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에 남은 깊고 긴 감동
1. 짧고 쉬우며 깊은 뜻을 가진 글
말이 간략하면서도 그 속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을 때, 우리는 그 발화자를 경외한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최대한으로 축약하고 이를 운율에 실어서 표현하는 시에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문학의 옛 선조들은 짧은 시의 문면에 진중한 생각을 담는 데 능숙했다. 한시에 있어서 절구(絶句)나 율시(律詩)의 형식이 그렇고, 시조 또한 기본이 3장 곧 3행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 짧은 문면에 우주자연의 원리와 인생세간의 이치를 수용하여 이를 후대에 남겼다. 한국문학사를 풍성하게 장식하고 있는 그 많은 시조 가운데 하나를 들어 보겠다. 고려 시대의 문인 이조년의 시조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 춘심을 자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흰 배꽃에 달빛마저 하얗게 부서지는 밤, 하늘의 은하수가 깊은 밤을 알려주고 있다. 그 가운데 한 가닥 봄 마음을 두견새인들 알겠냐마는 정이 많고 깊은 것이 병이 되어 그대로 밤을 밝히고 있다는 말이다. 계절로 보면 봄밤일 터이고 시간으로 보면 한밤중이다. 풍광의 처연한 아름다움과 가슴 설레는 동계(動悸)가 거기에 있다. 이를 감각할 수 있는 서정의 흐름이 영혼을 맑게 씻어줄 수 있을 듯하다. 한국의 이름 있는 시인 조지훈은 이 시조의 종장을 빌려 그의 시 「완화삼」의 끝막음에 썼다.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느니’ 그 구절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랜 시조집 『청구영언』에 전하는 조선조 기생 황진이의 시조들은, 시대적 한계와 신분의 제한을 넘어서는 절창이다. 그 기량에 있어 사대부 선비의 시조에 굴하지 않는 기생들의 시조가 많은 것은, 이 문학의 형식이 난해하지 않고 길지 않다는 데일말의 이유가 있다. 그런데 짧고 쉬우면서 깊은 뜻을 안고 있는 시나 글이 결코 만만할 리 없다. 조금 범위를 넓혀서 보면, 인간을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종교의 경전은 그 기본적인 가르침이 어떤 경우라도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2024.8.12.
맹태영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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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화삼(玩花衫) - 목월에게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조지훈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