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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무슨 동에서 살아요.
공항 옆에 삽니다.
공항 옆에
예. 오시면 언제든지 모시러 갈 수 있습니다.
나는 삼도동에 살아봤는데
아, 살아보셨어요?
삼도동
좋은 동네에 사셨네요.
바닷가 옆에
예. 맞아요. 축하드립니다. 좋은 동네 사셔서
야, 그 좋은 동네, 너무너무 어려웠습니다. 내가 괜히 서울에서 회사 생활하다가 그만두고 뭔가 찾아보려고 찾다가, 도달한 곳이 삼도동입니다. 삼도동. (웃으심)
우와! 이야
그런데 찾아보고 실패했습니다. ‘실패해서 강원도 쪽으로 가서 장사하는 길밖에 없겠구나! 돈도 없고, 내가 찾는 것이 안 나오고, 나는 실패야. 다른 사람들 만나기도 좀 부끄럽고, 서울 쪽으로, 대구 쪽으로, 부산 쪽으로 갈 수는 없고, 강원도 쪽으로 피해야 되겠다.’ 아, 그런데 옆방에 누가 있었습니다. 그분도 아마 금은방 했다고 하더라고. 망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부부가 살았습니다. 너무 할 것이 없어서 그 사람 방으로 갔습니다. 차 한 잔 나눠 마시면서 그분하고 대화하고 있는데, 누가 노크를 합니다. 대학교 동기가 노크했습니다. “야, 가자. 교수님이 오라고 하신다.”
우와
내가 서귀포 살다가 제주시로 갔습니다. 그래서 이 주소는 모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내 친구가 ROTC 출신인데 “교수님, 제가 제주도로 가서 찾아내겠습니다.” 이 사람이 제주도 있다고 하는 것은 분명하고, 대한민국 남자치고는 예비군 훈련을 빠질 수는 없습니다. 하하하
(같이 웃으며)
ROTC 출신 친구가 제주도 내려와서 예비군 명단을 찾아보고 내가 삼도이동에 있다는 것을 알고 노크한 겁니다. 그 사람 노크 안 했으면 난 벌써 죽고 없습니다.
무슨 장사를 하려고 하셨다면서요?
아,
무슨 장사 하시려고
강원도 가서 장사해봤자 내 그렇게 오래 못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분 덕분에 내가 부산에 가서 강의하고, 이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지도교수님이 안 도와줬으면, 새 길을 안 열어줬으면, 이러한 집도 안 생겼고, 깨달음을 얻지 못했고, 가정도 없었고, 아무것도, 희망이 전혀 없는. 그런 상황인데 지금은 그래도 버젓하지 않습니까? 선생님 묻고 내가 답하고,
모자도 쓰고 계시고
모자도 쓰고 있고, 그러니까 삼도이동은 나한테는 참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렇군요.
내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교재를 보니까, 명상, 희열, 아난다 이런 것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장의 것은 알았는데 명상의 장만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교재에는 미국의 대학생들이 캔버스 나무 아래에서 명상하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야, 미국 학생은 저렇게 하고 있는데 가르치는 사람이 명상도 모르고, 너 동양 사람이니?’ 이런 느낌 왔습니다.
‘야, 명상 모르면 큰일 나겠다. 난 명상 알아야 돼.’ 그래서 방학 때마다 절 근처에 갔습니다. 절 근처 가보니까, 스님이 나를 별로 대접을 안 합니다. 그래 서서히 벽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불교의 용어가 너무 어렵습니다. 많은 단어들이 한자식입니다. 마음 내려놓는 것을 방하착이라고 하고, 숨을 헤아리는 것을 수식관이라 하고,
그런데 명상은 공부해야 되겠고, 명상은 붓다의 그림자이고, 붓다는 인도분이고 내가 왜 한국에 있나? 이 말입니다. 인도 바로 가지. 그래서 인도로 갔습니다. 가르치는 교수하고 나하고 개인 교습을 받았습니다. 진도가 나가다가 ‘오늘날의 깨달은 사람’이 나왔습니다, 붓다와 예수 분이 기억 저 멀리에 있는 분이라 생각했는데 아, 그분께서 “오늘날에도 예수, 붓다와 같은 분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희망이 생깁니까, 안 생깁니까? 희망이 생깁니다. 그래서 내가 그분에게 당신은 사마디 체험했습니까? 사마디는 초의식 세계. 우리의 보통 의식 말고 저 너머에 초의식이 있습니다. “당신은 사마디 체험했어요?” 하니까 “쿤달리니 요가를 하는데 위의 것은 모르겠다.” 그러대요 “ 그러면 내가 사마디를 체험한 분을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이분이 “오케이”했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은 분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성자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사마디 체험을 했습니다. 제 스승님께서는 “너 체험했어. 그것이 끝이야. 이제 더 찾을 것 없어.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그래서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에 도대체 내가 체험한 이것이 무엇인가?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책을 정말로 많이 읽었습니다. 많이 구입 했습니다.
어떤 경우는 큰 자루를 조교 선생님이 끌고 오기도 했습니다. 책을 수천 권 샀습니다. 그런데 별로 없습니다. 없는 이유가, 많이 사고 난 뒤에 보니까, 깨달은 사람은 책 쓰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하하하 (다 같이 웃음)
‘아, 이것 중요하다. 이것은 번역해야 되지. 아, 이것도 귀중하다. 이것도 번역하고’ 좀 알려주려고 하는 욕망이 있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책을 많이 번역했습니다. 번역이 쉽지 않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많이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번역한 것마다 다릅니다. 나는 처음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번역했으면 번역이 백프로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나중에 내가 보니까 번역하는 사람마다 다 틀립니다. 하하하 이 일을 어떻게 하지?
하하하
그래서 무슨 좋은 책이 보이면 번역해 놓은 사람들 책을 전부 다 샀습니다.
아,
어느 사람이 정말로 훌륭한 번역인지 아닌지, 무엇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그런 것을 알아야 안 됩니까? 그것이 큰 난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사게 되었습니다. 쉬운 예로 바가바드 기타라고 있습니다. 그 책은 한 권인데 번역서는 약 백 권 됩니다.
아,
나중에는 발에 차이는 것이 책입니다. 내가 후학들을 위해서 좋은 책을 공부를 해 가지고 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내가 해야 될 일인 것 같습니다. 좋은 직업과 글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줬고. 지금은 놀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의 저의 삶입니다.
놀고 계시군요!
놀면서 해야 됩니다. 뭘 할 때 자기를 너무 개입시키지 마십시오. 너무 개입시키면 빠져나오기 어렵고 선생님 숨도 못 쉽니다.
아까 ‘끝까지 가라’라고 얘기하셨잖아요.
선생님의 정신세계의 끝까지 가십시오. 그것은 끝까지 가야 됩니다.
끝까지 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저의 스승님께서 저보고 끝까지 갔다고 하셨습니다. (웃으시며 뒤편에 푼자님 사진을 향하시며) 이분께서
이분요.
나는 인도에서 몇 개월 방랑하다가 ‘야, 이건 너무 어려운 과제다. 끝에 이르는 것은 너무 어려운 과제다. 내가 이번 생에는 끝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 해.’ 왜냐하면, 몸 트레이닝, 마음 트레이닝, 무슨 트레이닝. 이 체계가 너무나 완벽하게 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깊습니다. 그것 알려면 젊은 나이 때 좋은 선생님한테 입문 받고. 전수를 받아야 한 분야를 마스터 할 수 있겠더라고요. 큰 아름다운 전통을 많이 봤습니다.
‘야, 삼십 넘어서 뭘 배우겠다고’ 그래서 내가 많이 포기했습니다. ‘나 이제 안 돼. 다음 생에에 젊은 나이 때 빨리 입문할 거야.’ 이런 마음을 먹었습니다. 나는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오려고 뉴델리로 왔다가 ‘한 분을 내 꼭 만나야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리드와르로 갔습니다. (푼자님 사진을 가리키며) 이분이 계시는 곳입니다. 이분이 사시는 곳이 아니고 게스트하우스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찾아갔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분을 내가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아침에 릭샤 타고 찾아갔습니다. 아, 마침 이분께서 그 게스트하우스에 계셨습니다. 침상에 혼자 계셨습니다. 깨달으려고 이 분 만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찾아갔습니다. 깨달음을 기대하면 안 됩니다.
시골로 가면 식당이 제대로 없습니다. 남쪽으로 간다면 기차를 이틀 밤 타기도 하고,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뉴델리에서 있다가 이 분 만나러 간 것입니다. 그때 내가 굉장히 피곤했습니다. 몸도 피곤했고, 마음도 피곤했고, 그래서 인사를 드리고 난 뒤 첫마디가 “아, 저는 피곤합니다.” (웃으시며) 배우러 온 사람이 피곤하다니, “저 피곤합니다.”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피곤하다고 하니 이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러면 저 호텔에 가서 샤워하고 좀 쉬어요.” “저는 몸이 피곤한 것이 아니고, 마음이 피곤합니다.” 그래 이분께서 나보고 하시는 말씀이 “너, 마음이 아닌데.” 마음이 아니니까 마음을 내려놓아야 됩니까, 안 내려놓아야 됩니까? 내려놓아야 됩니다.
음.
나는 그때 마음을 내 것이 아니라고 버렸습니다.
음..
버리니까 갑자기 내가 다른 세계로 넘어갔습니다. 앞에 스승이 안 보입니다. 옆에 벽이 안 보이고,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아, 그렇게 밝은 그 무엇이 내 바탕에 있구나!’ 하, 얼마나 좋았는지 압니까? 그렇게나 행복할 수가 없고, 그렇게 찬란할 수가 없고, 그런 것이 끝도 없이 있습니다. (조금 뒤) 그때 물론 시 공간이 없습니다. 그 찬란한 공간에 있다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다시 방 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좀 있으니까 내가 있고, 스승님이 계시고, 방이 있고,
하, 이런 것이 어떻게 나 속에 있는가? 얼굴에 미소가, 이제 피곤한 것이 없습니다. 앞에 있는 스승님께서 저보고 하시는 말씀이 “당신 붓다요. 그게 끝이요. 당장 돌아가요. 집으로.” 그래서 나는 돌아왔습니다. 이 내용이 모두에게 다 있습니다.
인도 가면 종교는 자유입니다. 내가 제일 느낀 자유는 종교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진리에 이르는 길을 좀 누가 객관적으로 잘 설명해 놓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일은 아마 내가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마음 써가지고 그 작업을 할 거 같으면 그 사람의 마음이 들어가 버립니다. 신선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너무 개입하지 말고, 그냥 자기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누구를 깨닫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차적입니다. 일차적으로는 내가 그래도 책과 가까이할 수 있는 은총을 받았으니까. 그런 것을 좀 정리하는 놀이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넌, 깨달았어.”라고 했을 때 ‘내가 깨달았구나.’라고 하는 것이 제가 듣기에 나를 믿는 힘으로 들렸거든요. ‘스승님이 깨달았다고 하니, 난 깨달았구나. 나는 깨달았어’ 나를 믿는 힘
아니, 뭐냐 할 것 같으면 나의 내면에 있는 깊은 내용은 머리가지고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하,
이것은 우주의 모든 것들의 바탕이지, 내 머리가지고 이것을 해석해가지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아닙니다. 뭐냐 할 것 같으면, 현상세계가 비롯된 바탕, 그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이 현상세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누가 설명 안 해줘도 선생님이 알게 됩니다. ‘아, 이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비롯되었구나!’ 하는 것을 선생님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는 것입니까, 믿는 것입니까?
아니, 믿는 것은 마음입니다. 자기가 모르는 것을 믿는 것,
있다고 믿는 아, 이 세상은 가짜야 환영이야.
믿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더 낫습니다. 머리가지고 만들어 낸 앎이 아니고, 이 앎을 영어로 할 것 같으면 knowledge인데 케이를 대문자로 쓰세요.
절대적인, 알겠습니까? 이것은 인간의 지성으로서 뭔가 아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넘어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많은 성자분들이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나름 노력했는데 그것에 많은 성자분들이 이르렀습니다. 바다 같으면, 육지에 있는 분들이 바다를 보려고 하면 바다를 압니다. 똑같은 바다입니다. 많은 현자들이 그 해안에 이르렀는데, 그 해안은 똑같은 해안입니다.
이 사람도 가고, 저 사람도 보고, 붓다도 가고, 예수도 가고, 다음 차례는 선생님 가보십시오.
그럼요. 가 봐야겠죠.
가보세요.
끝까지 가라고 하셨는데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은 뭘까요? 책을 많이 읽는 걸까요? 많이 아는 것? 거기까지 갈 수 있다고 아는 것?
아는 것이 없는 게 좋습니다.
아는 것이 없는 게 나아요?
아는 것이 없는 게 좋아요. 아는 것은 머리를 무겁게 합니다. 선생님, 지금은 아는 것이 있는데 밤에 잘 때는 아는 것을 다 버립니다. 많이 버렸지마는 그 버림도 부족합니다. 유연성이 없습니다. 생동감이 없습니다. 시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생활하면서 많이 버려요. 기꺼이 버려요. 버리려고 버리는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버리십시오. 그래서 선생님이 아주 좋은 사람, 순수한 사람일 것 같으면 진리가 선생님을 찾아옵니다.
하! (박수침)
이해됐습니까? 자기가 못 깨닫습니다. 진리가 그런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순수한 사람, 고귀한 사람, 궂은 일을 하는 사람,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사라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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