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어라' 가수 이남이씨와 시인들의 찾아가는 시 창작교실 시에 曲붙여 함께 노래… "시상 떠올리다 보면 원망이 뉘우침으로 변해" 복역중 등단 시인도 나와
가수 이남이(60)씨가 기타줄을 튕겼다. "오랜만에 노래로나마 고향에 가봅시다. 얼마 있으면 형기를 다 채워서 정말 고향에 가실 분도 계시잖아요, 허허."
9일 오후 1시 30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안양교도소 음악교육실(82㎡·25평). 짙은 녹색 체크무늬 모자를 쓴 이씨가 재소자 18명 앞에서 기타를 치며 자작시에 손수 곡을 붙인 노래 '고향 가는 길'을 부르기 시작했다.
"왜 이리도 가슴이 따뜻해질까. 꼬불꼬불 돌고돌아 고향가는 길~."
노래를 마친 이씨가 재소자들에게 "마음으로나마 고향에 가보니 기분이 어떻냐. 누가 제일 먼저 반겨주더냐"고 물었다. 누군가가 "어머니요" 했다. 이씨가 껄껄 웃었다. "아, 그렇죠. 역시 마누라보다 어머니가 낫지. 하하하."
이씨는 시인 허전(60)·손옥자(53)씨와 함께 지난 6월부터 매주 월요일 안양교도소에서 20~60대 재소자 18명을 대상으로 '담쟁이 문예대학 시 창작교실'을 무료로 열고 있다. 허씨와 손씨는 각각 시 이론과 시 비평을 가르치고, 이씨는 시에 곡을 붙여 재소자들과 함께 노래 부른다. 자작시도 있고, 김춘수 시인의 '꽃', 천상병 시인의 '귀천' 같은 시도 있다.
시 쓰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자원한 재소자도 있고, 교도소 직원들이 "우울증에 시가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권한 재소자도 있다. 안양교도소 사회복귀과 우종화(47) 계장은 "재소자들이 시를 배우면서 표정이 밝아졌다"며 "저녁때 가만히 앉아서 창 밖을 내다보길래 '뭐 하냐'고 물으니 '시상을 떠올린다'고 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 가수 이남이(왼쪽에서 세번째)씨와 시인 허전(왼쪽에서 네번째)·손옥자(맨오른쪽)씨가 9일 안양교도소‘담쟁이 문예대학 시창작교실’에서 재소자들에게 시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안양교도소는 원래 서울에 있었다. 1912년 서울 마포구에 문을 연 '경성감옥'이 '경성형무소(1923년)→마포형무소(1946년)→마포교도소(1961년)'로 이름을 바꾸다 1963년 안양으로 옮겼다. 일제시대에는 무기수와 장기수를 주로 가뒀고, 지금도 재범 이상 범죄자만 수용한다. 재소자 2200여명 중 20년형 이상을 받은 사람이 15명이다. 평균 전과는 7범. 가장 '별'을 많이 단 사람은 21범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시 창작교실은 원래 작년 4월 춘천교도소에서 처음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 안양에서도 하게 됐다"고 했다. 춘천교도소도 재범 이상만 가는 곳이다. 법무부는 재소자의 죄질·형량·복역 태도 등에 따라 전국 교도소를 4개 등급으로 분류한다. 청송교도소가 '가장 센 곳', 안양·춘천교도소가 '그 다음 센 곳'이다. 춘천교도소에서는 재소자 900명 중 15명이 매주 금요일 시를 배운다.
작년 12월 말 우리나라 최초로 교도소 복역 중에 등단한 사람이 춘천교도소에서 나왔다. 강도죄로 3년6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김모(45)씨가 '양동이 속에서 만난 달' 등 5편을 문예지 '한국문학예술'에 투고해 신인상을 받은 것이다. 행간에 서린 회한(悔恨)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울렸다. "뉘우침이 양동이의 물처럼 채워지고 나를 가두었던 시간이 열리면 나는 저 달을 다시는 양동이 속에서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8일 만기출소한 김씨는 "어머니가 '독수리 타법'으로 한 시간씩 걸려서 쓴 메일을 매일 보내오셨는데, 자식된 도리로 답장을 잘 쓰고 싶어 시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지난 날을 참회하는 내용을 시에 담았다"고 했다.
춘천교도소 박영주(42) 교도관은 "시 쓰기를 배우면서 죄를 뉘우치는 사람, 밖에 있는 가족과 관계를 회복하는 사람이 꽤 많다"며 "시가 일종의 '속죄의식'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루는 시 수업을 듣는 재소자 한 명이 제 손을 잡고 서럽게 울었어요. 자기는 일하다 손가락이 잘린 아버지를 어려서부터 부끄럽게 여겼는데, '시를 쓰면서 아버지를 창피해한 과거의 내가 너무 싫어졌다'고 하더군요."
안양교도소에서 수업을 받는 김모(36)씨는 "7살 때부터 아버지 손에 이끌려 절도를 했다"고 했다. "자라면서 늘 아버지와 형이 미웠어요. 욕설, 주먹질, 칼부림….시를 쓰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미워하는 마음 대신 용서와 그리움이 생겨났어요."
시인 손씨는 지난 6월 말 안양교도소 재소자로부터 "시 수업을 계속 받고 싶으니 다른 교도소로 이감되지 않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2년간 교도소를 4번 옮긴 이른바 '문제수'였다. 그는 법무부 방침에 따라 두 달 전 청송교도소로 이감됐다. 그는 못내 아쉬웠는지 함께 수업을 듣던 전모(42)씨에게 "시를 써서 보낼 테니 수업 때 비평을 해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시 창작교실은 가수 이씨가 법무부 교화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시작됐다. 평소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시인 허씨가 친구인 이씨에게 "재소자들에게 말동무가 되어주면 어떨까" 제안했다. 두 사람과 가깝게 지내던 손씨도 흔쾌히 참여했다.
이씨는 춘천 집에서 3시간 30분 걸려서 안양교도소를 찾는다. 최근 몸이 아파 격주로 올 때는 가수인 딸 이단비(27)씨를 대신 보내 수업에 차질이 없게 했다.
"시를 쓰면 누구나 솔직해 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반성도 하고 울기도 하는 거죠. 저는 그 과정을 음악으로 돕는 것뿐입니다. '담쟁이 문예대학'이라는 이름은 시를 통해 세상 밖으로 넘어가라는 뜻이에요.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몸은 갇혀 있어도 마음은 담장 밖을 갈망하거든요."
법무부 사회복귀과 최세림 계장은 "앞으로 시 창작수업을 늘려 더 많은 재소자들이 들을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