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미송의 분홍색 실
의상디자인과 실습실.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와 가위질 소리가 정신없이 뒤섞여 있었다.
강인은 졸업 작품에 사용할 원단을 재봉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옆에 놓인 검은색 실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미송이 다급하게 외쳤다.
"안 돼!"
강인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왜?"
미송은 강인의 손에서 검은색 실을 빼앗았다.
그리고 자신의 작은 바느질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수십 가지 색깔의 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미송은 그중에서 연한 분홍색 실 하나를 꺼냈다.
"이 원단에는 이걸 써야 해."
강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분홍색?"
"응."
"어차피 안쪽이라 안 보이는데?"
미송은 잠시 강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안 보이는 게 더 중요해."
강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송은 분홍색 실을 재봉틀에 끼우며 말했다.
"좋은 옷은 겉만 예쁜 게 아니야."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까지 예뻐야 해."
"그게 옷을 만든 사람의 마음이니까."
강인은 조용히 미송의 손을 바라보았다.
가느다란 분홍색 실이 재봉틀 사이를 지나 원단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날 강인은 처음 알았다.
옷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원단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 마음을 숨겨 놓는 일.
그리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성을 건네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였다.
뒤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윤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럼 나는 빨간색 실 써야겠다."
미송이 물었다.
"왜?"
도윤이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내 안에는 열정이 불타고 있으니까."
강인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네 과제나 불타지 않게 조심해."
도윤이 씩 웃었다.
"오호."
"송강인 씨."
"요즘 말이 늘었는데?"
강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윤은 강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미송에게 속삭였다.
"미송아."
"얘 원래 세 문장 이상 말하면 열나는 애야."
"오늘 많이 위험하다."
강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도윤."
"왜?"
"가라."
"어디로?"
"멀리."
도윤이 웃으며 돌아섰다.
"역시 사랑은 위대해."
"송강인을 네 문장이나 말하게 만들다니."
"박도윤!"
실습실에 웃음이 터졌다.
미송도 웃었다.
그리고 강인은 그런 미송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날 저녁.
도윤과 강인은 학교 앞 분식집에 앉아 있었다.
강인이 한참을 망설이다 말했다.
"도윤아."
"응."
"나…… 미송 좋아하는 것 같아."
도윤이 먹던 떡볶이를 내려놓았다.
"같아?"
"……."
"아니."
도윤이 단호하게 말했다.
"확실해."
강인이 눈을 찌푸렸다.
"네가 어떻게 알아?"
도윤은 어이가 없다는 듯 강인을 바라보았다.
"야."
"너 미송 앞에서는 재봉틀도 더듬잖아."
"재봉틀이 어떻게 더듬어?"
"네가 하면 더듬어."
강인은 할 말을 잃었다.
도윤이 결정타를 날렸다.
"그리고 네가 미송 바라보는 표정 있잖아."
"무슨 표정?"
"세상에서 처음 분홍색 실 본 시골 총각 표정."
"……."
"그게 사랑이야."
강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오늘 미송이 건네준 작은 분홍색 실타래를 주머니에서 꺼내 바라보았다.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잠깐."
"그걸 왜 네가 가지고 있어?"
강인은 황급히 실타래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냥."
도윤이 벌떡 일어났다.
"그냥?"
"송강인!"
"너 지금 분홍색 실을 보물처럼 가지고 다니는 거야?"
"조용히 해."
"여러분!"
도윤이 분식집 사람들을 향해 외치려는 순간 강인이 그의 입을 막았다.
"떡볶이 사줄게."
도윤이 즉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튀김도."
"……알았어."
"순대도."
"박도윤."
도윤이 씨익 웃었다.
"역시 사랑에 빠진 친구는 이용 가치가 있어."
강인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주머니 속 분홍색 실타래를 만지는 그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날부터 강인에게 분홍색 실은 단순한 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송이 처음으로 가르쳐 준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마음을 담는 법.
그리고 강인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의 마음속에도 아주 가느다란 분홍색 실 하나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 실의 끝에는,
하미송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