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범 김구 선생
백범 김구 선생은 1919년 대한민국 역사상 제1호 경찰(초대 경무국장)이 되어 경찰의 기틀을 확립함. 김구 선생은 1947년 '민주경찰'지 창간 및 특호를 축하하는 축사에서 이미 민주, 인권, 민생의 경찰정신을 당부함. 즉 민주경찰 정신을 함양하고(민주경찰), 상식 및 문화수준을 향상시키고(인권경찰), 애국안민의 신경찰(민생경찰)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음
2. 나석주 의사
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원 및 의경대원으로 활동하였고 1926년 12월 식민수탈의 심장인 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함
3. 안맥결 총경
1946년 5월 미군정하 제1기 여자경찰간부로 임용되었고, 1952년부터 2년간 서울여자경찰서장을 역임함. 1957년 국립경찰전문학교 교수요원으로 발령받아 후배 경찰 교육에 힘씀.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군사정권에 협력할 수 없다며 사표를 제출함
4. 문형순 경감
제주 4.3사건 당시인 1948년 12월 검거된 좌익총책 명단에 연루된 100여명의 주민이 처형위기에 처하자 자수토록 하고 전원을 훈방함. 1950년 8월 제주 성산포 경찰서장 재직시 계엄군의 예비검속자 총살 명령이 부당하므로 불이행한다고 거부하고 278명을 방면함
5. 안종삼 서장
1950년 한국전쟁 시에 구금 중인 보도연맹원 480명을 사살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석방함. 이후 여러 차례 전투에 참여하였고 서울 수복 이후에는 지리산에 남은 북한군을 소탕하고 귀순자를 석방시키는 등의 업무를 지속함
6. 차일혁 경무관
1953년 전북 18전투경찰대대장으로서 빨치산 토벌에 참여하였고(호국경찰의 표상), 당시 이현상을 '적장의 예'러써 화장해주고, 생포한 공비들에 대하여 관용과 포용을 통해 귀순을 유도함(인본경찰 및 인권경찰의 표상). 또한, 충주경찰서장 재직시 공비들의 근거지가 될 수 있는 사찰들을 불태우라는 명령에 대하여 사찰의 문짝만 태움으로써 여러 사찰 및 문화재를 보호함(문화경찰의 표상)
7.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
1968년 1. 21. 무장공비침투 사건 당시 종로경찰서장인 최규식 경무관은 자하문 임시검문소에서 청와대를 사수하고 무장공비를 막아내는 과정에서 정종수 경사와 함께 순직함(호국경찰의 표상)
8. 안병하 치안감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 전라남도경찰국장으로서 분산되는 자를 너무 추격하지 말고, 부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등을 지시함(민주경찰 및 인권경찰의 표상). 신군부 명령을 어긴 이유로 직위해제를 당하고, 혹독한 고문을 받은 후 투병하다 사망함. 경찰인재개발원에 안병하 치안감 이름을 딴 '안병하 홀'이 설치됨
9. 이준규 총경
1980년 5.18. 당시 목포 경찰서장으로 재임하면서 원천적으로 시민과의 유혈 충돌을 피하도록 조치하여 목포에서는 사상자가 거의 나오지 않음. 신군부에 의해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됨
10. 최중락 총경
1970~80년대 MBC 드라마 수사반장의 실제 모델로 20년간 각종 자료제공 및 자문함. 1990년 퇴직 후에는 촉탁수사연구관으로 선임되어 후배 수사 경찰관들을 지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