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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은혜가 내 가족에게 임했습니다
츄언광 (En-Guang Qiu)
구원의 은혜가 나의 가족에게 임하다
아버지가 내 앞에서 중병으로 앓아 누우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기에 아들로서 매우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주님께서 나의 탄원하는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아버지는 마지막 구원 열차에 올라 평온하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 츄룽츠에(Lungchieh Qiu)는 1901년에 태어나셨습니다. 아버지는 청년시절부터 매우 부지런하셨습니다. 또한 고전을 읽으셔서 시와 서예에 조예가 깊으셨습니다. 유교 사상에 깊이 감명을 받으셨기 때문에, 올곧고 정직하셔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아낌없이 도움을 베푸시던 그런 분이셨습니다.
춘절이 지난 지 얼마 후에, 아버지의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졌습니다. 고령(高齡)이신데다가 제때 치료를 받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장기의 기능이 현저히 악화되었습니다. 의사들은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고 아버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3월 19일 오전 10시 20분, 스촨(Shihchuan)교회 차오밍양(Mingyang Chao) 전도자님의 집례하에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셨고, 같은 날 12시 30분, 90세의 연세로 주님 품에서 안식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주 안에서 세례를 받기까지의 과정은 온갖 신경을 곤두세워 가슴조이는 시간과의 싸움, 그리고 안도의 큰 한숨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병세가 위독한 시기에 아버지가 어떻게 세례를 받으셨는지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감사의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간증으로 주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널리 알리고,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고전하며 치러야 했던 큰 댓가를 모든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징조들이 경고하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중요한 순간 앞에는 징조들이 나타난다.’라고 말씀하시던 것을 자주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이 말씀을 체험할 기회조차도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어른들이 하신 말씀이 옳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때 내가 겪은 일부 징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춘절(春節) 때 갑자기 고향에 가고싶은 마음이 생김
전통적으로 춘절 전날에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그러나 춘절 때 고향 카오슝(Kaohsiung)에 가지 못한 지 6년이나 되어버렸습니다. 양친께서 명절기간 혼잡한 교통 중 혹시라도 사고라도 날까 해서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아내와 나는 올해 춘절 전날에 고향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일동안 눈꺼풀의 경련,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춘절이 지난 후, 아내와 나는 둘 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눈꺼풀의 떨림이 생기더니 10일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중년기 체내의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되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위독하여 병상에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눈꺼풀의 경련과 가슴 답답함이 이 일의 전조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들의 말씀으로 정신이 번쩍 들다
타이완총회 14명의 성직자들과 전도자들이 3월 중순에 개최될 국제연합총회(IA) 제5차 세계대표자대회(World Delegates Conference)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나는 타이완총회 국제협력 사무소의 책임자로서, 전도자들의 일정과 관련하여 미국에 있는 국제연합총회 사무소와 연락 라인에 있어야 했습니다.
3월 1일, 미국에 계시던 양요한 장로님께 긴급하게 보고드릴 문제가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평소에 양장로님은 아버지의 건강에 대해 “아버지 건강은 좋으시죠?” 또는 “아버지 잘 계십니까?”라고 통상적인 안부를 물으셨으나, 이런 특별한 상황에서 장로님의 안부 인사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버지께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나요?”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장로님의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은 나를 망연케 했습니다. 마음이 혼란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삼자를 통해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것을 내게 알리고 계셨던 걸까요? 절박한 비극의 예고였을까요? 나는 즉시 카오슝에 있는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아버지가 몇일동안 병상에 누우셔서 식음을 전폐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도전을 위해 정신적인 준비를 하다
3월 3일, 나는 카요슝에 가서 병환에 계신 아버지를 방문했습니다. 집에 들어간 순간, 무익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던 아버지는 마침내 그 아들을 보게 되어 행복에 겨워하셨습니다. 내 마음에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토록 오랫동안 아버지 곁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식으로서 병중에 계시는 아버지를 돌보아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죄의식이 마음에서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버지를 주물러드리고 병세를 여쭈면서, 나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세상에 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 준비와 관련된 피치 못할 일들에 대하여 정신적인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가족 가운데 많은 불신자들 사이에서 장례식 절차에 대해 이견이 분분했습니다. 일부는 화장을, 일부는 매장을, 일부는 특별한 종교의례를 원했습니다. 온 식구의 논쟁은 계속되었습니다. 나는 내내 침묵을 지키며 잠잠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셔서 아버지를 구원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이 방법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영혼 구원 뿐만아니라, 장례 절차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이 동시에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에 계신 것이었습니다. 남아있는 가족을 어떻게 설득해야 아버지가 성경의 가르침대로 세례받는 것을 허락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그야말로 나에게 엄청난 어려움과 큰 도전이었습니다. 실패할지라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슬플지라도 상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한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성경구절이 생각났을 때, 내 모든 근심은 녹아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 기도만이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결정
3월 초 아버지께서 병환에 계신다는 소식을 접했으나, 14명의 성직자들이 15일 미국으로 출발할 예정이어서, 그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출발 당일, 공항까지 배웅해야 했습니다. 11일부터 형님은 매일같이 전화를 하여 집으로 당장 오라고 재촉하였습니다. 형님의 목소리에서 아버지의 병세가 심상치 않은 말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아내도 총회 일을 제켜두고 빨리 집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총회에 대한 의무와 가족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망설였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도하여 주님께서 결정해 주시라고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주님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성령의 위로와 도우심은 내가 양쪽 모두에 직면할 수 있도록 용기와 결단을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위기를 기도로 주님께 맡기기로 하고, 3월 15일 성직자들이 출국하기까지 총회에 남아있기로 결정했습니다. 공항까지 배웅하는 동안 침착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아무런 말이나 농담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나의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을 떠나 보내고 이튿날 남은 업무를 처리한 후에, 나는 카오슝의과대학(Kaohsiung Medical University)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산소마스크를 낀 채 죽음의 문턱에 계셨습니다.
나는 평소에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설교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매우 힘든 결정을 해야 할 시기가 내게 닥쳐왔을 때, 비로소 그분을 의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잠언 3장 5~6절 말씀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라고 했듯이, 계속되는 장례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은 내가 가야할 길과 내가 해야할 일들과, 내가 해야할 말씀들을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마귀의 방해
3월 17일 금요일 저녁 9시경, 창안타오(Antao Chang) 집사님과 교회 지도자들인 차이광타이(Kuangtai Tsai) 형제, 투츠솬(Chihshan Tu) 형제가 스촨(Shihchuan)교회의 많은 형제들과 함께 병원에 심방와서 아버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이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일반병동에 계셨습니다). 심방이 끝난 후, 아버지는 상태가 매우 급격히 악화되어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아버지를 구원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가족들이 아버지가 세례받는 것에 동의할지의 여부를 놓고 더 이상 혼자서 고민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창안타오 집사님께 “아버지가 세례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집사님은 가족들이 동의만 한다면 가능하다고 대답했습니다.
대개의 경우, 죽어가는 사람이 세례받기를 요구할 때, 교회와 가족들 간의 쌍방 합의 후, 교회 지도자들이 이에 동의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창집사님이 단번에 주신 답변은 마치 흥분제와 같이 내 마음에 생기를 복돋아 큰 힘을 주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비록 힘든 일이지만, 기도를 통해 믿지않는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나는 혼자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나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타이충(Taichung), 타이페이(Taipei), 스촨(ShihChuan), 펑샨(Fengshan)교회 성도들 모두가 아버지의 세례를 위해 끊임없는 기도로써 나와 함께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성도의 기도는 단단한 돌도 그 고개를 끄덕이게 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좌절
심방 후에 아버지의 상태가 악화되자, 그날 밤 11시경 야간 당직의사는 즉시 아버지를 중환자실로 옮겨야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다음 날 세례받으신 후에 옮겨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 의사는 나에게 퉁명스럽게 “오늘 옮기지 않는다면, 내일 후회할 겁니다. 환자 상태가 매우 위독해서 새벽녘 이전에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둘째 형님과 누님이 매우 진지하게 적극적인 자세로 나를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거절하며 말하길 “환자에게 세례를 받치고 싶다면, 당신들의 목사님이 중환자실로 들어오게 할 수는 있습니다. 내가 특별히 허가해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미 단단히 각오를 했던 터라 의사의 이러한 태도에 그리 크게 놀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결단과 용기가 따르는 진심어린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어느 것 하나라도 부족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믿어본 적도, 예수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형님과 누님이 이 결정적인 순간에 내 곁에 서서 아버지가 세례를 받도록 허락해달라고 그 의사에게 요구함으로써 나를 놀라게 했기 때문입니다. 형님과 누님은 정말 충심과 진심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나는 이것이 성령과 진심어린 기도가 역사한 결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를 꺾는 듯한 의사의 첫 반응에 낙담도 되었지만, 형님과 누님의 지원공세를 통해 내 믿음은 가공할 만큼 커졌습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3월 18일, 스촨 교회는 안식일 예배를 마치고 아버지 세례식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그 의사의 거부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성령께서 감동시키셔서 내가 해야 할 말을 하게 하시다
아버지를 세례받치는 일이 무산되어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나는 안식일 예배를 마치고, 형님 집에 가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가족들은 내가 너무 지칠까 염려되었는지 그날 밤에는 병원에 가지 말고 다른 형제들과 교대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하셨다는 걱정으로 식욕도 없었고, 애가 타고 불안해서 단잠을 잘 기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곧장 병원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한켠 조용한 구석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날 밤 8시경, 갑자기 용기가 생겨서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성경의 교훈을 따라 흐르는 물에서 아버지에게 세례를 받칠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형님과 넷째 누님이 밤 10시경에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놓고 함께 상의했습니다. 그들은 의사의 말대로 목회자가 병원에 와서 물을 뿌리는 세례를 베풀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께서 요단강에 가셔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것을 언급하며, 흐르는 물에서의 합법적인 세례만이 죄사함의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내 뜻을 이해한 형님과 누님은 집에 가서 가족들을 소집하고 내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가족들 대부분은 “만약 ...라면 어쩌지?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하며 위독하신 아버지가 흐르는 물에서 세례받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형님이 “참예수교회에서 기꺼이 우리 아버지를 위해 세례베푸는 희생을 감수한다는 것은 참예수교회의 사랑이 매우 대단하다는 거야. 우리가 그들을 거절할 필요는 없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잠시 후, 형님은 아버지가 참예수교회의 세례를 받는데 온 가족이 동의했음을 알려왔습니다. 이는 많은 형제자매들의 기도의 결과였습니다.
다음 날인 3월 19일, 아침 일찍 창안타오 집사님, 차오밍양 전도자님, 교회 지도자중 하나인 차이광타이 형제, 그리고 스촨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서 아버지의 세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형님과 넷째 누님을 교회에 초청했습니다. 우리 가족을 대표해 아버지가 세례받는 것에 동의한다는 의사표현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아침 7시경, 예기치 않게 차 한 대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교회 문 앞에 세워둔 차이광타이 형제의 차를 들이받았습니다. 차이 형제의 차는 차오밍양 전도자님을 호송할 계획이었는데 출발 준비도 마치기 전에 파손되었습니다. 이는 마귀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아버지가 주 안에서 세례를 받는 것을 방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습니다.
오전 8시, 형님과 나는 중환자실로 갔습니다. 아버지를 병원에서 모시고 나가 세례를 받쳐도 좋다는 허락을 받기 위해 의사와 상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놀랍게도, 의사는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을 뿐만아니라 매우 친절하게 우리의 요구를 바로 들어주었습니다. 그는 즉시 간호사에게 아버지께 옷을 입히라고 지시했고, 응급 장비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타이난(Tainan) 교회의 쉬에쥐층(Juiching Hsueh) 형제는 휴일도 반납해가며, 우리를 도와 특별히 카오슝까지 앰뷸런스를 운전해주었습니다. 병원을 나설 때, 의사는 일단 환자가 병동에서 나가면 산소 마스크가 있어도 호흡을 유지하기엔 2시간을 넘길 수 없을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오전 8시 40분, 우리는 스촨 교회에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오전 9시, 우리는 카오핑(Kaoping) 강가를 향해 신속히 출발했습니다.
불행한 사건들의 연속
그날은 공휴일이었기 때문에, 병원을 출발하자마자 교통정체가 심했습니다. 애가 탔습니다. 교통 혼잡이 극심하여 차들이 전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심히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앰뷸런스가 사이렌 소리를 내자 다른 차량들이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차량들 사이를 비집고 곧장 앞으로 달렸습니다. 그야말로 위험한 주행이었습니다. 차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식은 땀을 흘리며, 혼수상태의 아버지를 안전하게 붙들었습니다. 아버지가 가시는 하늘 길은 위험으로 연단된 길이었습니다.
앰뷸런스는 세례 장소에 도착했지만, 전도자님과 책임자와 세례 봉사자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심히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매분 매초가 아쉽게도 너무 빨리 지나갔습니다. 약 20분이 지나서야 모두 도착했습니다.
오전 10시 20분, 의사가 경고했던 ‘2시간’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그때 내 심정은 뭐라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스릴을 너머서 모든 신경이 곤두서는 그 자체였습니다! 나는 순간 ‘이것은 우리의 ‘믿음’, ‘인내’, ‘하나님에 대한 신뢰’라는 과목의 시험을 치루는 수업이 분명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모든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차오밍양 전도자님이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이어서 세족례를 행했습니다. 스촨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큰 사랑으로 동참하여 아버지를 물 속으로 옮겨 주었고, 찬송을 불러주었습니다. 많은 친척들과 주위에 모여든 구경꾼들이 그 세례식을 지켜보았습니다.
사실, 세례식이 거행되기 전에 ‘아버지가 꽤 여러 날 혼수상태에 계셨는데, 영혼이 아직 육체에 계신 걸까? 만약 영혼이 이미 오래 전에 떠나셨다면, 이번 세례는 아무런 효능이 없을 텐데.’라는 생각에 조금 걱정도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걱정과 근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물 속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갑자기 눈을 떠서 세례 장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쳐다보게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세례받은 후에도 힘을 다해 콧숨을 두 번 쉬셨습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모든 사람이 큰 위로를 받고 주님께 찬송을 드렸습니다!
세례식 전후로 두 번 기도할 때, 황록 빛의 강물이 갑자기 검붉은 빛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세 명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독실한 불교 신자인 넷째 누님이었습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나와 내 아내였습니다. 우리는 태양 빛의 반사로 생긴 현상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태양 빛이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았습니다. 그날은 흐린 날씨였기 때문입니다. 그 현상은 세례식 전과 세례식 후에도 똑같이 나타났습니다.
나는 30년 넘도록 주님을 믿어왔지만 세례식에서 그분의 보혈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 세례식에서 내 두 눈으로 그것을 똑똑히 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와 같은 위로는 내가 얼마나 비천하고 무익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위대하시며, 하나님의 은혜는 정말 풍성합니다!
세례식을 마치고, 아버지는 다시 병원으로 이송되셨습니다. 그날 정오 12시 30분, 심장박동과 호흡이 약해지더니 결국 멈춰섰습니다. 의사들이 응급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아버지는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평온하게 가셨습니다.
츠야곱(James Chi) 전도자님, 웡쾅야오(Kuangyao Weng) 집사님, 천원빙(Wenbing Chen) 형제와 카오슝(Kaohsiung) 교회의 많은 형제들이 시간을 할애하여 아버지의 장례식을 잘 치러주었습니다. 믿지않는 우리 가족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족들은 교회의 사랑과 부지런함, 그리고 일처리에서 보여준 친절한 모습을 거듭 칭찬했습니다. 모든 영광과 감사와 찬양이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주어지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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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간증은 'The Doctrin of Baptism'에 소개된 것으로, http://ia.tjc.org/elibrary/ContentDetail.aspx?ItemID=10989&langid=1 에 게재된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