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칠한 무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해 아주 강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회칠한 무덤과 같다.”**
당시 무덤에 회칠을 해 두면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고, 해가 기울 무렵이면 흰빛이 더욱 선명해져 겉으로는 깨끗하고 화려하게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겉을 희게 칠하고 아름답게 꾸며 놓아도 무덤 안에는 죽음과 썩어가는 것들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꾸짖으신 것은 바로 그런 **겉과 속이 다른 신앙**이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나는 바리사이들을 손가락질하기보다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나는 과연 그들과 얼마나 다를까요?
성당에 열심히 다니고, 기도하고, 봉사하며 신앙인답게 살아가려고 애씁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제법 열심한 신자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혹시 나도 회칠한 무덤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봉사한 적은 없었는지, 누군가 나의 열심을 칭찬해 주기를 은근히 기다린 적은 없었는지 돌아봅니다.
기도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성당에서는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와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다른 사람의 잘못은 쉽게 발견하면서 정작 내 허물에는 너그러웠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는 것이 반드시 믿음이 깊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했다는 사실보다 그 기도를 통해 내가 얼마나 온유해졌는지, 봉사를 얼마나 많이 했는가보다 그 봉사를 통해 얼마나 낮아졌는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보다 말씀 한 구절이라도 내 삶에서 얼마나 살아냈는지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겉에 무엇을 칠하고 있는지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품고 살아가는지를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혹시 바리사이처럼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수 있는 두려움이라면, 그것 또한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에 또 넘어지고, 때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잊지 않고 싶습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하느님께 보여 드릴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겉을 아름답게 회칠하는 데 애쓰기보다 내 안의 미움 하나를 덜어내고, 욕심 하나를 내려놓고,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더 이해하며 살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사람들의 눈에 좋은 신자로 보이려고 애쓰기보다
당신 앞에서 정직한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제 입술의 기도와 제 삶이 다르지 않게 하시고,
드러나는 열심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하는 사랑을 더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날마다 제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회칠해야 할 겉모습이 아니라
깨끗이 비워내야 할 제 안을 먼저 바라보게 하소서.
그리고 언젠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제가 무엇을 했는지를 자랑하기보다,
**“주님, 부족했지만 당신을 사랑하려고 애쓰며 살았습니다.”**
그 한마디를 부끄럽지 않게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
2026년 8월 26일 전소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