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인가?
햇수를 헤아려보니 27년 만이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그 땅을 밟아보기가 그리도 어려웠는지...
어린 시절 꿈을 키우던, 내 모든 것이었던 학교,
난 오늘 27년 만에 그렇게 그 운동장에 섰다.
제6회 동문체육대회에 참석하고자...
아침에 천사와 문자메시지로 시작 시간을 확인하고
수안보를 출발하여 모교로 향하는 마음은
사랑하던 옛 애인을 만나러 가는 것만큼이나 가슴 떨리고 벅찬 감동이었다.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 나들목을 지나고 시작되는 누룹재!
난 그 고개 이름이 누룹재인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하긴 그 고개를 넘어본 것이 처음이었으니...
고개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 동네로 넘어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도 찾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고개 위에서 바라본 경치는 이곳이 나의 고향이 맞나?
하고 의심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경치에 취해 고갯 마루에 차를 세워 두고
아랫 동네 박달이며, 그 멀리 펼쳐진 아름다운 벌판과 한 폭의 동양화를 그린 것 같은 산들을
한참을 내려다 보았다.
이렇게 아름답고 정겨운 내 고향을 두고 난 그렇게도 멀리만 돌아다녔구나!
고개를 내려가니 면소재지 감물이다.
감물은 옛날보다 더 초라해진 것 같아 괜스레 쓸쓸해 졌다.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니 마을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감물에서 우회전을 하여 이담 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니
달리는 차보다 마음이 앞서 어느 새 100km로 달리고 있었다.
백양 저수지를 지나니 시야가 확 트인다.
이담 뜰,
어렸을 땐 난 이 세상에서 이 이담뜰이 가장 넓은 줄 알았다.
배너미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외지에 나가본 적이 없으니
그보다 더 넓은 들판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담쪽으로 차를 돌리고 난 또 한번 놀랐다.
하수까지 쭉 뻗은 새로난 길,
그 길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저 다리를 건너면 광희가 사는 하수가 있다.
옛날에 그 하수강가에서 땅콩서리하며 밤새 놀았던 때가 있었는데...
길가에 차를 세우니 동시에 앞에 주차한 차에서
너무도 반가운 얼굴들, 내 초딩 친구들인 천사(안병수)와 인아지아(최명숙), 광순이가 내린다.
그리고 재성이도 같이 있었는데 처음엔 재성이를 못 알아 봐 정말 미안했다.
27년 만에 만나는 천사는 한 눈에 "천사"임을 알아보았다.
천사는 카페에서 본 사진보다 훨씬 더 젊어보이고 핸섬했다.
명숙이와 광순이는 중학교 졸업 이후 처음이고 재성이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 그리운 땅
이담초등학교로 들어갔다.
이담초등학교!
이곳이 바로 우리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곳이다.
맘껏 뛰어놀고, 공부하고 미래를 설계하던 그곳
그 땅을 밟고 서니
그 때의 그 웃음소리, 그 함성이 다시 들려온다.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 둘, 영화필름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보고 싶은 얼굴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우리들의 천국이었던 그곳이
지금은 폐교가 되어 황량한 들판에 외로이 서 있다.
더운 여름날 우리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사해주던 느티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으면서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도 넓어보이던 운동장이었는데
오늘 보니 별로 넓지도 않았다.
운동장 끝, 실습장이 있던 자리는 나무들로 가득했다.
그 자리에서 한참을 이담뜰을 바라보았다.
동쪽 높은 산 아래가 내 고향 배너미, 학교에서는 보이지가 않는다.
그 오른쪽으로 아시리가 있고,
그 오른쪽으로 둑방 저수지 넘어 곤졸과 백양이 있다.
방향을 틀어 남쪽으로 대상동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대상동에서 학교로 오는 길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코스모스 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내 키를 넘는 그 코스모스 길을 따라 오가는 즐거움이 참 컸었는데...
다시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천사의 고향인 계담이 있다.
그 오른쪽, 그러니까 학교 뒤쪽으로 이담이 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보니 모두가 그리운 내 땅이었다.
어쩌면 날씨도 그렇게 좋은지
구름 한 점 없이,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
그리고 우정이
이 땅에 이 계절을 살고 있음에 감사를 느끼게 해 주었다.
같이 참석한 병률이와 낙현이까지 우리 기수는 8명 밖에 참석을 못하였지만
그래도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님들, 후배님들 그렇게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 운동장을 수놓았다.
난 우리 선배님들이 그렇게 유명한 분들이 많은지 처음 알았다.
무슨무슨 장관도 배출되었고, 또 무슨무슨 장군들도 무수히 배출되었으며,
여기저기에서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되어 열심히 사는 이담초 출신들이 많은데도
학교가 폐교가 되어 안타깝다는 군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 한번 나 자신을 반성하였다.
오후에 기별 달리기 시합에 출전한
병수, 재성이, 광희, 명숙이
정말 수고했네.
천사한테 정말 고맙고 그리고 그 동안 무심했던 내가 너무나 미안했다.
오늘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하수강이한테도 정말 고마웠다.
이런 아름다운 선물을 주어서...
2년 마다 열리는 동문체육대회의 올해 행사는
20회가 주관이 되어 추진을 하였는데
4년 후 우리 기가 주관이 되어 추진해야 한다고 하니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갖고 많이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담까지 가서 아버지를 뵙지 않고 오면 너무나 서운할 것 같아
배너미를 들어가느라고 체육대회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떠야 했지만
잃어버렸던 보물을 찾은 것 같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가슴 벅찬 27년 만의 해후!
난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