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구간 1998년 4월 12일(일) 흐림, 비 조금
정맥: 밀목재-960봉-897봉-948봉-장안산-무령고개-영취산
산행: 밀목재-960봉(25분)-897봉(25분)-948봉(50분)-장안산(105분)-
영취산(65분)-무령고개(10분)
약 15.7Km 5시간 30분소요
오늘은 금남호남정맥 종주를 마치는 날이다. 그동안 무수한 땀을 흘리며 때로는 위험한 능선을 지나면서 지금까지 참 잘해왔다. 오늘 금남호남정맥 6번째 산행으로 금남정맥과 금남호남정맥 종주를 마친다는 생각을 하니 무척 기쁘기도 하면서 허전하기도 하다. 하여튼 최선을 다해 남은 구간을 멋지게 종주하겠다고 다짐하며 장수읍 밀목재를 향해 열심히 차를 몰았다. 오늘 산행에서는 금남호남정맥종주 마침을 축하해주기 위해 처음이자 끝으로 정은산악회 원석연, 원달연 지원조가 출동했다. 지원조와 함께 밀목재에서 도착하여 기념촬영을 하고 우리를 남겨둔 채 지원조는 무령고개로 간다.
마음을 굳게 먹고 조금 늦은 시각인 7시 40분부터 정맥 종주 산행을 시작하여 빠른 걸음으로 960봉을 향해 전진한다. 오늘 전국적으로 천둥, 번개를 동반한 80㎜의 폭우가 쏟아진다는 일기예보를 들었는데 아직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정맥종주라는 큰일을 하기 위해선 천둥, 번개만 치지 않는다면 비오는 것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오르는 능선으로 밀목재서 25분쯤 올라가 도착한 960봉에서(8:05) 5분 휴식 후 더욱 빠른 걸음으로 신속히 진행한다.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천천히 진행해야 되는데 무령고개서 오후 2시에 지원조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으로 평평한 능선을 정말 빠르게 갔더니 정진관 대원은 나에게 축지법을 쓰냐고 농을 하면서 열심히 따라오고 있다. 정맥능선에는 바람이 몹시 불고 진달래가 만발했다. 또 날씨는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 소나무가 울창한 기분 좋은 능선을 지날 때는 코로 여러 번 맑은 공기를 들이 마시면서 나아간다. 8시 35분에 산줄기가 크게 갈리는 897봉을 밟고 진행하다가 나뭇잎 색깔과 똑같은 독사를 발견한다. 워낙 빨리 가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독사를 보고 뱀이다 소리를 지르며 나는 뱀을 건너뛰었다. 그 독사는 몸을 비꼬면서 고개를 쳐들고 있었는데 아마 공격 자세를 취하는 모양이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여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정맥능선은 뚜렷하고 평탄하기 때문에 빠르게 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많은 산악회 리본이 달려있어 나침반과 지도의 도움이 필요 없다. 얼마 후 소로를 지나 948봉을 올라선다.(9:25) 밀목재부터 여기까지 6.4㎞인데 1시간 45분 만에 일찍 도착한 것이다. 948봉에서는 덕유산이 뚜렷하게 보인다는데 날씨가 흐려 덕유산 그림자도 볼 수 없다. 이제 장안산이 가까워져 계속해서 오르는 능선으로 진행해야 됐다. 조릿대가 무성한 숲을 여러 번 통과하여 힘겹게 1000m가 넘는 장안산 큰 능선에 도달하니 날아갈 것 같은 강풍이 매섭게 불고 있다. 모자를 손에 들고 걷고 있는 정맥능선 주변의 나무는 물기가 촉촉이 배어있고 구름 위를 가고 있기 때문에 옷이 젖는 느낌을 받는다. 저 봉이 장안산 이겠지 하면 더 높은 봉이 기다리는 능선을 한걸음 두 걸음 아주 빠르게 전진하다가 구름이 잠시 걷히니 사두봉이 뚜렷하고 오늘 진행한 밀목재 위 능선부터 이곳까지 정맥 길이 선명하게 보여 기뻤다.
마침내 11시 20분에 장안산(1236.9m)에 닿으니 안개인지 구름인지 산 아래가 자욱해 사방으로 조망을 할 수 없어 아쉽다. 장안산은 헬기장으로 돼있고 1997년 10월에 건립한 돌에 백두대간이 뻗어 내려 노령산맥의 종산이라고 소개하는 글이 쓰여 있는데 어느 누가 썼는지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백두대간이 나오면 당연히 금남호남정맥의 종산이라고 쓰여야지 노령산맥이라니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힌다. 장수, 번암, 계남, 장계 4개 면의 중앙에 위치한 장안산은 날씨만 좋으면 지리산의 웅장한 산줄기를 비롯한 사방의 산들의 조망이 훌륭할 텐데 매서운 바람만 세차게 불고 있고 가까이 있는 영취산과 무령고개도 구경할 수 없었다. 다만 간혹 구름이 걷힐 때 장수읍과 진행했던 정맥능선 모습을 이따금 보여줄 뿐이다. 장안산에서 사진촬영과 간식을 먹느라고 20분간 머무른 후 빠른 걸음으로 무령고개를 향하는데 비가 내린다. 폭우가 쏟아질 것 같아 가고 있는 종종걸음을 더욱 빠르게 한다. 장안산부터 무령고개로 가는 정맥 능선은 등산로가 뚜렷하고 길이 좋아 금남정맥과 금남호남정맥의 모든 능선이 이와 같이 길이 잘 닦여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 후 비가 그쳐 잠시 날씨가 좋아져 무령고개와 영취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백두대간의 백운산(1278.6m)까지도 볼 수 있었다. 또다시 비가 내려 우산을 쓰고 진행하는데 정은산악회 원석연 회장의 음성이 들려 무령고개가 가까워짐을 느낀다. 잠시 후 정맥이 훼손된 무령고개(930m)에 도착하여 지원조와 합류에 경사가 심한 영취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드디어 아주 빠른 시간인 산행시간 5시간 5분 만에 15.7㎞를 성공적으로 진행하여 영취산(1075.6m)에 도착했다. (12:45) 이 감격! 이 기쁨!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작년 10월 3일 1차 산행을 충남 부여 부소산부터 시작하여 힘들은 정맥능선을 오르고 내리며 정맥을 벗어난 길에서 다시 올라오기를 수십 번이나 하고 결국 영취산까지와 큰일을 해냈다. 쉬지 않고 가다보면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하여 커다란 기쁨을 얻게 되는 이 교훈을 IMF시대를 맞아 어려움에 처한 내 사업에 활용하여 모든 어려움을 꾹 참고 이겨내야겠다고 결심한다. 영취산에서 여러 번 사진을 찍고 삼각점에 입을 맞추고 가슴 벅찬 환희를 마음껏 누렸다.
백두대간의 산 영취산은 금남정맥이 시작되는 첫 산으로 주화산까지는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 겹치는 산줄기라 금남호남정맥이라 부른다. 영취산에는 서울 거인산악회가 설치한 나무 팻말이 꽂혀있고 나뭇가지에는 수많은 리본이 달려있다.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었지만 15분쯤 휴식 후 무령고개로 내려와 산행을 마감했다.(13:10) 무령고개는 높이가 1000m에 가까운 930m나 되고 장계면 쪽으로는 포장도로가 나있고 번암면 쪽으로는 비포장 도로였다. 무령고개 바로 아래 측정치수 13이 나온 양호한 샘터에서 물도 마시고 세수도 한다. 아직 이른 시각이기 때문에 사두봉 밑에 있는 유명한 덕산계곡 용소를 구경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무령고개서 얼마를 내려오니 커다란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 옆에는 임진왜란 때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열녀 “주논개”생가가 있었다.
차는 다시 장수읍으로 가서 중국집에서 만두, 우동을 먹은 후 밀목재를 올라간다. 밀목재서 내리막길로 조금 내려가니 맑은 물이 흐르는 덕산계곡이 나온다. 차를 주차시킨 후 나는 용소까지 뛰어서 갔다. 윗 용소는 넓은 바위에 바둑판이 새겨져 있고 경관이 참 좋았다. 조금 더 내려가니 자연의 최대걸작품인 아랫 용소가 나왔다. 참으로 아름답다. 난 이렇게 황홀한 소를 본 일이 없다. 정말 대단하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엄청난 물의 양, 깊이를 알 수없는 시퍼런 용소! 계룡산 숫용추가 무색해진다. 이 많은 물은 금남정맥의 사두봉에서부터 장안산까지의 능선에서 쉴 새 없이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덕산계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고 물 측정을 하니 약수와 똑같았다. 용소 아래서 알탕도 한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져 아쉽지만 용소와 작별을 해야 했다. 얼마 후 빗줄기가 굵어져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차가 진안읍을 지나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진다. 이 폭우는 주천면까지 계속됐고 남이면과 금산읍을 지날 때 잠시 괜찮더니 또 엄청나게 쏟아졌다. 봄에 내리는 비를 단비라고 한다. 이 비는 우리의 정맥종주 마침을 축하하는 비인지도 모른다.
대전에 도착하여 금남정맥, 금남호남정맥 종주마침 축하회를 가졌다. 1차로 식당에서 회를 먹은 후 2차로 단란주점에 가서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놀았다. 또 3차로 레스토랑에 가 술을 마셨다. 아무리 즐거운 날이라지만 이건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았다. 어찌되었든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오직 하나뿐인 길을 찾아 민족정기를 이어가고 조국의 참모습을 알아 내나라 내 땅을 사랑하며 일제의 조선강점에 의해 잃어버린 조국의 산줄기 금남정맥, 금남호남정맥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던 이 대단한 일을 무사히 마쳤다.
오늘 산행이 있기까지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한 사랑하는 아내에게 진정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나 혼자라면 결코 못 했을 일을 함께였기 때문에 서로를 의지해 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종주에 참가한 정진관 대원께도 감사드린다.
아! 우리의 삶 금남정맥! 영원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