랑하는 어머니
사과꽃 필 무렵이면
희망찬 모습으로 세상 그려 가시던
하늘 같고 바다처럼 자애로운 어머니,
어머니의 계절 봄이 찾아왔습니다
오색저고리 바람에 날리며
수줍은 꽃가마 타고 지나온 동백 길
그 고운 모습은
하얀 백발과 깊은 주름살로 변했습니다
백 번, 천 번을 다시 살아도
다 갚지 못할 크나큰 은혜의 어머니!
뒷동산 언덕에 활짝 피어난
산수유 노란 웃음 들이마시며.
깊은 밤 별들까지 품고 꿈길도 열어주시는
어머니는 내면의 은은함이
싱그러운 한 송이 백합이었습니다
어머니,
이제는 늙어버리고 가련한 어머니
천둥소리도 온몸으로 덮어 침묵으로 돌리고
우리를 감싸고 안으셨습니다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도
어머니의 아들, 딸로 태어나겠습니다
우리들의 어린 날
내 작은 손목 잡으시고
환하게 웃으며 학교길 배웅하던 어머니
나 어른 되어서야
알게 되는 어머니 마음
드릴 것 없어 봄꽃 한 송이 드립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 한국문인협회 회원, (사)국보문인협회 전국작가협회 회장, 제11회 대한민국 국회 문화예술 명인대전 시 부문 대상, 대전광역시 대전사랑 시장 표창, 대전 중구 청소년 문예 대상 수상, 국무총리 청소년보호위원회 유공자 표창, 문화체육관광부 ‘책읽기 캠페인’ 초청 작가, 한국농촌문학상 대상 수상,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상 수상, 한국문학신문 대전광역시 본부장. 기자, 세계 청소년동아리대회 백일장 심사위원, 서원대학교 통일부 주관 전국 시 낭송대회 심사위원장, 저서 시집『유천동 블루스』,『오월의 연가』외
함께 가는 길목
심 현 지
가을이 전하듯
우리네 인생도
좋은 기운 소통하며
풍성하고 탐스럽게 살아가요
한 걸음 한 걸음
인생길에 웃음 태우고
어깨동무하고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요
익을수록 고개 숙이는
벼 이삭처럼
그렇게 그렇게
겸손하게 살아가요
아름다운 인연으로 움튼
행복 씨앗 가꾸며
그렇게 그렇게
우리 함께 살아가요
* 대전 유성 거주, ≪중도문학≫ 신인상 수상(2022), hg42500@gmail.com
추억의 꽃밭
벽난로 앞에 카프치노
시모나 향의 입맞춤
흐르는 음률 타고 떠오르는 얼굴들
생각하면 아득한 향기인 것을
한 폭에 그림 같은 인생길
아름다운 속삭임인 것을
알록달록 추억의 꽃밭은
마음 안에 정원이네
바람의 뜻
이 석 구
이 아침에
나는 왜 문득
바람의 뜻이 궁금해지는 걸까
기척 없이 다가와서는
저 잎새
살랑살랑 웃게 하는
그 재주
놀라워서일까
아니면
살랑살랑 정 주다가
저 잎새
그냥 두고 홀로 가는
그 뒷모습
얄미워서일까
어째서 와서 어째서 가는 건지
멋대로 와서는
저 잎새 몸 더듬고
살며시 외면하는 너
바람
이 아침에
나는 왜 문득
그런 바람의 뜻이 궁금해지는 걸까
* 충남 논산 출생, 이학박사, ≪상상의 힘≫ 신인상 수상, 시집 『초승달에 걸터앉아』,『서두르지 않아도 돼요』,『흐뭇한 삶』등, seokkoo@hanmail.net
빗방울
가늘게 꼬리 빼고
둥근 머리 디밀며
무작정 내달리던
너
번갯불에 놀라고
천둥소리에 더 놀라서
허둥지둥 닿아 보니
바윗덩이라
풍비박산
맑은 머리 박살나서
형체 없이 사라지니
참 가엾기도 하여라
그러니 뭐랬어
정신 차리라 그랬지
오를 때 경계하며
늘 겸손하라 그랬잖아
바람이란 놈
바람이 구름 몰고 와
한바탕 쏟아붓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 떼고 있다
얻어터진 너희가 잘못이지
아직도 눈물 뚝뚝 흘리는
지상의 온갖 것들 가엾다는 듯
바람이 지나며 달랜다
아랫것들 살피지 못했다
혼이라도 난 걸까
애꿎은 하늘은 군데군데
퍼렇게 멍이 드니
병 주고 약 주고
제멋대로 설쳐대는
바람이란 놈
참 못됐다
바람과 계곡
바람은
새털이 된 억새 잡고
가자, 빨리 가자 하고
계곡은
하이얀 이불 안고
있자, 좀 더 있자 하니
어느 산속
가을의 아침은
투쟁의 날을 세우며
그렇게 티격태격 시작하고 있었다
누구나
하고픈 말만 하고
듣고픈 말만 듣고
저마다의 고집대로 산다지만
그래도 제 것 적당히 지켜내며
주고받고
그렇게 균형 이뤄 살아가는 듯한데
어디서 와서
바람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뺏고 빼앗기는 자
바람과 계곡
그들의 삶만큼은
왜 이리도 박탈을 떠올리게 하는지
아, 힌남노
힌남노
역대 가장 강한 태풍이 온다고 한다
누가 먹다 버렸는지
시리도록 푸른 바다에 잠겨 희디흰 솜사탕 떠도는
잔잔하기만 한 계룡인데
제주에는 이미 비가 시작되고 바람이 몰아친다 하니
역시, 세상 넓긴 넓은가 보다
살짝 위로 솟는듯하다가 아래로 휘어 내린 귀
어느 전장에서 잃었는지
외 귀 투박하게 빛나는 군청색 물잔은
어둡게 채색한 주변을 고요하게 품고
살랑살랑 시원하게 바람 좀 불까 하여
세 군데나 활짝 열어젖힌 베란다 창이건만
그들조차 물잔에 들어앉아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
칠십이 년 전 새벽이 이랬다던가
조용하기만 했던 그 날의 아침이었건만
갑작스레 몰아친 돌풍이 서울을 쓸고
대전을 쓸고 끝내는 광주를 휘감아
낙동강 해자에 가두었던 잔인한 삶
지금, 저 하늘의 푸르른 고요가
어쩌면 결코 고요가 아닌 고요
아, 힌남노
김치 인생
오 병 남
배추가 소금물에
잘 절었습니다.
맛 좋은 김치가
될 것이지요
내 생활도 짠 눈물에
잘 절었습니다.
맛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 충북 청주 출생, 청주교대 졸업, 한국미술협회 회원, 가톨릭 미술가회 회원, 대전사생회 회원,
시집『당신은 나에게 선물이었어요』
설거지
그릇 한 개
손질 열 번
깨끗이 닦아 헹구면
어느새 그릇들은
제 자리에서
조용히 쓰임을 기다린다
나도 빈 그릇이 되어
하루
또 하루
쓰일 날을 기다리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