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델 컴퓨터 창업주 마이클 델Michael Dell은 뿌듯한 감정에 취할 만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출시 예정이었던 자사 신제품 인스피론 듀오the Inspiron Duo가 애플의 iPad로 인해 탄생한 태블릿 시장 한편에 엄연히 한자리를 차지할 듯 보였기 때문이다. 15년 전 19살 때 텍사스 대학교 기숙사에서 자본금 1천 달러로 시작해 연 매출 600억 달러를 기록하고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PC의 16%를 차지하는 업체로 성장시킨건 정말 괄목할 만한 업적이었다. 마이클 델은 1980년이 되어서야 첫 개인 컴퓨터 애플2를 손에 넣었고, 델의 전신인 PC Limited는 IBM을 능가하겠다는 야심한 포부와 함께 설립되었다. 델이 출시한 첫 작품 터보PC를 구매하는 이들은 100% 환불 및 독특한 가정 지원 서비스를 함께 제공받을 수 있었다. 1984년 자본금 1천 달러로 시작한 이 업체는 40년 만인 1988년에 8,500만 달러로 주식 시장에 상장되었다. 델은 처음부터 재고 거부, 고객 의견 수렴, 중간 판매상 생략이라는 3가지 황금률을 고수하며 사업을 이어 나갔다.
인터넷 선구자답게 델은 1994년 온라인 쇼핑몰 운영을 시작했고, 1997년 Dell.Com은 온라인상으로만 1백만 매출을 달성한 최초의 기업으로 우뚝 섰다. 델이 시작부터 밀어붙인 전략은 경쟁사들의 전략과는 사뭇 달랐다. 애플과 달리 잘 빠진 디자인에 목숨 걸거나 전 세계에 거미줄처럼 소매점을 확장하려 하지 않았다. 델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사양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최종 소비자에 직접 맞닿는 날렵한 공급망을 형성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이러한 방식이 큰 성공을 거두자 프린터, 서버, 저장 자치 등 관련 제품도 이와 같은 전략으로 판매해나갔다. 매일 전세계적으로 배송되는 시스템만 14만 개로, 매초 1개 이상이 팔리는 셈이었다. 델은 전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 중 하나로 <포춘Fortune> 선정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절대 사그러지지 않을 듯한 전성기를 구가하던 델에게도 침체기가 다가왔다. 1939년 미국 팰로앨토Palo Alto의 한 차고에서 시작한 세계 최대 PC 제조사 휴렛-패커드Hewlett-Packard, HP가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로 이미 충분히 단련된 HP는 기업 중심에서 개인 소비자 중심으로, 선진국에서 인터넷 보급이 아직 충분치 않아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 되지 않은 개발도상국으로 넘어가고 있는 PC 시장의 새로운 판도를 목도했다. 더불어 이베이eBAY와 유비드uBid와 같은 전자상거래 사이트가 등장해 성공을 거두면서 PC 시장도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더 이상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델은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로운 전략을 구상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9천여 소비자가 제품 개선을 위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IdeaStorm' 사이트 운영을 강화하는 한편, 전 세계 1만여 직판점을 통해 제품 판매에 나섰다. 기존의 날렵한 공급망에 탄탄한 직판점 공급망을 더했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사양만 넣은 단조로운 검정색 컴퓨터 생산만 고집하는 대신 섬세한 디자인을 더한 제품 혁신에 나섰다. 델은 또한 IT 시스템 관리 업체를 몇 곳 인수해 기존 제품 중심 성장에서 행후 중요성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서비스 중심 성장으로 전략 방향을 수정했다. 환골탈퇴를 위해 델은 30억 달러 비용 삭감 및 8,800명의 정리 해고를 단행하고,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전략을 인지시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