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뮤지컬 영화
MGM이 1929년 제작한 해리 뷰먼트 감독, 찰리 킹, 아니타 페이지 주연의 「브로드웨이 멜로디 The Broadway Melody」가 최초의 뮤지컬 영화로 기록되어있다.
1927~1930
초기의 무성영화는 보드빌(Vaudeville:음악을 곁들인 짧은 희가극)의 형식으로 대중들에게 소개되었지만, 그다지 커다란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새로운 영화 기술에 대해 고민하던 워너 브라더스사는 20년대 후반 생음악으로 연주되던 음악을 대체할 비타폰에 대한 실험을 마친 상태였는데, 이러한 오디오 시스템의 개발은 배우의 대사가 아니라 전적으로 음악적인 부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1927년에 제작된 알 졸슨Al Jolson의 <재즈 싱어Jazz Singer>가 '최초의 유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사보다 음악이 강조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한다. <재즈 싱어>의 대대적인 성공은 유성영화에 미리 준비하지 못한 다른 영화사들을 당황스럽게 했고, 곧바로 영화 속에 음악을 넣을 방법들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수많은 브로드웨이의 작곡가들은 영화사로 영입되었고, 보드빌 스타들은 영화배우로서 캐스팅되면서 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던 보드빌은 단 4년만에 그 자취를 거의 감추게 된다.
1930~1940
초기의 영화감독 어니스트 루비크Ernest Lubich에 의해 제작된, 등을 통해서서히 시작되었던 뮤지컬 영화의 조짐은 40년 대에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초기 뮤지컬 스타였던 프래드 아스테어Fred Astire와 진저 로저스Ginger Rogers는 로 뮤지컬 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으며, 아스테어는1976년에 제작된 까지 활동하면서 뮤지컬 분야에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1930년대 말에는 디즈니사에서 제작된 일련의 만화 영화들에서 뮤지컬 형식이 시도되었는데,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Snow White and Seven Dwarfs(1938)>을 필두로 <환타지아Fantasia(1940)>,<피노키오Pinoccio(1940)>,<아기코끼리 덤보Dumbo (1941)>,<아기사슴 밤비Bambi(1942)>등의 작품들은 현재에도 지속적인 인기를 끄는 수준작이었으며, 이후 1980년대 말부터 다시 시작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밑거름이 된다.
1940~1950
MGM사의 뮤지컬 팀을 이끌고 있던 아서 프리드Arthur Freed는 프로듀서 로져 에덴스Roger Edens와 소녀 가수였던 주디 갈런드Judy Galand의 뛰어난 재능을 일찌감치 눈여겨 보고 있었다. 1938년 그는 마침내 프랭크 바움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를 뮤지컬로 만들기로 결정했는데, 이것은 기존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하는 작업과는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제작자인 루이스 메이어는 폭스사의 배우 셜리 템플Shirley Temple을 주인공인 도로시 역으로 삼고 싶어했으나 그녀를 데려올 수 없었던 탓에 그는 쥬디를 그 역에 기용했고, 영화는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의 인기와 함께 주제가 'Somewhere Over the rainbow'는 오스카 상을 수상했고, 프리드가 이끄는 뮤지컬 팀의 지위는 자유롭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한편 40년대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 유머와 애국심을 강조하는 뮤지컬 영화들이 대거 제작되었는데, 워너 브러더스 사의 , 빙 크로스비Bing Crosby를 내세운 파라마운트 사의 , , , 리타 헤이워드Rita Hayworth가 열연했던 컬럼비아 사의 , 20세기 폭스 사의 , 등이 제작되었다. 그러나 뮤지컬 영화가 정점을 이루던 40년대는 무엇보다도 쥬디 갈런드와 진 캘리를 필두로 세운 MGM사의 수많은 뮤지컬이 쏟아져나왔다.
이 당시 쥬디 갈런드의 출연작을 꼽으면, , , , , , , , ,등으로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다.
1950~1960
1950년대 뮤지컬 영화는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었다. 주 평균 9000만명의 관객을 유지하던 영화는 텔레비젼이 보급되면서 1600만명의 수준으로 급감했기 때문이었다. 이 당시부터 뮤지컬 영화는 미국 관객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대상으로 배급되기 시작했는데, 한국에도 상당수의 뮤지컬 영화가 개봉되었다. 율 브린너Yul Brynner와 데보라 카Deborah Kerr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왕과 나King and I(1956)>, <오클라호마Oklahoma(1955)>, <남태평양South Pacific(1958)>등은 국내에서도 커다란 인기를 끌었으며, 월트 디즈니사의 <피터 팬Peter Pan(1953)>, <잠자는 숲속의 공주Sleeping Beauty(1959)>등이 제작되어 꾸준하게 애니메이션 뮤지컬을 이어갔다.
한편 뮤지컬 영화가 점차 침체되어가는 중에서도 MGM사는 50년대를 대표할 만한 네 편의 영화를 제작해냈는데, 죠지와 이라 거쉰George & Ira Gershwin의 곡과 진 캘리Gene Kelly의 춤이 어우러진 <파리의 아메리카인American In Paris(1951)>, 역시 진 캘리 주연의 유쾌한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1952)>, 빈센트 미넬리 감독과 마이클 키드의 안무가 돋보이는 그리고 노래보다는 스코어 연주가 돋보이는 뮤지컬 <7인의 신부Seven Brides For Seven Brothers(1959)>에 이르는 명작들이 그것이다.
1960~1970
60년대 이전의 뮤지컬 영화들과는 달리 60년대와 70년대에는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영화로 다시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1961)>,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1965)>, 바브라 스트라샌드Barbra Streisand의 데뷔작 <화니 걸Funny Girl(1968)>, <올리버Oliver!(1969)>등을 60년대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데, 이 당시에 제작된 뮤지컬 영화 중 극장에서 상연되던 원작 뮤지컬의 느낌과는 상관없이 새로운 분위기로 제작되면서 원작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것을 영화로 제작하는 방식이 정착되었고 뮤지컬 영화는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60년대의 뮤지컬 영화에 등장한 새로운 스타는 줄리 앤드루스Julie Andrews였다. 당시 뮤지컬 에 출연하던 그녀는 스크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워너 브라더스사의 의 뮤지컬 영화에는 출연하지 못했지만, 디즈니사가 제작한 <메리 포핀스Mary Poppins(1964)>의 주연으로 발탁되면서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더군다나 경쟁의 대상이었던 오드리 햅번의 <마이 페어 레이디>를 제치고 <메리 포핀스>는 아카데미 최고 주제가상과 영화음악상을 수상했으며, 줄리 앤드류스에게는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과 글로브의 최고 여성 뮤지컬 배우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듬 해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1965)>의 주연을 맡는 행운을 얻게 된다.
1970~1980
70년대 초반은 두 편의 뛰어난 뮤지컬-<지붕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1971)>, 밥 파시Bob Fosse의 <카바레Cabaret(1972) > -이 제작되었으나, 이후 중반까지 그다지 좋은 작품들이 나오지 못한다. 디즈니 사의 몇편의 애니메이션 뮤지컬을 포함해서 '상업성'이 떨어지던 뮤지컬 영화는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무렵 아주 놀라운 뮤지컬 영화 한 편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1975년에 제작된 <록키 호러 픽쳐쇼The Rocky Horror Picture Show>라는 기괴한 제목의 뮤지컬은 개봉 당시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했던 작품이었으나 '컬트' 문화의 구심점이 되어 전 세계의 수많은 젊은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였고, 영화가 상영되는 늦은 밤에도 관객들은 영화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이 뮤지컬 영화의 음악은 이전의 오케스트라 연주나 스윙 혹은 재즈와는 다른 성격의 것이었으며, 이것은 뮤지컬 음악에 다른 장르의 음악이 도입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해 주었다. 물론 그 이전에 제작된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oyd Webber의 록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1972)>와 이후에 제작된 78년작 <그리스Grease> 역시 이러한 뮤지컬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해주었고, 그 이후에는 힘을 실어 준 영화기도 했다.
1980~1990
70년대의 막바지에는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cese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의 <뉴욕 뉴욕New York New York (1977)>,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와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 John의 로맨틱 뮤지컬 <그리스Grease (1978)> 그리고 <카바레>의 감독 밥 포세Bob Fosse의 <올 댓 재즈All That Jazz (1979)>등이 제작되었지만 뮤지컬 영화는 80년 대에 들어서면서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갔다. 이 당시 주목할 만한 뮤지컬 영화로는 존 휴스턴John Huston의 <애니Annie(1982)>, 리처드 아텐보로Richard Attenborough의 <코러스 라인A Chorus Line(1985)>등이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게된다.
1990~
90년 대에는 손가락을 꼽기도 어려울만큼 매우 적은 수의 뮤지컬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우디 알렌Woody Allen의 <에브리 원 세이 아이 러브 유Everyone say I Love You(1992)>, 마돈나Maddona가 출연했던 <에비타Evita(1996)> 가 잠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뮤지컬로 50년 대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디즈니사는 1989년 <인어공주Little Mermaid>를 제작했고, 그 결과 애니메이션 뮤지컬로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게 되었다. 이후 디즈니는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1991)>, <알라딘(1992)>, <라이언 킹Lion King(1994)>,<포카혼타스Pocahontas(1995) >,<노틀 담의 꼽추The Hunchback of Notre Dame(1996)>,<헤라클레스Hercules (1997)>, <뮬란Mulan (1998)>, <타잔Tarzan(1999)>에 이르는 애니메이션 뮤지컬을 꾸준히 제작해 냈으며, 일부 애니메이션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제작되어 무대에 세워지기도 했다.
새로운 세기에는 어떤 영화들이 만들어질지 아직은 모르지만, 뮤지컬 영화는 3D애니메이션과 뮤직 비디오적인 기법 그리고 다양한 쟝르의 음악과 결합하며 그 긴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