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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다
갈잎들이 발자국처럼 떨어지는 저녁 무렵
노파가 폐지 수레를 끌며
머리뼈같이 솟은 언덕을 오른다
수레의 내력(來歷)을 모르는 척하는지
바람이 채찍질을 해대고
잎들은 부서져 길가로 튀긴다
이름 없는 주인공들의 무대에
곧 하루의 커튼이 내려질 시간
뒤얽힌 절정으로 향하려는 듯
무대에 암전이 시작된다
노파의 생이 성극이라면
너머엔 엄숙한 의식이 기다리고 있겠지
빼꼼한 해는 복선(伏線)으로 깔리는데
노파의 앞길은 어디로 뻗어 있을까
이따금 지나는 사람들의 눈질이
수레에 무게를 더할 때
노파의 수레가 십자가처럼 끌린다
벌겋게 타들어 가는 언덕
노파가 언덕을 다 올라서도
쉰밥같이 시금한 잔광이
구부정한 몸을 쓸어내려오다가
수레에 치이는 그림자를 밀듯
노파의 하루하루엔
결코 못이 박히지 않을 것이다
언덕께 교회 십자가에 불이 들어온다
벽난로
방 안의 목소리를 들으려
벽 속으로 뛰어든 난로가
청각의 불 활활 세우며
등 맞댄 공간을 트고 있다
칸칸이 막힌 지상(地上)
장작들이 서로 뜨겁게 부둥켜안으면
벽난로는 목소리를 키우며
외로운 내 마음의 방 덥힌다
벽은 방과 방 사이 동토(凍土)의 문
벽난로가 꽁꽁 언 침묵을 깰수록
겨울잠 자듯 들어앉은 사람들은
하루에 시큰해진 마음을 쬐겠지
허공의 차가운 아궁이에선
눈발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처음에 마른 심지였을 하늘도
세상의 닫힌 문을 열려
집집이 촉촉한 청각의 불 지폈겠다
지상에 장작더미같이 쌓이던 눈이
사르르 바닥으로 타들어 가는 소리
바닥을 튼 순백의 불꽃이
난롯불처럼 사방으로 튀더니
벽난로가 들인 온기같이
내 마음의 벽 녹인다
153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나는 불신의 거리를 떠돌다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말씀 듣고
내 안의 골방에서
오래전에 거둬들였던 그물을 찾았다
그물은 한구석에 뒤엉켜 있었다
헐고 찢어진 기억
불신의 증거를 들여다보는데
눈마다 소리 식은 기도만 걸려 있다
불시에 들린 목소리를 쳐다보면
어느새 또 자욱한 안개
아니지, 목소리를 건지려 해선 안 되지
물살에 떠밀리는 배일수록
하늘 우편에 앉아 계시던 예수님처럼
오로지 내 오른편으로 던져야 하지
나는 갈릴리 호수의 베드로처럼
기운 그물을 아득한 물에 던진다
능숙한 고기잡이는 아니더라도
내 순종엔 물고기들이 퍼덕거리리
약속의 고기들로 그물은 팽팽해지리
나는 이제 사람을 낚는 어부
싱싱한 기적을 전하러
죽음의 바다로도 나갈 것이다
내 차갑고 캄캄한 골방에
포도주색 불이 켜지고
방금 찐 떡같이 온기가 돈다
요나
시련의 소용돌이로 던져지나 싶더니
사흘 밤낮을 끙끙 앓았습니다
시험의 동굴 속에 있었고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자리에서
허기와 목마름에 떨었습니다
어둠은 언제부터 아가리 벌려
내 영육을 삼킨 걸까요
어머니의 배 속일 뿐이라며
곧 나을 거라 속삭인 소리도 있었으나
태아의 자세로 있을수록
나는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기척이었을까요
악을 버럭버럭 쓰기만 하던 내가
두 손 모을 줄 알았을 때
동굴 밖에 비친 첫새벽을 보았습니다
따개비 같은 두려움이 떼지고
성성한 영으로 동굴을 빠져나온 순간
눈부신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둠을 깨고 믿으니
이젠 겨울밤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둠 가운데선 사명을 느낍니다
밤하늘 성탄목에
소망들이 하나둘 켜질 때
나는 성령의 갑주를 갖췄습니다
이방 사람들의 회개를 위하여
나를 요나같이 쓰시옵소서
이방의 파괴를 열망하지 않겠나이다
더위 속 그늘보다 사람을 사랑하겠나이다
나는 당신의 단단한 종이니까요
애양원 예배당 가는 길
번화한 거리 어디쯤 확대해 보면
득달같이 십자가를 세울 것 같은 이름보다
공허한 삶으로 한눈팔아도
불을 꼭 켜 두고 있을 것 같은 이름이 좋아
나는 성산교회가 아닌 애양원으로 갔다
애양원 예배당 가는 길
하늘이 내 초행을 함께했는지
여수공항 비행(飛行)의 예배소가
나직이 오가는 믿음을 가르쳐 준다
불신이 붙박인 사람처럼
가슴에 절망을 심고 찾은 예배당
혹시 도피라는 이단에 빠져
몽유병자같이 먼 길을 떠나온 건 아닐까
아니, 만에 하나
떠도는 병 가진 사람들을 들여다보려
구원의 표정 익히고 찾아온 것이라면
나는 지금껏 거짓의 전도자였겠다
단단한 기도들로 쌓인 예배당
푹푹 빠지는 바다로 개종하려다가
애양원 낮은 데서 순교한 것인가
뾰족탑에 걸린 해가
십자가를 와락 품더니
눈부신 피 내리쏟는다
내 가슴에선 희망이 솟아 나온다
주일의 소리
교회 밖 다른 숨결들이
한마음으로 나란히 앉아
목청 함께 가다듬으면
잠에서 덜 깬 오전이 달싹거린다
예배에 이르게 참석한 햇살도 달떠
11시를 가리키는 주일
예배당에 잔잔한 바다가 펼쳐지고
지휘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방긋 퍼지면
찬양대의 노랫소리는
예배당에 튀겨
고운 물결무늬 그린다
고단한 성도들 얼굴에도
물결무늬 번진다
직분같이 받은 음역으로
은총을 짜 맞추는 찬양대
가난한 목소리들이지만
제 소리 낮출수록
하늘 영광 높이는 거라며
한목소리로 악보를 읽는다
지휘자와의 약속도 읽는다
찬양대의 노래는
악보 마디마디 숨은 은총을
소리의 그물로 건져 올리는 것
종종 음정, 박자 틀려도
때로 노랫말 삐끗 나와도
은총은 예배당 안에서 팔딱거린다
쓰임의 기도
간사위 없이 깐깐한 성격이어도
임자를 오롯이 풀이해 주는 기움말처럼
세상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네
붙박이 조연 같은 팔자여도
불러 주면 맨가슴으로 달려와서
제 일인 양 구실 다하는 기움말처럼
한마디 훤한 성분으로 남고 싶네
까짓것, 눈길 좀 못 받으면 어때?
임자말처럼 언죽번죽 젠체하지도 않고
부림말처럼 마냥 끌려다니지도 않는
기움말의 떳떳한 이름으로 살면 그만이지
비정규직 단순 노동 같으면 또 어때?
흔전만전 늘어놓는 풀이말같이는
콕 집어 선을 긋는 매김말같이는
한 번의 시늉으로도 닮고 싶지 않네
겉돌며 앞에 나서는 것도 싫고
꾸미며 생색내는 것은 더 싫어
남의 흠도 기울 줄 알면서
임자를 바르게 풀이해 주는 말씨처럼
한 폭 그림의 배경이 되면 좋겠네
이편과 저편의 다리가 되면 좋겠네
당신의 도구만 될 수 있다면
닳고 닳은 쓰임의 이름이 돼도 좋겠네
우상에 관하여
나는 속절없이 부서지기 쉬워서
내 안에 우상을 들여왔나 보다
힘 앞에 엎드려 복종에 조아리고는
저 수사자의 목덜미에서 솟는 포효에도
소스라치게 희열했던 것이다
뭇 짐승이 넘볼 수 없는 절대 권력
나를 압도했던 것은
사자의 말씀이 아니라
앙칼지게 일어선 갈기의 위압이었을 텐데
‘동물의 왕국’의 주역(主役)은 대개 사자의 몫이었다 강한 것은 무사(武士)의 단칼처럼 냉혹한지 사자는 거무레한 갈기를 나부끼며 사바나를 활개 치다가 번개 같은 일침으로 초식동물을 굴복시켰다 그러나 외마디 신음으로 저항하는 약체를 보고 나는 왜 어떤 연민도 갖지 못했을까 천부인을 가진 듯 초원의 생사를 관장(管掌)하던 사자는 어쩌면 엄니도 발톱도 아닌 갈기의 관습으로 위계를 세웠으리 다시 보는 ‘동물의 왕국’ 사자가 수풀 속에 서릿발처럼 엎드려 하루하루가 천운인 영양 떼를 묵묵히 지켜보다가 병들고 약한 개체를 적과(摘果)하는 순간 어느새 영양 떼에 있던 나는 맹종의 통증으로 가슴이 저렸다 피카레스크 소설 같은 생태계도 결국 강자의 표상에 꼼짝없이 포획되고 마는 인간사와 다를 바 없음을 깨달으며
식물은 헐벗고 금수는 덧입어
실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게 되는 이 겨울
나는 속절없이 나약해서
다시 약육강식의 질서 앞에 잔뜩 움츠러든 채
차단의 옷깃을 여미고
목도리도 친친 감아 갈기를 만들어 보는데
도로 사자를 향하려는 나
도대체 나는 어떤 약체이기에
이리도 내 안에 하늘보다 우상을 들이려는 걸까
원죄
어느 바람 맑던 밤
별은 나지막하여
달이 정을 주고
별은 속살거려
달이 배가 차고
바다는 하늘까지
애만 끓이더이다
저 평상심을 거스른 허물
폭풍은 고요 뒤에 오나니
하늘은 노하시어
축축한 땅 위에
어둠을 쌓으시고
구름도 드리우시고
배암의 코에 생명을 불어넣으셨도다
대화, 간증
1
믿음이란 참 공허한 거야 신이 사람을 빚었는지 사람이 신을 만들었는지 그 대척점 어느 한쪽의 저울판을 내릴 수 있는 예를 한 번 들어 볼까? 사람이 시커먼 강물에 빠졌다고 한 번 가정해 보세 자네 같으면 삶의 한 가닥 희망이라도 잡으려 코앞의 지푸라기에 먼저 손을 내밀겠나, 아님 강 건너에 있는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려 두 손을 먼저 모으겠나? 물을 두려워하는 자라면 마땅히 실존의 지푸라기부터 잡으려 하지 않겠어? 그럼 막상 절체절명의 한계상황에선 신은 우리 곁에 있지 않다는 부조리가 선단 말이지 그 부조리는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네 결국 신도 한낱 사람이 삶의 양지에서나 받들어 섬기는 허상일 뿐이란 얘기지
2
언뜻 들으면 그럴듯한 얘기긴 하네 그런데 그 지푸라기도 바로 하나님이 내미신 은혜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나? 설령 저만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더라도 말야 자신에겐 뵈지 않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저마다 은혜란 눈부신 갑옷을 입혀 주셨다네 그럼에도 갑옷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은혜가 다른 자의 은혜보다 눈에 쉬이 뵈지 않는다 해서 시기와 회의(懷疑)에 몸부림치다가 성마르게 불신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것 아니겠어?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은유의 굳센 손을 내밀어 주신다네 우리가 절망에서 허우적거릴수록 그 손을 동아줄처럼 드리워 주시거든 하나님은 모든 자에게 한결같이 공평한 모습으로 계신 채 안일보다 번민을 더 보듬어 주시지
비염을 앓다
내가 세상을 호흡할 줄 모를 때부터
내 코는 답답하게 막혀 있었을 것이다
숨을 주고받는 일에 인색해
코는 제 입을 꽁꽁 틀어막았겠지
콧숨은 끊임없이 드나드는 생각의 기척
코안에 내 생각이 갇히자
머리는 숨기운에 무뎠고
나는 세상 일을 어림잡기 시작했다
불통의 병이 아집을 키웠다
오래된 습관은 문제를 얼버무리기 마련
밖에서 멀건 응어리를 빼내려 할수록
코는 독하게 숨 걸어 잠갔겠다
어떤 이는 허풍으로 꽉 찬 동굴에서
거짓의 고름을 빼 보라 했고
또 어떤 이는 차가운 폐부에
온기의 산소를 들이라 했으나
나는 좀처럼 세상 말을 들이쉬지 않았다
자극의 숨을 이물(異物)같이 여기며
재채기로 세상을 턱없이 밀쳐 내던 날
훈김의 귀때를 기울이던 하늘이
내 숨길에 들이부어질 때
오래된 가래가
막힌 숨통에서 젖은기침으로 나왔다
내 코가 거짓말처럼 뻥 뚫렸다
모퉁잇돌
힘센 양들이 뿔싸움하며
양치기를 울타리 밖으로 쫓아내자
길 잃은 어린 양들은 부둥키다가
양치기를 따라 한데 모여들었다
가시덤불을 헤쳐 온 자갈밭이라
믿음도 잠깐
자그락거리는 소리를 냈겠으나
기도는 불볕보다 뜨거워
모퉁잇돌들을 놓고
십자가를 들일 수 있었겠지
양들이 힘을 자랑할 때에도
풀밭에 강같이 흘렀을 은총
지팡이를 뺏긴 양치기도
양치기의 손을 놓친 양들도
십자가 아래서 함께 엎드려 울었다
하나로 단단해지기로 했을 때
돌짬에도 풀이 돋았다
다시 안식의 풀을 뜯는 양들
믿음의 울타리를 뛰쳐나갔다가
탕자처럼 핼쑥한 얼굴로 돌아온 나는
뻑뻑한 믿음을 되새김질한다
희미한 기도들을 그러모아
마음에 모퉁잇돌 하나 놓는다
부음 이후
마루 밑에 웅크린 검은 고양이 같은 죽음이
어느 틈에 바짝 털을 치켜세우고 나와
내 안일한 의식을 두드려 대는 소리는
아스라이 허공에 매달려 있던 간판이
언제 내 머리 위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공포와 같았다
공기 중을 떠도는 미세 먼지처럼
내 삶의 영역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존재였지만
별안간 경종처럼 먹먹하게 울린 아버지의 부음은
죽음에서 한사코 비켜서려던 나를 자석이듯 끌어당겨
상실의 깊은 무게로 어깨를 짓눌렀었다
장마보다 길고 낙엽보다 허망했던 그날 이후
나는 봄이 겨울보다 쉬이 소멸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냉골 같은 내 어둠의 방에 들어서서
애써 뿌리쳐 왔던 또 다른 아버지를 찾아
주섬주섬 생명의 빛을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침잠의 장막을 젖혀 집 밖을 나서면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하나둘 쓰러져 가고 있었지만
내 구원의 아버지는
무너지지 않는 하늘처럼 굳건한 응답으로
내 방을 불쑥 찾아 덥혀 주시리라 믿었다
예루살렘
나는 예루살렘으로 간다
처음 먹은 마음을 기억하는 자는
믿음의 탯줄 따라 모성으로 가지
내가 있던 곳은 공허한 카타콤*
세상 눈길과 손가락질에 아파도
돌아볼 줄 모르는 대형 십자가 떠나
말씀이 뿌려진 땅으로 간다
황무지를 일군 땅엔 오만함이 없지
땀방울을 심는 자리에서
농부가 몸 꼿꼿이 펴는 일 있는가
낙타처럼 사막을 가련다
방황도 순례라면
태초의 말씀에 목마른 날
불신자들의 오아시스가 보여도
등에 진 믿음 버리느니
차라리 긴긴 시간 홀로 걷겠다
겹겹의 모래 언덕을 가며
맞바람 속 믿음도 새김질하겠다
신기루가 없는 예루살렘
누구는 성지라 부르지만
나는 말씀의 채마밭이라 부른다
의심을 훌훌 날려
더 겸허하게 돌아갈 수 있을 땐
메마른 평원에서 장미를 만나리
내 안에 십자가가 터무니없이 서면
나는 또 예루살렘으로 떠난다
*카타콤(Catacomb):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 묘지
스티브 매퀸*처럼
나는 당신을 오랫동안 떠나 있었습니다
불신의 영토에 살아서
두 손을 모으는 법도 잊었습니다
멀찌감치 있는 동안
나는 당신을 모르는 것들을 섬겼고
귀엣말하기 좋아하는 것들은
내게 달콤한 맛들을 가르쳤습니다
나는 다디단 열매만 맛봤습니다
당신을 모르던 스티브 매퀸처럼
세상 쾌락을 찾아 살았습니다
나를 우러르기를 꿈꾸면서
왜 하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을까요?
그런데 귀엣말에 눌리기 시작할 때
당신을 불쑥 찾았습니다
당신을 안 스티브 매퀸처럼
소리 내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내게 아직 믿음의 성장판이 열린 걸까요?
죽음을 도적같이 맞을 때도
당신의 종 스티브 매퀸처럼
가슴에 말씀 가만 얹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거듭난 스티브 매퀸처럼
부끄러이 여쭙고 싶습니다
교만하고 거짓되게 살았는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요?
덕지덕지한 죄를 떨어내면
내 영혼이 살 수 있는지요?
*스티브 매퀸: 사망 직전에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해 거듭난, 미국의 영화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