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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의江
제3회 영상낭송집
2011년 2월 22일(화) 오후 6시
한신문화원 (서울 서초구 잠원동)
文學의江 영상낭송회
문학은 창작된 생명체이다.
읽으면 살아나고
읽혀서 자란다.
낭독하면 대화요
읊으면 노래가 되고
낭송하면 감동을 준다.
꽂힌 책은 잠자는 생명
읽는 순간 살아 나오고
낭송 따라 가슴에 파고든다.
문학은 읽어서 살고
읽혀서 자란다.
읽고 낭송하여
감동의 꽃 피우자.
--- 文學의江 영상낭송회 선언
낭송 차 례
정임숙 <서초> 4 님의 침묵 (한용운 시)
강애나 <호주> 5 나노라면 (시)
김병렬 <강동> 6 비가 되어 내리는 나의 노래여 (시)
김옥진 <서초> 7 이층방 새 주인 (수필)
김자영 <서초> 9 항아리 속 돌고 있다 (시)
김현호 <서초> 10 노모의 귀향길 (시)
김흥렬 <관악> 11 구제역 口蹄疫 (시)
박영석 <서초> 12 일식에 새겨진 역사의 언어 (시)
백덕순 <강서> 13 동강의 달 (시)
申吉雨 <서초> 14 자인 姿人 (시사진)
심의표 <금천> 15 서울 민들레 (시)
오점록 <강동> 16 황사 국경을 넘다 (시)
尹永典 <서초> 17 한반도 분단 아픔을 노래하며 (시)
윤철환 <강동> 18 그늘 없는 빛 (시사진)
이광녕 <강동> 19 콩밭 타령
이수정 <양주> 20 피에로는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시)
임방춘 <서초> 21 길 위에서 (시)
최은혜 <서초> 22 겨울 휴가 (시)
하순명 <서초> 24 그리움의 숲 (시)
한기준 <서초> 24 폐교廢校의 눈 (시)
* 尹東柱 (경향신문 1946.11.1.) 쉽게 씨워진 詩
님의 침묵
한용운 시 / 정임숙 낭송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사노라면
강 애 나
그립던 님이 그리운 날
강가 속에 노니는 노을로
추억을 태우고 싶다.
붉은 꽃잎 태우 듯
강물은 속내 깊은
울음조차 고이지 않고
삼키며 조용히 흐르는 물비늘 같다.
너무 그리운 날은 바람을 불러서
쪼르르 흐르는 물처럼 울고 싶은 거다.
따듯한 햇살 가을 잎 떨어져
강가에 흐르면 생각나는 그리운 님을
낙엽 흘러가는 방향 따라
내 마음 흘러 보내고 싶다.
노을 이는 강가에서
그리운 이여, 그리운 이여. 그리움을 태우며
간직했던 꽃들의 이야기를
끝임 없이 멈춤 없는 그리움 흐르게 하고 싶다.
비가 되어 내리는 나의 노래여
유 강 김 병 렬
나 오늘
이 한 몸
저 푸르른 옥토沃土에 묻어
꽃을 보려 하나니
빗물 고인
빈 항아리 속에 떠 있는
달빛에 젖은 꽃이
어지럽구나.
無에서 시작되어
無로 돌아가는
나의 목숨아
다 새벽까지
눈물로 씻어 내린
나의 시어詩語에는
방금
종을 울리며 바삐 지나가는
두부장수의 수레바퀴 윤회輪廻 속에서
눈부시게 부서지고 있구나.
<수필>
방 새 주인
김 옥 진
아이들이 쓰던 이층 방 세 개가 연이은 출가로 비워진 지 몇 달이 지났다. 뒤이어 37년간이나 봉직한 교직에서도 손을 놓고 나니 이제 나는 누가 무어라 해도 자유의 몸이다. 매일 하늘을 날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무엇이 아쉽고 허전한 지 이층에 올라가 긴 시간 학교에서 쓰다가 가져온 용품을 둘러보기도 하고, 애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을 어루만져 본다. 그런데 그 한유함을 넘보기라도 하듯 어느 날 이층 방으로 이삿짐을 밀고 들어온 무례한 사람이 있었다.
순간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자유로움을 만끽하기엔 너무도 짧아 지금 나는 누굴 받아들일 마음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체념이 지름길임을 알지만 이번에는 그리 쉽게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몇 날을 침묵으로 지내다가 어느 순간 누군가를 항시 거두고 사신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의 푸념이 떠오른다. 소띠 팔자의 운세가 나라고 빗겨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았다.
이삿짐이 들어 온 날 밤 어머님은 내 손을 붙잡고 “저 철없는 것을 좀 맡아서 거두어 다오” 하고 애절한 눈빛으로 호소하셨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교직에서 40여년 가까이 묶였다가 퇴임을 했어도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 내 마음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삼스레 이층 방 새 주인과의 인연을 헤아려 본다.
내가 시집을 왔을 때 그는 귀밑 솜털이 보송보송한 중학생이었기에 가끔 목욕탕도 데려가 씻겨주기도 했고, 때로는 연로한 시어머님을 대신해 학부모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막내였기에 집안 식구 모두가 귀여워만 해 주었다. 그것이 탈이 되었을까
그 예쁜 시누이가 언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제 혼자 몸이 되어 친정으로 왔다는 결과만 있을 뿐이다. 그 이유를 이제는 식구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새삼 지나간 일들을 들추어내서 무엇 하겠는가.
시어머님은 노산으로 그녀를 가져 달도 못 채울 것 같아 애를 태웠다고 하며, 교회법을 지키느라 낳자마자 데레사라는 영세명을 붙여주어 애지중지 키웠다고 했다. 데레사란 세례명이 집안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어 동네에서는 데레사네 집으로 통용될 만큼 이웃의 사랑까지 받으며 자라왔다.
오래 전 시누이 일로 어머니와 갈등이 있었을 때 나는 큰 소리를 내며 생전 처음 시어머님께 반기를
든 적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다 받아 주면 어머님이 평생 고생이시라고. 아주 예전에, 그가 꽃 같은 시절에 내가 이 말을 쏘아댄 것이 지금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 말이 씨가 되어 지금 이런 결과가 되었는가 하여 나 스스로 자책도 해 본다.
이제 세월을 뛰어넘어 시누이가 마음의 병까지 얻어 어머니 곁으로 아니 올케언니인 내 곁으로 왔으니 어찌하겠는가. 이제 와서 새삼 구구한 잘못을 따진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세상이 변하여 혼자된 것이 그리 큰 흉이 되지 않는다 해도 평탄치 않은 그녀의 지난 삶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가 집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언니 옆에 오니 너무 좋다.” 나는 그 말 한 마디에 옹이진 내 마음은 녹아 버렸고 더 이상의 갈등을 남겨 놓지 않았다.
요즘은 내가 외출했다 돌아오면 된장찌개도 끓여놓고 기다리는 착한 딸(?)이 되어 있었다. 내가 막내 시누이 덕분에 호강을 한다고 하면 빙긋이 웃는다. 생각해 보면 그는 내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고모이고, 지금은 엄마의 따스한 돌봄이 필요한 시기이다. 막내딸 때문에 세상의 온갖 근심을 도맡듯 하셨던 구순의 시어머님의 얼굴에 화색이 도신다. 혼자된 딸이라도 옆에 두고 보니 안심이 되시는 것일까.
나도 시누이를 딸로 받아드리기로 서서히 마음을 굳히고 나니 집안의 평화도 평화지만 우선 내 맘부터 넉넉해진다. 허긴 예전에 그를 시집보낼 때 어머님 대신 동대문 시장엘 하루에도 몇 번씩 다녀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그 전부터 나는 이미 시누이가 아닌 딸로서 대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는 음악회며 꽃놀이도 함께 다녀왔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같이 다닐 생각이다.
그가 언제 독립해 나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가 있어 우리 식탁은 네 식구가 둘씩 짝을 이루어 이가 맞은 것 같아 좋다. 언젠가 그에게, “내가 퇴임하고 심심할까 봐 하느님은 나에게 딸을 하나 점지해 주신 것일까” 하고 말하니 그도 따라 웃는다. 그러고 보니 이층 방 새 주인은 다름 아닌 예비된 내 딸이었던 것이다. ☺
항아리 속 돌고 있다
김 자 영
새벽 공기 제법 차갑게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데
조심성 없이 벼랑길 나선 나
한 걸음 두 걸음
무거운 발길 속에
지우려는 고통들 역력하구나.
평생 살고 남은 것은
텅 빈 항아리 같은 마음뿐
번뇌 속에 빠져 헤어나려
끝없는 몸부림 속에
허우적거려 보아도
돌아보니 겨우 빈 항아리 속을
맴돈 격이로구나.
빛이 있어도 보이지 않고
고운 마음 있어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벗어나지 못하고
그 속에 피고 지는
산간 초야 한 떨기 꽃이 되어
찬 이슬에 울부짖는 꽃
햇빛 없는 항아리 속 인생.
노모(老母)의 귀향길
서곡 김 현 호
일흔 넘은
노인아들 아흔 넘은 엄마 업고
향수에 젖은 엄마
고향 찾아 갑니다.
어머니,
엄마가 그립지요.
저도 엄마, 엄마가 좋아….
한숨 반절
눈물 반절 등에 업힌 엄마는
오래 산 게 두려웁고
늙은 아들 눈에 애려
애비야,
처자식 돌봐야지.
에미 걱정, 말그레이….
구제역 口蹄疫
김 흥 열
감도는 살기殺氣를
직관으로 꿰는 걸까.
눈물 섞어 주는 밥을 멀거니 바라본다.
커단 눈
그렁거리며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행여나 병 옮길까
생으로 굶겨 놓고
애간장 다 녹여서 불 밝힌 동짓날 밤
황금에
미친 그림자는 비켜설 줄 모른다.
몇 일 전 갓 태어난
젖먹이 목숨까지
순교를 강요하며 어명御命으로 내린 사약賜藥
내일은
또 어느 곳에서 장송곡葬送曲이 에이려나.
일식에 새겨진 역사의 언어
석산 박 영 석
남해조수 퇴 3척 (南海潮水 退 三尺)
29세 단군 마휴 9년 (BC935)
남해의 썰물이 3척이나 물러갔다는 선조들 기록
사서는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았음을 우리의 천문학이 밝혀내고야 말았다.
단군조선 시대의 기록을 위서(僞書)라고 훼손한 일제와
핵심 추종세력인 식민사학자들
동서양의 간교(奸巧)한 식민정책은
소중한 인류역사의 진실을 송두리 체 왜곡(歪曲)하고
이민족 정신문화 말살에 광분할 때
스스로 지나인의 종이 되어 앞장선 사대주의 유학자들
이완용 이병도의 무리들은 어느 종족인가
천문과학이 밝혀낸 역사의 진실은
왜인들이 위서라 왜곡하고
친일식민사학자 무리들이 지금도 총독부를 계승하여 굳세게 폄하하는 우리 역사서
단기고사, 한단고기, 단군세기의 천문기록들이
과학의 발달로, 장엄한 진실이 되어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일본 사서(史書)의 일식기록 실현율은 35%,
당나라의 실현율은 77%
신라의 일식기록 실현율은 90%
하늘에 새겨진 우주의 진실은 무심치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일제가 만든 한국사를 줄기차게 가르치고 배우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로 남아 있다.
동강의 달
설란 백 덕 순
달아
오늘 밤 너와 내가
출렁이는 강물 위에
부표처럼 흔들릴지라도
한 계절 업고 가는
코스모스 바람 꺾지 말고
달맞이꽃으로 물들어 가는
동강 빌리지 창가로 오라.
물안개 졸고 있는 강가에서
선잠에서 깨어난 풀벌레 소리
꽃물 맺힌 이슬방울 깨우지 말고
달빛에 젖은
버들잎 따다 입에 물고
지친 기다림이 흘러가는
동강의 푸른 물결 밟고 와
젖은 목소리로
초록 피리 불어 준다면
우리가 물이 되어도 좋으리.
자 인 (姿人)
申 吉 雨
바라보면
날렵한
안으면
몸에 감기는
머리에 그리던
마음으로 꿈꾸던
연인 연인(戀人)
자인 자인(姿人)
美人도
佳人도 부러워하는
몸맵시 날렵한
姿人이어라.
자인을 만나
품에 안으면
나도 자인이고 싶다.
자인이 된다.
서울 민들레
심 의 표
발끝에 채일 돌부리 하나도
사랑 가꾸어갈
한 치 여유로움도 없는데
어디에 누워 누구와 함께
깊은 정
속삭이란 말이냐.
좁다란 콘크리트 틈새
비집고 앉아
토해내는 외마디 울음소리.
황사 국경을 넘다
농심 오 점 록
막무가내식 불법으로
국경 수비벽은 허물어져
셀 수 없이 몰려오는 중공군에
잠식되는 금수강산
속수무책束手無策이 그 대책이기에
초점焦點 잃은 초병哨兵의 눈길이다.
하늘에는 온통 뿌우연 황사
입을 막고
코를 막아 호흡기를 조이며
백성들을 괴롭히고
시야는 희롱되어 더욱 흐릿한
그 고달픈 금수강산
시끌벅적하게 남침하던
중공군의 인해전술사人海戰術史로
아픈 기억이 생생한 일사후퇴
밤과 낮 구분 없이
호로胡虜 아이 국경을 넘나드니
바라건대, 중국의 녹색 사업이다.
* 호로(胡虜) : 중국 북방의 이민족의 흉노(凶奴)를 일컬음.
한반도 분단 아픔을 노래하며
윤 영 전 (尹永典)
우리 조국의 민족사가 5천년이라고 자랑을 하면서 살아왔다.
예수탄생을 기준으로 해 2천년 구약의 2천년 4천년보다 길다.
그러나 그리도 오랜 반만년 역사, 우리는 어찌 지켜 왔었는가.
단군 할아버지의 위용을 생각도 없이 개천절을 숭상하여 왔다.
신라의 천년도 고려의 천년도 경주와 개성을 방문해 돌아본다.
찬란한 조상의 문화와 정신을 되돌아보며 음미하기도 하였다.
신화와 유래에 전해온 역사보다 생기가 난 100년 역사를 본다.
국치를 생각하고 나라 잃은 슬픔에 잠기며 순간들을 회상한다.
분연히 일어난 열사 의사들은 목숨을 걸고 내나라 찾아 나섰다,
거기에는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김구 선생이 자리했었다.
안 의사는 이등박문 척살하고 대한독립과 동양평화를 주장했다.
김구 선생은 안중근 윤봉길 거사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의사는 처자식과 이별하며 당당히 자신의 목숨을 조국에 바쳤다.
아! 그 자랑스러운 애국심과 충정을 우리는 얼마나 이어 받았나!
그저 주년이 돌아오면 인사치례 추모행사는 제대로 하여 왔는가.
나라가 광복이 되고 독립이 되었다고 태극기 들고 만세를 불렀다.
그런데 광복과 독립은 고사하고 분단으로 두 동강이 조국이었다.
분단은 전쟁을 낳고 남북의 동포는 죽어가고 이산가족이 천만이다.
죽기 전에 단 한번만이라도 만나고 죽고 싶다는 이산가족들의 울분,
수십만의 가족 중에 몇 천 명의 기족들이 겨우 상봉을 했었다.
만남의 장소와 시청하는 동포들도 눈물드라마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 계속 이어지지 않고 한의 노래만 부르고 있어야 했다.
분단의 슬픔은 66년 한의 아픔을 노래하며 보내는 한의 세월이었다.
남북이 언제나 슬픈 노래가 아닌 통일의 기쁜 노래를 할 수 있을까.
그늘 없는 빛
윤 철 환
이 세상 모든 빛엔
그늘이 따르건만
중도(中道)의 공한 빛은
가릴 것이 없나니
내 한 삶 바쳐도 좋을
그늘 없는 빛이여.
<현대시조>
콩밭 타령
효봉 이광녕
해거름도 주워 먹고
풋풋함도 주워 먹고
콩밭두렁 통통 튀는 콩깍지를 코에 대니
나더러 들풀이란다, 콩잎에다 시를 쓴다.
된걸음아, 멈춰 주렴
달아나는 저 청산아
고추밭 살풋함도 서리 맞고 떠났는데
콩밭엔 알콩달콩한 콩서리로 불 지핀다.
콩콩콩 튀는 가슴
여문 고비 긴 그리움
콩알은 콩알대로 콩깍지는 깍지대로
태질로 고향이로세, 콩 심은 데 콩 난다네.
피에로가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미랑 이 수 정
무대에 커튼이 올라가면
우리는 인생의 막이 열리는 것을 본다.
너, 나, 우리,
모두 한데 얼려 연극으로 불을 태운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같은 우리네 삶
1막 2막 … 막이 오를 때마다
우리는 더욱 왁자하니 박수를 친다.
저~ 푸른 하늘
온갖 모습 구름들이 날 부르고
이~ 푸른 들판
이름 모를 꽃들 피어 날 기다리고
새들도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인생이라는 연극
커튼 뒤로
보이지 않는 어둠의 막이 내리면
배우들도 이내 사라지고 마는 것을….
우리
웃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무대 위에서 함께 춤을 추어대는 사이
피에로가 빙긋이 나를 보고 웃고 있다.
길 위에서
임 방 춘 (林方春)
탈진한 들개 한 마리
광야에 서서
멀리 지평선을 바라본다.
고개 넘어 산 넘어
햇살 내리는 동산
스치듯 몇 컷 지나가고
험준한 계곡마다
들짐승들의 아우성
공허한 바람소리도 들린다.
발바닥이 헤지도록
쉼 없이 달려온 길
기러기 날아가고
석양은 기우는데
높새바람 여전하다.
도지는 생채기 안고
방향 감각도 잃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동행한
진주목걸이가 툭 벗겨지자
문득
노을 속 어필하는
지상의 명화 한 폭
어렴풋이 길이 보인다.
겨울 휴가
최 은 혜
초록빛 한 자락 없는 눈길
풍요로운 동화의 나라
매서운 칼바람 입 다문 빙판길
거북이걸음 내딛다가 넘어져
좌측 어깨 골절骨折 기브스를 하고
45일 낙상落傷의 긴 겨울휴가를 보냈다.
평생 처음 질긴 겨울 휴가에 묶여
두 눈이 아리도록 지켜보았던 TV
창 밖에는 얄미운 하얀 눈빛
불면증에 걸린 골목길 점령하고
연일 쏟아지는 한파와 폭설 방송보다도
더 무서운 구제역口蹄疫 뉴스.
내 피붙이 같은 소와 돼지
생매장지로 떠나보내야 하는 모습들
뼛속까지 흔들리는 고통의 긴 겨울 휴가.
지난 가을
겨울이 오기 전에 미리
그 길을 닦고 소독했더라면
살을 에이는 흰 슬픔 토하지 않으리….
그리움의 숲
하 순 명
분꽃 채송화 백일홍들
훈훈한 꽃밭이어요, 어머니는
함박눈 내리는 밤 놋대야에 물 데워
알몸뚱이 토닥거리시던
따순 가슴이었어요.
외로움의 숲이어요.
어머니는 그렁그렁
눈물일 적이 많았어요.
꽃망울 같은 어린 것들
으스러져라 안고
수수하게 웃으셨어요.
해질 녘‘엄마-’하고 달려가면
‘내 강아지야’
허겁지겁 사립문으로 뛰어나오시며
목이 마르시던 어머니.
어른이 되고
슬픔이 되어 본 내가
한 걸음에 달려가 안기고 싶은 곳
그리움의 숲.
당신이 가꾼 숲에서는
따스한 햇살
사계절 꽃이 피어납니다.
폐교의 눈
만청 한 기 준
십리 이십리 길 산 넘고 물 건너
학교 다니던 나라가 어려운 시절
단련 받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어려움을 해결해 우후죽순으로
생긴 분교分校가 자라 독립하고
돌아가는 윤활유 숨통 터이니
산업화 시대로 급속히 변화하여
그 동안 늘어난 분교와 초등학교가
폐교廢校 되는 흘러가는 과정에
추억은 살리되 서러워 말라
G20 초대 의장국 반열에선 역사
긴 세월이 왜 이렇게 짧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