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병부공파 5세 양 견 5-1 진현관 대제학 양 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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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견(梁堅)과 이천서씨(利川徐氏) 지(之) 단(壇) 소 재 지 : 중광원[남원시 대산면 신계리 산3-4번지] 제 향 일 : 음력 10월 3일 부 모 : 梁卓英(양탁영)과 하음봉씨(河陰奉氏)의 아들 배 위 : 이천서씨(利川徐氏) - 장야서령(掌冶署令)을 지내신 서위(徐偉)의 따님[서희의 손녀] 자 손 : 아들은 이승(利升) 한분을 두셨다. |
| | 휘(諱) 견(堅)의 호(號)는 월정(月亭)이시며 이부전서(吏部典書)를 지낸 양탁영(梁卓英)과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하음봉씨(河陰奉氏) 시조(始祖) 봉우(奉佑)의 따님과의 사이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장야서령(掌冶署令)을 지낸 이천서씨(利川徐氏) 서위(徐偉)의 따님과 결혼하시고 1子를 두셨는데 아들 이승(利升)은 상호군(上護君)을 지내셨다. 양견(梁堅)은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이부시낭(吏部侍郎)을 지낸 후 광정대부(匡靖大夫)에 책록되었으며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를 지내시고 진현관(進賢館)대제학(大提學)을 거쳐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를 지내셨다. 이부(吏部)는 조선시대 이조(吏曹)의 옛 이름으로 이부전서(吏部典書)는 이조판서(吏曹判書)와 같고 이부시낭(吏部侍郎)은 그 다음 벼슬이다. 광정대부(匡靖大夫)는 문관 종2품 및 정2품에 해당하는 품계이고 밀직사(密直司)는 고려시대에 왕명의 출납과 궁궐의 경호 및 군사 기밀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인데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는 밀직사에 속한 종2품의 으뜸 벼슬이다. 진현관(進賢館)은 고려시대에 재능 있는 문신이 모여 임금을 시종하던 관청이며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은 종2품 및 정2품의 벼슬이고 춘추관(春秋館)은 시정의 기록을 맡아보는 관청으로 사관이라고도 불렀으며 지춘추관사는 2품 이상의 타관에서 겸직하였던 춘추관의 수장이다. 양견의 장인이신 서위는 서희의 아들이며 당대의 서희 가계는 3대를 이어서 재상 반열 올랐던 명문 귀족이었고 학문이 높은 가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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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부공 5세 양견의 배위는 장아서령을 지낸 서위의 딸이며 이천서씨 족보에 의하면 서위는 서희의 아들이다. 양견의 어머니는 하음봉씨 시조이신 봉우(1107년~)의 따님이므로 양견은 12세기 중반에 활동하신 분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서희(942년~998년)는 고려 초기에 활동하신 분이므로 서희의 아들인 서위의 활동연대는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선대 외조부인 서위와 서희의 아들 서위의 활동연대는 1세기 정도 차이가 나며 세대수로는 3대 이상 차이가 난다. 고려사에는 서희의 아들로 서눌과 서주행이 등재되어 있는데 서씨 구족보에는 서눌, 서유걸, 서위, 서주행이 서희의 아들로 등재되어 있어 고려사와 서씨 구족보의 내용은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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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걸은 손자 서균의 묘지석 내용으로 서희의 아들임을 고증하였고 서위는 이천서씨 최초의 족보인 갑신보(1524년)를 펴낼 때 서씨 종문에서 가계보를 참조하여 서희의 아들임을 고증하였다. 그런데 서위의 5세손인 서견은 고려말에 활동한 고려의 충신이다. 5세손을 전해 내려오는데 300여년이 세월이 흘렀다는 것은 일반적일 수 없으므로 이천서씨 족보에 등재된 서위의 계보는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씨족원류와 만가보에 따르면 서위의 손자 서인은 장인이 같은 혈족으로 서광이다. 서광은 서희의 5세손이고 사위 서인은 서희의 3세손이다. 세대수와 나이는 차이가 있을 것이나 3세손이 5세손의 사위가 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3대 정도의 계보에 혼선이 생긴 것으로 추정되고 서위는 서희의 현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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