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만에 모교 교실에서 반창회를 연 게성 61회 3학년 3반 급우들이 자금성에서 담임교사였던
곽광순 선생님(사진 중앙)을 모시고 사은회를 가졌다.
아래 기사는 고교를 졸업한 지 35년만에
모교를 방문하여 재학시 함께 생활했던
당시의 교실에 모여
추억과 우정을 나누는 홈커밍데이 행사를 가졌던
계성고 61회(1974년 1월 졸업) 3학년 3반의 이야기입니다.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여기 싣습니다.
교실이 있는 동산관 앞에서 기념 촬영
학급 단위‘최초의’홈커밍― (계성고) 61회 3학년 3반
11월 14일(토) 16시, 재학 당시 교실에서 추억과 우정 되새겨
11월 14일 오후 4시, 55세 전후의 신사들이 모교 50계단 아래에 모였다. 학교를 졸업한 지 35주년을 기념하여 홈커밍데이 행사를 연 61회 3학년 3반(실장 이용철) 학생들. 이날 모임은 (기수별로 홈커밍데이를 가지는 계성학교 총동창회 역사상) 학급 단위 최초의 홈커밍 데이인데다, 70명 중 거의 절반인 29명의 급우가 행사 시작 시각에 맞춰 교실에 정확하게 나타난 출석률까지 보인 의미있는 행사였다.
교실에 나타난 급우들은 김상욱, 김상곤, 김성구, 김수진, 김영대, 김영식, 박동규, 박성준, 백영수, 서창교, 성연복, 신재웅, 심원필, 안명수, 안순갑, 양담영, 윤한조, 이강일, 이경철, 이국희, 이근재, 이용철, 이창우, 임영균, 전기택, 정경수, 정태연, 최동명, 최영호. 이들 외에도 김옥기, 안해욱, 이해영, 정영석급우가 오후 6시 자금성에서 열리는 2부 행사에 바로 온다는 광고도 있었다. (기사를 쓴 다음날에 확인해 본 결과 모두 33명 참석)
학급 단위 홈커밍 행사를 위해 7명의 준비위원이 네 번이나 사전 회의를 했다. 담임 선생님을 당일 모시기 위해 정태연 급우가 포항에서 마련한 신선한 회를 들고 곽광순 선생님의 자택도 사전에 방문했다. 부산 센텀시티 박건현 동기의 호의로 고급 선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준비하기도 했다.
계성교회 앞의 교가비 주위에서 1차 기념사진을 찍고, 50계단으로 옮겨 여러 장의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다시 본관 앞, 개교 연도가 건물 중앙 현관에 뚜렷하게 새겨진 동산관 앞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이윽고 4층으로 올라가 재학 당시 수업을 했던 추억의 교실로 들어갔다. 지금은 3학년 1반 교실이지만 당시는 3반 교실이었던 건물 맨 동쪽 교실.
이용철 당시 실장의 사회로 1부 행사가 진행되었다. 오랜 세월 외국에 주재했던 KOTRA 김상욱 급우, 이날 행사를 기획한 심원필 급우를 비롯한 홈커밍 준비위원 안명수 급우, 이근재 급우, 박성준 급우의 인사가 있었고, “매스컴에서 많이 본 실물들을 직접 한번 만나보자”는 요청으로 이강일 급우(계명대 음악)와 임영균(중앙대 사진) 급우의 인사가 이어졌다. 모교에 봉직하는 성연복 급우도 한 말씀을 했다. “아파서 못 올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참석해줘서 고맙다”는 치하를 들은 김영대 급우는 발언을 사양했다.
김상욱 : (오랜 세월 영국에 살다가 근래 귀국한 심원필 군의 이야기부터 한번 들어보자는 사회자의 발언에 이어 등장)
영국에서 8월에 귀국했다. 35년만에 만나는 친구도 있구나. 정말 반갑다. 권력도 재물도 다 소용없고,
건강하게 잘 지내면서 오늘같이 반가운 사람들과 즐겁게 사는 게 최고 아니겠나. 다음에 또 이렇게 밝은
얼굴로 만나기를 기원한다.
심원필 : (사회자 -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연출한 심원필 군의 이야기를 들어보세) 뭐 내가 별로 한 것도 없다. 즐겁게
일했다. 오늘 밤10시에 담임 선생님과 찍은 단체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나눠줄 계획이다(참석자들 탄성!).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받아가기 바란다. 안 받아가는 사람 생기면 내가 우편으로 부쳐야 한다. 일 많이 생긴다.
꼭 부탁한다. (폭소)
정태연 : 본래 교복 입고 행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교복 입고 하려면 경주에서 해야 한다. 교복 빌려주는 회사가
교복은 무료로 빌려주는데 그 대신 경주에서 숙박하고 식사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평상복을 입고 지금 진행하고 있다. 다음에는 교복 입고 한번 해보자.
안명수 : 나는 고등학생 때는 별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다른 반에서 옮겨와 좀 낯설었다. 그후 지금까지 동기회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칠판에 다음과 같이 판서- Aller Anfang ist Schwer! Ende gut, Alles gut! 안명수 동기는
고등학교 독일어 교사) 그런데 오늘은 정말 오고 싶더라. 와보니 모두들 주름살 생긴 것 말고는 옛날하고 다들
똑 같다. 앞으로는 우리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하겠다. (박수) 칠판에 써놓은 거 무슨 뜻인지 알제? 학생 때
독어 다 배웠잖아!
이근재 : (사회자- 반 친구들이 가장 안부를 궁금해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우리반의 마스코트 이근재) 이번 모임을
준비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이제는 모임을 정례화하여 만나자. 모두들 건강하고 얼굴빛이 좋구나. 반갑다.
이제 나이가 좀 들었고 사회적으로 서로 그리워할 만한 연배도 되지 않았나. 조금 있다가 회의할 때 우리 모임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진지하게 논의해주기 바란다.
박성준 : 이번에 준비를 하면서 모든 급우들에게 다 연락을 했다. 전화하면서 혹 부정적으로 나오는 친구가 없을까
걱정도 했는데, 한결같이 반갑게 전화를 받더라. 고인이 된 세 친구에게도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안 받더라(웃음).
오늘 회비를 납부한 사람에게는 전화를 안 했다. 안 와도 행사 진행에 손해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웃음)
1년에 한번 만나자. 대구 오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면 서울서 만나도 좋지 않겠나.
이강일 : (사회자- 매스컴에서 많이 보았지만 실물은 자주 보지 못한 친구들도 왔다. 이야기 한번 들어보자. 음악과 이강일
교수와 사진과 임영균 교수 한말씀 하시오.) 넌 앉아라(키가 큰 임영균 교수에게). 주말에는 정말 너무 바쁘다.
동기회가 주로 주말에 있어서 그 동안 잘 못 나왔다. 이번엔 정말 오고 싶었는데 다행히 일정도 좀 괜찮았다.
참석하라는 전화 와서 대뜸 "참석해야지"하고 대답했다. 여러분, 정말 반가워!
임영균 : 여기 이강일 친구하고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 나란히 공로상을 받은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이강일 친구가
김동길과 똑 같이 닮지 않았나(웃음)? 학생 때 강일이가 가지고 다니던 악기 가방을 연 적이 있는데
그 때 얼마나 화를 내던지 지금도 그 장면이 생각난다. 다들 반갑고 또 반갑다. 앞으로 자주 만나자.
성연복 : (사회자- 모교에 봉직하면서 이번 행사를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내가 뭐 한 일이 별로 없다.
사회자의 과찬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으면 당연히 발벗고 나서겠다. 혹시 서문시장에 올 일 있어서
주차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면 나한테 연락해라(웃음). 반갑다, 친구들아!
김영대 : (사회자- 몸이 아픈데도 이렇게 참석한 김영대 군에게 감사한다. 한 말씀 부탁하오.) (그러나 김영대 군,
웃으면서 발언을 사양)
정만진 : (사회자- 총동창회 편집주간으로 있는 4반 정만진 동기가 왔다. 우리 모임 소식을 동창회보에 싣기 위해 취재차
왔는데 교육위원이고 하니 축사겸 소감을 듣자.) 반갑다. 사회자가 소감을 말하라 하니, "부럽다"고 하겠다.
4반에서는 못 하는 일을 하니 말이다. 사실 어제 이병구 총동창회장님을 비롯하여 많은 선후배님들이 참석한
동창회 회의가 있었는데 내가 거기서 말했다. "내일 61회 3학년 3반 모임이 모교에서 홈커밍데이 형식으로
실시되는데, 동창회 최초의 학급 단위 홈커밍이고, 게다가 교복을 입고 진행하기 때문에
아주 뜻깊고 재미있는 행사입니다." 그랬더니 많은 분들이 "취재를 하여 동창회보에 크게 실으라" 하였다.
그런데 와보니 교복은 아니고 평상복인데, 이용철 말만 듣고 총동창회 주요회의에서 공식발언을 했다가
이제 내 신뢰성에 큰 문제가 생겼는데(웃음) 그래도 이런 행사가 얼마나 멋지냐. 한 가지 사실을 더 말하면
교복 입고 행사한다고 해서 일간신문 기자들에게도 연락하여 취재를 오라 할까 하다가 안 했는데(폭소)
이용철 말만 믿고 취재요청을 했었다면 내가 언론인들에게 엄청난 불신감을 줄 뻔했다.(웃음. 이용철 변명-
본래 교복 입고 하려고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다음엔 곡 교복입고 한다!)
그러나 교복 아니면 어떠냐. 정말 멋진 행사다.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한 친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교육적으로도 아주 의미가 있는 행사라고 생각한다. 동창회보에 실어놓으면 다른 기수들, 다른 반들은
한편 놀라고, 그리고 본받아서 같은 계획을 세우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만나서 기쁘다.
왕년의 교실에서 1시간 반 동안 추억어린 정담을 나눈 3학년 3반 급우들은 6시에 2차 집회 장소인 자금성으로 옮겼다. 6시 30분에 담임 곽광순 선생님께서 박수 갈채를 받으시며 나타나셨고, 30분 동안 담소를 나눈 뒤 단체 기념 촬영, 다시 개인별 인사, 그리고 선생님께 선물을 증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곽광순 선생님께서는 “다들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어 고맙다. 그리고 잊지 않고 찾아주어 더욱 감사하며, 다들 건강하고 건승하기 바란다”는 요지의 답사 말씀을 하셨다.
이후 8시 30분까지 식사시간을 가진 후, 3차 집회 장소인 지산동 GOOD TIME(양국신 동기 경영)으로 옮겼다. 밤 10시에는 조금 전에 촬영한 단체사진이 액자에 든 채 참석 급우들에게 전해져 모두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3학년 3반 급우들은 해마다 1회, 그리고 35년후(약 90세), 다시 50년후(약 105세) 오늘과 같은 모임을 가지기로 결의했다. (계성총동창회 2009년 11월호에 게재할 기사의 원문입니다.)
교가비 앞에서
본관 앞에서
50계단에서 (본관이 뒤로 보인다)
50계단에서 (정문이 뒤로 보인다)
재학 당시의 3학년 3반 교실에 다시 모였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급우 70명 모두에게 한 사람 한 사람 전화를 다 거는
성의를 아끼지 않았던 박성준 급우가 칠판에 <지각: 이창우, 이강일 / 조퇴: 無 / 결석:
전남석, 이영주, 전우억, 홍굴레>를 기록한 다음, <떠>를 쓰고 이어서 <드>를 쓰고 있다.
그는 결국 <떠드는 놈: 이근재, 심원필>이라고 적었는데, 심원필 급우는 "홈커밍 준비하면서
맨날같이 만났다고 만만하니까 저렇게 적는다"고 항의(?)했다.
오른쪽에 서서 웃고 있는 급우는 당시 실장 이용철 급우.
그런데 칠판에 <지각생, 떠드는 학생> 등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만주의 윤동주 생가 옆건물(명동소학교 폐교)에 내걸린
칠판에서도 볼 수 있다. <지각생 윤동주, 떠드는 학생 송몽규> 등이
적혀 있다.
(3반 동기 여러분! 개인별 스냅 사진은 당일 촬영을 맡은 사진기사에게 받기 바라오.
너무 많아서 여기 올릴 수가 없소이다. 단체 사진은 여기 올린 것을 다운받으면 됩니다. 정만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