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하늘 / 이영자 詩 모음집 1탄
그리움
맑은하늘 / 이영자
새벽바람 창문 흔드는 소리
그대 향한 그리움이 창을 타고 흐릅니다
그대 그리움이 숨 쉬는 강가에 앉아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대에게 띄워 보냅니다
그대는 지금 어디쯤 오셨나요
어디쯤에서 방황하고 계시나요
나는 영원히 지지 않는 한 송이 꽃이 되어
그대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대와 함께였던 시간이
가로등 불빛처럼 꺼져 퇴색된 채거리에 누워도
그대 향한 그리움은 푸른 초원을 달리는 사슴입니다
그대를 그리는 그리움이
안개꽃 속에 피어나는 아련함일지라도
꽃다지 지기 전에 그대여 잰걸음으로 오세요
그리움의 촛불은 세월을 기다려 주지 않아요
마지막 목숨 다할 때까지
그대 품 안에서 그대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며
사랑과 기쁨이 담긴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저녁노을이 감빛으로 물들어 갈 때면
달콤한 입맞춤으로
내가 가장 아끼는 옷을 입고서
그대의 품 안에서 영원히 잠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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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사랑
맑은하늘 / 이영자
단풍이 곱게 물들 때면
내 사랑이 올까 하여
푸른 잎새에 님의 이름 새겨보았습니다
구름을 펼쳐놓고 님을 그렸습니다
가을이 오면 하늘이 한없이 높아져
구름에 그린 그림을 우리 님이 보시겠지요
님과 주고받던 연서
무릎 앞에 꺼내놓고 읽어봅니다
아주 오랜만에 황금빛 들판에서 편지를 쓴답니다
떨어진 이삭 주워 먹으러 온 새들이
우체부가 될 것 같아서입니다
드디어 가을이 왔습니다
단풍이 설레는 마음을 한가득 담아주네요
침묵하던 사랑의 눈
푸른 하늘이 새롭게 눈을 뜨게 하네요
편지에 답장이 왔다고 새들이 지저귑니다
아, 가을사랑
저만치 사랑이 오고 있나 봅니다
차가운 볼은 어느새 붉은 단풍이 되었고
가슴은 한없이 쿵쿵 거리네요
툭, 툭, 후드득
밤송이 떨어지는 소리
가을이 내 사랑을 발갛게, 발갛게 익혀주네요
가을사랑이 내게로 오는 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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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맑은하늘 / 이영자
싸리문 열고 나서는 아낙네
칭얼거리는 아이
둘러업은 등짝엔 아이가 짐짝처럼 달라붙었네
해지기 전
가을걷이 끝내야 하는 급한 마음에
종종걸음 걷는 아낙네
깨도 털고 콩도 거둬야 하건만
할 일은 태산 같고 가을 해는 그리도 짧아
소슬바람 손수건 되어
송골송골 맺힌 땀 어느새 말라버렸고
아낙네 심술
툭, 하고 들판에 핀 들국화 희롱하였네
코끝에 묻어나는 상큼한 향기
가을은 그만큼 견딜 수가 없었나 보다
흙 묻은 손에 한 움큼 쥐어진 들국화
처녀 적 첫사랑이 떠올라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들국화 꽃이 되었고
하얀 젖무덤에 묻힌 아가 얼굴 위로
떨어진 눈물도 뽀얀 들국화 꽃이 되었다
가을이 물든다
가을은 고향집 어머니 같아
아낙네 무명치마에 들국화로 오롯이 피어난다
어머니, 어머니,
나지막이 내뱉는 한숨사이로
눈앞에 하얀색 노란색 들국화 가득히 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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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시여
맑은하늘 / 이영자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님 그리는 마음
눈물이 되어 흐르는 도랑이 됩니다
맑고 푸른 하늘
흰구름 둥실둥실 떠도는 날
우리 님 오실 것만 같은 날
행여나, 행여나 님 오실까 기다리다 지쳐
상사화 꽃밭에 누워 내 마음도 붉게 물듭니다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고
별들이 불꽃이 되어 춤추는 우주
그렇게 세상이 바뀐다 해도
오직 님 그리는 마음은 망부석입니다
님 없는 세상 살다 보니
님이 입혀 준 고운 옷
남루하게 낡아 여기저기 얼룩이 졌습니다
님 없는 세상 살다 보니
힘겨운 세상살이에 몸도 마음도 지쳐
스산한 바람에 날리는 낙엽이 되었습니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나를 보노라면
뭐라고 하실까 걱정도 되지만
꾸짖고 책망하신다 해도 님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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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맑은하늘 / 이영자
새봄
푸른 잎새가 돋아나서 참 예뻤다
여름엔 아름다운 꽃 피어나 아름다웠다
가을엔 발갛게 물들인 단풍에 나는 황홀했다
훔쳐간 마음 내놓으라 할까 봐
하얀 서리옷 입고 바들바들 떠는거겠지
안아주고 싶은데 부서질까 봐
호호 불어주고 싶은데 날아갈까 봐
서리꽃 너는
여전히 아름답다고 말할게
霜降(상강) 햇살에 반짝이는 너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보석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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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세월
맑은하늘 / 이영자
세월은
말 타고 쏜살같이 달리나 봐
어슬렁어슬렁
황소처럼 가도 되는데 말이야
세상사 한고비 넘어가는 게
신라 화랑이 쏜 화살 같아
토끼와 거북이 경주처럼
낮잠도자고 그렇게 갔으면 좋으련만
느릿느릿 걸어서
또 한고비 넘어가며
어화둥둥 놀다 가면 좋으련만
그새 또 한 해의 끝자락이라니
너무도 서운해
붙들어 둘 마음조차 없더구나
지난 세월이 데리고 간 님들
왜 데려갔냐고 따지고 싶어
하나 둘
낙엽 떨어지듯
유성처럼 떠나는 님의 향기
어디를 가야 만날 수 있을까
산 넘고 바다 건너
님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으련만
화살 같은 세월이 참으로 밉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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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찾아
맑은하늘 / 이영자
나는
마음을 그냥 내주어도 되는 줄 알았지
내 마음 내주었더니
썩어터져 물러버린 감자가 되어 돌아왔더라
이런 게 바로 악연인가 보다
마음을 내주어도 될 것 같아 내보였더니
보석상자에 숨겨진 보석이 되어 돌아왔더라
너무나도 눈부셔 행복에 젖어들었지
마음이 한없이 즐거워
이런 게 바로 좋은 인연인가 보다
세월이 가도 기억에 남는 인연
그 인연 또 만날까 해서
봄 햇살 내려앉는 곳
버들가지 피리 만들어 시름 달래고
흐르는 냇물에 내 마음 전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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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겨울나무
맑은하늘 / 이영자
추워도 춥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지난날 황홀했던 기억 속 추억
그리움 한 줌 끄집어내
차가운 얼굴 비벼대며 지낸 한겨울
곱디고운 단풍도 모두 다 내주어
앙상한 가지 밖에 없다는데도
바람은, 바람은 더 내어 달라 성화를 하는구나
그래, 마지막 잎새도 가져가거라
송두리째 모두 가져가거라
갈라진 목소리에 서리꽃 피고
처연한 몰골로 그렇게 겨울을 보냈다
아,
이제는 봄이 왔나 보다
봄바람 불어 얼어붙은 입술 녹여내고
겨울나무는 그제야 노래를 부른다
살아 있어도
사는 것 같지 않던 절망의 겨울
얼었던 가슴
꽃바람이 건네는 부드러운 손길
겨울나무는 그렇게 흥겨운 노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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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맑은하늘 / 이영자
봄이 오면,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씨앗들에게
초록의 꿈을 안고 피어난 새싹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노래를 가르치리라
봄이 오면,
새들의 합창 가슴에 담아
햇살 한가득 두 손에 담아
흐르는 시냇물에 뿌려주리라
봄이 오면,
막 부화한 올챙이
햇살 따라 헤엄 치는 것 바라보며
보리밭에 누워 풋풋한 향기에 취해보리라
봄이 오면,
아이들 불러 모아 버들피리 불며
겨우내 북풍한설 불어와 얼어붙은 대지위로
연초록 고운 물감 들판에 풀어놓으리라
봄이 오면
행복해하는 사람들
웃음을 모아
베틀에 올려 예쁜 봄옷을 만들어 입혀보리라
첫댓글
맑은하늘 이영자 작가님께서
노트에 적어둔 시를 보내오셔서
바쁘신 맑은하늘 작가님을 대신해
백화가 워드를 쳐서 올렸습니다.
예전에 쓴 글인데
다시 읽으니
쬐끔
괜찮아 보이긴 하네요
백화님 게시해줘서
그런 느낌이 드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시다니 다행입니다.
노트에 보석이 처박혀 있었네요!
이제 세상에 빛나는 글이 될겁니다.
@白華 文 相熙 발굴 작업 수고에 감사 드려요~~^^
시가 아름다워요~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
안녕하십니까
댕댕이와 책을..
김인희 작가님도 오셨군요.
반갑고 또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