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ll things like these - Claire Keegan
- Rudolphensis
재미 있는 소설이 읽고싶은가,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즐기고싶은가? 가능하면 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개인의 철학 확장 과정을 보여주는 가치까지 겸비한 책을 보고싶지 않은가! 기왕이면 짧고 읽기에 부담없는 소설이면 좋겠는데~ 같은 생각이 있다면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딱이다.
소설의 끝 부분은 이렇다;
수녀원에서 구출한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길을 걸어올라가는 펄롱(주인공)의 가슴 속에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투박미 100%인 “순진한 마음으로”로 은근히 독자의 가슴을 후비며 이야기를 끝내는 간결한 표현! 이런 게 도덕적 가치의 실현 외에 이 책을 빛내는 특징 중 하나라할 수 있다.
주인공은 조용한 성격에 걱정이 많고 부지런히 일 만 하는 전형적 가정적인 사람인데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게 태어나 어지간 한 자신감도 없는, 사회적 불의 같은 것에 관심 갖는 건 사치인 계층이다. 그래서 위와 같은 결말의 행동은 더욱 돋보인다.
캐릭터 중 식당 주인인 사람 좋은 미시즈 케호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아는 주변인이다. 사회(수녀원 등)의 부조리에 관심 갖는 주인공에게 기득권의 강한 벽에 대한 현실적 조언까지 해준다; 비열한 말인지 몰라도, 착실하게 일하며 사는 동네사람(주인공)을 감싸고 보호하는 느낌 준다. 또 주인공의 부인은 굉장히 낙천적이고 건강한 분위기를 풍기게 설정하여 소설을 시작한다.
가치 충만한 부분을 한 군데만 인용하자면,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 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중략)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평범한 소시민이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나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출신 성분으로 볼 때 그 도덕성 또는 개인적 철학의 확장은 더욱 빛나는 것이다.
진행의 유려함도 본 소설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군더더기 없고, 시종 비약 없이 진행한다, 건조, 간결하면서도 주인공의 사회부조리에 대한 관심을 은근히 점층시키며, 행동에 이르게 한다.
즉, 앞부분에서는 주변의 평범한 일상을 건조하고 산뜻하게 묘사하다가, 어리둥절하는 주인공 펄롱의 마음이 흔들림을 천천히 보여주며, 궁극적으로 소녀를 구출해 자기 집으로 데려가는 도덕적 '행동'으로 이끈다.
하지만 사회의 부정적인 면에 저항하는 기록으로만 전개했다면 그건 다큐나 보고서라 할 것이다. 문학은 언어의 아름다움이나 섬세함 등을 기본으로 하며 표현해나가야 맛과 가치를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소설 전체에 흐르는 간결한 문장들을 독자들이 읽으며 산뜻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한미하게 태어난 주인공이 사회적 문제에 직접 자기자신을 바치는 건 도덕성의 극치 맞다. 그래도 그 어두움과 대비되어 더욱 빛나는 인간의 낙천성 같은 것에 대한 이 소설에서의 간결한 아름다운 표현들은 언제 다시 음미해도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극적인 부분 한 군데를 인용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펄롱은 수녀원장이 자기가 그냥 가길 바란다는 걸 알았지만, 여자 아이 옆에 섰다. 소녀에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냐고 물으니 소녀는 창문을 쳐다보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녀에게 이름을 알려달라하니 남자 이름을 댔다. 펄롱이 원래 이름은 뭐냐고 다시 물었고 ‘세라’ 라고 답하니 펄롱이 말했다; “우리 어머니 이름하고 같구나”.’
‘순진한 마음으로’는 무엇을 번역할 것일까 하도 궁금해서 원판을 구해보니 ‘In his foolish heart’였다. 동서양 모두 ‘바보’라는 단어에 사랑스러운 뜻도 있음을 확인해서, 또한 기뻤다. 이와 같이 번역이 부드럽고 자신만만한 곳이 많아서 번역인이 누구일까 살펴보니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번역했고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등을 썼던 홍한별님이었다.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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