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1일(일요일) 맑음
오늘 아침 울산을 출발하여 낙남종주 13주차 덕천 주유소에서 원전고개까지를 함께 마친 회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사천 시 곤양 면 버스 터미널에 내렸다(18:23). “광율아! 현욱이 떡당시 되걸랑 119신고 하지 말고 울산으로 연락해라 구조대 편성해서 곧장 달려올게” 말이 환송이지 걱정 반 기우 반 아닐까? 하긴 그동안 나의 전력으로 보나 걱정이 많을 퇴지
‘걱정들 하지 마이소 내 이 지리산을 향한 짝사랑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 하리라’
회원들은 목욕을 하기로 하였으나 시골의 하나 뿐인 목욕탕은 계절이 여름 탓인지 휴업중이라 그대로 출발을 한다.
터미널 매표소가 한산하다. 뎅그러이 우리 둘 뿐이다. 이미 하동행 버스가 다 가고 남은 한대는 구례까지 연결에 맞지 않아서 택시를 타고 진교 면으로 가기로 하나 몇 안 되는 택시도 전부 운행 중이라 없다.
목욕을 하지 못한 몸에서 쉰 냄새가 왕등을 하지만 가벼운 흥분 속에 긴장도 된다. 하동에서 구례행 막차가 20시30분인데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서로 내색을 하지 않고 기다린다.
잠시 후 도착한 나이 지긋한 기사분의 개인택시를 타고 오늘의 산행은 마치고 드디어 제2의 목적지를 향한 출발이다(18:51). 이런저런 애기들로 낯선 곳에 대한 불안함과 지루함을 던다. 기사분도 울산에 연고가 있으시다 며 정겹게 맞아준다. 야음동에 있는 집을 전세주고 자기는 고향에서 개인택시로 생활을 하시며 울산도 한달에 한번 꼴로 방문을 하신단다.
‘아저씨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즐겁게 사세요!’
진교 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하동행 버스가 우리가 도착할 것을 알고 있었냥 기다리고 있어 서둘러 표를 사서 승차를 하니 곧바로 출발이다(19:13).
서산의 해도 이제는 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남해고속도로 진교 나들목을 통해서 잠시 달리던 차는 하동 나들목을 내려서는 섬진강을 왼쪽에 끼고 19번 국도를 달린다. 아깝다 조금만 이른 시간 이였으면 낙조도 볼만 하였을 텐데.
하동읍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완전한 밤이 되었다(19:40). 외지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의 터미널답지 않게 매우 후지다. 대합실도 엉망이다.
구례행 출발까지는 50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불편함을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에 대한 설렘으로 참는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자 구내매점들도 철시를 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오늘의 막차 인갑다.
얼마 되지 않은 승객을 싣고 구례행 버스가 출발하자(20:30) 승강구 쪽 앞좌석에 앉은 딸과 함께 탄 아줌마가 기사분과 큰소리로 계속 이야기를 한다. 자기는 돈도 있는데 인출기가 이상이 있는지 카드로 현금이 찾아지질 않는다는 둥, 작년에 쌍계사 계곡을 갔었는데 잘 방이 없어서 고생을 했다는데 그래서 오늘도 잘 곳이 걱정 이라하자 기사 분은 더 웃긴다. 화엄사 종점 자기들 숙소의 아줌마께 부탁해서 방을 잡아 주겠단다. 꽃뱀이가? 의심하는 내가 이상한가? 조용히 여흥을 즐기면 안 되나?
어둠이 내린 섬진강변의 강 건너 광양 쪽의 불빛이 희미하게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박경리씨의 ‘토지’ 무대인 평사리 최 참판 댁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지 않을까? 조영남씨의 흥에 겨운 ‘화개장터’에서 아이쇼핑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화개 정류소에서 몇몇 승객이 내리자 버스는 곧장 출발이다. 환한 도시의 상가 같다. 무리져 오가며 붐비는 피서객들로 도시의 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새로이 건설 했는지 교각에 휘황찬란한 가로등도 요란한, 말로만 듣던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 다리가 있더만 건너지 않고 계속 섬진강을 왼쪽에 끼고 달린다.
얼마간 만에 토지면 이정표가 지나가더니 널따란 다리를 건너 붉은 도시의 불빛이 나타나고 중천 하늘에 보름달이 환하게 맞아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음력 보름이다.
와! 내일 지리산 산장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며 소주잔에 담긴 달을 마셔봐?
9시 20분이 넘어서 구례 터미널에 내리니 대합실의 불은 꺼지고 스산한 느낌마저 던다. 내일 아침 차편의 시간을 확인하고는 터미널 대합실을 나서니 화개와는 달리 조용하다.
내일 이른 새벽 출발을 위해 가까운 곳에 여관을 잡기로 하고 불나방 모양 무작정 간판의 불빛만 찾아 나선다. 이름(예일각 모텔)과 건물 밖 네온은 그를 싸 하고 주차장은 외지 차량들로 만원 이지만 안에 덜어서니 영 아니다. 다행히 요금은 싸다. 서둘러 샤워와 간단한 세탁부터 한다.
“형님 이 밤을 그냥 보낼 수 있나?”
“니 먼말하노 지금! 자유! 낭만! 뭐..... 아무튼 그런 것 좀 즐겨보자!”
“내일부터 묵는거 부터가 고생 아이겐나? 객지에 왔어만 지방 특산물을 묵어야한다 아이가”
“그래 머가 좋겠노?”
“아까본께 송어횟집이 즐비하던데”
숙소를 나서지만 주변에 횟집이 보이지 않는다.
“머 이러노 아까는 많았는데”
“아까 지나오면서 본께 족발 집에 문을 열어 났던데” 결국 족발을 먹기로 하고 뒤돌아 오면서 마트에 들려 과일이라도 사기로 하고 마트 앞에 이르니 이름만 봐도 반가운 새파란 ‘거창 사과’가 박스에 포장돼 포개져 있다. 그래 맞아 사과는 거창 사과가 맛이 좋지.
“광율아! 과일은 너무 안 무겁겠나? 차라리 참고 그냥 가면 안 되겠나!”
“아따 형님! 걱정하지마라 내가 짊어지고 갈께! 고생하고 가져간 만큼 안 마싰겠나”
“고맙다! 미안해서 안 카나” 그래서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한다꼬!
주먹보다는 작지만 먹음직한 진보라의 자두를 한 봉지 사서 나와선 족발 집으로 향한다.
이수형님, 회장님과 통화를 하는 우리를 보더니 마침 족발집 주인아줌마가 잘 아는 택시 기사가 있단다.
일반 버스는 공원 입장료를 내면서 전부 내려 한사람 한사람씩 표를 끊고 다시 타야 출발하느라 여간 복잡하지 않고 시간도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면서 어지간하면 택시를 이용하라며 소개를 해주신다. 요금(25,000원)을 문의해 본 결과 큰 무리가 없어, 06:00 터미널 출발 성삼재행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던 당초 계획을 수정하고 시간의 절약과 힘을 비축한다는 미명하에 금전의 힘을 빌리기로 하고 내일 아침 5시 50분에 예약을 하고는 족발 한사라에 잎새(울산의 무학소주 화이트처럼 전라도 보해소주 상표명)한 병으로 둘만의 출정식을 대신한다.
“위하여!”
마음은 벌써 지리산에 안에 있다.
*8월 2일(월요일) 맑은 후 폭우
<개요>
성삼재(06:18) - 2.5km - 노고단(08:06) - 6.3km - 화개재(11:32) - 4.2km - 연하천산장(14:25) - 3.6km- 벽소령산장(17:25) (총거리 : 16.6km, 총시간 : 11시간 7분)
눈을 뜨니 5시가 막 지난다. 장비를 꾸리고 나서니 광율이의 폰이 울린다. 기사분이 당도 했다는 연락이다. 약속 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맞춰 주셨다(05:45).
성삼재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는 기사 아저씨가 차를 돌리며 그곳 식당 종사자들이 공무원이라 8시가 넘어야 영업을 한다며 편의점에 들려 김밥이라도 사란다. 가까운 곳에 편의점이 보이지 않아 라면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시간이 아까워 다시 차를 돌려 성삼재로 향한다.
구례들에 들어서 오른쪽 화엄사 쪽을 보니 안개와 가스가 찼다. 음! 아침안개는 맑음을 알리는 조짐이지 아마?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 본다.
장도의 계획 날을 잡아 놓고 보름 전에 대피소 예약을 시도 했지만 인터넷 사이트의 접속 폭주로 예약을 하지 못하여 비박 장비를 준비하여 강행하기로 수정을 하였건만 또 다른 장벽은 때 맞혀 올라오는 10호 태풍 남테우른(라오스의 강 이름이라 함)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가.
다행히 태풍은 1일 쯤에 세력이 약해져 지리산과는 먼 동해안으로 빠져 나갔다. 하늘도 나의 작은 소망을 가상하게 여기셨는가보다.
공단 매표소에 이르도록 이른 아침이라 도로는 한산하게 우리 뿐 이다. 입장료가 1인 3,600원 이다. 약간 아까운감도 있다. 1,600원이 국립공원 입장료 이고, 2,000원은 문화재 관람료란다. 문화재 관람료는 화엄사등 절을 구경하는 값인 모양인데 우리들 등반 객과는 상관없는 것 아닌가?
수도암 입구를 휘돌아 오르막을 오르며 지리산 품안에 안기는 성삼재에 당도하니 벌써 이곳에는 우리보다 더 부지런한 많은 사람들이 와있다(06:13).
이른 아침의 산중의 시원한 공기가 상쾌하다. 조망은 그리 멀리 볼 수 없지만 가슴은 뛴다. 몇 해 전 이곳을 저 노고단에서부터 공단 직원의 차로 실려 내려왔지. 무릎이 풀려서.
자! 출발이다(06:18)
“지리산을 지키는 산신령이시여!
이 못난 소인
산을 사랑하고 산을 타는 즐거움에 눈을 조끔 뜨기 시작하여
이제사 두발로 일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넘치지 않고, 자만하지 않을 것 이며 산의 베풀음을 배우고
그리하여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욕심 없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완만한 경사에 돌로 포장된 도로는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보도블록이 깔린 도시의 인도 같다. 그러다보니 가벼운 차림에 운동화, 심지어 구두차림의 여자들도 보인다. 성삼재 휴게소에 드라이브차 왔다가 길도 좋고 노고단까지는 거리도 얼마 되지 않으니 산책처럼 다니러 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렇게 무겁고 큰 배낭을 메고 하는 산행은 지난해 2월 덕유산 눈밭의 종주를 하고는 처음이라 나 자신도 걱정이 많다. 과연 3일 동안을 메고 산행을 할 수 있을지. 욕심만 앞세운 과욕은 아닌지.
이번 종주의 동반자 광율이도 지금 시작은 하지만 아마 마음속으로는 나에 대한 걱정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퉁이를 돌다 말고 벌써 얼굴에 땀이 송송한 나를 보더니 쉬잔다. 페이스를 맞혀준다.
평소 아침식사를 이른 시간에 하는 습성이 있어 배가 설설 고파온다. 도로를 가로질러 계곡수가 지나간다. 계곡수를 한 모금 떠서 목을 축이며 손을 담가본다. 시원하다.
도로 오른쪽 옆에 나무로 만들어진 전망대 위에서는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소리 나게 크게 웃으며 담소를 즐기고 있다.
평탄하던 등로가 왼쪽으로 휘어지며 다시 오르막을 시작할 저음에 오른쪽에는 계곡이다. 물도 졸졸 흘러내린다. 조식을 해결하기 로하고 배낭을 풀어 자리를 잡는다.
국립공원 내에서는 허가된 곳이 아니면 취사를 금하는 지라 조금 계곡을 따라 올라가 밑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버너를 펴고 라면을 삶아 된장에 풋고추, 양파를 찍어 먹고 자두 한 알로 아침을 해결한다(07:15~35).
내려다보니 우리가 올라온 계곡입구에 아줌마 두 분이 배낭을 풀더니 행동 식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피식...
우리보다도 준비가 완벽하고 경력도 더 나은 것 같다. 복장하며 자세가 딱 잡혔다.
왼쪽으로 난 널따란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소로를 따라 오르막을 오른다. 역시 돌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잠자리들이 앉아서 발이 다아도 날지를 않는다.
더위 먹은 잠자리가? 아니면 새벽이슬에 날개가 듬뿍 젖었나?
한 아이도 이상했는지 엄마에게 이런다. “엄마! 잠자리가 날지 않아!”
두런두런 사람소가 많이 난다. 노고단 대피소가 나타나며 모두들 아침식사와 설거지에 여념이 없는 등반 객들로 분빈다(07:45).
새벽의 염려와는 달리 아침 햇살도 밝게 펴져있다.
앞을 내려다보니 화엄사쪽 계곡은 안개가 자욱하고 가까운 차일봉은 또렷이 보인다. 그래도 가슴은 후련하다. 새벽에 미쳐 못 본 뒷 볼일도 좀 보고 장비도 제 점검한 후 전진이다.
지리산을 두 번이나 찾았지만 중도에 낙오를 하여 도중에 일정을 단축해야했던 추억이 있지만 내 이번만큼은 계획된 코스에 일정을 모두 마치리라.
배낭의 짓누르는 무게와는 달리 마음은 가볍다.
하늘이 환해지더니 노고단 안부이다(08:06 1,507m 27.9℃).
아픈 추억이 깃던 이곳. 연전에 노고단 휴식 년에 따른 일일 탐방객 사전 400명 예약 접수를 하고 안내 산행을 함양 음정에서 벽소령을 통해서 입산 했다가 이곳 노고단을 채 당도 하기도 전에 무릎이 풀려서 겨우겨우 당도하니 출입 예약시간이 지난 다음이라 그대로 공단의 비상 차량에 실려서 후송 되었었다.
이곳 역시 산 아래쪽의 조망 권은 멀지 않다. 인월쪽 용소, 안심소에 안개가 짙다.
노고단이라는 말은‘늙은 시어머니 제사터’의 한자말에서 온 것으로, 고려 때에는 옛날부터 산신에게 제사를 노고단에서 지내기도 했단다.
나무로 울타리를 쳐두고 사전 예약된 한정된 사람만이 갈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멀리서 바라만 보고 지나간다. 친구 중헌이의 평소 말대로 노고단이 어디 안가고 그기 있는 한 언젠가는 가볼 수 있겠지?
노고단을 오른쪽에 두고 내려서니 완만한 내리막에 잡목이 터널을 만들어 놓은 너들 지대다.
현재까지는 어제의 산행 후유증이 생각보다는 없다. 산을 알고부터 언제나 가슴 한구석을 차지했던 지리산 종주! 해마다 기회다 싶으면 계획만 잡다간 보낸 날들! 이제사, 오늘에사 난 지리산 등성이를 걷고 있다. 새삼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그늘져 햇빛도 들지 않는 잡목 속에 꽃들이 피어있다. 색도 곱다.
이름을 알 수 있을까? 누군가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도감을 만들어 놓았겠지?
터널이 끝나고 키만 한 철쭉이 펼쳐지더니 오른쪽에 황장산(942m)과 하늘 선을 그린 봉우리들, 그 아래로 계곡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며 차츰 모습을 덜어낸다. 멀리 구례의 들과 인가도 보인다.
나무그늘아래서 쉰다. 4명의 젊은이가 가픈 숨을 몰아쉬며 신간을 하고 있다. 그중 리더 인 듯한 한명은 행장을 제법 갖추었고 나머지는 신발도 운동화 착용에 경험이 없었나보다. 리더가 지쳐서 쳐지는 일행을 나무라며 타이른다. 대학교 3학년들로 인천에서 왔단다. 그중 한명은 울산이 고향이라며 반가와 한다. 짐작컨대 리더는 복학생쯤 대나보다. 어제는 노고단 대피소서 잤고 오늘은 뱀사골 대피소까지란다. 그래 저렇게 산을, 지리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젊음이 있기 때문 아닐까?
키 작은 나무들이 평원을 이룬 것 같은 돼지평전이 환하게 펼쳐진다(09:01).
이곳은 ‘돼지풀’이라는 이름을 가진 풀이 많이 자라 붙여진 이름이란다(치밭목 산장지기님의 설명에 따르면).
저 멀리 오른쪽으로 보이는 하늘선이 삼신봉(1284m)에서 영신봉으로 가는 줄기 같은데?
조망을 마치고 잠시 내려서니 그늘진 나무 터널 안부에 오른쪽 소로를 따르면 피아골 산장길 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홀로 비스듬히 서있다(09:21).
이제 등로는 육산길이라 걷기에 편하다.
한 모퉁이 돌아서 안부에 이르니 등로를 나무로 다리처럼 지나게 해둔 임걸령이다(09:35 1,320m)
널따란 평상처럼 쉼터도 만들어 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샘터에서 물을 보충하고 있다. 목을 축이고 손을 담그고 얼굴의 땀을 훔쳐내 본다. 시원하다. 오래도록 담그니 손이 차고 시리다. 이 높은 곳에 샘이 있다니. 그래서 지리산은 명산인가 보다.
다시 서서히 오르막이다. 점차 나무 그늘이 사라지고 햇볕이 따갑다. 오른쪽으로 깊고 깊은 피아골을 조망하며 걷는다. 짙은 녹음의 골짜기에 파묻히면 아무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빨치산의 소굴로 안성맞춤 이였을 것이다.
광율이가 앞서 나간다. 나의 보조에 맞추느라 좀 답답하리라. 조급증을 떨치며 쉬엄쉬엄 내 페이스대로 오른다. 이런 여유로움을 즐기자.
점점 오르막이 가팔라진다. 노루목이다(10:34 1,460m).
조금 비켜서 앉아있는 반야봉을 오르는 길목이다.
바위위에서 광율이가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도착하자
“형님은 반야봉 갔다 온나 나는 여러 번 갔다 와서 안가도 된다”
“내 체력으로 되겠나? 반야봉 탐내다 다음일정 망칠라”
“배낭은 여기 나두고 빈 몸으로 갔다 오면 1시간이면 족하다”
“아이 고마 참자 이다음에 또 기회 있겠지”나도 바위에 덥석 주저앉는다.
인천 대학생 4명도 뒤따라 당도 한다. 오른쪽으로 피아골이 잘 내려다보이는 바위 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오이를 하나씩 꺼내 먹는다. 산에 와서 다른 사람에게 물이며 간식을 얻어먹는 것은 큰 결례라 했지만 오늘따라 오이가 맛나 보인다. 그새 구면이라고 염치불구하고 손을 내민다. 오이향도 향긋하다. 몹시도 먹고 싶었나보다.
학생들은 유유자적이다. 허긴 오늘밤을 뱀사골에서 묵기로 했다면 여유가 많겠지. 잠시 내리막이다. 등로 오른쪽 양지녁에 무덤이 한기 있다. 광율이의 설명에 의하면 공원 내 유일한 무덤이란다. 난 항상 쫓기듯 바삐 지나다니느라 기억에 없는 무덤이다. 가지런히 벌초를 했고 무덤 앞에는 종이컵 소주잔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보아 누군가 다녀갔는지도 얼마 되지 않았나보다. 무덤 주인이 이곳 지리산과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이리라.
작은 안부를 지나서 바위를 미끄러지며 겨우겨우 내발로 오르니 삼도봉이다(11:06).
경남, 전북, 전남의 3도 경계비가 바위 한가운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도 삼도를 한꺼번에 밟아본다. 왼발은 전북에, 오른발은 전남에, 쌍 스틱으로는 경남에.
수다소리로 시끌벅적하더니 어려보이는 대학생 남여 4명이 뒤따라 당도 한다. 서울서 왔단다. 그내도 벽소령 산장서 오늘밤 1박 한단다. 예약이 안 되었지만 우리도 그곳에서 잔다고 하니 저녁이 기대 댄다며 환하게 웃는다.
내리막 안벽은 계단이 설치되 있다. 계단을 내려서는데 그리 젊지도 않은(광율이 보다는 서너 살 위인 것 같다)부부가 급히 뒤따라 내려온다. 입심 좋은 광율이가 말을 건넨다.
울산 석남사 앞마을에 산단다. 휴가를 맞아 부부가 왔단다. 전날 순천 친구내서 1박을 하고 그 친구의 차편으로 새벽에 화엄사에 도착하여 코재를 거쳐서 오는 중이며 1박 2일 코스라 라며 서둘러 앞서간다. 그 시간에 출발하여 벌써 여기라면? 평소에도 산을 즐기는 부부 인갑다. 사람들도 참 여물어 보이지만 보기에도 좋다. 광율이와 그 젊은이의 대화를 들으며 뒤따라 계단을 내려간다.
평상복의 아주머니가 작은가방 하나 달랑 둘러매고 7~8세로 보이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내려가고 있다. 어린아이에 비해 엄마라면 나이가 많아 보인다. 꼭 산사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한가한 모습이다.
저리도록 오고 싶은 산인가? 이 지리산이!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노?
계단을 내려서 잠시간 평지가 이어진다. 녹음의 터널을 빠져나오니 이곳도 등로를 나무로 다리처럼 만들어 놓았다. 왼쪽계곡으로는 뱀사골 산장으로 가는 삼거리인 화개재다(11:32 1,325m).
치밭목 산장지기님의 사견임을 전제로 한 설명에 의하면 뱀사골의 지명 유래는 그 골짜기에 비암사라는 절이 있었으며 지금은 비암사터가 남아 있고, 비암사 골짜기가 구전으로 전하여 내려오면서 비암이 뱀으로 변하여 뱀사골로 변했지 않았을까 라고 한다.
다시 오르막에 너들 지대다.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터널을 만들었다. 경사가 더 해지더니 마저 올라서니 토끼봉이다(11:51).
지리산 서부 쪽의 최고봉인 반야봉에서 동쪽에 있다하여 십이지상 ‘子’‘丑’‘寅’‘卯’의 토끼‘卯’를 따서 ‘卯峯’ 즉 토끼봉이란다(치밭목 산장지기님의 설명).
등로가 계단식으로 경사가 급하게 내려간다. 역시 철쭉터널을 지나니 지루하게 너들 지대가 연이어 나온다.
안부를 지나 1453봉에 올라서니 바위위에서 4명의 청년이 오이를 먹으며 쉬고 있다. 오이를 하나씩 건네주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벽소령 산장에서 묵고 오는데 새벽에 나서면서 산장의 식수가 동이 나서 많이 모자란다는 안내 방송을 들었다며 식수를 충분히 준비해 대비해서 가라며 고맙게 일러준다.
바위지대를 지나 철 계단을 오르니 또 너들 지대다. 다행히 얼마 만에 육산길이다.
배가 고파온다. 점심시간을 훨씬 지났지만 연하천에서 취사를 해야만 함으로 참고 가야한다.
한 청년이 바위에 걸터앉아 간식을 먹고 있다. 조금 전 물이 떨어졌다기에 조금 나누어준 그 청년이다.
“배가 너무 고파 파이를 먹고 있는데 목이 말라 죽겠어요 물 좀 주실래요?”
꼭 거지 동냥하는 꼴이다. 그토록 부실한 준비로 산을 오르다니 밉다.
나도 이젠 꼭 한 모금 남았다며 지나치지만 마음이 무겁다.
이제는 말라버린 총각샘을 지나 명선봉을 오른쪽에 두고 우회를 한다. 다행히 평탄한 등로에 그늘이 많다.
나무계단 내리막이다. 지난번 이 계단을 하나, 둘 세면서 오르다 무릎이 풀려서 혼이 났지. 쓴 웃음이 나온다. 또 세어볼까? 에이 관두자 아직도 이런 것을 세면서 지루함을 들어야 하나. 이제는 지루함도 초월(?)할 수 있는 캐리어가 되었지 않나?????????
오른쪽에 철망이 둘러쳐진 자연보호구역이다. 급하게 내려가던 계단이 완만하게 이어지며 인기척이 많이 난다.
야호! 연하천 산장이다(14:25 1,490m).
늦은 점심을 취사해서 먹느라고 여기저기서 북적인다. 우리도 자리를 잡아 햇반(3,000원씩)을 두개 구입해 라면 두개를 삶아 말아 먹는다. 포장 김치를 사서 먹기로 하고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품절이란다. 라면에는 김치가 맛을 좌우 하는데 아쉽다.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고 풋고추에 양파도 어디냐.
여유롭게 커피도 끼리 먹고 거금을 투자해 시원한 켄맥주(4,000원씩)도 하나씩 사서 아까워 홀짝홀짝 마신다.
굵은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진다. 한가해졌던 마음이 싹 가신다. 고산에서는 일기가 불순하다고 했는데. 설거지를 대충하고 젊은이들이 일러준 데로 물병마다 가득이 식수를 담고 나선다(15:38). 그새 한 시간이 넘었다. 취사시간이 생각보다는 많이 소요된다.
여느 숲 속의 오솔길이다. 배도 부르고 오늘의 계획된 여정도 얼마 남지 않았고 콧노래가 절로 나올 것 같다.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는데 아빠가 두 남자 초등학생을 앞세우고 가고 있다. 두 아이에게는 평생에 남을 아주 소중한 유년시절의 추억이 되겠지?
안개가 지나간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위가 희미하게 보인다. 정말 비가 올려나?
왼쪽에 큰 바위의 형제봉 정상을 두고 아래로 우회한다(16:26 1443m).
잠시 내려섰다가 바위틈에 오르니 중학생 또래의 남자와 그의 아버지가 쉬고 있다. 먼저간 광율이가 이쯤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없다. 나도 그들과 앉아서 쉰다. 잠시 뒤 듬직한 아주머니가 혼자 크게 웃으며 올라선다. 한 가족이다. MBC 라디오의 ‘전유성과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들으며 오던 중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코너의 사연을 듣고서 웃었다며 크게 웃은 연유를 자기 남편과 아들에게 들려준다.
친정 할머니가 백내장 수술을 하여 병원에 문병을 가서 이름을 대고 환자를 찾으니 간호원들이 아무도 모른다기에 분명히 이 병원이 맞다 며 우기도 찾지를 못하여 병실마다 직접 뒤져서 찾았단다.
그러나 할머니 침대에 달려 있는 환자 신상카드를 보고는 자기가 알고 있는 이름과 달라 의아해
“할머니 이름이 김소족이 뭐야?”
할머니는 어쩔 줄을 몰라 하더란다. 할머니들의 시대에는 여자 이름을 사내처럼 따로이 작명을 하여 부르는 것이 잘 없었다.
딸이 둘 이여서 언니는 큰 조까니(작은아이라는 의미 같음), 둘째는 작은 조까니로 불려 지다가 호적상에 올리면서 작은이 ‘소’로 변했고 조까니와 비슷한 한자 발음을 찾다보니 ‘족’자가되어 이름이 ‘소족’즉 소의 다리가 되였는데 평소 할머니가 부끄러워 다른 이름을 사용하여 그 이름이 진짜인줄 알았던 손녀가 즉 다른 이름으로 찾았으니 찾지도 못했을 뿐 더러 우스운 진짜이름으로 인해 온 병원이 웃음바다가 되였다는 사연 이였다. 나도 따라서 넉넉하게 웃다가 일어선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진다.
한 구비 치고 오르니 광율이가 바위위에서 젊은 부부와 담소를 하며 쉬고 있다. 같이 합류를 하여 바위를 내려서니 녹음사이로 저만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벽소령 산장이 보인다.
구름이 한점 낮게 깔려 지나가고 푸르름에 싸인 산장의 전경이 외국 영화 속에서나 보던 유럽의 산속 풍경 같기도 하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광율이는 잽싸게 배낭카바를 하고는 내 달린다. 나는 산장이 시야에 들어와 얼마 남지 않았다 싶고, 조금 내리다 말겠지 하는 게으른 생각으로 그대로 진행을 한다.
비는 그치지 않고 더욱 굵어진다. 이미 온몸이 비와 땀으로 젖었지만 나도 할 수 없이 배낭 속 장비를 생각하여 우의를 커내 입는다.
그래도 오늘의 여정을 얼마 남기지 않고 비가 와서 다행이다.
오르락 내리 락에 너들 지대의 연속이다. 비까지 와 제끼니 미끄럽고 마음만 바쁘지 진행은 더디다.
신발까지 흥건히 젖어 온다. 천둥까지 치대며 빗줄기는 더욱 세차진다.
오, 맙소사! 이러면 오늘 밤 비박은?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고 여유로 와야 하는 것을 와이리 조급해지노.
산장에는 빨간 우체통이 비를 맞고 서있고 처마 밑에는 비를 피하는 사람들로 북적된다(17:25).
테라스에는 비닐로 천막을 치고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했지만 과연 이 비를 얼마동안이나 지탱을 할지.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하여 제대로 된 천막 하나 구비하면 안 되나? 명색이 국립공원 대피소라면서.
탈의실에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겨우 안정을 찾는다. 계속해서 등반 객은 밀려오고 취사장도 발을 드려 놓을 틈이 없고 처마 밑도 만원이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산장 직원은 안내방송을 통해 음정으로 하산을 종용하지만 몇몇을 제외하고는 움직이지도 않는다.
한 아주머니가 도착하여 배낭만을 내려놓고 다시 나선다. 일행 중 무릎이 풀린 낙오자가 있어 다시 마중을 가야 한단다. 비를 피하고 섰던 젊은이 두 명이 선 듯 따라 나선다. 대단한 용기다.
“산을 제대로 배웠구먼!”광율이가 훈수한다.
얼마 후 그들이 한 아저씨를 들쳐 업고 들어오자 모두들 박수를 쳐준다.
나는 나의 설악산 귀때기청봉 사건이 불현듯 스쳐지나가며 머리카락이 쭈빗 해진다.
산장에 예약이 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천당과 지옥의 차이 같다. 창문 넘으로 침실을 드려보니 가족끼리 오락도 즐기며 한가한데 처마 밑에서 비만 피하는 신세라.
“비만 안 왔으면 비박으로 오늘 저녁 직이 주는데”
광율이의 한탄이지만 어쩌겠나. 운명에 오늘 우리의 일진이 이러하다면.
예약자의 입실이 완료되고 환자, 여자와 어린아이 그리고 노약자 순으로 예비자를 선별한다. 그러고 나서 마루에서 앉아서라도 잘 사람을 5명씩 열을 지어 앉힌다. 연령순으로 선별하는데 겨우 우리에게도 순번이 와 그 자리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입실료를 지불한다(7,000원씩).
그것도 잠자리라고 해결을 했으니 저녁을 요기라도 하기로 하고 라면을 두개 챙겨서 취사장으로 향하지만 자리가 없다. 식탁 모서리에 겨우 양해를 구해 걸터앉아 라면이 체 퍼지기도 전에 9시부터 소등을 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런 5분전이다.
그래도 저녁을 먹어야 자지. 소주 한 병을 까서 라면을 안주삼아 반주로 마신다.
크..... 이눔의 소주 맛은 변하지 않는다 말이야.
자리로 돌아 왔지만 우리자리는 없어졌다. 우리 자리를 표시해두고 갔는 것도 아니고 모두들 칼잠을 자고 있다. 비집고 덜어가 겨우 겨우 눕는다.
밖에는 아직도 소나기가 줄기차게 내린다.
“광율아 잘 자라 내일은 내일 걱정하자”
*8월 3일(화요일) 흐린 후 비
<개요>
벽소령산장(06:35) - 6.3km - 세석산장(11:41) - 3.4km - 장터목산장(16:20) (총거리 : 9.7km/ 26.3km 총시간 : 9시간 45분/20시간 52분)
내내 뒤척이다 이른 새벽에 볼일도 볼 겸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비는 멎었다.
처마 끝에 비닐을 치고 비박을 하는 사람들,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자는 사람들, 자기들만의 노하우로 하룻밤을 보내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모두에게 소중한 하룻밤 인 것을 천양지차다.
갑갑하기도 하여 현관 옆에 비를 피해 돗자리를 펴고 혼자 자는 사람 옆에 가만히 누워 보지만 쉬 눈이 감기지 않는다.
부지런한 이들은 벌써 출발 준비를 한다. 시간을 확인하니 5시가 훨씬 지나있다.
마루로가 마음은 아프지만 곤히 자는 광율이를 깨운다. 스프와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비가 오기 전에 서둘러 나선다(06:35).
삼정리쪽 계곡으로는 가스가 꽉 찼다. 신발은 아직도 젖어 있지만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몸은 가볍다.
촉촉이 젖은 자갈길 등로에는 고여 있던 빗물이 흐른다.
도시는 아직도 새벽일 텐데. 두 딸아이들은 아직도 한 밤중일 텐데.
풀잎에 맺혀있는 이슬을 따며 기분을 밝게 가지려 좋은 생각만 하려고 애쓴다. 새벽의 지리산 기운을 받으며 상쾌하게 걷는 것도 오늘의 보람이 아닐까?
왼쪽으로 음정으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여기도 서있다.
한 모퉁이 돌아서 잠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몸이 아직 덜 풀렸는지 숨이 쉬 갚아 온다.
1495봉에서 자두 한 알씩으로 입가심을 하며 잠시 쉬는데 아침햇살이 펴진다(07:23). 오늘 내내 햇볕에 구워도 좋으니 그대로 있으면 좋으련만.
중년의 아저씨가 세 명의 중, 고등학생을 앞세우고 올라온다. 학생들의 표정은 매우 힘들어하는 표정이다. “오늘 또 어제저녁처럼 자고 갈레, 아니면 부지런히 가서 오늘 집에 갈레”엄포 아닌 엄포에 무거운 발길을 때어 놓는다.
아빠와 어린 초등학교 여학생이 다정하게 뒤따라올라 온다. 날씬한 몸매에 빨간 상의, 검정 바지, 스틱을 짚고 머리에는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폼부터가 딱 잡혔다. 일류 산꾼 자세가 나온다. 저런 어린 나이에도 아빠를 따라 산행을 자주 했나 보다. 귀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다시 해가 보이지 않는다. 풀숲을 헤집고 내려간다. 해도 없고 음산한 밀림을 걷는 기분으로 잠시 내리막을 내려가니 선비 샘이다(07:43 1,435m).
한창 공사 중이다. 물이 좋으니 산장을 지으려나 보다. 어제 저녁 많은 비로인해 여기서 텐트를 치고 야영한 팀이 많았나 보다. 텐트를 걷는 사람, 샘터에서 설거지 하는 사람들로 북적된다.
어제 비와 땀으로 젖은 옷을 꺼내 물로 행구고 바람에라도 말려지게 배낭에 매달고 고양이 세수라도 하고 일어선다.
한 구비 오르막을 돌아 나무 그루터기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데 아까 아침에 보았던 빨간 상의의 여 아이와 아빠가 올라온다. 저 어린 여 아이와 우리가 진행 속도가 비슷하다 말인가(?). 하도 인상적이고 감명을 받아 말을 걸어 본다.
서울에서 왔으며 이름은 ‘우현정’이고 초등학교 4학년 이란다.
“현정이 파이팅! 이 다음에 미스 코리아 나와라 아저씨가 팬 되 줄께”
<10년후 미스코리아 우현정과 아빠>
아래쪽 계곡으로는 가스가 꽉 찼다. 조망을 할 수 없다. 너들 지대를 지나 바위에 오르니 망바위다(09:03 1,535m). 큰 고사목이 눈길을 끈다.
망바위를 내려와 칠선봉(09:21 1,558m)에 이르니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철 계단을 오르는데 젊은 부부가 올라간다. 남자가 군화를 신었다. 남편이 휴가를 받아 부부가 지리산을 왔단다. 신발을 본 광율이가 점잔께 타이른다. 산에 맞는 장비를 갖추라고.
바위군 을 지나고 너들 지대가 몇 차례 오르내리 막을 하더니 시야가 확 터지며 왼쪽으로는 신을 맞이한다는 영신봉 정상이고 오른쪽에는 작은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짐승들이 땅을 헤집어 놓았고 울타리를 쳐서 사람의 출입을 막는 보호구역이다.
“형님 우리 정상에 올라 가보고 갔가? 낙남때 와도 못 갈꺼 아이가!”
“야야 관두자 하지 마라 카는 일 하면 탈난다. 니 그러다 또 벌금 할래.”
멀리 세석평원의 산장이 이국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산장에 덜어서니 조금 이런 시간이라 식탁이 여유가 있다(11:41).
옆 팀은 용인에서 온 부부와 남편의 남자 친구 한명이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끊이고 있다. 친구가 산 꾼인데 친구 따라 부부가 동행을 했단다. 한 낮이지만 얼큰한 찌개에 소주한잔 얻어 마신다. 그게 마지막 병이었다며 그들의 소주가 동이 났다. “광율아 우리도 한잔씩 하자 우리 소주 꺼내 온나”
두병씩 네 병을 가져가서 어제 저녁에 한 병을 비웠으니 세 병이 남아있다. 두병을 가져와 안주 발에 금방 바닥을 보인다.
햇반을 사서 꽁치 통조림을 넣고 라면을 삶아 오랜만에 김치를 얻어서 얼큰하게 포식을 한다.
헬기가 앉아 있다. 10살짜리 아이가 행방불명이 되어서 삼일 째 찾고 있단다. 어제 저녁 같은 그 큰비에 살아남아 갰나? 아이의 보호자가 어떻게 했길래 이런대서 아이가 길을 잃노.
햇볕이 난다. 배낭에 메 달았던 빨래를 널어 말리고 샘터로 내려가 간만에(?) 이도 닦고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한다. 시원하다.
멀리 촛대봉에는 구름이 왔다 갔다 한다.
빨간 우체통은 편지를 한통 부치고 싶은 충동을 준다.
엽서라도 몇 자 적어 띄어 볼까?
누구에게?.......
<영신봉과 세석산장>
바지도 다시 반바지로 갈아입고 가뿐이 나서는데 영신봉 쪽에도 구름이 지나간다(13:40). 잠시간 보였던 해가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돌계단을 천천히 올라간다. 뒤돌아 세석평전을 감상하고 영신봉과는 다음달에 낙남 완주를 통해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한다.
촛대봉(14:05 1,703m)에 이러니 연화봉, 삼신봉은 완전히 구름에 쌓였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이국정취가 물씬 나는 세석산장을 사진에 담아 본다.
나무 터널 속에 난 계단식 내리막을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밧줄이 메여진 암릉을 오르니 계단이다. 장터목산장에서 오는 사람들과 교우가 많아진다.
다시 안부를 지나 암릉을 오르는데 백발에 검정색의 등산복이 잘 어울리는 할아버지가 노익장을 자랑하며 혼자서 내려오신다. 몸매도 날씬하다. 참 아름답게 늙어 가시는구나. 나도 닮고 싶다.
또 밧줄을 잡고 암릉을 올랐다 철 계단을 오르니 1,667봉이다(15:13). 가까이서 천둥과 번개소리 들린다. 산 아래로는 소나기가 퍼 붓나보다. 그러나 여긴 햇볕이 살짝 지나간다.
<광율도사 지리산에 터잡다>
한 중학생 또래의 아이가 휴대폰을 통화한다. 엄마와 통화를 하나보다.
아이의 아빠가 “야 임마! 엄마는 내 마누란데 나부터 바꾸어 줘야지!”
같이 쉬던 등산객들이 까르르 웃는다.
통화하는 아이를 보더니 모두들 여기 저기서 휴대폰을 꺼내서 통화를 시도해 보지만 되지 않는다.
“학생! 네 번호가 뭐야?”
“016요”
“에이 그러면 016만 되나?”
폰에 안테나는 전부 세워지는데 통화가 안 된다며 여기저기서 불만투성이다.
여자 대학생이 연화봉이 멀었냐고 묻는다.
“다음 봉우리가 연화봉 같은데 왜?”
“연화봉을 지나야 장터목산장이라면서요.”
“그렇게 빨리 내려가고 싶어서 어떻게 이런 높은 산에 왔노! 힘들게 올라 왔으면 당연히 내려가는 것도 힘들게 내려가야지 천천히 내려가라”며 점잔을 빼본다. 내가 뭐 도통했나? 주제에 왠 충고?
동행의 남학생들이 아저씨 말이 맞다 며 천천히 가잔다.
철 계단을 내려서 완만한 내리막을 지나 안부에 내려선다. 점점 안개가 짙어진다. 오르막 돌계단을 올라서니 연화봉이다(15:19 1,667m). 이정표가 반긴다. 그냥 사진만 찍고 지나쳐 내려온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진다. 안부를 지나 등성이를 오르는데 안개에 쌓인 고사목들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이곳 지리산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겠지?
광율이는 먼저가 오늘밤 자리를 잡으려고 먼저 내달렸다.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어제와는 달리 서둘러 우의를 꺼내 입는다.
등로도 육산길이라 다행이다. 어제의 경험상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위해 종종걸음으로 달려 보지만 무거운 배낭과 우의로 인해 금방 지친다.
나무 터널을 빠져나와 운동장 같은 공터를 지나 산장에 도착하자마자(16:20) 건물 계단 아래 있는 취사장 벽에 붙어있는 선반에 배낭을 풀어 자리를 차지해 두고 광율이를 찾아 나선다.
취사장 안은 벌써 분빈다. 밖을 나오니 광율이가 플라스틱 돔 지붕 아래 시멘트 바닥 테라스 제일 안쪽 구석자리에 그 어떤 비바람이 몰아치도 끄떡없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오 신이여 우리에게도 이런 영광을 주시나이까.”
니 진짜로 오늘 큰일 했다. 나란히 깔판을 깔고 그냥 누워만 있어도 푸근하다.
바로 옆에는 대전서 온 젊은이가 둘 있다. 그들이 가져온 팩 소주로 추위부터 들자며 번데기 통조림으로 한잔씩 때린다.
이곳은 폰이 연결 된다. 회장님과 이수 형님에게 안부전화를 하고 걱정 하고 있을 딸아이들에게도 무사하다고 전한다.
오늘 하산을 한다던 군인부부가 옷을 갈아입고 산장 안으로 덜어간다. 집사람이 예약 했더라면 서 그래서 자고 가기로 했단다. 그런 마누라면 산에 데리고 다닐 만하겠구만.
앉은 자리에서 햇반에 참치 라면을 삶아 저녁을 먹고 나니 예약석 나무 침상도 오늘 같으면 부러울 것도 없다.
중산리쪽 계곡을 따라 잠시 내려가 졸졸 흐르는 계곡 수에 얼굴과 발의 땀을 닦고 온다. 피로가 확 가시는 것 같다.
이제 남은 소주는 한 병뿐이고 주위에 사람들은 많고 옆에 자리를 잡았다가 마루에 잔다며 안으로 덜어간 대전 청년을 찾아 남은 소주를 얻어 보려고 나서지만 찾을 수 없다.
이 경황 중에도 광율이는 소주보다 ‘19만원’짜리 쌘달에 관심이 더 많다.
“형님 방에 들어가려면 쌘달은 들고 덜어 가라”
아쉽지만 한 병으로 점심을 함께 먹었던 용인 분들을 불러 한 모금씩 목만 축인다.
내일 아침 많은 비가 계속 된다면 일정의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침낭을 깔고 안으로 들어가 누우니 포근한 게 눈이 절로 감긴다.
테라스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자장가삼고 산중의 이틀째를 소중하게 접는다.
*8월 4일(수요일) 맑음
<개요>
장터목산장(04:19) - 1.7km - 천왕봉(05:17) - 4.0km - 치밭목산장(08:18) - 6.2km - 유평(13:11) - 3.5km - 유평매표소(14:22) (총거리 : 15.4km/ 41.7km 총시간 : 10시간 3분/ 30시간 55분)
다른 등반객들의 짐 꾸리는 어수선한 소리에 잠을 깨고 일어나 화장실로 나서니 비는 멎어 있고 구름 주위로 간간히 별도 보인다.
광율이를 깨운다.
“아따 형님 코를 와이리 기리노 한잠도 못 잤다 아이가”눈을 뜨자마자 호령이다.
“피곤한데 우짜노 나는 완전히 골아 떨어져서 잘 잤다”
장비를 챙기고 배낭을 꾸려서 나서니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다(04:19). 헤드 랜턴으로 어둠을 밝히고 돌계단을 앞만 보고 오른다.
비로소 천왕봉을 오르는구나.
지리산의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 제석봉에 이러지만 정상에서 비켜 서 있는 이정표만 보고 광율이의 설명으로 구경을 대신한 체 어둠에 묻혀 우두커니 서 있는 등로 주변의 고사목들만 보고 지나친다(04:37 1,806m).
암릉 구간을 오르내리다 철 계단을 지나니 다시 암릉이다.
“어이 저기 저거 도깨비불 아니가?”
뒤 따르던 한 폐의 무리에서 누군가 소리 지른다. 우측을 내려다보니 중산리 마을 인가의 여러 개 불빛이 어둠에 빛을 발하고 있다. 그 사람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만 살았다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던다.
암릉을 타다가 중간 중간 철 계단을 오른다.
어디쯤인가? ‘통천문’ 즉 하늘로 덜어가는 문이 있다고 했는데. 철 계단이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계속된다. 아마 설치된 계단을 통해서 오르다 보니 이제는 지나지 않는가?
계단이 끝나고 바위 지대를 오르는데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주위의 봉우리들이 하늘선을 그리며 나타나고 날씨는 생각보다는 맑게 갠다. 바위들이 자연적인 계단이 되였다. 바위들을 폴짝 건너뛰기도 하며 서서히 올라서니 정상이다(05:17 1,915.4m).
아! 천왕봉!
그리도록 내가 짝사랑 했던 천왕봉에 내가 섰다.
정상석 주변으로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발을 들여 놓을 자리가 없다. 어찌하여 우리도 자리를 잡고 일출을 기다린다. 멀리 에는 짙은 구름이 띠를 두르고 있다. 동쪽 구름위로 붉게 여명이 밝아 오며, 붉은 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05:34).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나오기 시작한다.
아! 그런대 다시 모습을 감춘다. 이대로 못 보는 것이 아닐까? 모두들 아쉬워한다.
잠시 후 다시 구름 속에 붉은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05:39).
해다!
3대에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
그것도 처음 올라 이런 장관을 볼 줄이야.
그 어떤 표현으로 이 희열을 표현하랴!
그렇케 어렵고 힘들게 올랐지만 가슴 뭉클한 진한 감동을 가슴에 안고 정상비에 새겨진 문구처럼 한국인의 기상을 듬뿍 받고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고는 이제는 하산이다(05:58).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오른다. 대개의 사람들이 이 코스를 선택하지 않기 때문인가 하산 길 등로는 한적하다.
뿌듯한 마음에 발걸음도 가볍다. 이 맛에 지리산을 찾아 오르나 보다.
좁은 안부에 이르니 부부 한 쌍이 쉬고 있다 일어선다. 파란 물통과 컨테이너 한 동이 있는 것을 보아 여기도 대피소를 만드나 보다.
다시 오르막을 오르니 등로 오른쪽 평평한 곳에 텐트가 한 동 처 있다. 등산객은 일출을 보기위해 천왕봉을 올랐는지 비어있다. 마저 올라서니 사방이 후련하게 조망되는 중봉이다(06:28 1,875m).
조금 전 만난 부부와 젊은 청년 두 사람과 그들의 여성 짝꿍 한사람이 쉬고 있다.
아침 햇볕을 듬뿍 받고 있는 천왕봉의 모습과 이른 새벽에 지나온 제석봉의 하늘선은 또렷하게 보이나 백무동쪽 계곡은 운무가 호수를 만들어 놓았다.
조금 전 안부에서 만난 부부가 사방을 조망하며 습자지 같은 종이에 씨줄이 좁은 간격으로 그어져 있는 처음 보는 지도를 펼치더니 GPS인지 나침반을 데어 보더니 노고단 쪽을 가리킨다.
내가 짐작 했던 것 보다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장비들로 보아 전문 산악인 인갑다. 대구에서 왔단다. 먼저 내려간다. 젊은이 들이 무작정 이 길을 택했다며 전주까지의 교통편을 문의한다. 대원사 주차장에는 진주까지의 차편뿐이라고 일러준다.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내려간다. 철조망이 쳐져있는 줄기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그 줄기는 광율이의 설명에 따르면 지리산 태극 종주때 쑥밭 재에서 하봉을 그쳐 그곳으로 올라와 천왕봉을 올랐단다.
호전한 하산 길은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다.
안부에 내려서 천왕봉을 올려보니 구름이 한점 지나간다.
작은 봉우리에 오르면 천왕봉을 올려다보고 또 한 구비 치며 안부에서 올려다보고. 좋다. 정말 좋다.
오늘은 고픈 배도 참을 만 하다. 좁은 철 계단을 내려가는데 미끄럽다 경사가 너무 기우려져 있다.
움푹 폐인 등로를 지나다 뾰족이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오른쪽 무릎을 정통으로 박고 만다. 눈물이 찔끔 나온다. 혹여 걷지 못하면? 은근히 걱정이 된다. 광율이가 스프레이 파스를 잽싸게 뿌려준다. 너무 좋다고 까불었나?
써리봉을 지난다(07:36 1,642m).
원래 이곳 토박이 주민들은 농기구 이름인 써래봉으로 부른단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산행지도에 써리봉으로 표기 되더니 이제는 아예 써리봉이 되었단다. 치밭목 산장지기님의 설명이다.
계곡을 따라 잠시간 내려오니 큰 소나무 밑에 있는 두개의 벤치가 인상적인 치밭목산장이다(08:18).
작지만 아담한 건물의 마당에 식탁에 3개 놓여있다.
먼저 당도한 대구 부부는 막 나서고 아저씨 4명이 식사는 마쳤는지 한가로이 맥주를 즐기고 있다.
샘이 조금 떨러져 있다. 왼쪽으로 계곡을 잠시 내려 가야한다. 등목으로 땀을 훔쳐 낸다. 물을 길어와 우리도 늦은 아침을 변함없이 햇반에 라면으로 준비를 한다. 이곳에도 김치가 없다. 아저씨들이 마른 멸치와 큰 봉지의 김치를 주신다. 오랜만에 김치로 포식을 한다.
뒤따라 중봉에서 만났던 남여 젊은이 세 사람과 대학생 한 쌍이 당도하고 바로 뒤에 노부부 한 팀이 내려온다. 참 다복해 보인다. 설악산이며 어디든지 노부부가 함께 산행을 즐긴단다. 두 분이서 손수 밥을 지어 드신다. 참 다정해보여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캔 맥주를 입가심을 하는데 산장지기님의 설교가 시작된다.
산행을 하다 사고로 죽는 사람을 분류하면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단다.
첫째 무식한 사람. 둘째 게으른 사람. 셋째 까부는 사람. 넷째 술 먹는 사람. 가슴에 와 닫는다.
그러고 여러 가지를 애기해 주는데 대충 정리하면 이렇다.
1.산행을 하면서 식사 시간을 정하지 말고 고프면 먹으란다.
2.구간 시간을 정하지 말고 그때그때 몸 상태에 다라 산행을 하란다.
3. 저 체온증에 항상 대비해 여벌의 옷을 챙기고 비상식량은 2일치 정도 준비하란다.
4.산행기를 쓰려면 세심하게 쓰고 엉터리 정보를 달지 말란다.
5.등산객이 아니고 이정표 따라 걷는 탐방객 이란다. 세계 어느 국립공원을 가도 이곳만큼 이정표가 있는 곳이 없단다. 진정한 등산은 지도 한 장과 나침반으로 목표점을 찾아가며 하는 산행을 등산이란다.
6.한부로 이름을 짓지 말라. 일테면 태극 종주니, 황금능선이니 하는 것. 그 지방 향토민이 쓰는 지명 이름이 분명히 있단다.
수궁이 가는 면도 있지만 일면 수궁을 못할 면도 있다.
아무튼 이곳이 아니면 듣지 못할 좋은 이야기 많이 듣고 갑니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니 시간이 2시간을 훌쩍 지나있다(10:17).
너들 지대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통나무 외나무다리가 있다. 그 위쪽으로 계곡을 가로 지르는 길이 있지만 일부러 다리 위를 기우뚱거리며 건너간다.
계곡을 왼쪽으로 보내고 나무 계단을 내려가니 조금 돌아서 다시 계곡을 만난다. 이곳쯤에 무체지기폭포가 있어야 하는데? 계단을 통해 내려오다 보니 우회하였나 보다. 한 무리가 올라온다.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만을 듣고 잠시 내려서니 나무로 만든 무체지기 다리로 계곡을 건넌다(10:45).
다리를 건너 잠시 내려오는데 폰이 울린다. 김내곤 선생의 안부 전화다(10:49). 빠른 길을 인도해 준다. 전화까지 주시고 고맙다.
대원사 4.5km 라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비누칠하여 머리도 감고 양치질도 한다. 바람 한점 없이 무덥다. 그냥 풍덩 빠지고 싶다.
저만치 아래로 계곡수가 흐르고 산허리로 나무다리가 놓여있다(11:35 1,005m). 오른쪽 아래로 골짜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보인다. 그 끝이 대원사 인가?
오른쪽에 계곡을 두고 왼쪽으로 등성이를 넘는다.
산죽사이로 통나무를 가로 질러 만들어 놓은 계단이 급하게 내려간다. 통나무 사이의 흙이 폐여서 없어 지다보니 육상 경기의 허들정도는 아니지만 통나무를 넘기가 여간 성가시지 않다. 그것도 지루하게 길게 연결되어 있다.
계단이 끝나니 오른쪽에 다시 많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소리만 들어도 시원하다. 광율이가 한참을 앞서다 보니 보이지 않는다.
계곡에 한 가족이 모여 여름을 즐기고 있다. 이곳쯤에서 풍덩 목욕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역시 인간은 간사하다. 지루하게 하산 길을 걷다보니 아침에 콧노래라도 불러 보고 싶은 기분은 온데 간데없고 그저 빨리 유평 마을이 나타나길 기다려진다.
오른쪽에 계곡 옆 초지에 고추밭이 보인다. 마을이 가깝다는 것이다. 철망으로 출입구가 만들어져있는 출구를 나서니 먼저 당도한 광율이가
“형님 고생했다. 이제 다 왔다 유평이다”(13:11 505m)
태양이 장렬 한다. 포장된 도로가 달아 있다. 포장된 도로를 걷는 것은 산길을 걷는 것 보다 힘이 배로 던다.
혹여 지나가는 차를 만나면 부탁을 해보려 하지만 차들이 다니지 않는다. 왼쪽으로는 계곡에 여름휴가를 보내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대원사 경내로 들어가 구경이라도 하고 싶지만 땀에 젖은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으려 한다.
주차장에 덜어서니 먼저 당도한 대구 부부가 곧 차가 출발 한다며 오르란다(14:22).
세수도 해야 하고 점심도 먹어야 하고 다음차로 이용하기로 하고 손을 들어 작별을 고한다.
목욕을 하려고 계곡으로 다가가나 마땅한 자리가 너무 멀리 있다.
공중 화장실로가 대충 세수와 등목을 하고 속옷만 갈아입고는 식당 야외 자리에 앉는다.
도토리묵에 동동주 한 추바리로 지리산 종주 하산주를 대신한다.
“건배!”
“또 다른 지리산과의 만남을 위하여!”
“위하여!”
내 중년에 만난 지리산과 일출, 다양한 여러 사람들의 모습들,
무엇보다도 광율이의 진한 우정을 가슴깊이 새겨야지.
그리하여 내 인생에 벗이 되는 영원한 지리산이 가슴에 남도록
또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나야지!
*15:30 : 대원사 주차장 출발
*17:25 : 진주 터미널 도착
*17:30 : 진주 출발
*19:45 : 울산 신복로타리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