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실성당의 종소리
전경애 시/김현옥 곡/소프라노 윤이나/피아노 김윤경
아름다운 마을에 종이 울리면 낙동강 칠백리에 먼동이 튼다 비 내리는 가을과 꽃피는 봄날 영원한 빛을 찾아 길 떠난 순례자여 우뚝 선 십자가 척탑 아래 성스러운 순교비 아름다운 마을, 가실성당에 평화 종소리 울리네
*후렴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 영원한 가시리 아름다운 가시리여
아름다운 마을에 종이 울리면 낙동강 칠백리에 노을이 진다 험한 바다 비단길 돌고 돌아 영원한 사랑 찾아 길 떠난 순례자여 언덕 위 감나무 두 팔 벌려 기도하는 순교비 아름다운 마을, 가실성당에 평화 종소리 울리네 |
본인 고향에서 가까운 가실천주교회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경북 지역 초기 본당 중의 하나로 1894년 9월 본당 설립 당시는 가실(佳室) 본당으로 불렸다.
초대 신부로 파이야스 가밀로 신부가 부임하였다. 박해 후 경상도 전담 신부로 임명된 로베르 신부가 이곳 신나무골에
거주하였으며, 이후 파견된 3명의 신부들의 전교로 기와집 한 채를 매입하여 가실공소를 설립하였다.
1903년 3대 신부 즈와요 신부 때에 성당을 증축하고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1894년 9월 경에 설립된 경상북도 지역 초기 천주교회로, 현재는 대구대교구 소속이다. 조선 후기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가 끝난 뒤에도 경상도 지방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의 활동이 활발하여, 로베르(Robert) 신부와 그의 보좌인 보두네(Baudounet) 신부, 조조(Jozeau) 신부 등이
지천면(枝川面) 연화리(蓮花里) 신나무골을 중심으로 전도활동을 벌였다.
그 후 1894년에 입국한 파이야스 신부는 그 뒤를 이어 경상도 북부 지방을 맡아 전도활동을 벌이다가
왜관읍 낙산동(洛山洞) 가실(佳室)로 이주하여 가옥을 매입하고 성당을 건립하였는데, 이것이 가실성당이다.
이 시기의 담당 지역은 칠곡을 비롯하여 성주, 선산, 문경, 상주, 함창, 군위, 안동, 예천, 의성, 김천, 거창, 안의 등
경상도 북서부 일대와 충청도 황간, 전라도 무주 등에 걸쳤다.
그후 가실성당은 여러 신부들을 맞아들이며 성당을 증축하는 등 발전하다가, 1901년에 김천에 본당이 설립되면서
그 지역이 분리되고, 1911년에는 서울교구에서 대구교구가 분리·설정됨에 따라 소속이 대구교구로 바뀌었다.
1922년에는 문경의 점촌(店村) 본당과 상주의 퇴강(退江) 본당 분할로 관할구역이 축소되었고,
이때부터 교세가 줄어 1928년 왜관본당이 설립되면서 다시 교세가 위축되었다.
1943년 제6대 주임으로 부임한 베르몽 신부 때 이름을 바꾸어 낙산 본당으로 불렀으며, 제7대 주임신부인
이명우 신부 때부터는 대개 왜관본당 신부가 이곳 신부직을 겸임하다가, 1952년 왜관에 감목 대리구가 설정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6·25전쟁이 끝난 후 베네딕투스회의 뮐러 신부가 이곳 주임신부로 오면서부터 주임 신부의 이동이 적어
안정되고 본당의 활동도 활발해져 신자들 중심으로 소공동체 활동과 신앙, 지역봉사에 힘쓰게 되었다.
1986년에 왜관 감목 대리구의 폐지로 대구대교구 소속 본당으로 변경되었으며, 1990년에는 설립 100주년 기념관을
설립하였다. 소재지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낙산 1리 764번지이다.
☆ 가실성당 역사 및 포토 자료출처 : 낙산(가실)성당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