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블루스의 환상(幻像) 2010. 3. 6
이원우(수필가 ․ 소설가 ․ 대중가요연구가 ․ 초량 애덕의 집 노래 봉사자)
교직 생활이 자그마치 43년이다. 돌이켜보면 순간순간 몸살을 앓았다.
공 사적으로 그 맞잡이가 그 맞잡이다. 동성(同姓)아주머니 술이라도 싸야 사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내 일찍부터 줄곧 나 자신의 이익부터 챙기는 그런 성정(性情)으로 지내왔는지, 가끔 가슴에 손을 얹는다. 그러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데 하나 확실한(?) 게 있다.
마지막 1여 년 동안, 관리직(교감 교장)으로서의 지도력 부족…….두루뭉술하게 표현해서 그렇지, 그 지도력이라는 덕목이 워낙 다양하다. 경륜이나 식견 등은 둘째치고라도, 세속적인 인기만 좀 더 있었어도 말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으리라.
관련 있는 우스꽝스러운 고백.
나는 중요한 일과나 행사가 끝나고, 가끔 우르르 몰려가는 회식 자리가 항상 달갑지 않았다. 푸짐하게 먹는 것은 좋은데, 곧장 이어지는 뒤풀이에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노래방까지 가서 춤판이 벌어지는 게 질색일 때도 있었다. 몇 번 블루스 때문에 봉변(?)을 당하고 난 뒤, 그 정서가 고착되고 말았다. 여담 하나. 언젠가 여자 교감이 손을 내밀었는데, 내가 팔짱을 끼고 다가갔더니 기절초풍을 하더라. 그래갖고서야 아랫도리 거리는 1미터 이상이니…….
세월이 흘러 내일 모레 일흔이다. 이 나이에 블루스 타령이라면, 남들이 의아스러워 하리라. 그러나 이번엔 온도차가 나는 블루스라 설마하니 손가락질이야 하겠는가?
오래 전, 그러니까 70년도에 나는 Blue라는 셰퍼드 암컷 한 마리를 길렀다. ‘푸른’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가 고유명사가 되다니 싶어, 처음엔 어색해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니 적응이 되더라.
그 blue가 한 발짝만 나가면 정말 다른 뜻이 된다는 걸 근래에 알게 된다. 한창 연습 중인 올드 팝송 세 곡, I can't stop loving you와 All for the love of a girl, Anything that's part of you에서 나는 아주 특별한 단어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게 바로 blue다. 우연의 일치라고 설명하기에는 뭔가 아쉬운…….워낙 영어가 짧아 영한사전을 뒤져 보고나서야, 그게 또 다른 뜻 ‘우울한’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blue에 s를 붙이면? 바로 ‘흑인 음악’이 되는 것이다. 한데 같은 장르라도, 영가(靈歌)는 종교적이며 희망적인 데 반하여, 블루스는 세속적이며 비관적이란다. ‘흑인들이 부른 우울한 노래’라 해도 괜찮으리라.
나는 블루스 몇 곡을 흥얼거려 보았다. ‘남포동 블루스’ ․ ‘남천동 블루스’ ․ ‘대전 블루스’ ․ ‘황혼의 블루스’ ․ ‘선창의 블루스’ 등등. 한결같이 이별이요, 눈물이요, 무정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가사만 들먹여도 눈물이 날 것 같은데, 멜로디가 가슴을 무너져 내리게 만든다.
게다가 특별한 음계가 도사리고 있어 더 우울(증)에 빠지게 하는 게 블루스다. 여기 맞춰 왜 남녀가 부둥켜안고 흐느끼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우리 같은 문외한(?)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만……. 지금은 더더욱 초망지민(草莽之民), 블루스 탓에 수모 당할 일조차 없는 처지, 강 건너 불구경하자꾸나.
그래도 여기서 어떻게 접겠는가? 동냥하려다가 추수 못 본다고 했지만, 설마 다음 이야기가 블루스의 본질까지 훼손시키지는 않으리라 여긴다. 내게 두 가지 사연이 있다.
처음 것도 오히려 눈물겹다. 열대여섯 해 전이다. 글자도 깨우치지 못한 한 할머니가 노인 학교에 다녔다. 물론 다른 프로그램을 잘 따라하지 못하였다. 다만 경음악이라도 틀어 놓으면 잽싸게 일어나서 사교춤을 추는데, 내가 보기에도 그 솜씨가 기가 막힌다. 처음 건네던 할머니의 말이 생각나서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을 수밖에. 남편이 63년도엔가 월남전에서 척추에 총상을 입었단다. 남자의 기능을 잃고 종일 누워 있을 수밖에. 마침내 할머니까지 우울증이 왔더라나? 두 사람이 합의(?)하여, 아내(할머니)가 사교춤을 배우기로 했겠다. 사전 약속 두 개, 반드시 친구들과 같이 다니고, 블루스는 추지 말 것! 글쎄 그게 제대로 지켜졌는지 모르되, 할아버지는 몇 년 전 저승으로 떠났다더라.
그제 겪은 또 다른 일. 시각 장애 복지관에서 나는 가족들과 함께 ‘남포동 블루스’를 부르고 있었다.
네온이 반짝이는 남포동의 밤/이 밤도 못 잊어 찾아 온 거리/그 언젠가……그렇게 2절이 끝나기 전에, 쉰을 갓 넘긴 아주머니와 일흔 살이 넘은 할머니가 일어나서 부둥켜안더니 블루스를 추겠단다. 나는 솔직히 말해 그 둘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정확하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걸 복지관에서 배웠다고 했고. 그런데 정말 그들의 춤 솜씨는 능수능란(?)했다. 아니 아름다웠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블루스다운 블루스를 보았다 싶었다.
그 다음에 우리가 고른 건 ‘남천동 블루스’다. 나훈아가 작사와 작곡, 노래까지 도맡은 거다. 못 잊어 다시 찾은 거리 남천동 밤거리/ 밤바다는 여전한데 네온은 밤을 태우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 두 시각 장애인의 블루스는 계속되었다, 한참이나.
마치고 나서 고물이 다 되어 털거덕거리는 봉고에 그들과 동승하였다. 시내를 한 바퀴 삥 도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을 못 보게 되었을 때, 스스로 목숨 끊을 생각은 예외 없이 한단다. 그러다 어느 누구가 이랬다. 그래도 지금은 꽃보다 아름다운 게 사람이란 건 안다고.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에서 얼른 ‘녹음방초’를 ‘인간만태(人間萬態)’로 대체하고, 눈시울을 적셨다. 엄마가 생각나서다.
참, 블루스엔 체온이 녹아든다고 덧붙였으렷다? 마지막 덕포동에서 내린 할머니가 말이다. 설마하니 그럴 리야 있겠나, 그건 농담이겠지. 그러나 그들은 등과 등이 맞닿아서라도 따뜻함을 느껴야 한다.
이쯤 되면 노래든 춤이든 블루스를 내가 짊어지고 말이다. 천둥인지 지둥인지 모르는 주제에 너무 멀찌감치 나간 것 같아 부끄럽다. 어쨌든 나는 블루스의 환상(幻像)을 본 셈이다.
<창작 노트>
좀 긴 듯싶습니다. 졸고는 16.1장이니까요. 정말 부끄럽게도 등단한 지 30년이지만, 30장을 써 놓고 수필이랍시고 드러내던 버릇을 이제야 고치게 되었습니다. 김병규 박사님은 12장일 고집하셨습니다.
15장 안팎이 적당량이라는 합의가 이뤄졌다면, 당연히 대화는 빠져야 한다는 주장을 누가 합디다. 콩트나 동화라면 30장을 넘기 예사라, 따옴표가 필요하겠지만, 수필은 그러기에는 너무 지면이 좁겠지요.
시가 소나기요 소설이 흙탕물인 대신 수필은 지하수라 누가 얘기합디다. 맑고 아름다운 글이란 뜻이겠지요. 블루스 노래는 수도 없이 불렀는데, 그 춤은 단 한번도 춰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게 블루스라는 '흑인 음악'의 근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겠지요. 우울한 기분을 바탕에 깔고 있습디다.
부끄럽지만, 몇 군데 아는 척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현학은 아닙니다. 부득이 인용한 곳도 있고요.
참 희한한 블루스를 객석에서 보았습니다. 그것만은 美學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