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명자나무
박 동 조
변화무쌍한 날씨다. 비바람이 와락와락 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사이로 해맑은 태양이 언뜻언뜻 얼굴을 내민다. 해가 났다고 든 날씨가 아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부랑아가 휘두르는 채찍 같은 바람이 휘몰아친다. 그때마다 화단의 식물들이 갈피없이 휘둘린다.
무심한 마음으로 보고 있으려니 한 식물의 행동이 눈길을 붙든다. 내가 마술을 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눈의 착각인가! 눈앞에 벌어지는 엄연한 광경이 도무지 현실 같지 않다. 날씨 따라 모습을 바꾸는 식물이 있다고 알고는 있어도 생생히 보기는 처음이다.
손가락처럼 가느다란 원줄기에 잔가지가 우북한 결명자나무다. 자잘한 이파리들 사이로 나비의 날개 같은 노란 꽃이 드문드문 보인다. 이 여린 꽃이 비바람이 사나워지면 기도하듯 꽃잎을 오므려 합장한다. 그러다 날씨가 고자누룩해지면 기웃기웃 꽃잎을 연다. 꽃잎만 그러는 게 아니다.
머리채를 휘어잡듯 바람이 몰아칠 때는 잎자루에 달린 어린잎이 순서대로 포개지고 맨 아래 달린 이파리 두 장이 포개진 어린잎을 양쪽으로 감싼다. 먼저 돋은 형아 잎이 금방 돋은 아우 잎을 보호하는 동작이다. 식물의 세계에도 형제애가 있는가! 비바람이 물러가는 기미가 보이고야 아우 잎을 감쌌던 몸짓을 스르르 푸는 형아 잎의 모습에 나는 그만 코끝이 매캐하다. 검은 구름이 해를 가려 어둑발이 들어도 마찬가지 현상을 연출한다.
식물이 어떻게 이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결명자나무는 취면운동을 하는 식물이다. 취면운동이란 낮에는 잎을 수평으로 열었다가 밤이 되면 잎을 수직으로 접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해 바른 낮에 잎을 활짝 펴는 것은 더 많은 햇볕을 받기 위해서고, 밤에 잎을 접는 것은 찬 기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놀랍게도 이 식물은 밤이 아닌 낮의 광폭한 날씨에도 줄기와 가지, 이파리와 꽃잎까지 오므리고 숙여 만일에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에 대처한다. 한낱 식물이 지혜롭지 아니한가!
의식이 없이 숨만 쉬는 사람을 두고 식물인간이라고들 한다. 그 말대로라면 결명자나무도 엽록소 작용만 해야 한다. 그런데 아니다. 자연의 힘이라는 절대적 존재에 스스로를 지켜내도록 진화한 것이다. 가는 줄기로 폭풍우에 꼿꼿이 맞섰더라면 잔가지들은 부러지고 이파리는 산산이 떨어졌을 것이다.
위기에 맞서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이 인간의 셈법과 다르지 않다. 지혜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식물도 위기에 처했을 때, 스스로를 지켜내는 천부의 지혜가 있음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2020 울산문학 겨울호)
첫댓글 우와!
결명자나무가 그렇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나도 그날 처음 알았답니다.
신기해요!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