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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강해(6)
헛되지 않은 수고
본문 : 살전 2:1-2
미국 어느 목사님의 글에서 본 내용입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교회로 들어가는데
제 앞에 버스가 있었습니다.
앞 사거리에 신호등이 걸리면서
저는 버스 뒤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버스 뒤를 보니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We are all going to the same Place.”
(우리는 모두 같은 장소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글을 보면서
버스 뒤에 붙어있는 글이기에
어느 회사 광고인가 했습니다.
비행기 회사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상호가 한군데도 적혀 있지 않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Six feet under’라는
글이 써 있었습니다.
6ft 밑으로 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 6ft 밑이라는
땅속의 같은 장소를 향하여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미국에서 장사지낼 때는 6ft를 파고
관을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공익광고였습니다.
모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칼만 안든 전쟁을 치르면서 살아도
결국 우리는 한 장소를 향하여
가는 인생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약한 사람이나 모두 같은 장소를
향해 가야 합니다.
- 어떤 사람은 죄 가운데 살다가
가는 사람도 있으며 ....
- 어떤 사람은 자신의 육체적 향락만을 위하여
살다가 가는 사람도 있으며....
평생 돈만 좇다가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분명한 것은 같은 장소를 향해 가도
인생은 거기가 끝이 아닙니다.
6ft 아래가 끝은 아닙니다.
그 다음이 분명히 있습니다.
거기가 누구에게나 끝이라면 사도 바울은 ....
예수를 믿는 자가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렇게나 갈 수 없습니다.”
한국말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제대로 가야 합니다.
책임의식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내 삶에 분명한 청지기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갖고 우리는 가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사명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맡겨진 것을 지키며 사는 인생입니다.
내 인생은 주님의 것입니다.
내게 물으시는 분의 것입니다.
분명히 그날이 옵니다.
누구든지 6ft 아래로 들어가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홀연히 신랑인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이 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영원한 장소에 있을 것입니다.
거기가 종점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성도님들이
청지기적인 사명을 갖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함께 동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의 전도 여정>
성경에 보면 사명에 사로잡혀
산 대표적인 사람이 나옵니다.
예,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는지를
고민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이방인의 선교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대인이지만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세계화된 인물이었습니다.
언어도 헬라어를 사용했고,
당시의 학문과 철학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와 율법에도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부르신 목적을 깨달은 후
그는 전도여행을 계획하고 과감하게 실천합니다.
바울은 3번의 전도여행을 다녔는데
그 거리가 자그마치 1만 7천Km나 된다고 합니다
(지구 둘레는 약 40000Km).
배로 이동한 것을 빼면
대부분 걸어서 이동한 것인데
거의 초인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오직 예수님께 사로잡혀,
예수님만 전하려는 일념으로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부르신 소명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기 계획만 고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히 따랐습니다.
2차 전도여행 중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마게도냐 땅으로 넘어갔고,
빕립보에 도착하여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나
첫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게도냐 땅에
첫 교회가 세워졌는데
바로 빌립보교회입니다.
그런데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일로 송사를 당하여
뜻하지 않게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지진이 나며 옥문이 열린 것입니다.
졸던 간수가 놀라 죄수들이
다 도망친 줄로 알고 자결하려 할 때에
바울과 실라가 간수를 불러 안심시키고
그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일로 간수의 가정이 다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튿날 상관이 놓아주라 하매
바울이 말하기를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고 말하자,
그들이 두려워하면서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엿습니다.
결국 바울과 실라는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위로한 후.....
빌립보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행16장).
그러나 빌립보교회는 건재했습니다.
그리하여 간 곳이 데살로니가입니다.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바울은 역시
회당을 찾아 말씀을 증거했는데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행17: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그러나 거기에서도
유대인들의 반발은 거셌습니다.
그래서 회당에서 가르치지 못하고
야손이란 사람의 집에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인들의 반발은 집요하였습니다.
불량한 사람들을 동원하여 야손의 집을
침입하여 바울의 일행을
잡으려고 한 것입니다.
다행히 정보를 미리 알고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대신 야손과 몇몇 성도들이 잡혀
읍장 앞으로 끌려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읍장에게
“이 사람들이 예수라고 하는
또 다른 황제를 추대해서
천하를 어지럽게 하려는 선동자들을
받아들였다”며 은닉죄로 고발을 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와
같은 죄목(반역죄)으로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들을 숨겨준 죄도 반역지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야손 일행은 구속되지는 않았지만
보석금을 내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행17:5-9).
이 사건으로 바울과 실라는
더 이상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후 바울의 일행은 밤에 베뢰아로
가게 되었습니다(행 17장).
베뢰아에 도착한 바울은...
또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행히 베뢰아 사람들은
너그러워서(신사적)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행17:11-12>
11절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절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그런데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바울이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거기까지 좇아와서 훼방을 놓았습니다.
결국 바울은 혼자서 베뢰아를 떠나
아덴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를 만나
데살로니가에 보내어 자신이 없는 동안에 ...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아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계속해서
고린도를 향해 갔는데
여기에서 클라우디오 칙령으로 인해
로마에서 추방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행18:2).
그 때 돌아온 디모데를 통해 들은
소식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가 뜻밖에도
믿음 가운데 든든히 서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고....
바울도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살전1:8)
이것이 바울에게는 큰 기쁨이요,
자랑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 8:1-5절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우들의 모범된 신앙생활을 칭찬하며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있다는 아름다운 소식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헛되지 않은 전도>
그래서 오늘 본문 2:1-2에서 바울은
감격스러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1절-2절>
1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바울은 “너희 가운데 복음을 전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고 감격스럽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처음부터 자신이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성령님의 인도와 역사가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복음을 전하는 것은
결코 후회 없는 일이요,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때문입니다.
예, 그것은 자신이 떠났음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불과 3주 만에 떠났음에도
복음을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즉 바울은 자신의 노력으로만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들이 믿음을 지키고 신앙공동체를
세워가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가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이런 체험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훗날 고린도교회가 분쟁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 분파 중에 자신의 파와...
아볼로의 파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렇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고전 3:6-9>
6절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절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절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것은 사람이 할지라도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절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은 사람이 전하지만
전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자라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열매 맺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하지만
교만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모라비아 교파 출신인
조지 스미스라고 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아주 신앙이 좋아서
자기는 아프리카에 가서 한 평생을 바치고
그 땅에서 죽으리라 생각을 하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후원자를 얻어서 아프리카로 갔는데
몇 달되지 않아서 정부로부터 추방을 당합니다.
그는 몇 달 동안에
딱 한 사람만을 전도했습니다.
한 사람밖에 전도를 못 했는데
추방을 당해서 그는 아프리카를 향하여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몇 달 후에 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선교가
실패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헛된 일에
목숨까지 잃었다고 안타까워하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조사해 보니
이 조지 스미스가 전도한 바로 그 사람이.....
거기서 전도자가 되어서
정확하게 만 삼천 명을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후회함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헛된 일이, 헛수고가 될 수 없습니다.
에콰도르 아우카 인디언들의 손에
죽임당한 짐 엘리엇선교사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짐 엘리엇(JIM ELLIOT, 1927-1956)은
1927년 미국의 오리건 포틀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
기쁘게 하려 했습니다.
그는 "왜 어떤 사람은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두 번씩 들어야 합니까?"라는
생각이 들어 선교사로 헌신하시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에콰도르에서 사역했던
선교사와 교제하며 아우카 부족
-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이
한 번도 전해지지 않았던 사람들 -
에 대해 들으며 그의 갈 길을 정했습니다.
짐과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둘 다 에콰도르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준비 끝에 1955년 가을 비행선교사
네이트 세인트는 아우카 마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다음 달부터 엘리옷과 여러 동료선교사들은
호전적인 부족민들과 친구가 될 목적으로
비행기에서 선물을 떨어뜨렸습니다.
1956년 1월, 엘리옷과 4명의 선교사들이
에콰도르 동쪽에 있는 쿠라라이
강가에 착륙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56년 1월 8일
다섯 명 모두 아우카족 전사들에게
창과 도끼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당시 ‘LIFE’지에서는 이 사건을
10페이지에 달하는 기사로 다루면서....
"이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인가!"
(What a unnecessary waste!)라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짐 엘리엇의 아내였던
엘리자벳은 질문하는 기자에게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씀을 삼가해 주세요.
낭비라니요?
나의 남편의 죽음은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온 생애를 이것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 시간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의 책임을 수행한,
그리고 자기 목표를 달성하고
죽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엘리옷과 그의 동료들은 죽었지만
복음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씨앗이
되는 죽음이었습니다.
짐 엘리엇이 죽고 난 뒤,
이번에는 그의 부인「엘리자베스 엘리엇」이
남편의 뒤를 따라 ...
그 곳의 선교사로 나섰습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일 년간
간호사 훈련을 받고....
<아우카족>에게로 갔는데
<아우카족>은 여자를 해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하여....
부인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부인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목숨을 걸고 그 곳에 갔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아우카족>을 위해
여러 해 동안 헌신하였습니다.
<아우카족>의 추장이
어느 날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이고 우리를 위해
이렇게 애써서 수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5년 전에 당신들이 죽인
그 남자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부인의 말을 들은 <아우카족>은 감동을 받고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짐 엘리엇」을 죽인 청년은
나중에 <아우카족>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있는 그대로의 실화입니다.
「짐 엘리엇」은 아무 성과도 없이 죽었지만 ...
그들이 흘린 피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아우카족>은 추장을 비롯하여
온 종족이 크리스천으로 거듭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외국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130여 년 전 이 땅에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대동강을 거슬려 오다가 조선군의 칼날에
목이 잘리면서도 성경을 전하였던
젊은 선교사 토마스의 복음증거를....
우리가 헛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였다고.....,
젊은 나이에 목이 달아났다고.....
그의 복음증거를 헛수고 한일이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전도야 말로 가장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대동강을 붉게 물들였던
토마스 선교사의 피가 ......
오늘날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보내는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토마스 선교사의 피 때문이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에 처음 온 공식 감리교
선교사입니다(1885년 부활절).
그는 정동교회, 내리교회를 비롯한
많은 교회를 세우고,
교육 사업에도 매진하였습니다
(배재학당).
1902년 44세가 되던 해에
인천 제물포에서 출발하여
전라남도 목포로 가던 중.....
충청남도 보령시에 위치한
어청도 앞 바다에서 일본배끼리 충돌해
그가 탄 배가 침몰하면서 익사하였습니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
있는 아펜젤러의 묘지는 가묘입니다.
시신은 어청도 바다 밑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헌신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냈습니다.
<맺는 말씀>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복음전도)
헛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너희도 친히 아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복음전도야 말로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썩지 않을 일입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복음을 전하는 가장 가치 있는 일에
더욱 힘을 쏟는 ....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