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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8:19(850) 나의 짐을 져주시는 주님 2024. 3. 3.
이제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신혼 초기에 서로 말다툼을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말대꾸를 하니까 남편이 윽박지를 듯이 말합니다.“지난 번 우리 결혼식 때에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다 잊어 먹었어? 목사님이 남편은 하늘이고, 아내는 땅이라고 했잖아, 까먹었니?” 그러자 아내도 지지 않고 말합니다. “요즘은 땅 값이 하늘 위로 치솟는 것도 몰라!”
그렇게 싸우고 볶고 하면서 시간이 흘러 부부에게 어느 듯 노년의 시간이 찾아 옵니다.
어느덧 미운 정 고운 정 붙어 나이 70줄을 넘겼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고등학교 동창회를 다녀왔는데, 표정이 시무룩하여 아주 어둡습니다. 할아버지가 “왜 그려” 라고 물어 봅니다. 할머니는 “별일 없어요” 라고 대답합니다. 할머니 눈치를 보던 할아버지는 “별일 아니긴 뭔 일 있구먼” 라고 하자, 할머니는 짜증을 내며 “아니라니께”라고 하는 거에요.
할아버지가 옛날 젊은 시절 아내에게 함부로 대한 것이 생각나서 “당신만 밍크코트가 없었어?”. 그래도 할머니는 아무 말 않습니다. “당신만 다이아반지가 없었어?” 그래도 할머니는 깊은 한숨만 내며 아무 말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그럼 뭐여~?”라고 힘을 내어 할머니를 다그치자, 할머니께서 하는 말씀이 “에휴~ 나만 남편이 살아있잖어.”라고 했답니다.
옛날과 달리 장수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장수는 하나님이 주신 복이며 하늘이 내린 축복인데, 요즘은 오래 사는 것도 스트레스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이런저런 수많은 종류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스트레스, 자녀교육 스트레스, 직장의 업무 스트레스, 기타 인간관계에서 생겨나는 각종 스트레스로 인해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찾아온 스트레스를 어떻게 하십니까?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삶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질 때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스트레스가 쌓일 때, 또는 내가 난관에 부딪쳤다고 생각할 때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반응은 두 부류입니다.
1)부류는 그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현실을 도피하고 피난처를 찾아 도망을 칩니다. 현실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현대인들의 질병 중에 정신병이 많다고 합니다. 정신병이라고 말하지만, 의학적 용어로는 정신분열증입니다.
정신의학자들 이야기로는 정신분열증이 생기는 이유 중에 ‘충격 회피’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큰 슬픔이나 아픔을 겪었을 때에 맨 정신으로는 그 힘든 순간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정신적으로 그 충격을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방향으로 정신 분열이 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고 힘든 일이 있을 때에 마냥 외면하고 도망가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2)다른 쪽은 정면으로 부딪치는 사람들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사람입니다. 고난과 스트레스를 정면으로 마주 대하는 것은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 대부분 사람들은 도망가는 방향을 정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고난과 스트레스가 다가올 때, 도망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기도하며 고난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도가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더 감사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부류에 속해 있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살율은 OECD 33개 국가 중에 1위라는 이야기는 이제 식상한 이야기 거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런 저런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명상이나 내적 치유 프로그램이 여기저기서 만들어져 있으며, 내면적으로 상처 받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정말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견디기 힘든 무거운 짐을 피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술과 마약의 중독에 빠지면서 자신을 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도의 모습은 이것과 달라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힘들고 어려울 때, 문제를 외면하여 도망치거나 구석으로 숨어 버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도는 문제 해결 할 수 있는 놀라운 방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방법이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을 “피난처”라 말하고 , “보호자”라고 말합니다.
시 46: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 55:22절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하셨습니다.
오늘은 3월 들어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3월 첫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주간은 다가오는 3월을 시샘이라도 하듯이 찬바람이 많이 불었던 한 주간이었습니다. 이번 겨울 어떠하였습니까? 정말로 춥디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 추운 겨울을 보내고 이제 이름만 들어도 따사로워지는 춘삼월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추운 겨울과 같은 모진 시기가 있는 법입니다. 살을 에는 칼바람이 찾아 오기도 하고, 나는 넘어뜨리려는 강한 바람도 부는 법입니다. 이렇게 모질고 힘든 고난 속에 있을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길 소망합니다.
19절을 다시 한 번 다 같이 읽어 봅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아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셀라).”
이 짧은 한 구절에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의 약속이 있습니다. 다윗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는 주님이 어떤 분’이라고 말하고 있나요?
1. 주님은 날마다 나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19상반절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는 날마다 나를 도우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 지금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를 날마다 보호해 주시고, 날마다 내 짐을 지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날마다”입니다. 영어로 Everyday입니다. 매일 매일이라는 말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를 돌보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복음송가 “날마다 쉼 쉬는 순간마다”를 아시지요. 우리 한번 불러봅시다.
1)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자비하신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2)날마다 주님 내 곁에 계셔 자비로 날 감싸주시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힘 주시네. 위로함 주네. 어린 나를 품에 안으시사 항상 평안함 주시도다.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 살피신다 약속하셨네.
3)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 보네. 내 맘속에 믿음 잃지 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 순간 마다 주님 약속 새겨봅니다
시편 68편은 다윗이 대적자들로 인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불렀던 노래입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 하여 여기저기 정처 없이 유랑할 때에도 다윗은 하나님만 바라 보았습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오로지 날마다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다윗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하나님만 앙망하는 다윗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한가운데라고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3천년 전 다윗 왕이 믿었던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날마다 나를 지켜보고 계시고, 날마다 나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을 흔들리지 말고 믿으시길 소망합니다. 그저 하나님만 믿고 날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성실하게 보내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발걸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살펴 보아야 합니다.
영국의 소아병동에서 방사선 기사 제인 톰린슨(Jane Emily Tomlinson 1964–2017) 여성이 있습니다. 1990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으나 수술로 건강을 되찾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2000년 유방암이 재발해 폐와 뼈로 전이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과 함께 그녀는 6개월만 살 수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200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들의 진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17년을 더 살았고, 2017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여성을 위한 유방 암 기금 모금운동을 펼칩니다. 모금을 위해 철인 3종 경기(트라이 애슬론, 수영 1,500m, 사이클 40㎞, 달리기 10㎞)에 출전합니다. 운동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완주하기 힘든 것이 철인 3종 경기인데 그 녀는 출전해서 완주합니다. 2006년에는 자전거로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뉴욕까지 6,780㎞를 달렸습니다.
그리하여 27억 원을 모았습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2006년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 날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기적을 쓰고 있는 그녀에게 대영국 상급 훈사 훈장을 수여합니다. 의사는 6개월 시한부 인생이라 선고했지만, 그녀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목적으로 가지고 자신의 모든 짐을 하나님에게 맡기며 인생의 기적을 일구어 낸 것입니다.
2. 주님은 날마다 나의 짐을 지시는 분입니다.
19절을 다시 보십시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요즈음 학교 가는 학생들의 가방을 보면 큰 책가방 든 학생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놀러가는 것처럼 가방이 아주 가벼워 보입니다. 교과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학교에는 교과서나 개인 물품을 보관할 수 있는 개인 사물함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거운 교과서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아이들 가방이 대부분 가볍습니다.
하지만 옛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날 공부할 책은 전부 싸 가지고 등교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아침에 학교에 등교할 때, 그 무거운 책가방 안에 책만 넣은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도 넣어야 했습니다. 바로 도시락입니다. 배고프지 않게 도시락까지 챙겨 넣어야 합니다. 고등학교에 야자(야간자율학습)하면 도시락 두 개를 싸가지고 등교했습니다. 그야말로 책가방 무게가 한 짐이요 어깨가 무너져 내릴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특히 저는 당시에 중학교 배정을 가장 먼 거리로 배정을 받은 상태인지라 학교 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집은 전포동인데 학교는 주례에 있는 중학교였습니다. 그러다가 중 2학년 때에 오른 팔이 부러진 적이 있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도무지 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서기수>라는 제 친구가 2달 동안을 제 가방을 들고 저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에 친구들 이름을 단 한 명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친구이름만큼은 기억합니다. 50년을 넘기는 시점이지만 지금도 그 친구 이름만을 기억합니다.
제가 모든 친구들의 이름을 다 까먹어도 그 친구 이름만은 기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냐 하면 제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은혜를 그 친구에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절대 잊을 수 없는 은혜를 받았을 때, 그 당시 상황과 기억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뇌에 각인됩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어때요. 제가 그 친구 이름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지만, 전 지금 서기수라는 친구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행여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닌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름만 알고 있을 뿐, 나에게 도움을 준 그 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말 하나 전할 수 없습니다. 이런 무심한 것이 바로 사람이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은 다릅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받은 은혜를 다 망각해 버린다고 해도, 하나님은 절대 나를 잊어버리는 분이 아닙니다. 세상 그 어떤 친구보다도 더 가깝게 나를 가까이 대하시면서 나를 챙기고 계시는 분이 바로 내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에요? 내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에요?
우리 주님은 내가 무거운 짐을 괴롭게 홀로 지고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힘들어하는 문제, 내가 해결치 못하는 환경을 구경만 하지 않습니다.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찾아옵니다. 나에게 찾아와서는 ‘내가 지고 있는 그 짐을 내려 놓아라’ 말씀하시고, 그 짐을 대신 지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시편 37:5절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잠언16:3절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여기에 등장하는 단어 <맡기라>는 말이 참 은혜로운 말입니다. 여기서 “맡긴다”는 말은 히브리어 원 뜻은 “굴려 버린다. 또는 옮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큰 바위를 다른 위치로 옮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작은 돌맹이 정도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지만, 사람의 힘으로는 큰 바위를 옮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큰 바위를 옆으로 살짝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내 고민덩어리 큰 바위를 내 눈에 띄이지 않도록 아예 먼 곳으로 굴려 버린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 모든 짐을 지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 모든 짐을 굴려 버리시고, 내 모든 짐을 대신 져 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빌 4:6~7절을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다 맡겨 버리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말입니다. 그냥 하나님에게 맡겨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냥 하나님에게 맡긴다는 말은 하나님이 나의 모든 일을 간섭할 수 있도록, 내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며, 또한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전적으로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남자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십니까? 군대이야기입니다. 군대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해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고생을 했기 때문입니다. 군복무 할 때는 가장 고생스러웠지만, 지내고 나니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됩니다. 그래서 제대한지 몇 십년이 지나도 군대이야기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하게 됩니다.
아무튼 이런 군대 이야기도 무사히 제대를 한사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사고를 치고, 안 좋게 끝이 난 사람은 군대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과거의 군대이야기가 현재의 아픔이 되고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인생 모습이 군대 이야기 같은 모습이 되었으면 합니다. 비록 현재는 힘들고 어렵고 눈물 나지만, 그래도 시간이 흘러 지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나눌 수 있는 인생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3월의 모든 시간을 하나님에게 다 온전히 맡기길 소망합니다. 내가 지고 있는 모든 짐을 주님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겨 버리시기 바랍니다. 내가 혼자 지고서 힘들어 하면서 원망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버리는 3월의 모든 시간이 되길 축원합니다.
복음 성가 하나 더 부른 후에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복음성가 가사를 생각하시면서 부르시길 소망합니다. “주님이여 이 손을”‘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기울이시사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