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가정교육] 제천 간디청소년학교 양희창 교장
입력 : 2003-11-27
*“맑은 영혼 들꽃처럼 키우죠”“내일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죠?다음 주에 김장을 해야 하니까 오늘 애들이랑 텃밭 배추를 뽑아야겠네요.”
개량한복 차림에 낡은 구두,올해 마흔 두살인 ‘젊은’ 교장 선생님은 첫 인사부터 남달랐다. 하긴,대안학교의 대표격인 ‘간디학교’ 교장 선생님에게 전형적인 근엄함을 예상했던 것은 애초에 잘못된 기대였으리라.
충북 제천에서 간디청소년학교(중학교 과정)를 운영하고 있는 양희창 교장 얘기다. 경남 산청에서 고등학교 과정인 간디학교를 이끌고 있는 친형인 양희규 교장은 철학박사 출신이고,동생인 양 교장은 빈민 선교를 해온 전직 목회자이자 대구 경실련 사무국장을 지낸 시민운동가이다.
“여중생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며 자살한 일이 제가 대학교 2학년 때인가 그랬어요. 4학년 때는 야학활동을 하면서 교육문제에 눈을 떴지요. 그 때 저는 제가 교육자가 되면 최소한 아이들의 날개를 꺾지 않으리라 다짐했어요.”
간디학교의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다. 오전에는 자기 수준에 맞게 국?영?수 등 교과 수업을 듣고,오후에는 스스로 선택한 감성교과,의식주교과 수업에 참여한다. 오후 수업에는 옷 만들기,요리,목공 같은 것을 배우고,합창이나 연극,풍물 등 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한다. 교과과정이 이렇듯 유별나고,시골 폐교를 재활용해 쓰고 있으니 하드웨어도 볼품없는데 지난해 신입생 20명을 뽑을 때는 전국에서 200여명이 몰려들었다.
간디학교는 ‘사랑’과 ‘자발성’이라는 교육철학에 기초해 운영된다. 양 교장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글 중 한마디가 눈에 띈다. ‘애들이 얼마나 이쁜지 교육이 안됩니다.’
“요즘 아이들이 되바라지고 자기밖에 모른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1학년 때 열흘동안 소록도에 봉사를 가는 과정이 있는데,아이들이 ‘왜 봉사를 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해서 교사들을 뜨악하게 만든 적이 있어요. 그런데 막상 소록도에 가니까 그런 아이들이 더 열심이고,떠나올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붙잡고 울더라고요.”
아이들이 예뻐서 정말 탈인 것도 있다. 다른 학생들에게 사랑을 쏟다보니 정작 양 교장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소홀해지는 것. 고등학교 2학년인 양 교장의 맏딸 다은양과 중학교 2학년인 아들 원중 군은 모두 간디학교에 다니고 있다. 특히 24시간 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원중군은 사랑을 듬뿍 받을 것 같지만 양 교장에게 그저 원중군은 여러 학생 중의 하나로 보인다고 한다.
“언제나 힘들어 하고 고민하는 아이가 제일 먼저 눈에 띄어요. 내 아이는 잘 자라겠거니 싶어서 자꾸 뒤에 놓게 되는 거지요.”
간디학교가 양 교장의 부친까지 삼부자의 재산을 털어넣어 세운 가난한 학교이다 보니 양 교장은 철학을 직접 가르치고,부인은 옷 만들기와 양호교사 역할을 맡고 있다.
양 교장은 수업시간에 청소년 자살이나 왕따,이라크 파병문제 같은 일상적인 물음들을 끄집어내 아이들과 토론을 하곤 하는데,한번은 원중군이 왜 수업시간에 하는 얘기들을 집에서는 안해주냐고 물어왔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부자가 평소에는 서로 ‘소 닭 보듯’ 대하는 데다 그가 아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라고는 ‘밥 묵었나’ 하는 수준이더란다.
“그래서 우리가 곧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기가 올 거라고 말해뒀어요. 아들이 자신의 고민을 밖으로 표출할 수 있을 때,저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상대로 여기게 될 때가 그 때겠지요.”
실제로 다른 집에서는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대화가 끊긴다지만 양 교장은 이제 딸과 대화가 된다며 자랑이다. 딸 다은양은 그동안 몇번의 힘든 고비를 넘겼다. 95년에 양 교장 부부가 귀농하면서 대구에서 전학온 다은양을 동네 아이들이 왕따를 시키는 바람에 힘들어 했고,고등학교 1학년 때는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다행히 지금은 재즈댄스를 좋아하고 심리학,인문학과 독서에 관심이 많은 아이로 자랐다고 한다.
“지난 주에 딸이 자기는 별종이 아니냐고 묻더군요. 공부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보충수업 같은 건 전부 딴 세상 이야기만 같아서 자신이 이 사회의 구성원 같지 않다는 거지요.”
양 교장은 중학생인 아들 원중군에게는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게 하고,어울려 사는 것을 배우는 것만으로 공부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인 다은양 역시 자기가 좋아하고 평생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
“간디학교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교가 아닌데도 아이들이 대학에 많이 갑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학생들의 고집이 세서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점수로도 자신이 원하는 과를 찾아간다는 거예요. 아이들 말로는 자기들이 일반 학교에 갔어도 더 좋은 대학에 못 갔을 거라고 해요. 간디학교는 일반 학교에 비해 공부시간이 ⅓에 불과하지만 원해서 공부했으니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간디학교에서 말하는 ‘자발성’이다.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교사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도록 돕고,그것을 찾아낸 아이들은 신명나게 밤을 새워서라도 해내니 오전 수업만 받고도 대학에 갈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키워드인 ‘사랑’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를 가리킨다. 간디학교의 교사상은 존경받고 지도하는 티처(teacher)가 아니다. 아이들과 사랑과 신뢰,우정을 쌓을 수 있는 친근감있는 헬퍼(helper)라는 것이다.
“지금의 교육은 ‘가져라,그러면 행복할 것이다’를 복음처럼 설파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피라미드 구조 꼭대기에 밀어올리기 위해 열등감과 욕심을 부추기고요. 하지만 우리 때만 해도 평생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대학의 신화가 이제 깨지고 있지 않습니까. 부모님들이 불안감과 두려움을 버리고 전부 공정하게 이런 교육 그만하고 학원도 그만 보내자는 ‘스톱 운동’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충북 제천=권혜숙기자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news.kmib.co.kr/article/viewDetail.asp?newsClusterNo=01100201.2003112700000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