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초록】
왜 5왕이란 5C 『송서(宋書)』에 일본왕으로 나오는 왜왕 찬(贊)·진(珍)·제(濟)·흥(興)·무(武)의 다섯 왕을 일컫는 말이다. 사가들은 흔히 왜 5왕을 역사의 수수께끼라고 말한다. 그만큼 실체를 둘러싸고 학설이 갈리고 성격이 모호하다는 말일 터이다. 왜냐하면 왜 5왕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이름이고 단지 중국 남북조시대의 사서인 『송서(宋書)』와 『남제서(南齊書)』 등에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5왕은 5C를 관통하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따라서 왜 5왕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은 고대 한일관계를 밝히는 데 필수적 과제라 본다. 『송서(宋書)』는 왜 5왕 중 무(武)왕이 아직 생존하고 있을 시기(487년)에 기록된 사서이기에 그 역사적 진실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본 고는 과거 일본 역사학자들이 왜왕을 일본 천황의 다른 이름으로 보고 여러 갈래로 꿰어 맞추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바로 이 『송서(宋書)』에 나타난 왜 5왕 특히 제(濟)·흥(興)·무(武)에게 수여된 6국 제군사, 사지절도독이란 관·작호의 의미와 왜왕 무(武)의 상표문(上表文) 분석을 통하여 왜 5왕의 실체를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그 결과 왜왕은 백제왕의 지휘 감독을 받아 일본을 6국으로 나누어 통치하는 후왕으로 볼 수 있고, 왜 5왕의 중심에는 475년 백제를 침공한 장수왕의 군대에 참패하여 도성이 함락당하고 일족이 아차산에서 참살당한 백제 제 21대 개로왕이 있었다는 것을 밝혔다. 그래서 개로왕이 왜왕 제(濟)와 동일인이란 사실과 개로왕의 동생 곤지가 왜왕 흥(興)이고, 왜왕 무(武)는 곤지가 키운 개로왕의 아들이며, 501년 그가 백제 25대 무령왕으로 등극했다는 사실 등을 밝혀내었다. 이처럼 왜왕의 성격과 실체가 밝혀짐으로서 일본서기가 그토록 은폐하고자 했던 백제의 일본열도 지배와 그를 호도하기 위한 교묘한 역사위장 프레임, 예컨대 4C 신공황후의 남한 정벌설이나 임나일본부설 그리고 야마토 왜에 의한 4C 일본열도 통일 주장이 허구로 밝혀지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