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令愛 시조집, 『어머니의 괴얄띠』, 東芳, 2000.
□ 유영애
전북 완주 출생
단국대학 영문과 수학
《현대시조》 시인상으로 등단
□ <시인의 말>에서
늦깎이로 시작한 시조의 길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라며 이끌어 주고 때로는 채근하여 주시는 백이운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는 정완영 선생님과 정위진 선생님께도 감사한 마음을 드립니다.
2000년 새봄
부르심
-권사 취임에 부쳐
어머니 손을 잡고
예배당 가던 시절
양철 지붕 꼭대기
십자가를 바라보며
어머님
살려 달라고
마음 깊이 기도했네.
신들린 무당춤에
먹구름 잔뜩 끼고
신병 앓은 어머니 위해
교회당은 나의 등불
네 소원
내게 달라며
감싸주던 은총의 손길.
기도
손안에
담을 수 없어도
공기는 있습니다
만져지지 않지만
그 사랑을
느낍니다
눈으론
볼 수 없어도
하느님은 계십니다.
기도
-아름다운 인생‘에 부처
기쁨 뒤엔
슬픔 있고
슬픔 뒤엔
기쁨 숨어 있다
해 기울면
달 차오르고
겨울 끝머리
봄기운 솟네
밤 깊어
더 빛나는 별
희생 있어
귀한 사랑.
어머니의 괴얄띠
고생길 마다하고
명절이면 찾던 고향
다음에는 오지 마라
말씀은 그리해도
허리끈 동여매시고
먼 산 보던 그 모습
어머니의 괴얄띠는
또 하나 나의 탯줄
허기도 동여매고
종종걸음 치시더니
하늘도 풀 수 없는 매듭
세월 놓고 가더이다.
□ 괴얄띠 : 명사[방언] ’허리띠“의 방언(경북)
부활의 꽃
신의 아들 나의 님
십자가 지셨기에
중생의 허물 모두
사람으로 덮으셨기
이천 년 세월 넘어서
다시 피는
부활의 꽃.
겨울의 기도
나에게
따뜻한
두 손을 주십시오
떨고 섰는 나무들
눈물도 닦아 주고
동토에
얼어버린 마음
녹여 주고 싶습니다.
성 베드로 성당
향락 위에 오는 고독
이제셔야 알 듯 말 듯
절도 같은 로마 시내
발길조차 무겁구나
바티칸 성안 가득히
촛불 밝힌 순례의 길.
속때 묻은 내 모습
내보이기 부끄러워
자비로운 구원의 손길
먼발치서 기원하네
거꾸로 지신 십자가
못 자국이 아립니다.
겨울 나그네
-춘장대에서
여름 관객 떠난 자리
적막한 바다 정거장
외로움에 지쳐서
춘장대 울고 있네
파도는 혼자 뒹굴다
기운차게 고함도 치네.
겨랑 위 찻집에 올라
해조음에 귀를 열면
빈손으로 왔다가는
빈손 들고 떠나는 물결
바다의 넉넉한 말씀
새겨듣는 겨울 나그네.
호야나무
한 백년쯤 살아도
산같을 이야긴데
삼백 번을 휘감으며
나이테에 쌓인 회한
순교의 상처투성이로
호야나무 지켜섰네.
呼也, 呼也 울부짖던
옹이가 된 목소리
가시지 않을 슬픔으로
누덕누덕 기운 껍질
피울음 묵묵히 삭히며
하늘 뜻 바라고 섰네.
□ 호야나무 : 충남 해미면 해미읍성 내에 있는 회화나무. 천주교도 천 명 이상이 순교당했다는 나무임.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는 132명에 불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