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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출생과 사역
누가복음 1장 57-66절, 3장 1-6절 / 1:57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58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59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60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61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62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 63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 64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65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골에 두루 퍼지매 66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이르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 3:1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직에 있는 노년의 사가랴와 그 아내 엘리사벳에게 요한의 수태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해산할 기한이 차서 엘리사벳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웃과 친족은 주께서 엘리사벳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다 함께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에 모든 친족들과 이웃이 지켜 보는 가운데서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그날에 아기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고 부를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가랴도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었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주의 사자가 요한의 수태를 알릴 때 짓게 한 이름이었습니다(눅 1:13).
그리고 세월이 어언 30년이나 지났습니다. 로마 황제 디베료1)가 통치한 지 15년째 되던 해에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살고 있는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통해 사랑과 보호를 받으면서 자랐으며,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 나타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공적인 사역을 수행하기에 앞서서 요단강 동편에 위치한 광야<사막>에서 한동안 살았었습니다(눅 1:80).2) 이 당시는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에 있었으며,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있었고, 그의 동생 빌립이 이두레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있을 때였습니다.3) 그리고 대제사장직은 안나스와 가야바가 맡고 있었습니다.4)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요한은 요단강 부근에 있는 온 동네를 다니며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며,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은 세례를 받을 것을 외쳤습니다. 요한이 이처럼 회개를 외치며 세례를 베푸는 일을 한 것은 누가가 기록한 바와 같이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5)한 대로 광야에 외치는 소리로 있는 것에서 였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선지자 이사야가“여호와이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가실 길을 광야에 뚫어 놓아라. 거친 사막을 평평하게 다듬어서 우리 하나님이 통과하실 큰길을 닦아 놓아라. 깊은 골짜기마다 흙을 채워서 평지로 돋워 올리고 산과 언덕들을 모두 깎아 내려 낮게 만들어서 결국 높은 곳들이 평평한 곳으로 바뀌고 울퉁불퉁한 산봉우리들이 드넓은 평원으로 바뀌게 하여라. 그 길로 여호와께서 영광스럽게 오실 것이니, 그날에 모든 사람이 그분을 바라볼 것이다.”6) 라고 말한 예언에 의해서 요한이 회개를 외치며 세례를 베푸는 것으로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요한은 선지자 이사야가“모든 육체(사람)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예언하여 말한 것을 의도적으로“모든 육체(사람)가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 곧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에서 앞서 있는 일인 주께서 오실 길을 예비할 것에서 그 길을 쭉 뻗은 곧은 평지로 닦음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오시기 전에 길을 산과 언덕을 깎아 내리고 깊은 골짜기를 채워 평탄케 다듬는 것인데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눅 1:16-17)
를 가지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즉,“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할 것”(말 4:6)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어린 자녀들의 마음처럼 부드럽게 할 것이며,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녀들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믿음의 지혜 있게 하실 것입니다.7) 이것으로 있게 되는 것이‘회개’이며‘세례’를 받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왕>으로 영접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 연합하여 - 그분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라고 하면서,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마 3:3)
라고 말하여 외친 것입니다.
광야에 있는 요한이 외친 소리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으니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아 따르지 않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주님으로 섬겨 따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그분의 나라에서 그분의 백성으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에게 보내신 그리스도를 따라 임하게 함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가 볼 수 있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것이 되도록 참으로 그들 앞에 가까이 다가와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옴으로 그 나라가 지닌 능력이 행사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라고 예언한 것을 누가는 표현을 달리하여“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라고 한 것에서 보게 되는 바인 죄에서 구원 얻는 회개에 있게 하시는 능력 있는 일이 일어납니다. 요한은 사람들이 이 회개에 있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예수’로 불리는 그리스도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증거하며 물로 세례를 베푸는 일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렸습니다(요 1:29-31).
요한이 증거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이름이 지닌 하나님의 능력이 무너질 것 같지 않은 높은 산을 무너뜨려 평탄한 길이 되게 하였으며, 낮아질 것 같지 않은 언덕을 헐어 곧은 길이 되게 하였고, 매꿔질 것 같지 않은 깊은 골짜기가 채워져 평원이요 평탄한 길이 되어 주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태산 보다 더 높고 언덕 보다 더 크고 깊은 골짜기보다 더 깊고 깊어 결코 낮아지지 않고 깎아지지 않으며 채워지지 않는, 그래서 결코 평탄한 길이 되지 않는 것이 육체인 사람이요,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사람을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믿은 믿음의 의에 우리를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그렇게 하시는지요. 요한은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산과 언덕과 깊은 골짜기로 있는 우리를 주께서 오실 길로 닦아 평탄하게 하였습니다. 그 성령은 소멸하는 불로 알곡으로부터 쭉정이를 분리해 내어 태움으로써 영원히 멸망케 할 것인데, 우리를 그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여 멸망하지 않을 영생에 있게 하기 위해 우리의 죄를 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음으로 이 능력을 힘입음에 있는 우리입니다. 이 능력은 우리에게 잠재해 있는 잠재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능력은 우리에게 은닉되어 있는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날마다, 그렇게 언제나 실행하고 있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모든 죄에서 사할 것이요.”(골 2:13. 참조. 벧전 4:8)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것에 있는 우리는 말입니다. 이미 우리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늘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있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여기에 걸맞는 삶을 살아간 것에 의해서 있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말이죠. 이미 하늘에 기록된 이름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가령, 세례 요한과 같은 삶을 살아가 그와 같은 자가 되어서, 또는 다른 어떤 믿음의 인물을 본 받아서 그와 같은 사람을 살아가 그와 같은 자가 되어서 하늘에 이름이 기록될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써 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자로 그의 이름이 어떤 이름으로 있으며 또한 불리든지 간에 세례 요한이 증거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는 우리가 믿는 믿음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릅니다. 우리는 말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무엇으로 불리든지 간에 그리스도의 이름이 지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 이름을 따르는 성도인 그리스도인으로 삽니다. 그리스도인은 그가 믿음으로 따르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에서 의해서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말해지는 곳에서 그 이름이 배척 받거나 또는 환영 받는 것에 의해서 고난 속에 있기도 하며 또한 평안에 있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어떤 영접을 받는가에 따라서 그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 또한 같은 대접을 받는 배척을 받는가 하면 환영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세례 요한과 같은 인물로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용감히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거하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인 진리가 불의와 그 죄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불의와 그 죄에 대항하여 맞서 싸우되 죽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목사나 복음 전도자(선교사)의 신분으로 있으며, 또는 교회의 어떤 직무를 맡아 행하는 것에서 그러지요. 어떤 그리스도인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어떤 그리스도인은 소년, 소녀의 어린 상태에서도 그럽니다. 이들 모두는 그들이 흠모하는 성경의 어떤 인물과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자신 안에 심겨진 씨인 진리의 말씀인 그리스도가 싹트고 자라나 맺은 열매인 믿음으로 인해 각각에 사는 상태에서 그들 모두는 하나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 진리를 말하며 진리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사람으로 삽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삽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삶이요 그리스도를 알고 믿기 이전에는 결코 될 수 없었던 변화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기억하고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과 같은, 또는 성경에 등장하는 이런 인물 저런 인물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에 우리 믿음의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고자 하여 그러한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에 우리 믿음의 목적이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말이죠. 세례 요한이 증거한 그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살게 하시는 사람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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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베료는 주후 14년에 아우구스투스를 계승하여 황제로 등극했기 때문에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연대는 A.D. 28-29년일 가능성이 크다. John Nolland, WBC 35A : Luke 1:1-9:20, 김경진 역,『누가복음 1:1-9:20』(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2003), 313.
2) Michael J. Wilkin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 NIV Matthew, 채천석 옮김, 『NIV 적용주석 마태복음』(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2009), 148.
3) 빌라도는 주후 26-36년까지 유대의 총독이었다 유대는주후 6년에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폐위되면서 로마의 직접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헤롯 안디바는 헤롯 대왕의 마지막 유언에 따라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재가를 받아서 주전 4년에서 주후 29년까지 갈릴리와 베뢰아를 통치했는데 누가는 오직 갈릴리만을 언급하고 있다. 누가는 단지 그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이 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당시 상황을 보여줄 정도의 정보만을 제시한다. 빌립은 그의 형제들보다 야심이 덜했기 때문에 작은 영토만을 물려 받았다. 그는 주후 34년에 죽을 때까지 통치했다. 빌립이 통치한 드라고닛(Trachonitis) 은 다메섹 남쪽에 있는 지역이고, 이두래Iturea)는다소 유동적인 명칭이었다. 레바논에 자리 잡고 있던 이 나라는 한때 상당히 강성했으나 점차쇠약해져서 소국이되어버렸다. 루사니아의 통치 기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초기의 루사니아(Lysanius)는 주전 36년 이전에 아빌레네(Abilene). 또는 적어도 나중의 아빌레네를 포함한 영토를 통치했다. 그러나 요세푸스(Josephus)와 디베료의 치세보다 빠르지 않은 시기에 아빌라에서 발견된 금석문을 보면 후기의 루사니아도 아빌레네를 통치했음이 분명하다. 아빌레네는 다메섹 바로 서쪽에 있었다. John Nolland, 앞의 책, 313-314.
4) 누가의 이야기 속에서 빌라도 헤롯 안디바, 고위 제사장들과 예수의 만남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누가는 흥미롭게도 ‘에피 아르키에레우스 안나 카이 카이아파’(‘안나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라고 기록한다. 신약은 전임 대제사장(주후 6-15년)이자 현재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주후 18-36년)의 장인이었던 안나스가 대제사장직의 권력과 특권의 상당 부분을 계속해서 보유하고 있었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요(18: 13, 24; 행4:6). 누가는 안나스의 폐위를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무리들의 견해를 따르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Schümann. 149. 151에 의하면). 그렇다면 우리는 이 어구를 “대제사장 안나스, 그리고 가야바의 때에”로 번역해야 한다. 분명히 사도행전 4:6을 보면, 대제사장으로 불리는 사람은 가야바가 아니라 안나스다. 위의 책, 314.
5)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사 40:3-5)
6) 현대어성경.
7) 위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