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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권력의 존재론]
명제 3 — 권력의 크기는 결합의 강도에 의해 증폭된다
동물의 세계에서
토머스 실리가 수십 년에 걸쳐 관찰한 꿀벌의 집터 결정 과정은 놀랍다.
수천 마리의 벌집이 새 집터를 찾을 때 여왕벌이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수백 마리의 정찰벌이 사방으로 흩어져 후보지를 탐색하고 돌아와서 8자 춤으로 정보를 나눈다. 더 좋은 장소를 발견한 벌일수록 더 격렬하게 오래 춤을 춘다. 그 춤을 본 다른 벌들이 직접 가서 확인한다. 공감대가 임계점에 달했을 때 비로소 군집 전체가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결합의 연쇄가 한 마리로서는 결코 찾을 수 없었을 최적의 답을 만들어낸다.
▷ 토머스 실리 Thomas D. Seeley, 1952~. 미국 코넬대 생물학자. 꿀벌의 집단 의사결정 과정을 수십 년간 연구하여, 군집이 위로부터의 명령 없이 분산된 탐색과 숙의를 통해 최선의 선택에 도달하는 원리를 밝혔다. 저서 《꿀벌의 민주주의》(Honeybee Democracy, 2010).
개미도 마찬가지다. 먹이를 발견한 한 마리가 페로몬 길을 남긴다. 뒤따른 개미가 그 길을 강화한다. 갈수록 신호는 세지고 경로는 최적화된다. 늑대 한 마리는 자신보다 큰 사슴 앞에서 물러서지만 무리가 되면 무스도 쓰러뜨린다. 단순한 합산이 아니다. 결합이 전혀 새로운 차원의 힘을 만드는 것이다.
1. 뜻풀이
열 명이 뿔뿔이 흩어져 있을 때와 하나로 뭉쳐 있을 때, 숫자는 같지만 권력의 크기는 같지 않다. 왜인가. 결합이 관계를 만들고 관계가 힘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모이면 관계가 하나 생긴다. 세 사람이 모이면 관계는 셋이 된다. 열 사람이 모이면 마흔다섯 개의 관계가 생긴다. 구성원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관계가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 관계의 총합이 권력의 실제 크기다.
그렇다면 결합의 강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익으로 묶인 결합과 뜻으로 묶인 결합은 겉으로 비슷해 보여도 내부가 전혀 다르다. 이익의 결합은 이익이 사라지는 순간 풀린다. 하지만 뜻의 결합은 위기가 올수록 오히려 단단해진다.
2. 관중과 마키아벨리의 생각, 그리고 다른 주요 인사들
관중이 환공을 보필하면서 가장 먼저 착수한 것 중 하나가 군사 편제의 개편이었다. 당시 제나라 군대는 각지에서 징집된 병사들의 집합이었는데, 서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나란히 서서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구조인지 관중은 장작 전투의 패배에서 뼈저리게 보았다.
그래서 마을 단위로 편제를 바꿨다. 평소 함께 밥 먹고 함께 논 사람들이 나란히 싸우게 한 것이다.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같은 병사로 전혀 다른 전투력이 나왔다. 관중은 이 원리를 행정 구역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마을이 향(鄕)으로, 향이 수(遂)로 결합되면서 제나라의 국력은 계단식이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 군단의 힘이 병사의 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결합 구조의 정교함에서 나왔다고 분석했다. 시민과 공화정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을 때 로마는 어떤 외적도 이겨냈지만, 그 결합이 깨지자 아무리 강한 군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공자는 논어 첫머리에서 이미 이 원리를 압축해놓았다.
유붕자원방래 불역열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뜻을 같이하는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는 것은 결합의 네트워크가 확장된다는 뜻이다. 논어는 인간사회의 권력의 원천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공자가 70여 명의 제자를 키우지 않았다면 그의 사상은 노나라 한 구석에 묻혔을 것이다. 결합이 사상을 2500년 너머로 살아남게 했다.
현대 네트워크 이론이 이것을 수학으로 증명했다. 메트칼프의 법칙에 따르면 네트워크의 가치는 구성원 수의 제곱에 비례하고, 군사공학자 란체스터는 전투력이 병력 수의 제곱에 비례함을 보여주었다. 2대 1의 숫자 싸움이 실제로는 4대 1의 힘 싸움이 되는 것이다. 관중이 마을 단위로 군사를 재편한 것은 이 법칙을 2600년 앞서 몸으로 실천한 것이었다.
▷ 메트칼프의 법칙 Metcalfe's Law. 미국 전기공학자 로버트 메트칼프(1946~)가 제안한 네트워크 이론. 네트워크의 가치는 연결된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 이 책에서 결합의 강도가 권력을 제곱으로 증폭시키는 원리를 설명할 때 활용된다.
▷ 란체스터의 법칙 Lanchester's Laws. 영국 공학자 프레더릭 란체스터(1868~1946)가 제안한 전투력 계산 법칙. 현대전에서 전투력은 병력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 결합된 집단의 힘이 숫자 이상임을 수학적으로 보여준다.
제임스 콜먼은 사회자본 개념으로 이것을 설명했다. 신뢰와 네트워크는 위임을 가능하게 만드는 자본이다. 결합의 강도가 높은 집단은 사회자본이 풍부한 집단이다. 사회자본이 풍부할수록 위임의 효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두레가 강했던 것도, 의병이 관군보다 강했던 것도, 촛불이 무너지지 않았던 것도 사회자본의 차이였다.
스피노자는 이것을 가장 철학적으로 표현했다.
"인간은 공통 감정으로 결합할 때 하나의 정신과 하나의 신체를 갖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것이 뜻의 결합과 이익의 결합이 왜 다른가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이익의 결합은 이해관계가 달라지면 공통 감정이 사라진다. 뜻의 결합은 위기 앞에서 공통 감정이 오히려 강해진다. 스피노자가 말한 공통 감정이 관중이 설계한 마을 편제의 철학적 토대이고, 두레가 수천 년을 버텨온 이유이며, 촛불이 명령 없이도 질서를 유지한 비밀이다.
현대 네트워크 이론의 매튜 잭슨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연결의 수가 아니라 연결의 구조다.
▷ 매튜 O. 잭슨 Matthew O. Jackson, 1962~.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 사회·경제 네트워크 이론의 세계적 권위자. 사회적 위치가 권력·신념·행동을 결정한다는 논지로 네트워크와 권력의 관계를 가장 정교하게 분석했다. 저서 《휴먼 네트워크》(The Human Network, 2019).
잭슨이 말하는 동질성(homophily)의 원리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된다. 이익으로 연결된 집단은 동질성이 약하다. 이해관계가 바뀌면 연결이 끊긴다. 뜻으로 연결된 집단은 동질성이 강하다. 같은 경험, 같은 가치, 같은 언어로 묶인 연결은 위기가 와도 끊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잭슨은 허브 네트워크의 취약성을 경고한다. 연결이 한 허브에 집중되면 그 허브가 사라질 때 전체가 무너진다. 반대로 연결이 분산된 그물망 구조는 누군가 사라져도 전체가 유지된다. 두레가 강했던 이유, 촛불이 무너지지 않은 이유가 네트워크 구조로도 설명된다.
3. 역사적 사례
칭기즈칸의 19인 — 결합도에서 시작된 제국
칭기즈칸이 처음 권력을 가졌을 때 수하에 단 19명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19인이 단순한 부하가 아니라 함께 굶고 함께 싸우고 함께 살아남은 동고동락의 결합이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 결속은 배신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칭기즈칸은 이 결합의 원리를 제국 전체로 확장했다. 십호제·백호제·천호제. 병사의 수를 늘린 것이 아니라 결합의 구조를 설계했다. 그 설계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제국을 만들었다. 19인에서 시작한 결합도가 대륙을 뒤덮은 것이다.
도원결의와 삼고초려 — 결합의 질이 권력을 만든다
유비·관우·장비에게는 처음에 병력도 땅도 돈도 없었다. 그러나 복숭아 밭에서 의형제를 맺은 세 사람의 결합도는 어느 제후의 군대보다 강했다. 이 결합이 촉한의 씨앗이 됐다. 그리고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씩이나 찾아간 삼고초려는 그 클러스터에 천하의 지략을 끌어들이는 과정이었다.
권력을 키우는 방법이 병력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결합의 질을 높이는 것임을 적벽대전이 보여주었다. 조조의 83만 대군 앞에서 유비·손권 연합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결합의 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카이사르의 병사 사기 — 결합도가 전쟁을 이긴다
카이사르가 전략에서 가장 중시한 것은 병사들의 정신적 사기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병사들의 이름을 외웠고 함께 먹고 함께 행군했으며 10군단에게는 특별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모든 것이 결합도를 높이기 위한 행위였다.
파르살루스에서 폼페이우스의 두 배 규모 군대를 이기고 알레시아에서 포위 속에 역포위를 성공시킨 것은 숫자가 아니라 결합도의 승리였다.
로마 켄투리아 — 결합의 구조 설계
로마 군단의 핵심은 켄투리아(centuria)였다. 80명으로 구성된 이 단위는 함께 먹고 자고 싸우는 생활 공동체였다. 관계가 일상에서 형성된 자들이 전투에서도 하나로 결합됐다. 켄투리아가 코호르트(cohort)로, 코호르트가 레기온(legion)으로 결합되면서 로마 군단의 전투력은 병사 수의 제곱으로 증폭됐다. 관중의 마을 단위 편제와 정확히 같은 원리였다. 결합의 구조를 설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로마는 천 년의 역사로 증명했다.
소크라테스 재판 — 숙의 없는 결합의 위험
기원전 399년 아테네. 500인의 배심원이 소크라테스의 운명을 결정했다. 숫자는 컸다. 그러나 숙의가 없었다. 변론이 끝나면 별도의 토론 없이 즉각 투표로 넘어갔다. 두 번째 변론에서 소크라테스가 특유의 태도로 오히려 국가유공자급 대우를 요구하자, 처음 투표에서 무죄 쪽에 표를 던졌던 사람들까지 사형 쪽으로 돌아섰다. 280대 221로 유죄, 361대 140으로 사형. 감정이 결합을 좌우했다.
아테네는 500인에게 위임을 나눴다. 그러나 숙의가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죽었다. 민주주의의 발명지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를 민주주의의 투표로 처형했다. 숙의 없는 결합이 만든 가장 비극적 결과다.
독일 공개적 소통에 의한 결합이 국가 정책을 바꾸다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 직후, 독일에서는 모든 직종의 인사들이 참여한 17인 윤리위원회가 구성돼 8주 동안 매주 생방송 공개토론을 진행했다. 마지막 주에는 11시간 연속 토론. 이 결합의 강도가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냈고 메르켈 정권이 탈원전을 선언하도록 이끌었다. 여론조사에서 탈원전을 지지하는 숫자는 예전에도 많았다. 그러나 흩어진 여론은 정책을 바꾸지 못했다. 결합이 생기자 비로소 권력이 증폭됐다. 위임의 크기만이 아니라 결합의 강도가 작동한 것이다.
아테네 500인은 숙의 없이 즉각 투표했다. 독일은 온 국민이 8주를 토론하고 마지막 주 11시간을 더 토론했다. 소크라테스는 죽고 탈원전은 실현됐다. 결합의 강도는 숫자가 아니라 숙의의 깊이에서 온다.
한국의 두레와 의병 — 뜻으로 묶인 결합의 힘
농촌에는 두레 이야기가 있다. 모내기철이 오면 동네 사람들이 서로 품앗이를 했는데, 물을 댈 수 있는 짧은 시기에 모든 이들이 참여해서 모심기를 해두어야 농사가 가능했다. 때문에 이 시기는 힘 없고 모자란 이도 사람대접을 받았다. 두레는 단순한 노동 협력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묶는 사회적 결합이기도 했다. 가뭄이 들어 다 함께 굶더라도 혼자만 죽는 사람은 없었다.
임진왜란 당시 관군이 일본군의 조총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 것과 달리 의병이 강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같은 마을, 같은 고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뭉친 의병의 결합도는 훈련받은 정규군보다 강했다. 가족과 이웃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묶인 결합은 명령으로 만들어진 어떤 조직보다도 단단하다.
두레공동체의 그 DNA가 한국인의 언어에도 새겨졌다. 한국인은 내 집을 우리 집이라 부르고 나의 어머니를 우리 엄마라 부른다. 자신도 모르게 매일 클러스터링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DNA는 2016년과 2024년 광장에서 다시 폭발했다.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지만 수백만이 모였고, 아무도 통제하지 않았지만 질서가 있었다.
공동의 의무가 공동의 언어를 만든다. 여러 선진국 군대가 남녀 공동 복무를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군사적 필요만이 아니라 남녀가 같은 제복을 입고 같은 훈련을 견디고 같은 위험 앞에서 서로를 의지했던 경험이 전후 사회의 시민적 유대를 만들어 낸다는 신념. 공동의 경험이 결합의 씨앗이 된다. 두레가 모내기철의 공동 노동에서 생긴 것처럼, 결합은 함께 겪는 것에서 시작된다.
모리스와 맥루한 — 부족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두레의 DNA는 한국만의 특수성이 아니다. 인류학자 마이클 모리스는 《부족(Tribal)》에서 더 보편적인 통찰을 제시한다.
▷ 마이클 모리스 Michael Morris, 1962~.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심리학자·문화인류학자. 문화심리학과 사회적 정체성 연구의 권위자. 저서 《부족: 우리는 왜 무리를 이루는가》(Tribal, 2024).
모리스는 인간이 진화적으로 세 가지 본능을 통해 결합한다고 분석했다. 동료를 따르려는 본능(Peer instinct), 위계를 따르려는 본능(Hero instinct), 전통을 따르려는 본능(Ancestor instinct)이다. 이 세 본능은 현대 사회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미디어 환경이 바뀌면서 더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은 이미 1960년대에 이것을 예견했다. 그는 전자 미디어가 인류를 다시 부족적 결합으로 되돌릴 것이라 보고 이를 '재부족화(retribalization)'라 불렀다.
▷ 마셜 매클루언 Marshall McLuhan, 1911~1980. 캐나다 미디어 이론가.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명제로 유명하다. 전자 미디어가 인류를 활자 이전의 부족적 결합 양식으로 되돌릴 것이라 예견했다. 저서 《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 1964).
활자 시대는 인간을 개인화시켰다. 책을 혼자 읽고 혼자 생각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전자 미디어, 특히 지금의 SNS는 사람들을 다시 부족 단위로 묶는다. 같은 해시태그를 쓰는 사람들, 같은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부족을 이룬다. 2016년과 2024년 광장에서 SNS로 순식간에 결집한 시민들의 모습은 매클루언이 예견한 재부족화의 한국적 실현이었다.
여기서 명제3의 핵심이 다시 확인된다. 결합의 강도는 기술이 매개하더라도 본질은 같다. 이익으로 묶인 결합은 알고리즘이 추천을 멈추면 흩어지지만, 뜻으로 묶인 결합—같은 위기, 같은 열망을 공유하는 부족적 결합—은 기술의 힘을 빌려 더 빠르고 더 단단하게 뭉친다.
운동권의 연대 그리고 광장의 에너지 — 현재진행형의 클러스터링
오늘의 한국 진보 정치의 기반이 된 386 운동권의 결합도도 같은 원리다. 공통의 경험과 공통의 언어와 공통의 위기를 함께 겪은 자들의 결속은 수십 년이 지나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이익이 아니라 뜻과 경험으로 묶인 결합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결합도가 지나치게 폐쇄적이 되면 새로운 위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항우가 강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측근 집단에만 의존하다가 더 넓은 위임을 모은 유방에게 패했듯, 결합이 너무 단단하면 오히려 바깥의 위임을 밀어내는 역설이 생긴다. 이것은 별개로 짚어야 할 문제다.
2008년부터의 이십 년에 가까운 촛불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열기는 향후 한국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시킬 것이다.
4. 종합정리
권력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다. 구성원이 두 배 늘면 권력이 두 배 느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수만큼 늘어난다. 그리고 이익의 결합은 이익이 사라지면 풀리지만 뜻의 결합은 위기가 올수록 단단해진다.
칭기즈칸의 19인이 대제국의 씨앗이 됐고, 도원결의의 세 사람이 촉한의 토대가 됐고, 카이사르는 병사의 이름을 외워 전쟁을 이겼으며, 두레의 마을 공동체가 한국인의 '우리'를 만들었다. 관중은 마을 단위의 결합으로 제나라의 군사력을 증폭시켰고, 마키아벨리는 시민과 공화정의 결합이 국가의 힘이라고 했다. 그리고 독일의 17인 윤리위원회는 결합의 강도 하나로 원자력 국가의 에너지 정책을 바꿔놓았다.
반면 아테네 500인은 숙의 없이 소크라테스를 죽였다. 숫자가 아니라 숙의의 깊이가 결합의 진짜 강도를 결정한다는 것을 역사가 두 가지 방식으로 증명했다.
스피노자는 말했다. 공통 감정으로 결합할 때 인간은 하나의 정신과 하나의 신체처럼 행동한다. 잭슨은 말했다. 연결의 수가 아니라 구조가 힘을 결정한다.
공자는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를 논어의 첫머리에 놓았다. 뜻을 같이하는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는 것은 단순한 기쁨의 표현이 아니라 권력이 커지는 원리의 통찰이다. 뿌리가 깊은 나무일수록 가지가 멀리 뻗듯, 결합의 강도가 깊을수록 그 힘은 먼 곳까지 닿는다.
명제 3 — 권력의 크기는 결합의 강도에 의해 증폭된다. 결합이 관계를 만들고 관계가 힘을 제곱한다. 이익의 결합은 이익이 사라지면 풀리지만, 뜻의 결합은 위기가 올수록 단단해진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leewysu@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