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의 테니스 자매가 태어날 수밖에 없던 이유
▲ 영화 <킹 리차드>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킹 리차드> (King Richard, 2021)
글 : 양미르 에디터
<킹 리차드>는 세계 랭킹 1위, 30차례의 그랜드슬램 단식 우승, 여기에 6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명실공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매'가 된 비너스 윌리엄스와 세레나 윌리엄스의 어린 시절을 담은 작품이다.
과거만 하더라도 테니스는 백인만의 전유물로 인식됐고, 현재도 백인이 아닌 선수가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따내는 건 '이변'에 가까운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미국에서 가장 빈곤하면서, 위험하다고 여겨진(이 역시 백인 관점에서는 그렇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캘리포니아주 컴턴 출신인 자매의 이야기는 '개천에서 용 난다'에 매우 적합한 '신화' 같은 소재임에는 틀림없다.
작품의 실제 주인공인 자매의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윌 스미스)는 딸들이 태어나기 2년 전에 TV에서 우연히 테니스 경기 우승자가 4천 달러를 받는 걸 보면서, 장차 태어날 아이들의 인생을 담은 총 78장의 '챔피언 육성계획'을 작성했고, 영화는 그 계획을 실현한 과정을 담았다.
물론, '비너스 윌리엄스'(사니야 시드니)와 '세레나 윌리엄스'(데미 싱글턴) 본인의 역량과 어머니 '브랜디 윌리엄스'(언자누 엘리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사실 에디터는 <킹 리차드>의 아카데미 후보 예상을 처음 들었을 당시(2020년 초), 윌 스미스가 드디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차드 3세>를 연기하는 줄 알았다.
윌 스미스가 백인의 전유물로 인식된 캐릭터를 선택할 정도로, 오스카 트로피에 간절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
MIT 장학금을 포기하고 힙합 가수의 길을 선택했으며, 1990년대에 들어선 에디 머피를 이은 할리우드 스타가 된 윌 스미스는 야심 찬 배우답게 꾸준히 오스카 트로피에 도전했다.
<알리>(2001년)와 <행복을 찾아서>(2006년)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됐으나, 각각 덴젤 워싱턴, 포레스트 휘태커에게 축하 박수를 남겨야만 했다.
이후, 윌 스미스는 개인적으로 큰 변화에 직면한다.
제작자로도 자신의 영역을 확장한 가운데(대표작으로 <핸콕>(2008년)이 있다), 아들 제이든 스미스와 함께 출연한 <애프터 어스>(2013년)가 그야말로 '흥행 참패'를 기록한 것.
A급 시나리오의 작품들도 서서히 그를 찾지 않으면서, 추억의 스타가 될 뻔한 상황에서 <알라딘>(2019년)의 '지니' 역할로 윌 스미스는 다시 인생 역전의 기회를 맞는다.
본인 필모그래피 사상 최초 10억 달러 흥행을 기록한 것.
이어 개봉한 <나쁜 녀석들 : 포에버>(2020년)에서도 추억의 캐릭터 '마이크'로 열연하며 흥행에 성공한다. (팬데믹 직전에 관객을 찾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다시 <킹 리차드>로 배우(남우주연상)와 제작자(작품상)로 오스카에 도전한 윌 스미스는 이 작품이 불가능한 꿈에 대한 이야기라고 언급했다.
서두에 소개한 '리차드 3세'는 뒤틀린 신체에 의한 콤플렉스로 인해 고립감이 권력욕으로 이어졌고, 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무서운 집념을 보여준 캐릭터였다.
결국 왕위에 오르긴 했으나, 욕망으로 점철된 '피의 군주'는 자신의 악행을 되짚는 과정에서 양심의 가책과 함께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킹 리차드>의 주인공, '리차드 윌리엄스'는 비슷하지만 달랐다.
분명, '리차드'의 계획은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와 같은 존재였다.
'리차드'의 모습은 일견 독불장군 같다.
아니, '돈키호테'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부모 중 어느 쪽도 선수 출신이 아닌 흑인 남성과 그의 가족이 딸을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로 키운다며 동네 테니스장에서 무턱대고 훈련을 하는 걸 보면 누가 진정성 있게 바라봤을까?
여기에 '리차드'의 어린 시절은 'KKK단'에 의해 살해 위협을 받았던 것으로 묘사됐으니, 그에 대한 트라우마와 적대심은 가득 찼을 터. (영화엔 'LA 폭동' 관련 뉴스 보도와 '리차드'의 반응을 보여준다)
그런 가운데 '리차드'는 묵묵히 자신의 플랜대로 두 딸을 키워가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지고자 한다.
또한, '리차드'는 아이들이 운동 기계로만 성장하는 것에 반대한다.
예를 들어, '리차드'는 대회에 우승해 즐거워하는 딸에게 집에 오자마자 <신데렐라>(1950년)를 시청하며 작품의 교훈을 묻는다.
각자 의견을 말하는 가운데, '리차드'는 늘 겸손해지라고 당부한다.
패한 선수도 최선을 다했으니, 잘난척하면 그것이 화살이 되어 돌아올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또한, '리차드'는 학업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테니스 연습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야말로 '리차드'는 '지덕체'가 모두 겸비된 선수를 만들어낸 것.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킹 리차드>이면서, 동시에 '퀸 오라신'으로도 볼 수 있다.
'오라신 윌리엄스'(언자누 엘리스)는 아이디어와 꿈으로 가득 찬 돈키호테의 남편을 제어하는 역할을 맡았다.
큰 시련이 올 때마다, '오라신'은 "우리 꿈을 포기할 순 없어"라고 말하기보다는 "우리 애들에 대한 정성을 포기할 순 없어"라고 말하며 '리차드'를 도왔다.
여기에 부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논쟁을 펼친다.
본격적으로 시니어 무대에 데뷔하기 전, '리차드'는 딸들을 끝까지 통제하려 했지만, '오라신'은 두 딸이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걸 알린다.
그렇게 <킹 리차드>는 교육열도 높고, '개천에서 용을 만드는 서사'를 좋아하는 한국 관객에게 어필할 요소가 충분한 작품이 됐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부성애에 대한 명상, 서로를 향한 가족애의 특별함이 담겼다.
혹여나 이 작품을 보고 아이들을 휘어잡을 부모가 있다면, 반드시 인지해야 할 부분이 있다.
'리차드'와 딸들의 관계는 무작정 강요도, 떠미는 것도, 윽박지르는 것도 아닌 관계였다는 점이다.
한편, <킹 리차드>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잭 베일린), 남우주연상(윌 스미스), 여우조연상(언자누 엘리스), 주제가상(비욘세의 'Be Alive'), 편집상 후보에 올랐다.
특히 윌 스미스는 아카데미의 전초전으로 알려진 골든 글로브를 시작으로, 미국 배우 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등을 휩쓸며, 첫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을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