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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 길 2-1코스 역방향 제1부
통진성당입구-통진초등학교-통진도서관-
담터사거리-통진두레문화센터-것고개-
옹정삼거리-터골천-포내천-기계화경작로-
옥천탕버스정류소-갑산교-포내천둑방길-
오리정마을-김포대로오리교-월하로갈산교-
군하교-군하오거리-월곶행정복지센터입구-
신김포농협-월곶우체국-통진향교-통진이청
20241127
1.코스소개(두루누비)
1)코스개요
- 문수산성 남문을 출발하여 통진성당으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 문수산성은 뱃길의 관문으로 외세의 침략에 맞선 치열한 격전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 문수산을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소소한 마을길을 걸을 수 있다.
2)관광포인트
-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과 전투가 벌어진 역사적 현장 문수산성
- 1127년(인종 5)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통진향교
- 인천교구 소속의 가톨릭 교회 통진성당
3)여행정보(주의사항)
- 문수산을 내려와서는 마을길이 이어지며, 편의시설이 다수 있다.
- 경기옛길(강화길)과 노선이 겹치므로 경기옛길 정보를 참고할 수 있다.
- 주요지점 및 편의시설 : 문수산성입구 1.4Km 문수산성 전망대 4.3Km 통진향교 4.6Km 통진두레문화센터 1.0Km 통진성당
- 길이 11.3km, 소요시간 4시간, 난도 어려움
- 시점 :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문수산로 8
대중교통) 김포골드라인 걸포북변역에서 3000번 버스 이용, 성동검문소 하차
- 종점 :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서암리 764-3
대중교통) 김포골드라인 걸포북변역에서 3000번 버스 이용, 통진성당 하차
2.눈 내리는 김포평야와 통진향교 설경
제1부 : DMZ 평화의 길 3-1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하여 통진성당 입구에서 마쳤다. 통진성당으로 올라가 잠시 통진성당을 살핀 뒤 통진성당 버스정류소 옆으로 되돌아와 DMZ 평화의 길 2-1코스 역방향 탐방을 출발한다. 내리는 눈은 그칠 줄을 모르고 더 펑펑 퍼붓는다.
DMZ 평화의 길 2-1코스 역방향 탐방 지역을 순서대로 열거하면, 김포시 통진읍 서암리와 마송리, 옹정리, 김포시 월곶면의 갈산리, 군하리, 고막리, 포내리로 이어지며, 김포반도 중앙의 통진읍 지역과 북서쪽 월곶면 지역이다. 역방향 탐방길은 김포반도 안쪽의 김포평야를 지나 문수산 중턱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내려가 강화대교 앞에서 끝난다. 통진(通津)은 강화도로 건너가는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현재 김포시의 대곶면, 월곶면, 통진읍, 양촌읍, 하성면 일대를 이른다고 한다.
통진성당 입구에서 조강로를 따라 통진초등학교와 통진도서관을 지나 김포대로로 나갔다. 김포대로(金浦大路)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과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강화대교를 이으며 김포반도를 가르는 중심도로이다. 김포대로는 한남정맥의 것고개를 가로지르는데, 것고개 동쪽 아래에 우리의 전통 통진두레놀이를 보존하고 공연하는 통진두레문화센터가 조성되어 있다. 평화의길은 김포대로 남쪽 보도를 따라 통진두레문화센터 앞을 지나 것고개를 넘는다. 것고개를 넘으면 통진읍 옹정리 옹정공업단지 입구에 청송 심씨 묘역비가 세워져 있고, 조선 중종과 명종 때의 문신 심연원과 심강의 묘와 신도비(神道碑) 표지판이 있다.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는 청송 심씨 심온의 큰딸이니 권문세가 청송 심씨의 세력이 김포 지역까지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김포대로 옹정삼거리를 지나 평화의길은 김포대로와 헤어져 통진읍 옹정리 들녘으로 나간다. 이곳에서부터 통진읍 옹정리와 월곶면 갈산리와 군하리로 이어지는 김포평야를 지나게 된다. 눈은 더욱 펑펑 쏟아져 앞을 구분하기가 힘들다. 통진일반산업단지를 비롯해 공장 지역이 옹정리 일대에 자리하고 평화의 길은 터골천을 따라 오봉산을 바라보면서 내려간다. 터골천이 포내천에 합수하는 곳에서 평화의길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포내천 둑방길인 기계화 경작로를 따라 갈산리 갑산교 앞까지 이어간다. 드넓은 김포평야 서쪽으로 나즈막한 산줄기가 이어지는데, 그 너머 서남쪽은 강화해협 대명항이 있을 것이다. 포내천의 갑산교가 보이고 포내천 서쪽에 갈산리 오리정마을이 보인다. 월곶면 군하리 통진관아에서 5里 떨어진 곳에 정자를 세웠는데 이 정자를 오리정(五里亭)이라 이르며, 오리정이 있어서 갈산리 이 마을을 오리정마을이라 이른다고 한다.
평화의길은 오리정마을 앞 포내천 갑산교로 곧바로 이어가지 못한다. 길은 오른쪽으로 틀어 우회하여 군화로로 나가 갑산교로 이어가는데,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5호 보유자인 서경욱 만신이 운영하는 점집인 청향사를 거쳐 군하로로 나간다. 군하로 동쪽에 옥천 불한증막 사우나가 있고, 평화의길은 군하로 서쪽 오리정마을 방향으로 이어가다가 포내천 갑산교 앞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포내천 동쪽 둑방길을 따라간다. 포내천 둑방길은 김포대로 오리교 아래와 월하로의 갈산교를 통과하여 김포평야를 가로지른다. 들녘에는 낙곡(落穀)을 찾는 수많은 철새들이 무리지어 앉아 있고 하늘에는 펑펑 쏟아지는 눈을 헤치며 또다른 무리의 철새들이 공중을 날아간다. 들녘의 설경과 공중의 설경에 덮여 김포평야는 오리무중이고, 포내천은 동쪽을 휘돌아 북서쪽으로 돌아간다.
월곶면 군하리 북쪽 고막리 방향은 아득하고 포내천 북쪽 천변 지역에는 해병대 부대가 자리하고 있다. 터골천부터 포내천 군하교까지 길게 따라온 김포평야의 진면목을 내리는 눈 때문에 제대로 살피지 못하였다. 우산을 받쳐 들고 터골천과 포내천 둑방길을 따라 허겁지겁 김포평야 들녘을 가로질렀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탐방 체험은 생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영원할 것이다.
군하로로 나가서 포내천의 군하교를 건너면서 동쪽 방향을 바라보면 고막천이 포내천에 합수하는 곳이 보인다. 포내천은 군하교 아래를 흘러 남서쪽으로 흘러 문수산 남쪽 강화교 아래서 강화해협 염하강에 몸을 푼다. 평화의길 쉼터에서 강화교를 내려보며 포내천을 살피던 일이 얼마전이다. 포내천은 군하리 중심지를 남쪽으로 에돌아 북쪽으로 향하여 서해 바다 염하강에 유입된다.
군하교를 건너면 군하오거리, 월곶면의 면소재지 군하리 중심지 입구이다. 군하오거리 군하리 버스정류소 옆에는 김포시 최초 여성독립운동가 이경덕(李살눔) 애국 지사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녀는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 출신으로 1919년 3월22일, 33세의 나이에 군하리 장터에 모인 수백명의 시위 군중 앞에서 태극기를 배부해 주며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외치며 시위행진을 하다가 일경에 의해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찾기 위하여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했는데, 이 시대에 일본과의 친교만을 중시하여 진실을 외면하거나 과거 치욕의 역사를 덮는 짓을 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그럴수록 일본은 기고만장하여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게 될 것이다.
군하로를 따라 군하리 중심지를 통과하는 평화의길 역방향 탐방은 방향과 위치 감각을 잘 잡아야 한다. ㄷ(디귿) 글자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군하로를 따라 월곶면행정복지센터, 신김포농협, 월곶우체국을 지나 서쪽으로 이어간다. 그런 뒤 북쪽 언덕 위 통진향교로 올라가서 통진향교를 살핀 뒤 군하로를 내려보며 동쪽 방향으로 통진이청과 월곶생활문화센터로 이어간다. 월곶생활문화센터에서는 그 안으로 들어가 북쪽 방향으로 이어간다. 이 단순한 방향과 위치 감각을 잃어 통진향교를 살핀 뒤 통진이청과 월곶생활문화센터에서 허둥거렸다.
통진향교 홍살문을 지나 통진향교의 웅장한 문루 풍화루를 살피고 명륜당 뒤 대성전 내삼문 아래로 올라갔다. 통진향교는 다른 향교와 달리 경내에 은행나무가 보이지 않았고, 400년이 넘는 수령의 느티나무 몇 그루가 향교의 위엄을 나타냈다. 눈은 퍼붓고, 제한 시간에 쫓겨 오래 머물 수 없이 향교를 빠져나와 통진이청으로 향한다. 통진이청 가는 길은 민가의 마당길과 민가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통과하여야 한다. 길 아닌 길을 통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통진이청은 월곶초등학교 입구 왼쪽에 있다. 통진이청(通津吏廳)은 조선시대 통진도호부(通津都護府)의 아전(衙前)이 집무하는 청사(廳舍)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려 했으나 철망 문이 닫혀 있다. 통진이청은 3.1운동 당시 주재소(駐在所, 오늘날의 파출소)로 사용되었고, 이후 주택으로 사용되다가 폐가로 방치되었는데, 2013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관아 건축의 수는 얼마 안 되는데, 경기도에는 평택의 팽성객사, 안성의 안성객사, 양주의 양주관아지 정도가 전하고 있으며, 통진이청은 이들과 함께 경기도 관아 건축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한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고 있는 통진이청을 철망 문 너머로 바라보며 발걸음을 돌렸다. 통진문화의 자존심, 통진향교와 통진이청이 빛바래진 느낌이 든다. 이들을 빛나게 내세우는 방법을 월곶면과 김포시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아스라한 세모의 하늘 아래 새로 내린 첫눈이 산천을 뒤덮었네.
새들은 산 속의 나무를 잃었고 스님은 돌 위의 샘물을 찾아가네.
굶주린 까마귀 들 밖에서 우짖고 언 버드나무 시냇가에 누워 있네.
어느 곳에 인가가 있는가? 먼 숲에서 흰 연기 일어나네.
蒼茫歲暮天(창망세모천) 新雪遍山川(신설편산천)
鳥失山中木(조실산중목) 僧尋石上泉(승심석상천)
飢烏啼野外(기오제야외) 凍柳臥溪邊(동류와계변)
何處人家在(하처인가재) 遠林生白煙(원림생백연)
- 이숭인(李崇仁, 1347~1392)의 '新雪(신설, 새로 내린 눈)'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2.6km
전체 소요 시간 : 3시간 4분
조강로를 경계로 하여 오른쪽은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서암리, 왼쪽은 통진읍 마송리이다.
조강로의 통진성당 버스정류소 오른쪽에 경기옛길 제4길 한남정맥길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경기옛길 제4길 한남정맥길 안내도 오른쪽 기둥에 평화의 길 3-1코스 방문인증 QR코드가 붙어 있다.
한남정맥의 숨결을 느껴보는 길 : 한남정맥의 최 북서쪽에 위치한 문수산은 376m로 산수의 어울림과 분단역사의 현장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옛 통진의 인문지성의 중심이었던 통진향교와 세계 유일하게 ‘평화’와 ‘통일’을 테마로 만들어진 김포국제조각공원에는 세계 유명조각가 16명의 작품 30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문수산성은 뱃길의 관문이었기 때문에 외세의 침략에 맞서 치열한 격전의 역사가 살아있으며, 북한 개성의 송악산까지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남정맥으로 향하는 길에서 외세 침략에 맞서 저항한 숭고한 숨결과 통일을 향한 마음을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평화의 길은 조강로를 따라 김포대로 서쪽 방향으로 이어간다.
통진초등학교는 2006년 개교한 공립초등학교이며, 교훈은 '바르게 행동하고 새롭게 생각하는 어린이'라고 한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시립도서관인 김포시 통진도서관은 2009년 8월 개관하였다고 한다.
통진도서관 출입문이 전통 양식으로 꾸며져 통진각 현판이 붙어 있다.
통진도서관 뜰에 여러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고, 도산의 말씀 빗돌이 세워져 있다.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 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하는가. - 도산 안창호
김포시 통진읍 서암리에 위치한 팔백고기집은 주메뉴가 소갈비살로 이 지역의 맛집인 듯.
팔백고기집을 지나 조강로가 김포대로와 만나는 곳이 담터사거리이다. 조강로 오른쪽은 서암리, 왼쪽은 마송리이다.
왼쪽 조강로에서 김포대로로 나와 김포대로의 담터사거리를 돌아본다. 담터사거리 오른쪽은 마송로이다.
평화의길은 통진읍 서암리 통진두레문화센터 버스정류소를 지나서 김포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통진두레문화센터로 이어간다. 한남정맥은 왼쪽 뒤 것고개에서 오른쪽 뒤 해병부대로 이어지지만, 종주대원들은 부대를 피해 바로 앞 버스정류소 윗길로 종주한다.
김포시 통진읍 서암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통진읍 마송리로 넘어가 오른쪽의 통진두레문화센터 앞으로 이어간다.
경기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된 통진두레놀이 조각상이 통진두레문화센터 앞에 조성되어 있다.
김포 통진 두레놀이는 경기도 김포시 통진면에서 농사철에 두레 풍속을 놀이화한 민속놀이다. 통진면 주민들의 참여로 이 두레놀이가 재현되고 1998년 경기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놀이는 열두 마당으로 이루어졌다. 입장·논갈이 및 써래질·볍씨뿌리기·고사지내기·모찌기·모내기·새참먹기까지가 일곱 마당이다. 또 물고싸움과 두레싸움·김매기·벼베기·탈곡하기·섬쌓기까지 열두 마당이 이어진다. 마지막은 풍년 잔치를 열어 모두 함께 대동놀이 형태로 진행된다. 김포 통진 두레놀이는 한 해의 농사과정을 그려내는 전통 농경문화 유산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경기옛길센터에서, 제4길 한남정맥길에서 만나는 통진두레문화센터 앞에 통진두레놀이 설명안내판을 설치해 놓았다.
일과 놀이를 함께 즐겼던 조상들의 슬기, 통진두레문화센터 : 옛날에 우리 농사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것은 벼농사였습니다. 17세기에 모내기법이 퍼지면서 여름 한 철에 모내기, 김매기, 물대기 등 논농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대부분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아도 '모내기'라는 과정은 다른 농사일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논농사에서 핵심적인 부분인데, 모내기는 물이 줄기 전에 재빨리 마쳐야 합니다. 그러니 모내기를 할 때는 한 명이 열심히 하는 것보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도와서 일을 끝내버리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겠지요? 두레는 이러한 필요에 의해 생긴 공동 노동 조직입니다. 말하자면 농사를 잘 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끼리 팀을 이루어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모내기뿐 아니라 김매기, 추수 등 혼자서 하는 것보다 여럿이서 하면 훨씬 힘이 덜 드는 일들은 두레를 지어 함께 일을 했습니다. 통진두레놀이는 김포의 통진읍에서 있었던 두레를 바탕에 두고 한 해 동안의 농사 과정을 재현한 민속놀이입니다. 논을 갈고 써레질하기, 볍씨 뿌리기, 모판에서 모를 찌기, 모내기, 세 번에 걸쳐 김매기, 벼베기, 탈곡하기까지 연속된 농사 과정을 열두 마당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과정 사이사이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고사 지내기나 두레 싸움 등을 넣어서 웃음을 더합니다. 두레끼리의 다툼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해도 그 싸움까지 놀이로 재현한다고 하니 참 솔직한 재미가 있지요? 통진두레놀이는 1997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고, 1998년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하였습니다. 통진두레문화센터에서는 이런 우리의 전통 놀이를 보존하고 가꾸는 노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공연장에서 다양한 전통 공연이 진행되고 가족 뮤지컬도 있다고 하니 알찬 문화생활을 하시길 추천합니다.
김포대로 통진읍 서암리 북쪽보도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로 통진읍 마송리로 넘어와 통진두레문화센터 앞으로 이어왔다.
김포대로 남쪽보도를 따라 한남정맥 것고개(거친고개)를 넘어간다. 건너편에 '젊은이여 해병대로'라고 적힌 대형 홍보판이 정문에 설치된 해병부대가 있다. 한남정맥은 해병부대로 이어지지만, 출입통제 때문에 종주대원들은 것고개 동쪽 아래로 종주한다.
김포대로 남쪽보도를 따라 한남정맥 아래에 자리한 별상선녀 약천사 앞을 지나간다.
김포대로 남쪽보도를 따라 통진읍 마송리에서 옹정리로 넘어와 옹정공업단지 앞을 지난다. 옹정공업단지 방향으로 가면 심연원과 심강의 묘와 신도비(神道碑)가 있다고 한다. 심연원(沈連源, 1491~1558)은 조선시대 중종(中宗), 명종(明宗) 때의 문신으로 자는 맹용(孟容), 호는 보암(保庵),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그의 외아들 심강(沈鋼, 1514~1567)은 명종의 장인이라고 한다.
김포대로 남쪽보도를 따라 현대오일뱅크 앞을 지나간다.
김포대로 남쪽보도를 따라 GS칼덱스 앞을 지나 옹정삼거리로 이어간다.
옹정삼거리의 옹정리 입구에서 김포대로2435번길 횡단보도를 건너 김포대로 남쪽보도의 천신당 앞으로 이어간다.
김포대로 남쪽 보도에서 왼쪽 김포대로2473번길을 따라 옹정리 들녘으로 내려간다.
터골천 옆 김포대로2473번길을 따라 김포시 통진읍 옹정리 들녘으로 나간다.
터골천 옆 김포대로2473번길을 따라 수로 아래를 통과한다. 터골천 건너편에 일광산업이 있다.
김포통진 일반산업단지가 옹정리 들녘 서쪽에 자리하고 오른쪽에 팬택사원아파트 건물이 있다.
터골천 옆 김포대로2473번길을 따라 일광산업 앞을 거쳐 옹정리 들녘을 지난다. 중앙 뒤에 오봉산이 흐릿하다.
김포통진 일반산업단지의 삼성케미칼이 팬택사원아파트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터골천 옆 옹정리 들녘에 인삼밭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터골천은 앞쪽 다리에서 포내천에 합수하고 왼쪽 뒤에 오봉산이 솟아 있다. 평화의 길은 포내천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평화의 길은 포내천 천변에 조성된 기계화 경작로를 따라간다.
포내천 옆 기계화 경작로를 따라간다. 천변 양쪽에는 산업단지, 비닐하우스와 축사 등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포내천 옆 기계화 경작로를 따라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 목장' 표지판이 붙은 대형 축사를 지나간다.
포내천 옆 기계화 경작로를 따라 군하지구 기계화경작로 확포장사업 안내판 앞으로 이어왔다.
김포시 통진읍 옹정리에서 월곶면 갈산리로 넘어왔다. 포내천 건너편 마을은 갈산리 오리정마을이다.
포내천 옆 기계화 경작로는 앞쪽 군하로의 갑산교 앞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포내천 옆 기계화 경작로를 따라 오다가 갈산교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오고 있다. 건너편에 갈산리 오리정마을이 있다.
오리정(五里亭)은 고려 시대 각 지방 고을이 빈객을 영송하기 위하여 군아(郡衙)에서 5리(里) 정도의 거리에 세운 정자를 이르는 말. 정(亭)은 거리를 헤아리는 수사로 혹자는 관아에서 5리 정도의 거리를 이른다고도 함. 고려 시대 관찰사가 처음 부임해 오면, 고을 수령이 관복(官服)을 입고, 오리정에 나가 땅에 엎드려 영접하였음. - 한국고전용어사전
평화의 길은 기계화 경작로 왼쪽의 건설자재업체인 농업회사법인 대능을 지나 군하로77번길로 나가 왼쪽으로 이어간다.
군하로77번길을 따라 앞의 건물 청향사 옆을 지나 군하로로 나간다.
평화의 길은 군하로77번길에서 군하로의 옥천탕 버스정류소 앞으로 나가 왼쪽으로 이어간다.
군하로77번길을 따라 청향사를 지나왔다. 청향사는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5호 보유자 서경욱 만신이 운영하는 점집이다.
군하로 동쪽을 바라보면 '옥천24시 불한증막 사우나'가 있다.
평화의 길은 옥천탕 버스정류소에서 서쪽 오리정마을 방향으로 군하로를 따라간다.
군하로를 따라 오리정마을 방향으로 가다가 갑산교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포내천 둑방길을 따라간다. 갑산교 건너는 김포시 월곶면 갈산리 오리정마을로, 월곶면 군하리 통진이청에서 5리쯤 떨어져 있는 이곳에 오리정(五里亭)이 있었다고 한다.
포내천 둑방길을 따라 월곶면 갈산리 들녘을 가로지른다.
평화의길은 포내천 동쪽 둑방길을 따라가다가 앞쪽에서 포내천을 건너 서쪽 둑방길로 건너가 김포대로 아래를 통과한다.
옹정삼거리를 지나 김포대로와 헤어져 통진읍 옹정리 들녘으로 나왔는데, 월곶면 갈산리 들녘에서 김포대로와 재회한다.
포내천 서쪽 둑방길을 따라 김포대로의 오리교 아래를 통과한다.
국도 제48호선의 일부인 김포대로가 강화대교 방향으로 이어진다.
김포대로(金浦大路, Gimpo-daero)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 상사마을과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강화대교를 잇는 도로이다. 일제시대 때 건설된 김포가도에서 시작된 도로로 본래 전 구간 국도 제48호선에 속했으나 2006년 12월 23일 김포우회도로(태장로)가 완공되면서 일부 구간이 이설되었다. - 위키백과
포내천 서쪽 둑방길을 따라가서 월하로를 가로질러 포내천 서쪽 둑방길을 계속 따라간다.
월하로는 김포시 월곶면 갈산리 군하로와 하성면 전류리 금포로를 잇는 도로이다.
평화의길은 포내천 서쪽 둑방길을 계속 따라가 군하로로 이어간다.
포내천 동쪽 월곶면 갈산리 들녘과 하늘에 쇠기러기 떼들이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하늘을 날아가기도 한다.
월곶면 갈산리에서 군하리로 넘어왔다. 포내천 건너편에 자태가 아름다운 나무가 서 있고, 그 뒤쪽은 해병부대가 자리한다.
평화의길은 군하리 포내천 서쪽의 공장 지역을 통과하여 군하로로 나간다.
포내천 서쪽의 공장 지역을 통과하여 뒤돌아보았다.
공장 지역을 지나 군하로로 나간다.
공장 지역을 통과하여 싱싱마트 입구로 나와 군화로의 군하교 방향으로 이어간다.
왼쪽 뒤 공장 지역을 통과해 싱싱마트 입구로 나와 군하로의 북쪽 보도를 따라왔다.
군하로의 군하교를 건너 군하오거리로 이어간다. 포내천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간다.
군하교에서 북쪽을 조망한다. 왼쪽의 고막천을 합수한 포내천은 남쪽으로 흐르다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강화교 아래서 서해 바다(강화해협, 염하강)로 흘러든다.
군하오거리에서 오른쪽 애기봉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 군하로를 따라 월곶면 면소재지를 지나간다.
군하오거리의 군하로 북쪽 보도 입구에 김포시 최초 여성독립운동가 이경덕(李살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김포시 여성독립운동가 1886년 9월 7일~1948년 8월 13일.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 출신. 김포시 최초 여성독립운동가 이경덕(李살눔) 애국 지사는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 출신으로 1919년, 33세의 나이로 성서학교(이화학당)에 재학중이던 학생이었다. 월곶면 고양리에서 성태영, 백일환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3월22일 군하리 장터에 모인 수백명의 시위 군중 앞에서 태극기를 배부해 주며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특히 여성들을 향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외치며 시위행진을 하다가 일경에 의해 체포되었다. 1919년 7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언도 받고 공소하였으나, 8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하여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중병을 얻어 1919년 10월 27일 가출옥으로 석방되었다. 이후 군하리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의 삶을 살던 중 알 수 없는 병으로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 대통령 표창에 추서했다. 월곶 3.1정신 선양회
오른쪽 뒤 군하로의 군하교를 건너 왼쪽 뒤 애기봉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군하로 북쪽 보도를 따라오고 있다.
군하로를 따라 월곶면 면소재지 군하리 지역을 통과한다. 왼쪽 뒤에 월곶면행정복지센터 건물이 보인다.
평화의길은 통진향교와 통진이청, 통진생활문화센터를 빙 돌아서 군하숲길 입구의 월곶제일교회 앞으로 이어진다.
신김포농협의 주요 연혁을 알아본다. 1997년 9월 27일 월곶농협(1965~1997), 양촌농협(1967~1997), 대곶농협(1970~1997), 하성농협(1964~1997) 등 4개 조합을 신설 합성하여 신김포농협이 출발하였다.(전국 최초 복지조합간 광역 합병) 이후 1999년 10월 18일 경기 서부원예농업협동조합(1970~1999)울 흡수 합병하였다.(전국 최초 특수조합, 5개 농협 합병)
김포 월곶우체국의 연혁을 알아본다. 1974년 9월 20일 통진우체국 군하분국 개국. 1981년 2월 12일 월곶우체국으로 승격. 1984년 2월 11일 경기 월곶우체국으로 국명 변경. 1997년 9월 1일 김포 월곶우체국으로 국명을 변경하였다.
군하로에서 군하로276번길을 따라가면 월곶파출소와 월곶생활문화센터로 이어져 평화의길 2-1코스를 단축할 수 있지만, 통진향교를 탐방하지 못하게 된다. 평화의길은 왼쪽으로 돌아서 군하로276번길 끝에 있는 월곶생활문화센터로 이어진다.
군하오거리에서 군하로 북쪽 보도를 따라 군하로276번길 갈림길, 월곶생활문화센터 입구로 와서 뒤돌아보았다.
군하로 남쪽에 스카이모텔이 있다. 평화의길은 앞쪽에서 오른쪽의 통진향교 홍살문을 통과하여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평화의길은 중앙의 기와 지붕이 보이는 통진향교를 통과해 오른쪽으로 돌아 통진생활문화센터로 이어진다. 통진(通津)은 강화도로 건너가는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현재 김포시의 대곶면, 월곶면, 통진읍, 양촌읍, 하성면 일대를 이른다고 한다.
군하로의 통진향교 버스정류소를 지나서 오른쪽 통진향교 홍살문으로 이어간다.
군하로에서 통진향교(通津鄕校) 홍살문을 통과하여 통진향교 풍화루 앞으로 이어간다.
홍살문은 기둥의 색을 붉은색으로 칠하고 상부에 설치한 화살 모양의 나무살 때문에 이렇게 부르며, 홍전문(紅箭문), 홍문(紅門)이라고도 이른다. 붉은색은 악귀를 물리치고 화살은 나쁜 액운을 공격하기에 홍살문은 신성시되는 장소를 보호한다는 의미를 가지며, 서원, 향교, 능과 묘 등에 설치하였다. - 두산백과 참조
통진향교로 진입하는 2층 누각인 풍화루가 웅장하다. 풍화루는 1995년에 복원되었는데, 누문이 닫혀 있다.
풍화루 누문으로 통과할 수 없어 풍화루 오른쪽 길로 통진향교 마당으로 올라간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원래의 동재인데 지금은 관리소로 사용되고 그 뒤에 화장실이 있다. 평화의길은 통진향교를 살핀 뒤 오른쪽 길로 나가 통진이청으로 이어간다.
명륜당 뒤쪽 대성전으로 올라가는 내삼문이 닫혀 있다. 내삼문 아래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 통진향교 설명안내판과 통진향교묘정비가 서 있다. 내삼문 맨 뒤에 대성전, 오른쪽에 동무(東廡), 왼쪽에 서무(西廡)가 보인다.
향교(鄕校)는 조선 시대 지방에 세운 공립 교육 기관으로, 중국 춘추 시대의 학자인 공자(孔子)와 여러 성현(聖賢)들의 제사를 지내고, 지방 사람들을 교육하는 곳이다. 향교는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大成展)과 선현을 모시는 동무·서무(東廡·西廡), 학생들의 강학소인 명륜당(明倫堂)과 그들이 기숙하는 동재·서재(東齋·西齋)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대한민국구석구석
제4길 한남정맥길, 학문의 숨결을 품고 있는 인문지성의 성지, 통진향교 : 지금 우리나라는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교육의 기회가 공평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은 주로 양반집 아들의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교육 기관으로는 성균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균관이 문과를 준비하기 위한 최고의 교육 기관이었다면, 그 아래 소과를 준비하는 중등 교육기관에는 학당과 향교가 있었습니다. 학당은 서울에 있는 학교, 향교는 지방에 있는 학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향교는 양인 이상, 8세 이상의 남자만 입학이 가능하였고, 여기의 유생과 생도를 교생이라고 하였습니다.
통진향교는 고려 인종 시절에 처음 지었다고 전해지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이 마을의 중등학교 노릇을 했지만, 일제 강점기에 폐쇄되었고 광복 이후 그 기능을 되찾았습니다. 풍화루를 지나면 앞쪽에는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재가 있고 뒤쪽에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학교의 구조는 이렇게 앞쪽에는 학문과 관련된 곳, 뒤쪽에는 제사와 관련된 곳이 있었다고 합니다. 통진향교는 명륜당이 그렇게 큰 편이 아니지만, 대성전은 다른 향교에 비해 웅장한 편입니다. 대성전에 들어가 보면 공자와 더불어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진 향교에는 400년이 넘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자리 잡고 있답니다. 400년 넘게 한 자리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나무 앞에 서면 특별한 감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출처 '김포시청'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을 교화하기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통진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에 처음 지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일제 강점기에 폐쇄되었다가 광복후 그 기능을 되찾았다. 건물 배치는 풍화루의 누하 진입을 통해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재가 있으며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둔 일반적인 전학후묘의 형식을 하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부리 모양으로 짜맞춘 익공 양식이다. 뒷면과 옆면에는 방화벽을 설치하였으며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공포 형태와 수법으로 볼 때 17세기 말의 건물로 보이며 도내 향교 신축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 지붕으로 꾸몄다. - 설명안내판
통진향교를 나오며 풍화루와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 그 뒤 명륜당과 그 오른쪽 맨 뒤 내삼문을 뒤돌아본다.
통진향교에서 통진이청(通津吏廳)으로 가는 길은 통진향교 동쪽의 민가 앞 마당길을 지나간다.
민가 앞 마당길을 내려오면 통진이청(通津吏廳)으로 가는 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통진이청 가는 길에서 걸어온 군하로를 내려본다. 스카이모텔 앞을 거쳐 오른쪽 홍살문으로 들어와 통진향교를 거쳐왔다.
오른쪽 뒤 통진향교에서 민가 앞 마당길을 거쳐 바로 앞에 보이는 이정목 앞으로 내려왔다.
산자락길과 민가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중앙 뒤에 나무가 있는 통진생활문화센터 앞으로 이어간다.
왼쪽 뒤 민가 앞 이정목을 통과하여 오른쪽 언덕의 이정목을 지나 언덕 아래로 내려왔다.
민가와 민가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통과하면, 통진이청(通津吏廳)이 보인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 민가 장독대 뒤쪽에 통진이청과 그 오른쪽 뒤에 월곶초등학교가 있다.
통진이청(通津吏廳)이 보이는 민가 오른쪽 앞에 이정목이 세워져 있고 그 앞의 골목을 빠져 나간다.
이정목 왼쪽은 통진이청(通津吏廳) 앞이고, 도로 위쪽에 월곶초등학교가 있다.
통진이청(通津吏廳) 폐쇄된 출입문 앞에 통진이청 설명안내판과 복원공사 사진 게시판이 세워져 있다.
「통진읍지」 기록에 의하면 통진에 있는 대부분의 관아를 기사(己巳)년(1869)에 부사 백낙선이 중수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통진읍지」·「통진지도」에 이청의 규모가 기술되어 있다. 통진이청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구성된 건물로 전체 14칸의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우측에 대청이 넓게 차지하고 좌측에 방과 부엌을 배치시킨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3·1운동 당시에는 주재소로 쓰였던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후 주택으로 사용하다 폐가로 방치되었고 2011년 10월 문화재로 지정되어 2013년 9월에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통진이청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관아건축 중 하나로 경기도 관아건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드문 자료로 평가된다.
통진이청 오른쪽 석축 위에 월곶초등학교가 있으며, 철망 문이 잠겨 있어 통진이청 마당으로 출입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