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원시 예술에 심취와 아비뇽의 처녀들
피카소는 점차 회화 데생뿐만 아니라 조각 판화에서도 명성이 나기 시작했고 그 당시 인상주의나 사실주의에 염증을 내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원시적 생명의 충만함을 표현하려는 미술로 새 돌출구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25세의 패기만만한 피카소는 인류사 박물관에서 흑인 미술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생명력에 매료된다. 그들의 역동성, 대지적 순결성, 춤이나 탈이나 조각 속의 원시적이고 원색적이고 직선적 표현 기법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조각가 헨리 무어도 "아프리카 미술의 공통적인 특징은 강력한 생명력이다. 아프리카 미술에 있어서는 강력한 신앙과 희망과 공포의 표현을 엿볼 수 있다." 라고 말한 바 있지만 피카소는 아예 이것을 그의 그림의 시발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죽음을 너머 거대한 생명으로 향해 달려가는 듯한 아프리카의 춤, 노래, 미술, 조각들이 화가에게 주는 힘과 원천적 에너지는 무궁무진한 것이었다.
피카소는 계시처럼 다가오는 흑인 미술의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 순수 감각에 반했다. 빈 장방형 눈, 원주 코의 구멍 등 새로운 조형 세계에 몰입하였으며 피카소의 유명한 혁명 큐비즘 미술의 길을 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시각 미술, 영화, 건축을 포함 모든 예술 장르에 큰 영향을 준 큐비즘의 선각자 피카소는 결국 이런 과정과 모험을 통해서 피카소에게 전설적 명성을 안겨 준 유명한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1907년)를 몇 달간 수백 장의 데생과 습작 끝에 피카소의 나이 26세 늦여름에 내놓게 된 것이다. 이는 실로 거대한 작품이었고 주변의 친구들 큰 기대감 속에서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이 그림의 반응은 피카소를 절대로 지지했던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게 그림인가?" 할 정도였다. 그들은 분노와 경악으로 말을 잃고 말았다. 마티스마저 격분했고 브라크도 이건 "우리에게 석유를 마시게 하고 밧줄을 밥으로 먹으라는 것과 같다" 라고 혹평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그림이야말로 지금까지의 모든 지구상의 모든 회화 세계를 붕괴시킨 미술사의 대혁명이었다. 지금까지 등장한 우아하고 풍요로운 요정이나 비너스가 아니라 거리에서 몸 파는 천한 여인이 주인공이 되어서 문명화된 사람들을 향해 울부짖는 분노와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의 위대성은 바로 이런 20세기의 정신을 누구보다 앞서 그림을 통해서 보여 주었기 때문이리라. [아비뇽의 처녀들]이 주는 충격들은 바로 자연이 가지고 있는 3차원의 세계 즉 평면적 관점이 아닌 입체적 관점인 '원형, 원측, 원구'로 처리해내는 데 있다. 피카소는 세잔의 회화적 비전을 현실화했으며, 지극히 복잡한 다원적 공간을 아주 단순하고 축소된 기하학적인 그림으로 창출해 내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와 함께 피카소는 사물의 외형적 모방을 하던 종래의 화법을 완전히 파괴하고 기하학적 도형으로 해체하여 형태를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큐비즘을 더욱 발전되었다. [세 명의 악사] 절단된 얼굴, 한 개의 눈, 뒤틀린 황소를 머리 삼은 삼각형 나무는 원통으로 된 그림 형태에서 보듯 피카소의 그림은 선과 형을 굵고 극단적인 모습으로 단순화 내지 고급화시켰다.

100년이 지났어도 미스터리인 아비뇽의 처녀들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이 1907년 공개됐을 때 예술애호가들은 물론 동료 작가와 비평가들까지도 모두 충격과 불쾌함,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로부터 꼭 100년이 지난 지금 현대 미술의 발전에서 없어서는 안될 전환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이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서 새롭게 조명된다.
현대미술관은 "아비뇽의 처녀들"을 위한 이번 전시를 위해 보통 때는 다른 작품과 함께 걸어두었던 이 작품을 위한 별도의 단독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작품이 내뿜는 광채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진가를 음미할 수 있도록 시.공간적 배려를 한 것이다.
프랑스 남부 도시 아비뇽 사창가의 창녀 다섯명을 그린 1평방미터 크기의 이 유화는 이제는 더 이상 스캔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만 뉴욕 타임스의 미술 평론가 마이클 키믈맨의 말 처럼 여전히 "놀랍다."
키믈맨은 "지난 100년 동안 미술의 목표가 오로지 피카소를 넘어서는 것이었지만 아직도 이 그림은 충격을 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리기위해 시도했던 수백점의 스케치와 드로잉,습작들도 함께 전시되며 이중 일부는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에서 대여해온 것이다. 피카소의 이 그림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조각과 아프리카 부족들의 전통 가면,엘 그레코의 영향이 드러난다. 현대미술관의 준 학예사 안나 스윈번은 이번 전시는 피카소가 이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길들을 택하지 않았는지를 일깨워준다"면서 "피카소도 당시 자신의 그림이 어떤 식으로 완성될 지를 알고있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스윈번은 이 그림이 "화면에서 2차원 이상의 복합적 스타일로 입체파의 길을 열었으며 거의 모든 것의 가능성을 열어보였다"고 말했다. 일부 동료들 조차도 "끔찍하다"며 등을 돌리고 피카소 조차 이후 공개하기를 꺼렸던 이 그림이 빛을 보게 된 데에는 프랑스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 브르통의 힘이 크다. 브르통은 1924년 미술품 컬렉터이던 자크 두세에게 이 그림이 "회화를 초월하는 작품"이라며 구입을 권유했다. 이후 그림은 1939년 현대미술관으로 넘어왔고 이 미술관이 자랑하는 최고의 소장품 중 하나가 됐다.
스윈번은 현대미술관이 이후 수많은 작품을 소장하게 됐지만 이 작품 만큼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은 없다고 말했다.
아비용의 처녀들에 대해 스윈번은 "그림을 보면 아직도 풀리지않는 면이 많으며 여전히 미스터리"라고 말한다.
스윈번에게 "이 그림 만큼 주의를 끌 수 있는 작품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100세를 맞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전시는 8월27일까지 계속된다.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maroonje@yna.co.kr 입력: 2007-05-14 10:59 / 수정: 2007-05-1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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