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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전까지 뒤적이려니…비정규직으로 살기 정말 힘들어!"
[인권오름] "복수노조 시대, 창구 단일화 강제가 문제다"
배동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정책국장 필자의 다른 기사기사입력 2012-02-09 오전 10:49:14
작년 7월부터 복수노조 시대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법제도의 시행은 우리 헌법에 모든 노동자의 권리로 보장된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에 모순되는 두 가지의 변화를 가져왔다. 일단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기업별 복수노조) 설립 제한이 없어지면서 단결권이 확대되게 되었다. 다른 한편 복수의 노조들이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지만 사용자에게 교섭의무가 발생하게 되는 강제적인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시행되게 되어 오히려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과 행동권이 제한되게 되었다.
기업별 노사관계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항상 위협받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비정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상시적인 고용불안 속에 고통 받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워낙 구조화된 열악함에 놓이다보니 부당한 사용자의 권력행사에 저항하기보다는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거나, 또는 새로운 직장(역시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직장)으로 옮기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높다. 즉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현재의 일자리는 사용자에 맞서 싸워가면서 지키고 싶은 좋은 일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비정규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조합 활동과 투쟁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이런 과정을 겪으며 더욱 열악해진다.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등 노동법이 있으나 법률로 정한 노동조건은 최저기준에 불과하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최저 수준 근처에서 정확히 맞추어진다. 간혹 비정규 노동자들이 사용자의 부당함에 맞서 노동조합을 만들면, 사용자는 어김없이 재계약 거부, 계약해지 등의 방법으로 조합원들을 위협하여 탈퇴를 강요하고, 탄압을 통해서도 노조 약화가 쉽지 않으면 아예 통째로 업체를 변경하는 방법으로 집단적으로 해고한다.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서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금지하고 있으나 비정규 노동자에게 법은 너무나 멀고 사용자의 권력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 그래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별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더라도 사용자에게 지배되지 않는 자주적인 조직으로서 생존하고 유지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된다.
ⓒ프레시안(김윤나영)
현행 노조법은 교섭단위를 기본적으로 기업으로 한정해
또한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개별 사용자와의 단체교섭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하청 사용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원청 사용자에 의하여 결정되며, 원청의 계약조건은 시장에 형성된 해당 업종, 산업의 최저임금 수준에 의하여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정규 노조가 기업별로 조직될 때 사용자의 탄압에 맞서 자주적인 노조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많은 산업별 연맹들은 산업별 노조로의 조직전환과 비정규직 조직화를 진행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의 경우에도 홍익대, 연세대 등 대학 청소노동자들을 산별노조로 조직하여 2011년 집단교섭 및 투쟁을 진행하였고 해고노동자들의 복직과 최초로 최저임금을 뛰어넘는 임금인상이라는 성과를 낸 바 있다.
그런데 현행법은 교섭단위를 사업장 단위로 한정하고 있고 초기업 노조에 대하여도 사업장 단위의 창구단일화를 강제하고 있어 기업의 벽을 넘는 노동조합 조직이나 초기업별 교섭을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막고 있다.
복잡한 창구단일화 절차, 비정규 노동자 법률 전문가가 되어야 하나?
새로운 법에 의해 단체교섭을 진행하기 전에 창구단일화 절차가 진행되어야 한다. 어떤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하면(①최초교섭요구), 사용자는 이를 7일간 사업장에 공고하고 교섭에 참가할 노조의 신청을 받고(②교섭요구사실공고 및 참가노조 신청), 5일간 다시 교섭요구 노조의 현황을 공고하며(③참가노조 공고), 14일간 참가노조들 간에 자율적인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치고(④자율적 단일화 절차), 조합원 과반수 노조가 있는 경우 5일간 과반수노조를 교섭대표노조로 공고하여 확정되는 절차(⑤과반수노조의 교섭대표노조 확정공고)를 거쳐야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되고 단체교섭이 시작될 수 있다.(과반수 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그 외에도 공동교섭대표단 구성 등으로 더 많은 시간과 복잡한 절차가 필요해진다)
즉, 아무런 문제없이 창구단일화 절차가 진행되더라도 빨라야 31일의 기간이 지나야만 단체교섭을 시작할 수 있다. 만약 다른 노조나 사측의 각종 이의제기가 있거나, 사용자의 개입이 있거나, 교섭단위 분리신청이 있거나, 또는 조합원 과반수 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최초 교섭요구일로부터 2개월 이상이 지나도록 교섭조차도 시작하지 못할 수 있다. 이렇게 복잡한 절차에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사용자와 그렇지 못한 비정규 노동자들 간의 교섭력 차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소수노조나 신규노조에는 단체교섭권/쟁의권 보장 안 돼
강제적인 창구단일화 제도에 의하여 조합원수에 따라서 다수파 노조는 교섭권과 쟁의권을 대표로 행사하게 되는 반면, 소수파 노조는 사실상 교섭권과 쟁의권을 행사할 수 없고 다수파인 교섭대표노조가 자신들을 공정하게 대표하기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노동법상 각종의 차별금지제도(부당노동행위제도, 남녀차별금지제도, 비정규차별금지제도 등)가 있지만, 현실에 있어서 이와 같은 차별시정제도는 전혀 차별시정의 효과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다수파 노조가 소수파 노조를 공정하게 대표할 공정대표의무제도 역시 실효성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된 이후에 만들어진 신규노조는 교섭권이 보장되지 않고 공정대표의무제도의 적용도 받지 못한다. 비정규직이 사업장내에서 일반적으로 소수인 경우가 많고, 다행히 다수파라고 하더라도 대단히 취약한 현실을 감안할 때 사용자의 탄압이 있을 경우 언제라도 소수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조합원이 소수라는 이유로 또는 신규노조라는 이유로 자신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되는 현행 제도 하에서는, 사용자는 끊임없이 자신이 싫어하는 노조를 소수파로 만들기 위하여 어용노조를 새롭게 만들거나, 또는 민주적 노조를 탄압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실효성 없는 공정대표의무제도나 부당노동행위제도와 같은 사후적 구제제도가 아니라, 조합원 수에 관계없이 비록 소수의 노동조합이라도 직접 교섭하고 자신이 책임지고 투쟁할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부족하나마 보호될 수 있을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제약하는 강제적 창구단일화제도
파견, 용역회사에 고용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창구단일화제도의 문제점이 더욱 심각하다. 현실에서 파견, 용역회사들은 원청회사와의 노무공급계약에 의하여 임금과 4대 보험 등을 관리해주는 원청의 인사노무관리 대행업체 수준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노사관계는 원청 사업장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한편 용역회사는 전국에 수십 수백 개의 노무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있는데, 만약 용역회사를 기준으로 창구단일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로서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다른 사업장의 노조와 창구단일화를 해야 되는 이상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어렵게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을 시작하더라도 용역업체가 변경되게 된다면 그때부터 다시 새롭게 창구단일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용역업체를 기준으로 한 창구단일화 제도로 인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1년 내내 창구단일화 절차만 진행해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노동조합에 교섭권과 쟁의권을 보장해야
이상과 같은 이유로 가뜩이나 취약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3권은 새롭게 바뀐 강제적 창구단일화제도로 인해 더욱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2011년 노동자, 학생, 시민들의 아름다운 연대가 이루어졌던 홍익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에서 사용자측이 주도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복수노조가 등장하여 조합원 탈퇴압력 행사 등 노조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홍익대의 한 용역업체는 새롭게 만들어진 복수노조와 이미 단체협약을 체결하였으니 공공운수노조와는 교섭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단체교섭을 계속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홍익대 해당 업체의 교섭거부에 대하여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최근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하니 단체교섭에 성실히 임할 것을 명령하면서 위반시 1일당 1백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납부하라는 가처분 결정을 행한 바 있다.
복수노조제도를 악용(어용노조설립을 통한 민주노조 약화, 창구단일화절차를 이유로 한 민주노조와의 교섭거부, 어용노조 중심의 단체교섭 진행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민주노조를 탄압하는 현상은 대학의 청소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에게도, 서비스 노동자에게도, 제조업 노동자에게도,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사업장에도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노동부와 노동위원회)는 강제적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어떠한 예외도 없이 모든 사업장에 강제하고 있다. 어용복수노조 설립을 통한 민주노조 탄압이 '사용자에 의한 탄압'이라고 한다면, 기업단위로 교섭을 강제하고 소수노조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법제도에 의한 민주노조 탄압'이고 '사용자에 의한 탄압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드는 제도'이다.
가뜩이나 취약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보호되기 위해서는 기업을 넘어서는 산업별, 지역별 교섭구조를 법ㆍ제도화하고, 강제적 창구단일화 제도가 아니라 모든 노동조합에 교섭권과 쟁의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노조법 개정과 법률해석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집단 교섭의 의미
지금 대학의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생활을 위하여 생활임금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중이다. 고려대, 경희대,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의 청소, 경비 및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2011년 교섭의 성과로 체결된 단체협약에 근거하여 다수의 용역업체들과 집단적으로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이후 대학 비정규 노동자들의 집단교섭 결렬시 돌입할 쟁의행위에 대하여 노동위원회와 노동부가 어떤 해석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가 내세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정책구호에 일말의 진실성이 있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부정하고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정부가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용자들조차 인정하여 참가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집단교섭'을 창구단일화 제도의 예외로 인정하고 노동행정기관의 본연의 역할인 노동분쟁 해결을 위한 적극적 조정자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복수노조 제도"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오늘의 노동'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은수미, 노동의 재구성] "노동의 종말? 노동의 재구성!"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원 필자의 다른 기사기사입력 2012-02-09 오전 10:49:27
제레미 리프킨이 1994년에 <노동의 종말>을 쓰기 이전부터 노동의 종말론이 풍미했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의 세계화가 진전되는 한편 전 세계적으로 노동조합 조직율이 하락하고 신중간계급이 부상한 것이 중요한 증거였다. 환경, 생태, 여성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부상하면서 시민운동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 역시 또 다른 이유였다.
이미 1973년 다니엘 벨은 <탈산업 사회의 도래>에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산업구조 변화와 인터넷 및 월드와이드웹의 발전에 따라 노동이 아닌 지식이 핵심 가치로 바뀐다고 했다. 지식기반 사회 즉 노동이 생산의 원천인 노동가치론이 아니라 지식이 생산의 원동력인 지식가치론을 강조했다. 지식이 권력의 원천이고 교육이 계층이동의 수단이며 정보와 지식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 즉 사회적 자본이 산업 및 금융 자본을 대체한다고 했다. 다양한 사회 문제가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나 '계급' 문제로 전화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며 "'고양된 학생의식'조차도 '억압'에 대한 의식이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결핍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가난이나 불평등과 같은 생활수단의 결핍과 달리 희소한 특권과 지위 때문에 발생하는 결핍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해가 서쪽에서 떴나 보다. 최근 근로빈곤, 비정규직, 저임금, 양극화 등 노동과 불평등이 전 세계적인 이슈이다. 지난 50여년 간 성장이 가장 중요한 기치였던 한국에서조차 복지 논쟁이 들끓고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라고 한다. 가난은 게으르거나 능력 부족 때문이라던 목소리가 쑥 들어갔다.
과거보다 교육수준이 더 높아지고 인터넷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청년층은 잃어버린 세대 혹은 저항의 세대이며 영 옥스퍼드 출판사 선정 올해의 단어가 '쪼그라든 중산층(squeezed middle)'이다. EU의 학자들은 이중화의 시대(The Age of Dualization)를 거론하고 OECD는 2011년 <갈라진 우리: 왜 불평등이 증가하는가>라는 등 보고서를 발간했다. 올 1월 25일 시작한 다보스 포럼의 주제 역시 '대전환: 새로운 모델의 형성(The Great Transformation: Shaping New Model)'이다. 심지어 <세계는 평평하다>로 유명한 미국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갑자기 "평균은 끝났다"며 시침 뚝 떼고 다른 이야기를 한다. 자기관리, 자기계발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구조나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흥미롭다. 물론 "청년 백수가 무슨 벼슬이냐"며 힘든 일을 싫어해서 청년실업이 발생한다는 의견이 없지 않지만 빈도나 강도가 현저히 줄었다.
그렇다면 과거의 노동으로 되돌아간 것일까?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가 이전의 연어가 아니고 내 손을 스쳐 흘러가는 강물이 이전의 강물이 아니듯이 지금 불거지는 노동문제는 이전의 것이 아니다. 여전히 노동이 생산의 원천이고 자본은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사회적 관계의 표현일지라도 드러나는 구체적인 내용은 바뀌었다. 과거 노동의 표준은 제조업, 정규직, 생산적 노동이다. 노동자는 자신을 채용한 사용자의 작업장에서 1일 8시간의 일을 하고 사용자 및 기업에 이윤을 가져다준 대가로 임금을 받았다. 그것이 표준 노동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다른 업체가 낀다. 조선시대 지주가 소작을 부칠 때 중간에 마름을 낀 것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최근 일반 청소업무를 직접 채용하는 기업은 매우 드물며 대부분 용역 업체에서 노동자를 받아 일을 시킨다. 고학력과 전문적 기술을 요구하는 업무도 업체가 끼는 경우가 많다. 300인 이상 대기업 병원 중 80% 이상이 간호조무나 간호보조에서부터 간병·환자배식·세탁 업무를 용역이나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에게 맡긴다. 은행이나 보험사 등의 금융계는 2000년대 초반에 상당수의 업무를 용역이나 기간제로 바꾸었고 거대 통신회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조선·철강·자동차 등 전통적인 제조업 역시 비슷한 현상이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대학의 교수나 시간강사를 파견하는 업체가 생기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농담이 농담 만으로 들리지 않는다.
▲백화점과 할인마트는 그야말로 비정규직의 전시장이다. ⓒ뉴시스
백화점과 할인마트는 그야말로 비정규직의 전시장이다. 장을 보기 위해 차를 끌고 할인마트에 가면 주차관리를 하는 용역업체 직원이나 시간제 노동자와 가장 먼저 마주친다. 쇼핑카트를 정리하는 직원에서부터 매장 내 각종 판촉 직원, 판매사원 역시 대부분 용역이나 파견이다. 장을 다 보고 계산대에 서면 계산을 도와주는 비정규직을 만나고 사은품을 받으려고 고객서비스 센터에 가도 그러하다.
노동자인지 아닌지 애매한 경우도 많다. 대학을 졸업한 학원 강사들이 가장 많이 듣는 것이 당신은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는 말이다. 1주 5일 이상 학원에서 근무하고 학원 일정에 따라 강의를 하지만 급여명세표나 근로계약서는 없다. "저는 급여라고 생각하는데 학원에서는 수수료나 뭐 다른 말을 써요." 학원 강사 8년차 이지현씨(32세)의 대답이다. 보험회사 판매원, 골프장 캐디,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 트럭 운전사 등 많은 직종도 노동자성이 논란이다. 가사도우미, 노인간병사나 요양사 역시 일을 하지만 노동자인지 불분명하다.
이와 같은 노동을 과거의 노동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정규직이 아니다", 혹은 비(非)정규직이다라는 것만으로는 너무 애매하다. 무엇 무엇이 "아니다"라 함은 나는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아닌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방식이다. 정확한 정체성을 알 수 없거나 존재하지만 비어있는 무엇인가를 굳이 지칭해야 할 때 이와 같은 잔여적 범주를 사용한다. 그 자체로 닫히지 않고 뒷문이 열려있는 0이 아닌 무한대이다보니 불안정하다.
지금 우리 곁에 살아 숨쉬는 노동, 바로 우리가 하는 노동을 정규직이 아니라는 것 외에 적절히 부를 이름조차 없는데 노동문제가 폭발했다. 따라서 노동가치론을 부정하거나 과거의 노동가치론을 그대로 읊는 것도 답은 아니다. 노동의 종말이나 노동의 복원이 아니라 '노동의 재구성'을 고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형태의 노동이든 노동3권을 보장받고 인간답게 살 헌법적 권리를 갖는 것. 차별 없는 적정한 임금이나 근로조건만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할 국민으로서의 기본 권리를 갖는 것.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칼럼의 문패가 노동의 재구성이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원
너도나도 '비정규직 해결'...사이비 감별법은?
[주장] 총선 앞두고 노동계에 손 내미는 '보수'... '진짜'를 골라야 한다
12.02.08 17:01 ㅣ최종 업데이트 12.02.08 17:01 박점규 (bada9957)
비정규직
50년 만의 2월 추위와 삭풍이 몰아친 2월 7일 밤, 경기도 안산 안산중앙역 광장에서는 작은 문학의 밤 행사가 열렸습니다. 1월 30일 재능교육에서 출발해 쌍용자동차까지 300Km를 걸어가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뚜벅이'들의 행진에 시인들이 함께한 '시와 노래로 여는 문학 낭송제'였습니다(관련기사 : <"슬프다, 한 번도 무직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특수고용노동자의 고통을 증명하며 1500일 넘게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착취와 저항의 상징인 현대차 비정규직, 20번째 죽음의 공장 쌍용자동차…. 재벌의 탐욕에 갈기갈기 찢겨진 노동자들이지만 함께 고통을 나누고, 함께 희망을 꿈꾸는 이들이 있어 영하 20도의 혹한에도 '희망뚜벅이'들은 마냥 즐거웠습니다.
가슴과 열정으로 써내려간 시가 낭송되고, 따뜻한 음악이 함께 흐르는 광장에서 우리들은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전철역 맞은편 건물에 걸려있는 대형 현수막이었습니다.
"보수의 힘과 진보의 열정으로/ 비정규직 임금 근로조건 격차해소 특별법 제정 추진."
▲ 어느 총선 예비후보의 현수막 안산중앙역 맞은 편 건물에 한 예비후보의 현수막에 '비정규직 임금 근로조건 격차해소 특별법 제정 추진'이라는 내용이 씌여 있다.
ⓒ 박점규 비정규직
정당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 어느 당의 후보일까 잠시 어리둥절했습니다. 총선 예비후보자의 커다란 사진과 이름 아래 아주 작은 글씨로 '①'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야 그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국민들의 비난과 원성이 높아 새누리당(한나라당)이라는 당명은 숨겼지만, 서민들의 고통의 핵심이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간파한 후보가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위한 특별법'을 선거 모토로 내걸었나 봅니다.
사람을 미혹하는 '사이비' 교주들의 창궐
더욱 놀라운 것은 이날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는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과제"라며 "공정임금과 고용보장, 두 가지를 중심으로 현실적인 안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새누리당 총선공약개발단은 2015년까지 공공기관·금융기관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화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대기업 사내하도급 정규직 수준의 대우 등을 총선 공약으로 보고했습니다.
새누리당의 이날 발표는 공약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대 '변신'입니다. 전태일과 노무현이 만난 게 아니라 전태일과 박근혜가 만났다는 주장이 나올 법한 상황입니다.
"말세와 종말로 갈수록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태복음 24장)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자본주의의 말세, 재벌공화국의 종말로 가는 걸까요? 어디선가 나타난 사이비 교주들이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정규직화를 외치며 사람을 미혹하고 "나를 따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지난 4년 동안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떠들며 법인세 인하, 고환율 정책, 폐차보조금에 4대강 사업까지 국민의 세금을 털어 재벌의 곳간을 가득 채웠습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외치더니, 이제 와서 '좌클릭'?
▲ 2009년 8월 6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점거농성을 벌이는 노조와 사측이 협상을 벌여 큰틀에서 합의를 이룬 가운데 경찰들이 농성노동자들이 합의안을 논의하고 있는 도장공장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 권우성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그들은 '해고는 살인'이라며 절규했던 쌍용차 노동자들을 경찰특공대로 진압했습니다. 쌍용차 살인진압에 자신감을 가진 자본가들은 정권의 비호 아래 금호타이어, 발레오, KEC, 유성기업, KT, 철도공사 등 전국에서 정규직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웠습니다.
재벌과 부자들의 '절친'이었던 그들이 지금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말합니다. '경제를 살리겠다'던 이명박 정권 4년, 850만 비정규직의 절망이 온 나라를 휘감고, 이명박 정권과 탐욕의 재벌 때문에 '배고파서 못살겠다'는 노동자 서민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져가는 것이 두려운 걸까요?
'사람을 미혹하고 나를 따르라'고 하는 교주들은 새누리당만이 아닙니다.
지난 1월 31일 민주통합당은 ▲ 2017년까지 비정규직 절반으로 축소 ▲ 비정규직 정규직 임금의 80%까지 인상 ▲ 정규직 전환 지원금 ▲ 해고요건 강화 등의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공공·금융부문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화와 같은 새누리당의 획기적 변신을 보지 못해 '얌전한 공약'을 냈지만, 앞으로 총선이 다가올수록 더 '쎈' 공약을 쏟아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민주통합당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노동자들의 격렬한 반대를 폭력으로 진압하고 정리해고법, 파견법, 비정규직법이라는 '3대 노동악법'을 만들어 850만 비정규직의 절망을 양산한 주범입니다.
지금은 이명박 정권의 몰락으로 반사이익을 얻고 있지만, 그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안겨준 고통은 현대차 비정규직 불법파견 투쟁 8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1895일, 재능교육 1500일, 한국지엠 비정규직 1300일이라는 숫자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 희망뚜벅이 2월 7일 안산중앙역에서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뚜벅이'의 9일차 야간문화제
ⓒ 박점규 비정규직
'사이비 교주' 감별법 다섯 가지
재벌과 부자들의 친구였던 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노동자, 서민들의 친구라며 거짓 약속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연대를 외면했던 이들이 버젓이 진보정당 후보로 출마하고 있습니다. 사이비 교주들이 창궐하는 시대지만 누가 노동자의 벗인지 아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첫째, 하루 8시간, 주5일 일하는 상시적인 일자리에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과 '상시업무 정규직화'가 없는 공약은 가짜입니다.
둘째, 사람 장사를 용인한 근로자파견법, 2년마다 비정규직을 마음껏 해고해도 되는 비정규직법을 폐기하지 않고 임금만 올려주겠다는 공약은 사기입니다.
셋째, 진짜 사장은 사라지고 '바지사장'이 활개치는 도급, 용역, 외주 등 간접고용을 금지하지 않고 비정규직 보호한다는 공약은 가짜입니다.
넷째, 회사가 멀쩡해도 온갖 수법으로 정리해고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법원이 경영상 필요를 폭넓게 인정해주는 정리해고법의 폐지 없는 공약은 기만입니다.
다섯째, 정규직은 관리자들뿐이고, 생산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채워진 기아차 모닝, 현대모비스,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등 야만적인 공장 사업주들을 처벌하지 않는 공약은 거짓입니다.
너무 복잡하다고요? 그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2004년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에도 불구하고, 8년 동안 근로자파견법을 위반하며 1만 명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2010년 7월 22일 대법원 판결마저 거부하며 불법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현대차 정몽구 회장을 구속시키겠다는 공약이라면 어떨까요?
덧붙이는 글 | 박점규 기자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이며 금속노조 전 비정규국장입니다.
ⓒ 2012 OhmyNews
절망버스와 희망뚜벅이
[손석춘 칼럼] 기자라는 직업과 ‘직업기자’의 의미
손석춘·언론인 | 2020gil@hanmail.net
직업기자. 흔히 쓰는 표현은 아닙니다. 기자 직업이란 말을 도치해서 만든 조어이지요. 21세기 들어서면서 모든 사람이 시사 문제에 글을 쓰고 소통할 수 있는 시대를 맞았습니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도 얼마든지 ‘기자’로 활동할 수 있는 상황에선 직업으로 기자 일을 하는 사람을 구별할 개념이 필요하겠지요.
김 형. 오랜만에 편지를 띄우며 ‘직업기자’라는 말을 들머리에 세운 이유는 최근 열린 공판에서 한 피고인의 최후진술에 자괴감이 들어서입니다. 그날 검찰은 “피고인이 309일간이라는 장기농성을 벌여 회사업무를 마비시키고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켰을 뿐만 아니라 불법이라도 떼를 쓰면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며 어깨에 힘을 잔뜩 준채 징역 1년6월을 구형했지요.
김 형이 짐작했듯이 피고의 이름은 김진숙, 정리해고 철회를 호소하며 한진중공업 크레인에 올라 309일 내내 고공농성을 펼친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입니다.
직업기자들이 사설로 엄벌을 주문한 “불법 폭력사범”은 최후진술에서 노사 사이의 대화와 약속을 강조했습니다. 이어 노동조합이 경영진과 ‘피 말리는 교섭’을 통해 체결한 단체협약을 한진중공업이 어겨온 과거를 낱낱이 밝혔지요.
갑자기 650명을 내쫓겠다는 경영진에 맞서 2년 싸움 끝에 노사합의를 했지만, 그 합의를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번복을 한 날이었습니다. 김주익 노조위원장은 크레인에 홀로 올라 129일 동안 싸우다가 목을 맸습니다. 하지만 경영진은 모르쇠했지요. 저들의 행태에 분노한 조합원 곽재규가 보름 만에 몸을 던졌습니다. 두 사람의 죽음으로 노사 갈등은 단숨에 해결됐지요. 임금이 오르고 식당이 새로 지어졌습니다만, 경영진의 엄살과 달리 회사는 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생산성이 높아졌습니다.
김 형, 우리 함께 톺아봅시다. 고 김주익이 목을 맸을 때, 곽재규가 몸 던졌을 때, 대다수 직업기자들은 어떻게 보도했던가요? 김주익의 유서가 기억나십니까?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 달 기본급 105만원, 그중 세금 등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80 몇 만원. 근속년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텐 데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죽어야 한단 말인가”라고 썼지요. 악덕 자본에 맞선 노조위원장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인 그가 세상을 뜰 결심을 하며 “이놈의 보수언론들”이라고 썼을 때, 김 형, 그에게 떠오른 직업기자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노조위원장과 조합원의 연이은 죽음으로 노사 사이의 해묵은 숙원이 풀리고 회사 생산성이 높아질 때까지 ‘이놈의 언론’은 어디에 있었던가요? “도와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방해만 하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어느 영화의 간절한 기도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진중공업 경영진은 다시 2010년 12월에 400명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나섰지요. 김진숙이 크레인에 올랐을 때 ‘그놈의 언론’은 무엇을 했던가요? 희망버스가 구성되고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곰비임비 달려갈 때, 김 형의 언론사는 어떤 보도를 했던가요?
희망버스를 기획하고 그 ‘죄’로 지금 감옥에 갇힌 시인 송경동은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라고 살천스레 보도한 언론의 벽이 완강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저 새맑은 시인은 희망버스를 “승객들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살아있는 미디어처럼 움직였던 수많은 말과 표현의 버스”였다고 정의했더군요.
김 형은 이제 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핵심을 짚었을 터입니다. 김진숙과 송경동, 두 사람으로 상징되는 이 땅의 수많은 ‘구조조정 노동자’와 희망버스 승객들은 직업기자들에 맞서 자신들 스스로 미디어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직접정치 시대에 걸맞은 ‘직접기자’로 부르자고 제안했었는데요. 그 말은 결코 직업 기자를 경시해도 좋다거나 비아냥거리는 뜻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직접기자들의 시대에 직업기자들의 기자정신과 직업윤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리고 싶었지요.
김 형.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의 꿈을 싣고 희망버스가 달리기까지 이른바 보수언론은 물론, 진보언론조차 의제설정이 약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과거만이 아니라는 데 있지요.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세상을 열망하는 희망버스 기획단은 지금 희망의 발걸음을 뚜벅뚜벅 옮겨가고 있습니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이 1500일 넘게 싸우고 있는 서울 혜화동에서 1월30일 출발한 ‘희망 뚜벅이’는 평택 쌍용자동차를 목표로 걸어가고 있지요.
김 형. 한국 언론 가운데 그 희망뚜벅이를 보도하고 있는 언론은 얼마나 될까요? 김 형이 몸담고 있는 곳의 지면과 화면에서 희망뚜벅이를 발견하셨습니까? 그래도 ‘절망뚜벅이’라는 언구럭은 없었다고 자위해야 할까요? 희망버스에 이은 희망뚜벅이의 직접기자들 앞에 그 존재이유를 곱씹으며 다시 적습니다. 직업기자.
(언론인)
희망뚜벅이, 비정규직·정리해고 없는 세상 300km 대장정
민중언론 참세상 우용해 기자
2011년 시작된 희망버스가 2012년 초 ‘희망 뚜벅이’로 거듭나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재시동을 걸고 300킬로미터를 걷기에 나섰다. 하지만 경찰은 작년 물포와 차벽을 이용해 희망버스를 막아서듯 인도를 통해 걷는 참가자들을 또 다시 막아섰다.
30일 오전 10시 희망뚜벅이 참가단 150여명은 혜화동에 위치한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2월 11일 쌍용차 평택공장 까지 걸어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세상 만들기에 돌입한다’며, ‘희망뚜벅이 발대식’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더이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정리해고로 고통받고, 스스로 목숨을 잃지 않게 하기위해 나선다”고 밝혔다. 발대식에는 백기완 선생님을 비롯해 쌍용차 해고자, 재능교육 노동자, 코오롱, 대우자판,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해고 노동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와 시민등이 함께 했다.
발대식을 끝낸 150여명의 참가자들은 오전 11시 20분경 광화문에 위치한 KT본사로 걷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걷기 시작부터 경찰과 실랑이가 시작됐다. 경찰은 희망뚜벅이 참가자들이 걷기를 시작하자 해산을 종용하며, 참가자들이 겉옷에 입은 ‘희망뚜벅이’라 쓰인 몸벽보를 벗을 것과 깃발을 내릴 것을 요구 하며 막아 섰다.
반면 참가자들은 인도 통행을 보장 할 것을 요구하며, 깃발을 내리고 이동을 하려 했다. 경찰과 참가자들간 언쟁이 오고가는 실랑이가 20여분간 지속되었다. 과정에서 백기완 선생님과 조희주 노동전선 대표는 경찰의 저지에 항의해 연좌하기도 했다. 결국 경찰은 이동통로를 열고 통행을 시켰다.
KT본사로 향하던 참가단은 오후 12시 20분경 혜화동 이화사거리 인도위에서 경찰에 의해 재차 저지 당해 일정 소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희망뚜벅이 참가자들은 경찰의 일방적 도보 저지에 항의하며 평화적 걷기 보장을 요구하는 등 시작부터 경찰은 과잉 반응을 하고 나섰다.
희망뚜벅이 참가단은 30일을 서울 시내를 시작으로 강남, 과천, 안양, 인천, 안산, 수원, 둔포 등 2월 11일 쌍용차 평택공장 까지 13일간 300KM를 걷는다. 참가단이 걷는 주요 지역에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 재능교육 비정규직 노동자, 코오롱, 대우자판, 한국3M등 5~6년 동안 비정규직 문제와 정리해고 철회, 민주노조 파괴의 사안을 가지고 싸워오고 있는 장기투쟁사업장을 순회하며,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선전할 계획이다.
각 일정 별로는 천주교, 기독교, 불교계등 종교계와 법률, 인권, 교수학술단체, 문화예술계등이 함께해 문화제와 토론회, 강연회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배우 김여진 씨와 시인 김선우 씨, 연기인 맹복학 씨, 영화감독 변영주 씨등이 희망 뚜벅이 응원단으로 참여한다.
더불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희망의 소금꽃 나무 열매’ 전국 투쟁사업장을 순회하고 2월 11일 쌍용차 평택공장으로 향한다.
‘희망뚜벅이 발대식’의 여는 발언을 한 백기완 선생님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위해 오늘 희망뚜벅이를 시작한다”며, 인사했다.
백기완 선생님은 “한번 떠난 화살은 과녁을 뚫기 전에 돌아 오지 않는다. 이제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꼭 만들어 내자”고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이어 희망뚜벅이 시작의 의미에 대해 김혜진 씨는 “28일 이곳 재능교육앞에서 700여 노동자 시민들이 1박2일 동안 비정규직 야만의 세월을 재능교육 노동자들과 함께 한결 같은 마음으로 지켰다”며,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가 여전함을 지적했다.
김혜진 씨는 “비정규직, 정리해고는 전 사회적 문제임을 우리는 확인 했다. 제도 자체를 없애고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을 만들자”며,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세상만들기 위해 오늘의 희망뚜벅이는 시작이다”고 강조했다.
희망뚜벅이 응원단장을 맡은 맹봉학 씨는 “98년 IMF 이후 비정규직 정리해고가 확대되어 노동자가 거리로 내몰리고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오늘 모두의 마음에서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작을 하자”며,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희망의 소금꽃 나무 열매’를 기조로 전국을 순회하는 박성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철회 투쟁위원회 대표는 “더이상 사람을 죽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바로 옆의 동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김진숙 지도위위과 우리 한진중 노동자들은 함께 싸워 왔다”며, “한진중공업의 이 싸움에는 희망의 버스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힘이 함께해 오늘을 만들었다”고 인사했다.
박성호 한진정투위 대표는 계속해서 “전국에 100여개가 넘는 투쟁사업장이 있다. 이 투쟁사업장이 함께 하고,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11일 쌍용차로 모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소금꽃 나무열매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강조 했다.
대전 키스티 비정규직 5명 ‘이상한 복직’
한겨례 전진식 기자
해고 1년만에 새 용역업체로…연구원 “약속 지켰다”
계약서 작성 않고 업무 일방변경 ‘갈등 재연’ 가능성
대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키스티) 시설관리 비정규 노동자들이 집단해고 뒤 1년 만에 일자리를 되찾았다.(<한겨레> 2011년 2월8일치 12면) 그러나 용역업체와 업무 배치 등의 문제에서 견해가 엇갈려 또다시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연구노조 키스티 분회는 정민채(42) 분회장 등 5명이 지난 1일부터 새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됐다고 2일 밝혔다.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1년간 연구원 바깥에서 투쟁을 벌였던 정 분회장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급여나 근로 조건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들어와 일을 하고 있다”며 “해고 전 내가 하던 건축영선(건물 유지보수)이 아니라 기계 자동제어 쪽으로 업무 배치를 받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1년 동안 굉장히 고통스러운 싸움을 했다”며 “일부 관리직원들이 노조를 적대시하는 시선은 오히려 더 강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노조의 주장은 해고 전 업무를 그대로 맡을 수 있도록 근무 편성을 재조정하고, 임단협 교섭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광오 공공연구노조 사무처장은 “지난 1일 연구원과 용역업체에 근무 편성 등 문제에 대해 서둘러 시정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며 “복직을 요구해온 노동자들이 모두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성과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연구원과 용역업체는 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태도다.
정겸웅 키스티 행정부장은 “연구원은 지난해 여름 노조원들이 올해 초 새 용역업체 선정 뒤 채용되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이번에 지켰다”며 “업무 배치는 채용 과정에서 용역업체와 면접 등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용역업체 ㅇ사 관계자는 “조만간 신규 채용된 이들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키스티에서 전기·기계설비 관리일을 하던 비정규 노동자 13명은 2010년 10월 노조를 결성했으며, 키스티와 새로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 ㄴ사는 설 연휴를 앞둔 2011년 1월31일 8명에 대해 고용을 승계하지 않고 5명만을 ‘선별 채용’한 바 있다. 이후 해고 노조원들은 천막·거리 농성을 벌이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과 인권침해 구제 신청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