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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을 불라
본문 : 민 10:1-10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한 여행 준비일 것입니다.
준비가 잘 됐을 때 그 여행은 여유롭고 편안합니다. 그러나 준비가 미흡할 때는...
그 여행은 늘 무엇엔가 쫓기고, 불안하고, 힘이 듭니다. 준비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여행 준비에는 어느 여행에서나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통편, 숙박, 옷가지, 세면도구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준비 외에 여행의 목적에 따라 특별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등산이면 등산 장비, 낚시면 낚시 용구, 공무출장이면 공무에 필요한 서류 같은 것들입니다.
은 나팔을 만들라.....
우리가 읽고 있는 민수기는 이런 여행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은 두 달 만에 시내광야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기본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제 가나안으로의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이 여행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준비 이야기가 무려 1장에서 10장에 걸쳐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계수하는 것부터 오늘 우리가 나눌 나팔 신호까지, 여러 준비를 하고, 드디어 시내광야를 출발하게 되었습니다.(13절)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자손은 남자만 60여만 명이고,...
여자와 아이들을 합하면 족히 2백만 명 정도가 되었을텐데,.....
모세는 어떻게 이 큰 무리를 일사분란(一絲不亂)하게 행진하도록 할 수 있었을까 ?....
당시에는 마이크도 없었고, 2백만 명이 모두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목소리를 가진 사람도 없었을텐데... 참 놀랍지 않습니까? 아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구름과 불기둥을 준비하셨을 것입니다. 구름이 성막을 덮고 있다가 떠오르면.....
2백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자손은 그 하나님의 구름을 따라 일제히 행진했고.....
구름이 머무르면 그곳에 장막을 치고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구름 기둥, 불기둥만 준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나팔 신호를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2절을 읽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을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
여기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은 나팔 둘을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 나팔을 만들라고 하신 것은 가나안을 향해 여행을 시작하는 그들을 위한 마지막 준비요, 그저 평범한 ‘작은 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석가들은 이것을 ‘은나팔 규례’라고 부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자손은 1년 가까이 시내광야에 머물면서......
십계명과 율법, 사회법과 정결 규례 등을 받았고, 성막을 세우고, 각종 제사법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켜야 할 매우 중요한 규례들이었습니다.
거기에 비해 오늘 우리가 나눌 은 나팔 규례는 가장 마지막에 받은, 작은 규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은 나팔 규례는 비록 아주 작은 규례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성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은나팔 규례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가장 먼저 우리는 이 ‘은 나팔 규례’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 ! 우리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자손의 작은 일까지도 세심하게 살피시고 도우시고,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물론, 이스라엘을 위해 큰일을 행하셨습니다.
홍해도 가르쳤고, 시내산에 임하셔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고,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셨고,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도 하셨습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큰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셨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을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시고, 구약의 구름기둥 불기둥처럼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영원히 살, 저 천국까지 다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 ! 하나님은 이런 큰일만 행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매일 매일 만나는 매우 작은 일들까지도 세심하게 돌보아주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과연 나를 아실까?’ ‘하나님이 과연 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실까?’라고 묻습니다. ‘지금 내가 머리가 아픈데, 이런 것까지도 아실까?’ ...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은 내 마음의 고민거리를 설마 알고 계실까’라고 의심합니다.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정말 그 크신 하나님께서 저와 성도님들 같은 평범한 사람도..
또한 우리 개개인의 고민거리도 잘 알고 계실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아픔’에도 하나님은 관심을 가질까요?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라고 내보내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라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28-31)
이 말씀은 저에겐 참 위로가 됩니다. 사실 우리 몸의 지체 가운데서 가장 작고 소홀히 여기는 것이 있다면, 아마 머리카락일 것입니다. 머리카락은 우리 몸 중에서 크고 중요한 부분은 분명히 아닙니다. (물론 저같이 머리숱이 많지 않은 사람에겐 너무 신경 쓰이는 일이지만)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 머리카락까지 다 세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성도님들은 머리카락의 숫자가 얼마인지 셀 수 있습니까? 성경이 말하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작고 연약한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님들 !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것까지도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작은 것까지 세심하게 배려하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작은 일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고 충성해야 합니다. 사람을 대할 때, 외모나 형색만 보고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식당에 가서도 종업원들에게 함부로 반말해서도 안 됩니다. 성도들은 작은 자들을 먼저 배려해야 합니다. 그것이 작은 일, 작은 사람까지도 돌보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성품을 품는 것입니다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
우리가 알다시피, 지금까지 이스라엘 자손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따라서 시내광야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성막을 세우는 날, 하나님의 구름이 성막을 덮었습니다.
이제 그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은 부지런히 짐을 싸서 행진을 해야 했고, 구름이 머물면, 그 자리에 성막을 세우고 성막을 중심으로 각 지파들이 진을 쳐야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시내광야에 오기 전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나안으로의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느닷없이 모세에게 ‘은 나팔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은 나팔로 백성들을 소집하고... 진영을 행진하는 데 쓰라고 하신 것입니다.
<본문 2절을 읽겠습니다>
“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
여기에 보면, ‘은 나팔 둘을 만들어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고 진영을 출발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구름기둥, 불기둥을 보고 행진했지만,....
이제부터는 제사장이 부는 나팔 소리를 듣고 행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인(sign)...,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자손은 구름 기둥이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듣고 움직여야 했다는 것입니다.
나팔 하나의 소리인지... 두 개의 소리인지....
나팔을 크게 부는 소리인지..... 그냥 작게 부는 소리인지, 잘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회막 문에 모이라고 하는지, 아니면 행진하라고 하는지 잘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님들 ! 여기서 말하는 나팔소리란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필요하고 목회자들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보다 더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기 위해, 하늘의 구름과 불기둥만이 아니라 은 나팔소리로, 오늘날 교회와 목회자들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나팔을 불 듯이,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그 소리를 듣고 가라고 하는지, 오라고 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믿음 생활을 잘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팔소리,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행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믿음 생활에 실패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나팔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팔소리와 상관없이 자기 뜻대로,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다가 실패합니다.
다른 하나는 나팔소리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잘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가라고 하는지 오라고 하는지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들을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습니다. 성도님들 ! 하나님 보는 눈이 열려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는 귀도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 방황하지 않습니다.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나팔소리,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있습니까?
은 나팔은 제사장들이 불지니
그런데 은 나팔을 누가 불었을까 ? 제사장들이 불었습니다.
8절에 보면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에게 나팔을 불라고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제사장 직분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제사장은 하나님의 나팔수입니다. 나팔수는 나팔을 잘 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팔수가 제멋대로 나팔을 분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곤란하겠습니까? 또 백성들은 얼마나 헷갈리겠습니까?
그래서 제사장..., 우리 시대로 말하자면..., 훈련된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나팔을 붑니다.
어느 날 영국 수상 글래드스턴(William Ewart Gladstone)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왔을 때,어떤 기자가 말했습니다. “아니, 귀하처럼 학식을 갖추신 분께서 저런 어눌한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오시다니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됩니다.”그러자 글래드스턴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는 웅변을 들으러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입니다.
교회가 도덕이나 세상의 성공철학을 이야기한다면 교회의 존재 가치는 없는 것이다.
제 생각에는,.... 오늘날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길을 잃고, 성도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라고 하는 대로 불어야 하는데...., 목회자들이 제멋대로 나팔을 불고 있으니...
성도들이 길을 잃고, 교회를 떠나 가나안 성도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흥미 있는 것은, 나팔을 부는 방법입니다.
본문에 보면, 나팔 두 개를 불 때가 있고, 하나만 불 때가 있습니다.
또 소리를 크게 부느냐...., 작게 부느냐에 따라 ....의미하는 신호가 다르고....
나팔 소리의 순서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 나는 소리면 동편 진이 행군하고, 두 번째 나는 소리면 남편 진이 행군하고, 하는 식입니다.
4절에 보면 ‘하나만 불 때에는’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long blast’, ‘소리를 끊지 않고 길게 불다’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5절에서 ‘크게 불 때에는’이라는 말은 ‘stacatto blast’, ‘딱딱 끊어서 불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길게 부는 나팔’은 평온할 때, 모임을 갖기 위한 의도로 부는 것이라면....
‘딱딱 끊어서 부는 나팔’은 긴급한 상황, 즉 전쟁이 나서 군인을 소집해야 하거나 진을 옮겨서 행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은 나팔은 언제 불었을까 ? 대체로 세 가지 경우에 은 나팔을 불었습니다.
-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모아 함께 예배드리고자 할 때 부는 나팔입니다.
예배드리기 위해 부는 나팔은 그냥 길게 불었습니다. 나팔을 ‘빵~’하고 불면 이스라엘 자손은‘아하! 예배할 때가 되었구나. 회막문 앞으로 나아가자.’ 하고 모였습니다.
<본문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기에 보면, 희락의 날, 정한 절기. 초하루에 제사장이 나팔을 불면 그들은 회막문 앞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고 말합니다.
구약시대의 예배는 오늘날 신약시대의 예배와는 다릅니다. 그들은 주로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짐승의 내장과 기름을 불태워 하나님께 화제로 드렸습니다.
그때 제사장이 나팔을 불면, 그날은 희락의 날이 됩니다.
성도님들 ! 예배드리는 날은 기쁜 날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나팔을 불며 예배하면, “그로 말미암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기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라고 하셨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은 찾으시고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 삶의 중심에는 항상 예배가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은 나팔은 언제 불었을까 ? 대체로 세 가지 경우에 은 나팔을 불었습니다.
-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모아 함께 예배드리고자 할 때 부는 나팔입니다.
- 둘째, 은나팔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진할 것을 명령할 때에 불었습니다.
<5-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크게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요
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라 떠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크게 불 것이며”
구름기둥이 회막문 위에 있다가 떠올라서 이동하면, 동시에 제사장들은 나팔을 붑니다.
1차로 나팔을 불면 동편 진영이 행진을 합니다.
그 다음 간격을 두고 2차 나팔소리가 울리면 남쪽 진영이 그 다음에 행진을 하고,...
또 울리면 이번에는 서쪽 진영,......
그리고 또 울리면 북쪽 진영이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제사장이 크게 부는 나팔 소리는 행진, 곧 앞으로 나아가라는 신호였습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자손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때 나팔을 크게 불었습니다.
지금도 목회자들은 예배 때마다 나팔을 크게 붑니다.
예배 생활, 기도 생활, 뒤로 물러서지 말고,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년보다 올해가 더 나아야 하고,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나아지도록 앞으로 행진하라고 나팔을 붑니다.
성돈미들 ! 제 생각에는 우리의 신앙생활은 자전거와 비슷합니다.
자전거에는 후진기어가 없습니다. 자전거는 앞으로만 갑니다.
또한 자전거는 정지하고 서 있을 수도 없습니다. 정지하면 넘어지게 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앞으로만 나아가야 됩니다. 우리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39절은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은 나팔은 언제 불었을까 ? 대체로 세 가지 경우에 은 나팔을 불었습니다.
-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모아 함께 예배드리고자 할 때 부는 나팔입니다.
- 둘째, 은나팔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진할 것을 명령할 때에 불었습니다.
- 셋째, 은 나팔 소리는 전쟁을 하라는 명령입니다.
<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를 지날 때, 그들이 가는 길을 막는 적들이 있었고,....
그들은 적들과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그때 나팔을 크게 불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이 땅을 사는 동안 우리를 넘어뜨리려면 적들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적이 무엇입니까? ‘죄와 마귀와 세상’입니다. 어떤 주석가는 이것을 ‘신앙생활의 3대 원수, 죄악의 3총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이 죄악의 3총사와 매일 싸웁니다. 그럴 때마다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우리가 나팔을 불고 죄와 싸울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시고 대적에게서 구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분명한 것은 성도들은 결코 대적들에게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라고 하셨고, 베드로 사도도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벧전 4:7)라고 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피합니다.
우리가 이 영적인 싸움에서 물러서지 말고 나가서 싸우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고 있다가,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강림하시리니.....
그런데 성도님들 ! 우리가 들어야 할 나팔소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는 나팔소리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
마지막 날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우리 주님 그리스도 예수는 영광 가운데 심판주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그 날은 우리가 완전한 승리의 날이요,...
원수 마귀는 영영히 타는 불 못에 던져지는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자 찰스 피니(Charles Grandison Finney)는 ....
어느 날 예수님의 재림 설교를 할 때 나팔수 하나를 강대상 뒤에 숨겨 놓고......
“하나님의 나팔와 함께 예수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할 때,.....
나팔수가 나팔을 불게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어떻게 한 줄 아십니까?
‘아이고, 예수님 벌써 오십니까?’ 하면서 다 의자 밑으로 숨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 재림하시는 그날에 울리는 나팔소리가 저와 성도님들의 귀에는 즐거운 소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그날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하며 기다렸던 저와 성도님들이 구원받고, 칭찬받는 즐거운 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 !
하나님은 은 나팔을 만들어 제사장들에게 불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오늘날 누구를 의미하겠습니까?
바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저와 성도님들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제사장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제사장으로서 은나팔을 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 구약에서는..... 예배할 때...... 행진할 때,..... 그리고 전쟁할 때 나팔을 불었지만......
지금은 교회와 주의 종들을 통해 나팔소리가 온 땅으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가정과 직장에 예수의 복음이 퍼져나가도록...., 담대하게 나팔을 부는....
저와 금산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