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주목사내아 내아는 목사의 살림집으로 내아 안채의 상량문에 1825년(순조25) 7월 1일 기둥을 놓고 7월 20일에 대들보를 올렸다고 기록되어 있는 걸로 보아 19세기 전반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현판에 쓰인 금학헌(거문고금, 학학, 집헌)을 맞춘 내가 선생님이 선물로 준비해오신 책선물을 받게 되었다.
아!!!!!! 좋아라~~^^♥♥
아!!!!~~ 목사문화관 가기 전 한자 문제를 내셨다. 옷깃만질 수를 아무도 몰랐다. 정수루~ 바를정 옷깃만질 수. 그곳을 지날때면 자신의 차림을 정돈했다고 한다.
7. 나주 향교 향교는 고려시대부더 만들어졌으나 조선시대에 각 지방에 들어선 지방교육기관으로 요즘으로 치면 지방의 공립 고등학교에 해당한다. 공부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자를 위시하여 맹자, 안자와 같은 유교의 성인들을 봄, 가을 제사지내는 기능이 먼저였고, 이와 더불어 공부를 가르쳤다.
나주향교는 987년 8월 12목에 향교를 설치할 때 창건되어 1398년에 보수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근거자료는 확인할 수 없다.
나주향교에서 특이한 것은 충복사 유허비로 조선 선조 31년(1597) 향교의 노비였던 김애남이 정유재란으로 향교가 위태롭게 되자 죽음을 무릅쓰고 대성전의 위패를 금성산으로 옮겼다가 왜병이 물러간 후 다시 안전하게 대상전에 모셨다.이 사실을 알게 된 조정에서는 그를 위해 사우(제사지내는집)를 건립토록 했다. 그것을 알리는 비가 향교에 서 있으니 그 비가 '충복사유허비'다
나주 향교의 시설물들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외삼문이 있다.
길라잡이 김남철 선생님이 길라잡이 끝. 하시면서 팥빙수를 쏘시겠답니다~~~~~^^ go go!!
세숫대야만한 곳에 나온 팥빙수를 먹고 답사소감 한마디씩 했습니다.
대부분 참 좋았다가 많았습니다. 훌륭한 길라잡이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결국 답사도 내가 사는 곳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멀리서 파랑새를 찾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듯, 정작 내가 사는 가까운 곳의 보물은 놓친 채, 먼 곳의 자료만 찾아헤매진 않았는지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광주에서 가까운 나주~~~ 김남철선생님으로 인해 나주가 참 궁금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제가 받은 책선물은 '광주의 기억을 걷다.' 최근에 출간한 따끈따끈한 신간~~ 잘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