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
본문 : 살후1:6-10
앞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박해와 환난 중에도 잘 인내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4절).
4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단지 예수를 믿는다는 것 하나 때문에
심각한 박해와 환난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고
인내로 견디고,
믿음을 지킴으로 바울의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갚아주시는 하나님>......
그러면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난 받으면 그것으로 끝인가?’
나아가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도
똑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6-7절에서
그 질문에 답을 주십니다.
<6-7절>
6절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절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핍박하는 자와 핍박을 당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받을 보응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먼저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는 “환난으로 갚으십니다”(6절).
그들이 받을 환난을 영원한
멸망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불 못에 던져지게 된다”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6:19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하시는데,....
부자 나사로가 들어간 곳이
“음부”라는 곳인데 그 곳에서는
“영원히 타는 불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부자가 말할 때
“내가 이 불 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하면
“너는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여기서의 행동이 죽음 후의
심판의 결과와 직결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생애에서의 행한 행동에 대한 보응으로
그 형벌을 받는 것이니 당연하다 말씀입니다.
죽음 다음에는 바꿀 수 없습니다.
이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첫째는,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았건
누구나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우린 한 때 천하를 호령했던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좀 먼저 가고
어떤 사람은 좀 나중에 가기도 하지만 .....
누구나 다 죽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바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이 잔칫집에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 마음이 초상집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죽음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히9:27절 “사람이 한번 죽고
그 후에 심판받는 것은 정한 것이니라.”)
이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는
온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여러 가지 교훈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령, 주님이 오시게 되면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시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판을 의미합니다.
면양과 산양을 갈라 세울 때가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면양은 오른편에 산양은
왼편에 놓겠다고 했는데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아덴에 가서 전도할 때에 ...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심판할 날짜를 정해 두셨다”(행17:31)고
선언했습니다.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즉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것과 ....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이 두 가지 확실한 사실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더 무서운 말씀은 핍박하는 자에게만
이러한 심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도
형벌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8-9절>
8절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믿지 않는 자들도 핍박하는 자와
매 한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도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반면에 “성도들은 안식으로
갚아 주십니다”(7절).
그러므로 성도들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원한 안식은
천국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품에 들어가는 것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에 대한
보상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승리한 자에게는
분명한 ‘보상’이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賞)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24-26>
24절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절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냥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헌신, 헌물, 드려진
모든 충성에 대하여 반드시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들에게 분명한 보상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마5:10-12>
10절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절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공의로우신 하나님>.....
이렇게 핍박하는 자에게 형벌도 심판하시고,
핍박을 당하는 성도들 안식으로 갚아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7절).
하나님의 공의란 모든 면에서
올바르신 하나님의 성품을 말합니다.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듯한 현실 속에서도...
결코 회의를 갖지 말 것은.....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긴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시행 되고 있으며
결국은 정의가 승리하였음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는 최후 심판을 통하여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성도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지극히 작은 선
하나까지도 다 기억하시고.....
언젠가는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이를 하나님의
'보상적 공의(remunerative justice)'라고 합니다.
당장 열매 없다고 낙심치 말고,
더욱 열심을 내어 선을 행해야겠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리 믿음의 힘입니다.
우리가 악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도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힘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다면>......
이런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잠시 억울한 일을 당하고,
핍박을 당했다 하더라도 당장 복수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신다는
공의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신32:35)
우리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행동한 대표적인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길 때
사울 왕을 두 번 죽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엔게디 동굴에 숨어있을 때
사울 왕이 잠을 자기 위해
(혹은 용변을 보기 위해)
그곳에 있는 굴에 들어왔습니다.
다윗의 무리들이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말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름을 받은 자를
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사울의 겉옷자락만을 자릅니다.
사울이 나가자 다윗이 사울을 부르고
겉옷자락을 보이며 자기는 왕을
해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삼상 24:1~15).
이런 때에 그를 죽이는 일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며 ....
겉옷자락만 자를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마도 다윗 역시 내심 사울을 죽이고
이 죽음의 방랑생활을 중단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신앙의 원칙을 고집합니다.
또 한 번 다윗이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습니다(삼상26:1~12).
사울이 3,000명의 정예의 군사들을
선별하여 다윗을 추격합니다.
다윗은 십 황무지에 있다가
사울이 자기를 추격하여 온 것을 알고
정탐꾼을 보내 그 위치를 확인한 후에,
한밤중에 그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와 함께 사울의 진영으로
잠입해 들어갑니다.
들어가 보니 사울의 군대 전체가
다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아비새가 사울을 죽이려 하지만
다윗이 죽이지 못하게 하고는....
사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갑니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10)고 말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엔게디 동굴에서,......
두 번째는 십 황무지에서
다윗으로 하여금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시고 ....
다윗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셨습니다.
그런데 과연 다윗은 하나님께서
때를 주시기까지 기다리고,
자기의 손으로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험을 이긴 다윗에게
하나님은 왕의 자리를 보장해 주셨습니다.
<맺는 말씀 - 우리로 영광을 받으실 주님>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가 ‘공의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순종하며 믿음을 지키면 ...
우리로 인하여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10절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모든 믿는 성도들에게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하신 심판으로 인하여
놀랍게 여김을 얻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 믿는 자들은 최후에 승리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고난과 환난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환난 중에도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환난을 피할 것이 아니라
환난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시험을 없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시험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주님 오실 때 부끄러움이 없는 성도로
오늘 하루도 살아가는 .....
저와 성도님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