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9일 토요일 석모도.
아마도 내 인생의 새로운 한 장이 펼쳐진 날이리라.
금요일에 미리 수업 시간은 다 바꾸어 놓았건만 그동안 유난히 분주했던 일상으로
도저히 석모도 여행을 갈 수 없을 것처럼 몸이 아파왔다. 못가면 어쩌나. 첫 여행이고 연시니가 애써서 준비했는데...
여행 며칠 전부터 평소에 하던 모든 일과를 중단. 그래도 잠을 자기가 힘들 정도로 온 몸이 무거웠다. 그러나 금욜 아침. 학교에 가서 일과를 마친 후 문래역으로 고고. 이미 부지런한 경화. 시장을 다 보아놓고 있었다. 잠시 후 정희가 오면서 우리 팀은 산뜻하게 출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우리의 마음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 동갑 태숙. 아마도 이름에 들어간 한자가 '클 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여인. 처음 보았을 때 사슴의 눈망울이 떠올려지던 종윤.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정희. 그리고 가을을 닮은 경화. 우리는 이내 한 식구가 되어 함께 가을에 취해서 서울을 가로질러 강화로 향했다.
강화도.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섬이다.
파죽지세로 쳐들어온 몽고군을 막아낸 최후의 보루. 기울어가는 조선을 넘보던 일본의 힘에 밀려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곳. 그 밖에도 우리를 넘보던 여러 열강들의 각축장.
슬픈 역사를 간직한 섬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 곳에 희망을 심고 있다.
차를 타고 석모도행 배에 올랐다.
연시니 차는 우리보다 조금 늦었다. 10명이 함께 차를 타고 갔으면 아마도 더 좋았으리라.
이내 배는 석모도에 도착. 아마도 7-8분 정도 걸린 듯.
예약된 휴양림 속의 숙소로 찾아간 우리.
잠시후 연시니 차가 도착. 반가이 눈도장을 찍은 후 이내 저녁 준비 시작.
맛밌는 저녁은 경화의 작품이었다. 삼겹살 편육에 시원한 해물탕.
정희가 준비한 산삼에 취한 소주.그리고 백서방이 보내준 과자....모든것이 너무도 맛있었다.
후들거리던 내 몸은 어느새 가뿐해지고 있었다.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졌던 많은 음식들이 10명의 여인들의 공략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음식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육신으로 보시를 한 것이다.
식사가 끝난 후 설거지는 어느새 영인이 하고 있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속이 단단한 영인....
방을 수선화로 옮겨 촛불에 불을 붙이고 둘러 앉아 각자 준비한 시를 꺼냈다.
나는 평소에 좋아하던 송강의 권주가를 준비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시며 즐기고 싶었다.
차례차례 돌아가며 시를 낭송했다 . 우리는 얼굴에 주름을 꽃처럼 달고있는 50대의 소녀들이었다.
연시니는 시를 읽다가 그냥 울고 말았다. 아_ 저렇게 여린 마음으로 한 세상 살아오면서 어쩜.....
그 여리고 고운 마음에 늘 밝은 태양이 가득하기를!
시를 두 편씩 준비하는 거였다며 공책을 꺼내 또박또박 낭송하던 현주. 마치 모범생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뜨거운 여인 의향. 지란지교를 꿈꾸며... 영인. 두 번 밖에 안 보았는데 오래 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편안한 선영. 태숙. 경화. 정희.... 모두 너무도 고운 여인들이었다. 시 한 수 씩 건넬 때마다 종이컵을 부딪혀 와인을 마시며!
시 낭송을 끝낸 후 뒷동산에 올라가 정자에서 쏟아지는 별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우리는 ~을 했다. 그건 말할 수 없다. 우리끼리 공유하는 은밀한 향연.ㅎㅎ.
어두운 계단을 선영의 후래쉬로 밝히며 내려온 우리들은 다시 수선화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복수초로 와서 잠이 들었다.
아침 7시쯤 눈이 뜬 우리는 잠자리에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룻밤을 함께 자면 만리장성을 쌓는다던데 우리가 쌓은 장성은 이미 만리를 훌쩍 넘었다. 아마도 우리는 전생에 선업을 많이 쌓았던가 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쩜 이런 인연을 엮을 수 있었다니!
수선화는 새벽에 모두 일어나서 보문사로 갔다고 한다.풋풋한 여인들...
아침은 시원한 숭늉과 현미밥. 그리고 경화의 해물탕 걸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맛있게 뚝딱. 아침을 해치우고 석모도 일주를 했다.
아참. 경화의 차 열쇠가 트렁크에 갇혀서 덕분에 휴양림에 더 있을 수 있었다.ㅎㅎ
석모도 바다는 빠졌던 물이 다시 그들의 본거지로 찾아들고 있었다. 우리는 방파제를 걸으며 즐거웠다.
아름다운 그 곳을 뒤로 하고 강화로 나오는 배를 탔다. 외포리에서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전등사를 본 후에 점심을 먹자고 결론. 전등사로 향했다. 중간에 길이 엇갈리고 밀려드는 차로 우리는 계획을 변경. 이러저러해서 김포로 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사실 김포에 어떤 집이 맛있는지 우리 일행은 알지 못했다. 재치 있는 정희가 김포 시청 민원실에 전화를 해서 김포 초행인데 맛집을 알려 달라고 했다. 세상에.... 대한민국에서 어느 누구가 시청 민원실에 전화해서 맛집을 알려 달라고 하겠는가... 아마도 그 이름 윤정희.. 외에는 단 한 명도 없으리라. 그러면서 정희는 용감하게 다짐했다. 만약에 알려준 맛집이 음식 맛이 없으면 당장 민원실로 전화해서 불성실한 답변을 응징하리라... 아이고. 윤정희 만만세다.
점심을 먹으려던 우리는 초행의 김포 맛집을 뒤지다가 저녁을 먹게 되었다. 연시니 차는 배도 고프고 소변도 마렵고 해서 많이 고생을 했다. 뚝딱 뚝딱. 맛있게 저녁을 먹고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연주. 연신. 영인. 의향. 선영.차 한 대가 먼저 떠난 후 우리도 떠났다. 정희가 나한테 집에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더니 알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굳게 결심하고 있었다. 결코 먼저 떠나지 않으리라. 함꼐 만났던 곳이 최종 도착지라면 거기까지 함께 간 후에 헤어지리라. 좀더 시간이 걸린들 무엇이 대수이리오. . 그리해서 우리는 다시 문래역으로 갔다. 이런 날은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승자인양. 뻐기며 들어가야지~
우리는 문래역 홈플러스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했다. 아이스크림 값은 태숙씨가 냈다. 왜냐하면 문래동은 태숙씨 나와바리이니깐~
어두워진 밤에 우리는 헤어지며 온기를 느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외롭지 않으냐!
세월이 흐르면서 헛헛해지는 마음이 따끈히 데워지고 있었다.
몹시 아프던 내 몸은 어느새 새로운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석모도행 여행은 나에게 '힐링 타임'이었다.
함께 한 모든 운트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
2012년 10월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내 가슴에 자리매김 하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다시 만나겠지!
첫댓글 여린 연시니는 언니의 글을 읽으면서 한 줄기 눈물을 흘리면서 몇 자의 흔적을 남기고 있으니...
쉰이란 숫자를 넘긴 나에겐 새로운 경험을 했던 날이기도 하다...
별 빛 아래에서 춤을 추웠던 정자...
춥긴 좋더만.
선경언니의 글을 읽으니 다시금 그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겠지~~~
역쉬 정리의 달인. 엊그제가 지금처럼 화~~~악 당겨옵니다. 담엔 더 즐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여행이 기대됩니다.
운트를 만난것이 인생 후반에 복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서로 서로 힘을 불어 넣어 주는 천사가 되기로 해요,
언니 글을 읽으니 웬지 "뒷씸" 이 확!~ 느껴져요~~~
얼마만에 읽어보는 시 한편 이였던가~ 후기글을 보니 다시 그곳에 있는듯해요~
선경언니 글속 이 여인들이 머어언 훗날 오래도록 아름다운 생생할미꽃으로 옹기종기 피어 서로비취도록 잘 끌어 주소서 ㅋ~~
이 글이 한편의 시 같네... 장편 시. 사랑하는 연인들은 자기안에 있는 좋은점을 상대에게 투사해서 상대를 미화시키고 이상화시킨다네요. 나도 나의 좋은점을 운트 여인들에게 마구마구 투사하고 있어요. 이 투사(콩꺼플)가 영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