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2일.진상골 가족 7명이 강진을 향해 출발한다. 우선 마량항에 도착하여 시장에서 생선을 구입하고 회를 떠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우도로를 거쳐 다산초당을 다녀온다.

마량항.


마량 수산시장.


점심으로 병어회와 낙지 탕탕이로......


가우도 출렁다리 앞에서......


가우도에서.....
강진읍 보은산이 소의 머리에 해당되고,섬의 생김새가 소(牛)의 멍애에 해당된다하여 가우도(駕牛島)라고 부른다고 전해짐.







아름다운 둘레길을 산책합니다.


영랑선생 동상에서.....




가우도에는 14가구 31명이 거주하고 있답니다.

가우도 분교터.1967년 설립하고 1995년에 폐교됨.


다산 정약용 쉼터.


가우도에는 짚트랙이 있다.

가우도 여행을 마치고 다산초당으로 이동합니다.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

다산의 18제자 가운데 한사람인 윤종진(尹鍾軫 1803∼1879)의 묘.

시인 정호승이 뿌리의 길이라 부른곳.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은 오래된 나무 뿌리가 뒤엉켜 있다.


정석(丁石).
다산이 직접 새겼다고 전해지는 정석은 다산초당의 제 1 경이다. 아무런 수식도 없이 자신의 성인 정(丁)자만 따서 새겨 넣은 것
으로, 다산의 군더더기 없는 성품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산초당(茶山草堂).
정면 5칸, 측면 2칸. 조선 후기의 대표적 사상가인 정약용(丁若鏞)이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귀양와 이곳
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08년에 윤규로(尹奎魯)의 산정이던 이 초당으로 처소를 옮겨 1818년 귀양에서 풀릴 때까지 10여년
간 생활하면서, 《목민심서》 등을 저술하고 실학을 집대성함으로써 실학사상의 산실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58년 지역민으로 구성된 다산유적보존회가 무너진 초당을 복건하여 이 해 사적 제107호(정다산유적 丁茶山遺蹟)로 지정받았
다. 건물은 도리단층기와집으로 문화재관리국에서 관리하고 있다.1970년, 1971년, 1975년에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茶山艸堂’이
라는 현판은 김정희(金正喜)의 글씨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정석(丁石)·약천(藥泉)·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다조(茶竈) 등 다산의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약천(藥泉).
가뭄에도 좀처럼 마르지 않는 이 샘은 다산초당의 제2경이다. 처음에는 물이 촉촉이 젖어있던 것을 다산이 직접 파니 돌 틈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왔다고 한다 .다산은 약천의 물을 마시면 “담을 삭이고 묵은 병을 낫게 한다”고 기록하였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 호:사암(俟菴), 여유당(與猶堂)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형원·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그는 출중한 학식과 재능을 바탕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신유사옥 후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되었는데, 그는 이곳에서 독서와 저술에 힘을 기울여 그의 학문체계
를 완성했다. 그는 피폐한 농촌사회의 모순에 관심을 갖고 정치개혁과 사회개혁에 대한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특히 <경세유표>·
<목민심서>·<흠흠신서>를 통해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다산은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에 가까운 인물로,
자연과학에도 관심을 기울여, 홍역과 천연두의 치료법에 대한 책을 내기도 했고, 도량형과 화폐의 통일을 제안했으며 건축기술
인 거중기를 고안하기도 했다.


백련사(백련사) 가는 오솔길.
찌뿌듯한 하늘이 맑게 갠 어느 봄날, 냉이 밭에 하얀 나비가 팔랑거리자 다산은 자신도 모르게 초당 뒤편 나무꾼이 다니는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판이 시작되는 보리밭을 지나며 그는 탄식했다. “나도 늙었구나. 봄이 되었다고 이렇게 적적하고 진구가 그
립다니,” 백련사에 혜장선사(해장선사)를 찾아 가는 길이었다. 벗될 만한 이가 없는 궁벽한 바닷가 마을에서 혜자은 다산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제 같은 존재였다. 혜장은 해남 대둔사(대둔사) 출신의 뛰어난 학승이었다. 유학에도 식견이 높았던 그는
다산의 심오한 학문 경지에 감탄하여 배움을 청했고, 다산 역시 혜장의 학식에 놀라 그를 선비로 대접하였다. 두 사람은 수시로
서로를 찾아 학문을 토론하고 시를 지으며 차를 즐기기도 했다. 혜장이 비 내리는 깊은 밤에 기약도 없이 다산을 찾아오곤 해서
다산은 밤 깊도록 문을 열어 두었다고 한다.다산과 혜장이 서로를 찾아 오가던 이 오솔길은 동백 숲과 야생차가 무척 아름답다.
그러나 이 길에서 가장 아름다운것은 친구를 찾아가는 설렘일 것이다. 보고 싶은 친구를 가진 기쁨, 친구를 찾아가는 길의 행복.


천일각에서 바라본 강진만.

멀리 가우도 청자전망대가 보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담양 옛날 진미국수집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