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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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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규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원순 후보(53.4%)는 새누리당의 정몽준 후보(43.02%)를 무려 13% 앞서며 서울시장 자리를 지켜내는 데에 성공했다. 2014년 5월 15일, 박원순 후보는 재선 출마를 선언하며 “서울시민 여러분, 그러나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합니다. 시민여러분께서 저에게 다시 4년의 기회를 주신다면, 그리하여 새로운 서울을 꿈꿀 수 있다면, 지난 2년 6개월 동안 미처 실현하지 못했던 그 일들을 반드시 이루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변화를 추구했고, 앞으로 어떻게 그것들을 이어나가려 하는가?
도시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공동체
박원순 시장에게 변화의 ‘방식’이자 ‘방법’은 마을공동체 복원과 활성화였다. 2011년 10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원순 시장은 ‘서울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회문제들은 공동체가 무너져 생긴 것’이라고 진단했고, 서울시 15대 시정과제에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을 포함시켰다. 6.4 지방선거 선거 유세기간에 '양천 마을넷'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을 만난 자리에선 "도시의 많은 문제 해결하는 게 공동체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 잘 알면 범죄가 일어나기 힘들고 육아도 안전하게 할 수 있다"라며 마을공동체 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마을회사>, <마을, 생태가 답이다>, <마을이 학교다>,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등 그간 출간된 저서로 확인할 수 있듯, 그는 지속적으로 ‘마을공동체’,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이란 화두를 던져왔다. 그것이 박원순 씨가 서울시의 시장(市長)이 되면서 ‘서울시’라는 더 큰 공론의 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취임 직후부터 ‘혁신정책’이라는 명목 하에 마을공동체,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서울시 정책 및 사업들을 발 빠르게 바꾸어 나갔다. “시민의 삶의 질과 행복을 중심 가치에 두고 마을공동체 회복을 핵심시정”으로 선언하고 “도시화로 인해 사라진 사람 사이의 관계망 복원을 통해 공동체를 회복시키고 주민이 참여하는 마을단위 행정으로 모든 시민이 만족하는 도시 서울을 구현한다.”는 것을 정책 목표로 세웠다. 그리고 서울시 마을공동체의 비전과 과제의 실천을 위한 10대 전략을 제시하였다. 2012년 3월 15일에는 마을공동체 지원조례를 공포 및 시행했고, 같은 해 9월 11일에 은평구 녹번동에 마을공동체 종합 지원센터를 개소하고 마을공동체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서울시는 본격적으로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시정 1년도 채 안돼서 일어난 ‘발 빠른 변화들’이었다.
이런 서울시의 정책적 변화들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마을공동체와 협동조합 ‘바람’이 일었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고 가는 부분은 없을까? 나는 ‘빠르게’ 진행되면서 ‘정수(精髓)’를 놓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이 3년째 진행되고 있고, 최근 박원순 시장이 재임에 성공한 이 시점에서 우리가 왔던 길들을 한 번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마을이란 무엇인가
우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커뮤니티는 공동체, 마을과 유사어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커뮤니티’라는 것은 개인주의를 토대로 하여 발전했고 (종교적 사례를 제외하면) 공동체 문화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서구에서 ‘만들어진’ 용어라는 것을 염두에 뒀을 때, 이 ‘커뮤니티’라는 단어에 대한 구체적이고 구분되는 정의를 내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단순히 모여 있는 것을 통칭하여 <그룹>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또래 모임, 동아리, 같은 반, 친목회, 가족 모두 포함된다. 그룹 안에서 각자의 ‘필요(needs)’에 의해 묶여 있고, 그 때문에 상대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혹은 응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커뮤니티(혹은 공동체)>라 규정한다. 커뮤니티가 구체적인 ‘공간(place)’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을 때 해당 지역을 일컬어 <마을>이라 한다. 이러한 마을이 형성되는 데는 특정 요소, 조건들이 작동한다.
① 내가 먹고 사는데 필요하다
대구경북연구원 오창균 연구위원은 <영남일보(2014.5.7>에 기고한 글에서 공동체(community)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에게 경제적 실익을 주면서 상호 신뢰, 협력, 소통, 배려, 나눔을 소중한 가치로 인식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경제적 실익”이다.
우리가 한 달 동안 해외이동학습 차 머물렀던 네팔은 대부분이 산악지대고 농사를 짓기가 무척 어려운 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 암보떼 마을의 경우 해발 700m 가량의 산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계단식 밭을 일구어 감자 등을 수확해 주식으로 삼고 있고, 집집마다 1, 2마리의 버팔로, 네다섯 마리정도의 염소, 그리고 다수의 닭을 키우면서 단백질과 우유, 치즈, 요구르트 등을 얻고 있다. 암보떼 마을 사람들이 먹고 사는 데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농사’였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이웃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산 속이고, 농지정리가 되어 있지 않고 석유 보급이 원활하지 않아 기계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 즉 먹고 살기 위해선 이웃과의 협력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신경을 써야 했다. 언젠가 내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 분명하기에, 다른 사람들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다. 이웃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할 수밖에 없다. ‘신경을 쓰는 것’이 생존에 필수적인. 여러 명이 모여서 협력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마을을 만들고 유지하는 하나의 조건이었다.
② 나 아니면 안 돼
‘내가 먹고 사는데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 상황은 커뮤니티, 마을을 정의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단단하게 묶어주는 특징이자 두 번째 조건을 만들어낸다. 소속감이다. 마을/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없으면 마을과 그에 속한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이상의 타격, 손해가 갈 것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나 아니면 안 돼.” 라는 태도. 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강한 소속감을 부여하고, 이는 곧 개인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존재감에 대한 자각은 다시 행복함과 연결된다.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 다른 사람에게 내가 중요하다는 것의 체감. 사람이, 혹은 사람을 통해서 해오던 많은 것들이 돈으로 대체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많은 사람들의 행복도가 떨어진 것은 ‘존재감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돈으로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곧 “너 아니어도 돼. 너 없어도 돼”라는 사실상 부정으로 이어지니까.
‘자급(自給)’과 ‘자립(自立)’도 이러한 조건들 위에서 가능하다. 내가 먹을 것을 직접 취할 수 있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조건.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되지만 수없이 재차 확인되면서 강화되는 소속감과 상호의존성이란 감정적 연대. 그러니까 다시 먹고 사는 문제. 먹고 사는 문제를 마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은 마을 사람들 자신을 당당하게 만든다.
③ 누구나 필요는 있다.
커뮤니티/마을의 세 번째 특징은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y)이다. 이것 역시 첫 번째 조건(먹고 살기 위해선 서로가 필요하다)에서 파생된다. 이를 직접적으로 담고 있는 우화가 있다.
두 사람이 추운 겨울날 산 속을 헤매다가 눈밭에 쓰러져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A는 쓰러져 있는 남자를 버리고 가자고 하지만 B는 그를 데려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A는 혼자 가고 B는 쓰러진 남자를 등에 들쳐 업고 가는데, 마을 언저리에서 B는 혼자 가다 얼어 죽은 A를 발견한다. B는 등에 남자를 업고 걸어야 했기에 업힌 남자의 체온과 자신에게서 나는 땀과 열로 추위에 얼어 죽지 않을 수 있었고, 등에 업힌 남자 역시 B가 업고 왔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혼자 가는 것을 택했던 A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결국 둘의 ‘상호의존’이 둘 모두를 살 수 있게 하는 결정적 요소였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커뮤니티의 특성을 잘 함축하고 있다.
커뮤니티/마을은 싫은 사람, 미운 사람, 당장 어떤 필요성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내치지 않는다. 품는다.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까. 개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수용하고, 그것을 통해 커뮤니티는 다시 넓어지고 강화된다.
④ 공유자원
암보떼 마을뿐만 아니라 네팔의 작은 마을들은 공통적으로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자원 – 이를테면 마을 숲이나 개울과 같은 - 을 갖고 있었다. 이 공유자원은 마을 주민들 전체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마을 숲의 나무들은 겨울을 날 수 있게 하는 땔감을 제공해 주고, 마을의 물은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인다. 자원을 사람 수대로 1/n 하는 대신 각자 알아서 필요한 만큼 취하고, 어떤 이유로도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공유자원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사용할 총량을 정하고 마을 사람들 전체의 논의를 통해 조정한다. 공유자원은 마을을 유지하는 물적 조건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사용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서로를 확인하고 마을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여기서 또한 마을의 다섯 번째 조건이 도출되는데, 공유자원의 규모와 양에 따라 그것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규모’가 결정된다. (암보떼 마을의 경우 20가구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⑤ 시간은 쌓인다
커뮤니티/ 마을을 구성하는 마지막 조건은 ‘시간성’이다. 시간의 축적(蓄積). 비욘드네팔 대표 서칫 sir는 마을을 ‘어치브(achieve)’와 ‘어스크라이브(ascribe)’라는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둘을 나누는 결정적인 요인은 ‘유산(遺産)’이다.
‘어스크라이브’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고향(故鄕)으로 치환할 수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등 대대로 자신의 가족이 살아왔기 때문에 ‘나’는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할아버지, 아버지 등 선대의 맥락에서 커뮤니티/ 마을 구성원들에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커뮤니티/마을에 행한 일들이 마치 유산처럼 남아 내려오면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반대로 ‘어치브’는 기존의 고향 마을을 떠나 새롭게 정착하고 생활한 ‘제 2의 고향’이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 살고 함께 시간을 보내도 그것을 결코 고향(ascribe)과 같아질 수 없고, 기존의 커뮤니티에 속할 수 없으며, 때문에 그것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마을’이라고 통칭할 순 있지만 전통적인 마을과는 좀 거리가 있다. 6, 70년대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급속한 산업화에 의해 대규모의 이농현상이 발생한 한국에선 ascribe는 거의 모두 소멸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고, 직장에 따른 이동이 잦아 achieve도 찾아보기 힘들다. achieve가 ascribe가 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은 2, 3대를 걸쳐 내려가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가능하다. 유산이 만들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이상이 내가 네팔에서의 시간들을 정리하면서 찾을 수 있었던 마을을 이루는 조건들이었다. 물론 네팔의 마을만 마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특수성이 있기에 적용할 수 없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팔의 마을은 여전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기에, 여기에서 출발해 한국사회에서 사라진 마을의 복원을 모색하는 것은 유의미하다. 그렇다면, 마을을 만들겠다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마을을 만들 수 있을까
2014년 1월 24일 [마을공동체 종합 지원센터]에서 발행한 <마을은 형성되고 있는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 2012년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 등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었고, 이 조례에 의해 ‘마을공동체 종합 지원센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724억 규모의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 2013년 9월 3일까지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 제안자 및 마을공동체지원센터 교육 수강생, 그리고 마을상담 신청자는 실 인원 7,779명이며, 이중에서 공모사업 제안자로 등장한 사람은 6,580명이다. 2012년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 제안자로 등장한 사람은 1,570명, 2013년 공모사업을 통해 처음 등장한 사람은 5,015명이다.
- 2013년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은 6개 영역 15개 사업을 통해 공모사업이 진행되도록 계획되었다. 공모사업에 신청한 주민제안은 총 1,945개였는데, 이 중에서 776개의 주민제안이 선정되었다.
말 그대로 ‘사업’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마을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운동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우리 세상에 대한 대안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최근 마을공동체운동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동반한 정책이 되었고, 이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져가고 있다. 그러면서 애초 ‘운동’이었던 것이 점차 ‘사업’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 충분히 의심해볼 필요와 동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립(自立)과 자치(自治)를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론 재정 지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2012년부터 2013년까지의 마을공동체 사업 운영 현황을 분석해보니 지원 대상 사업의 약 70%가 2012년 한 해 동안 운영되었고, 30%에 해당하는 사업만 2013년까지 이어졌다. 마을공동체, 커뮤니티라는 것이 많은 양의 자본을 투입한다고 만들어지는가? 공동체와 커뮤니티의 핵심 요소는 ‘자발성’이다. 근데 도대체 어떻게 ‘만들기’를 하겠다는 것이고, ‘사업’을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 없다. 공동체와 커뮤니티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것이다.
물론 서울시 마을만들기 사업 역시 ‘자발성’과 ‘주민주도’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 주민주도성이 살아나고 있을까? 서울시 마을지원 사업은 공모를 통해 주민들의 사업제안서를 접수하고, 현장조사를 진행한 후 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한다.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권한은 실국이 갖고 있으며, 사업별 특성에 따라 심사기준과 방법을 취하긴 하나 대체로 심사위원에 의한 서면심사가 진행된다. 사업의 절반 이상이 심사위원에 의한 서면심사만 진행되었는데, 주민들은 심사 과정에 대한 정보 없이 결과만을 통보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일방적인 지침과 선정, 평가 등은 시민사회를 규율하는 장치가 되고 있는 것 아닌가? ‘기획→계획→예산편성→제안접수→심의․선정→지원→평가’라는 집행과정은 철저한 관주도 방식이라는 문제제기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또한 지금과 같은 공모방식은 ‘선정되면 돈 많이 지원해준다는데, 우리 한 번 해볼까?’하는, 기회주의적인 심리를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곧 일관성을 담보할 수 없고 일회성으로 그칠 수 있다는 위험을 담보한다.
마을을 상상할 수 없는 공간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서울시 전체 가구 약 350만 가구 중 집을 소유한 가구는 약 143만 가구이고, 전월세 가구는 약 199만 가구이다. 약 57%의 가구는 정주하지 못하고 전월세 시세에 따라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마을공동체는 어떤 의미일까? 아파트소유자 중심으로 움직이는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가 주도하는 아파트공동체는 세입자들에게 어떤 느낌일까?
서울시의 약 26% 정도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서울의 주거 면적 중 1/4정도는 마을을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이 된 것인데, 이걸 내버려두고 나머지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마을은 무엇일까? 그런데 거기에도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행정의 공평성이나 형평성 관점에서 봤을 때 적어도 낮은 곳으로 먼저 흘러가야 하는 돈인데, 엉뚱하게 중간에 생긴 마을이라는 곳에서 정체가 생긴 것이다.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노동 시간이 긴 도시다. 더군다나 출퇴근에 1시간 가까이 걸릴 정도로 비싼 집값 등으로 인해 일터와 삶터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먼 곳으로 일을 하느라 동네에 머물 시간이 없는데 누가 마을을 책임질까. 마을에 무슨 일이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도 한 번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이 시간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결국에는 직장을 다니지 않는 40대 여성들을 위한 ‘마을’인가.
만들기 대신 돕기
네팔에서 발견한 마을이 만들어지는 핵심 동력은 자발성, 시간, 그리고 경제활동이었다. 하지만 서울시 마을공동체사업에서 마을을 고르는 ‘심사’는 오히려 주민들의 자발성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가지고 오고 있었다. 네팔과 한국이 다르듯, 마을마다 특수성이 있다. 심사라는 것은 심사위원이 갖고 있는 하나의 기준에 맞춰 판단을 하는 것이다. 이때 마을 각각이 갖는 특수성은 간과되기 쉽다. 서울시는 ‘열려있어야’ 한다. 하지만 거기서 멈춰야 한다. 열려있기‘만’ 해야 한다. 지역의 다양한 커뮤니티들이 손을 내밀었을 때 잡는 데 그쳐야 한다. 정부 및 행정, 즉 관의 개입이 먼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또한 마을(어스크라이브)이 만들어지고 안정화되는 데 시간의 축적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뒀을 때, 서울시민이 안정적으로 세대를 이어가며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마을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사람들이 마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레 마을과 마을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할뿐더러, 세대를 거쳐 내려갈 수 있는 안정적인 삶터를 이루는 데 최소한의 필요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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