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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의 목포여행 후기
2004,2005,2006년 매해 이러저러한 여행을 늘 해왔다. 아름답거나 어렵거나 즐겁거나 힘들거나 인생은 그런것들중의 하나쯤 되는거 같다.
우리 4명 나를 포함해서 기숙이 영이 찬옥이 언제부턴가 우리의 만남이 정례적인 일이 되었다. 계절별로 봄이면 봄대로 여름은 물놀이 대로 가을엔 우수에 젖은대로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나름대로 정해진 스케쥴이 생기게 되었다.
2007년 내게 엄청난 일이 벌어져 -남편의 죽음- 감히 생각하기도 싫고 도저히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고 난 평탄한 인생의중간에서 엄청난 폭탄에 휘청거리면서 대전으로의 새로운 이사를 감행했다.
시간의 쓰나미에 휩쓸리듯 작년의 그 일 이후로 지금에 이르러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네들과의 여행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아무것도 생각말아야지. 이젠 잊어야지 하면서도 가끔씩 생각나는 흔적 때문에 가끔 머리를 한대씩 얻어 맞는다. 그래도 바쁘게 일을 하고 쉼없이 내 생활의 안락에 때로 취해지는 걸 보면 이렇게 적응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언젠가 미용실에서 본 잡지에서 우연히 최진실의 얘기- 새벽에 잠에서 우연히 깨면서 잠을 청할 수가 없어서 그냥 주방으로 나와 마구 아침준비를 한다는 그녀의 얘기가 참으로 솔직하고 담백했다. 그녀는 역시 솔직한 여자다.
가끔씩 그럴때가 있다. 새벽에 잠시 깨어 머릿속이 멍해질때 내가 무슨기억속에 무슨믿을수 없는 현실의 어중간한 즈음에 서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어쩌질 못한다.
얼마전 작고한 소설가 박경리씨가 죽기전에 지었던 시속에 노년에 홀가분함 기분좋음 그런걸 느꼈다는 그녀의 작품을 접하면서 그런 홀가분한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나의 정신세계는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 초연함 정말 내 나이에 맞지 않는 마음의 내 놓음 그런 지경까지 온 것 같다. 내 마음이 정말로 허탈함이랄지. 아무 욕심도 생기지 않는 달지 그런 기분에 들어올때가 있다.
더욱더 욕심 부리지 않는 그래도 되는 60대가 되면 아마도 스님처럼 평온을 유지하지 않을까?
나는 서대전에서 새벽 6시 30분행 기차를 타고 논산에서 그녀들은 합세하였다. 서대전역에서 역무원이 친절하게도 자초지종을 얘기 하니 찬옥이가 끊은 동반석에 그대로 앉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새벽에 출발을 해서 피곤한 것도 있지만 목포에 도착해서 아침식사를 하고 나니 하루 일정이 제법 길고 여유가 있어 참 좋았다. 기차에서 멋을 부리려고 커피한잔 마시려 해도 목포가 종착역이어서 그런지 먹을 게 떨어졌다고 해서 맛도 못보고 목포에서 사람들이 붐비는 집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그리고 사진 한방!!
마침 시티투어가 있어 오전만 하는 시티투어를 신청해서 그곳의 해설사 송선희씨에게 삼학도에 가서 해설을 듣고 나니 내가 해설사 담당할때는 그들의 요구사항이 너무 많아서 귀찮고 싫었는데 고객의 입장에서 듣고 나니 새삼 여행의 내용이 살아난다.
삼학도 무슨 유행가 가사에서 들은거 같은데 이난영선생이 목포의 눈물을 불렀단다. 목포의 눈물은 알지만 이난영선생이 부른것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무슨 동산정도인데 그곳에 이난영 선생을 추모하는 동산이면서도 은은히 옛날 이난영 선생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오래된 고전 축음기에서 나오는 낭랑한 목소리가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천상의 목소리라나.
유달산에 들러 아래를 내려다 보니 일본식 건물이 제법 있다. 우리 나라 주민을 착취하기 위해 세웠던 동양척식회사 건물이 국사책에서 본듯도 하고 친숙하다. 지금은 무슨 역사박물관으로 쓴다고 한다. 여기 저기 일제시대의 잔재가 남아있었다. 어쩌면 여기가 항구도시라서 일본과의 통행도 용이한 측면에서 이 곳을 전략적인 장소로 이용했을 수 도 있다.
여기도 인구25만의 도시 주변의 대도시는 광주가 있고 공주처럼 구도심과 신도심이 있어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게 느껴졌다. 시티투어 운전하는 아저씨가 여행 후반 그러니까 오후의 스케쥴에 이용하라고 외달도를 추천하였다. “사랑의 섬”이라 부른다는데 그 유래를 살펴보니. 연인이 섬에 들어가 배가 끊기면 나올 수가 없어 그렇게 명명하였다는데 아담한 섬이 마침 우리들의 여가를 잘 이용하라고 배려한 듯 하였다.
산책을 하고 아구찜을 하는데가 있어 매콤한거 좋아하는 기숙이 추천대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찾아오는 배를 따라 목포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항구도시이니 회를 빼놓을 수 없어 우리는 저녁으로 회를 제일 비싼걸로 시켜먹고 다시 돌아올 준비를 하였다.
어쩌면 우리에게 여행은 무엇을 보는게 목적이 아니고 그저 우리만의 시간을 내는 것으로 여행의 충족을 하는 것 같다.
돌아오는 길 기차안에서 못해본 우리만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커피한잔 시켜놓고 우리만의 얘기에 푹 빠져있는데 주변사람들의 눈치가 보인다 시끄러운지 신경쓰여서...
그래도 아침보다는 사람들이 워밍업이 되어서 그런지 훨씬 밝아 보인다. 한 부부가 제천에서인가 탑승을 했는데 남편도 자상한데 아이가 4살 2살 정도 계속 울고 보채니까 부모가 안절부절하면서 정신을 못차린다..아이 엄마는 지쳐서 잠이라도 청하고 싶은데 감기는 눈을 어쩌지 못하고 아이 달래기에 여념이 없다 쩔쩔매는 게 남편도 마찬가지 마치 나의 지난 과거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저랬었지 남편이 저리도 자상했는데 가끔씩 생각에 젖다보면 눈물이 곧 터질 것만 같다. 잠시 마음을 진정하면서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한유해진 내 자신과 모양새를 되돌아보게 된다.
역시 대도시에 오니 좋다. 교통도 편리하고 어디 다녀오기도 얼마나 좋은지 다시한번 나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찬옥이가 예약과정에서 실수한걸 빌미삼아 우리 셋은 자꾸 찬옥이를 약올린다. 잘 할때까지 총무하라고 말이다
잠시 마음을 돌려 내 일상으로 돌아서 깊은 잠에 빠지고 이렇게 간간히 여행도 좀 해주고 마음도 좀 고요히 하면서 살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조만간 경자언니와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남편같은 그녀, 어린이날엔 어린이날대고 무슨 애경사가 우리집에 있을 때미다 배려를 잊지 않는다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는지 ...
그래도 늘 지켜봐 주는 분이 있어 넘 다행이고 늘 칭찬해주고 잘 할 수 있다 격려해주고 어떤때는 마치 그녀가 남편의 역할 까지 하고 있다는 생각마져 든다.
뜸뜸히 주말에 나를 찾는 일을 못하면 주중에라도 꼭 한번 찾아와 주는 지원군
신록에 눈이 부셔 아름다운 계절에 그런 고마움을 생각하고 또 내 생활의 활력을 찾기위한 노력도 마다하지 않아야겠다 내가 활기가 있어야 우리 아이들도 건강하니 말이다.
다녀온후로 5. 9 적어봄
(기행+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