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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0.21
독서하는 사람을 담은 그림들
▲ 작품1 -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투르의 작품 '교육받는 성모'. 캔버스 유화로 1650년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돼요. 촛불로 밝혀진 부분과 주변의 어둠이 강렬하게 대비되는 점이 특징이에요. /프릭 컬렉션
가을은 독서의 계절입니다. 여름 내내 초록빛이던 나뭇잎이 변색하면서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감성이 풍부해져서 책을 읽으며 사색에 빠지곤 해요. 또 매해 10월이면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영향도 있어요. 상을 받은 작가가 어떤 책을 썼는지 궁금해하며 읽어보려는 독자들로 세계 서점과 도서관이 북적이거든요. 특히 이번 가을 우리나라에선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덕분에, 독서 욕구가 평소보다 몇 배나 높아졌을 겁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고 들어왔어요. 책을 통해 여러 종류의 삶을 간접 경험함으로써 나 자신과 타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고 알고 있죠. 독서는 공감력을 키우고 삶의 지혜를 얻는 최고의 방법으로 모든 연령대에 장려되고 있답니다. 하지만 몇백 년 전에는 어땠을까요? 중세 유럽에서는 대다수 사람이 교육을 받지 못해 문맹이었고, 귀족이나 성직자, 관료 등 소수만이 글을 배워 읽고 쓸 수 있었습니다. 시민에 대한 교육이 강조되던 18세기에도 여성이 책을 읽는 것을 탐탁지 않게 봤다고 해요. 육아와 집안일을 게을리하게 된다는 이유였죠. 그럼에도 명화에는 책에 몰두하는 여인이 자주 등장합니다. 오늘은 책을 읽는 사람을 담은 그림을 통해 시대별로 독서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아보기로 해요.
밤이면 촛불 켜고 책 읽었죠
〈작품①〉은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드 라투르(1593~1652)가 그린 종교화예요. 어린 시절의 성모 마리아가 교육받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즘에는 해가 져도 방마다 전기등을 밝힐 수 있지만, 예전에는 밤에 기름 램프나 초를 켰어요. 19세기에 전구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집 안에서 책을 읽기에는 너무 어두웠답니다. 라투르는 주위가 컴컴한 가운데 촛불이 있는 부분만 눈부시도록 환하게 그리는 기법에 뛰어난 '밤 그림'의 대가였어요.
밤 그림은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을 강렬하게 대비시켜서, 오직 그림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에만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요. 이 그림도 마리아가 오직 책을 향해 온 마음을 쏟고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촛불 장면을 택했을 겁니다. 마리아가 교재로 읽는 책은 아마도 성서나 기도서로 보여요. 그림에 나오는 성모 마리아는 시대와 상관없이 모든 여성의 본보기 역할을 했어요. 라투르가 살던 시기에도 여성에게 독서라고 하면 곧 성서나 기도서를 읽는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인류의 원죄가 성서에 나오는 이브의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죠. 그래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세속적인 책은 특히 여성에겐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어요.
인쇄술 발명으로 묵독 시작
오늘날 우리는 독서를 한다고 할 때 보통 조용히 소리 내지 않고 읽는 '묵독'을 생각하지만, 독서가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유럽에서 책 읽기는 당연히 음독(소리 내 읽는 것)을 뜻했습니다. 조선의 서당에서도 학생들이 낭송하며 공부했듯 말이에요. 문자는 본래 말소리 부호처럼 여겨졌었고, 문장의 길이도 숨 쉴 때를 고려하여 쉬거나 끝맺곤 했습니다.
음독이 쇠락한 것은 인쇄술이 보급된 15세기부터예요. 한 줄 한 줄 낭독하며 책을 읽기엔 쏟아져 나오는 책의 양이 어마어마했던 것이죠. 1500년과 1600년 사이 백 년 동안 유럽 인구는 두 배 가까이 증가했는데, 같은 시기에 출판된 책의 수는 열 배가 넘게 늘었다고 해요. 책이 많아지니 사람들은 점차 여러 책을 눈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정도로 빠르게 훑어보며 읽게 됐어요.
〈작품②〉는 정물화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화가 얀 다비츠 드 힘(1606~1684)이 그린 '공부 중인 학생'입니다. 화면에는 책이 쌓인 책상이 보이고, 이 많은 걸 언제 다 읽느냐는 듯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 손으로 얼굴을 괸 학생이 앉아 있습니다.
'혼자만의 몰입'이 된 독서
한때 독서도 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온 가족이 거실에서 함께 하는 오락이었습니다. 19세기까지도 유럽인의 중·상류층 집안에서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가족이 벽난로 앞에 모여 앉아 시나 소설을 낭독하는 독서 문화가 남아 있었어요. 그러나 음독에서 묵독으로 독서 습관이 옮겨가면서, 점차 독서는 혼자 보내는 시간을 의미하게 됐습니다. 묵독은 책 읽는 사람을 주변에서 고립시키거든요.
18세기 프랑스 귀족 사회의 모습을 즐겨 그렸던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1806)가 그린 '책 읽는 소녀'〈작품③〉을 보세요. 노란 옷을 입은 소녀가 푹신한 의자에 앉아, 책 속 세상에 푹 빠져 있는 모습입니다. 주위 상황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은 듯 보여요.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생각을 품게 되고,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죠.
〈작품④〉는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가 그린 그림이에요.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면서 책을 읽고 있는 여행자를 보여줍니다. 여러 사람이 같이 있는 장소에서 누군가 책을 보고 있으면 쉽게 말을 걸 수 없게 돼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사람처럼, 자신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바로 책 읽기에요. 호퍼의 그림에선 책을 읽는 여인이 아무에게서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어요. 혼자인 것과 외로운 것은 다른 의미랍니다. 혼자인 사람은 외롭고 쓸쓸한 사람과 달리 오롯이 자신만의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으니까요.
▲ 작품2 - 네덜란드 화가 얀 다비츠 드 힘의 '공부 중인 학생'(1628년). 목판에 유화로 그렸답니다. 15세기 인쇄술의 발전으로 발행되는 책이 크게 늘어났어요. /아시몰리안 박물관
▲ 작품3 - 프랑스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소녀'(1770년 추정). 캔버스 유화. 책을 소리 내 읽지 않게 되면서 독서는 점차 '혼자만의 시간'을 의미하게 됐답니다. /내셔널 갤러리
▲ 작품4 -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제193호 차량, C칸'(1938년). 캔버스 유화. 기차 안에서 홀로 독서에 열중하는 여인을 묘사했답니다. /위키아트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윤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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