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선생님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 있다. 가르침은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에 자신감을 심어 주는 일이다.
나는 시니어 일자리 사업을 통해 지역아동센터에서 한자를 가르치게 되었다. 수업은 방과 후, 오후 네 시가 넘어 시작된다.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에는 아이들을 만나고, 수요일은 교재를 연구하고 자료를 만드는 날이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는 나보다 열 살쯤 어린 동화 구연 선생님이다. 차가 없는 그녀는 늘 내 차를 타고 함께 출근한다.
"선생님, 오늘도 잘 부탁드려요."
"우리도 아이들한테 많이 배우게 될 거예요."
차창 밖으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수업은 늘 동화로 시작된다. 파트너 선생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금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그 다음은 나의 한자 수업이다.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한자 노트는 모두 내가 직접 만든 것이다. 커다란 한자와 획순, 뜻, 따라 쓰기, 그림까지 하나하나 정성껏 담았다. 예쁜 한자카드를 꺼내면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다 같이 배운 한자 복습해 볼까?"
교실에는 어느새 아이들의 씩씩한 목소리가 가득 찬다.
공부가 끝나면 기다리던 게임 시간이 시작된다. 룰렛을 돌려 문제를 맞히기도 하고, 메모리 게임으로 같은 한자를 찾기도 한다. 1학년 아이들은 아직 어려워 머리를 긁적이지만, 5~6학년 아이들은 아는 척하며 으스댄다.
"선생님, 그 한자는 저도 알아요!"
하지만 뜻을 물으면 금세 머리를 긁적이고, 교실은 웃음바다가 된다. 나는 아이들이 틀려도 절대 혼내지 않는다.
"틀리는 건 공부하는 사람이 받는 훈장이란다."
아이들은 웃으며 다시 손을 번쩍 든다.
몇 달이 지나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연필 잡기도 싫어하던 아이들이 먼저 한자를 써 보겠다고 나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깨닫는다. 내가 가르친 것은 한자가 아니라, ‘할 수 있다’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수업이 끝난 늦은 오후, 아이들은 하나같이 큰 소리로 외친다.
"선생님, 다음 주에 또 오세요!"
나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파트너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시나 봐요."
나는 창밖으로 저물어 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한다.
"사랑하니까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가르치다 보니 더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그날 밤, 나는 노트를 펼쳐 하루를 기록한다.
'아이들은 한자를 배우러 왔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웃는 법을 배웠다. 오늘도 작은 손들이 커다란 꿈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적는다.
'사람은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순간 다시 청춘을 시작한다. 오늘도 나는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 행복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