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 가지로 걱정거리가 많을 줄 안다. 오늘 저의 발언은 미리 약속한 대로 대선자금, 측근과 친인척 비리문제에 관련해 입장을 말씀드리고 나중에 질문이 있으면 그밖의 문제도 성의껏 답변하겠다.
먼저 죄송하다. 부끄럽고 난감하기 짝이 없다. 거듭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번번이 하는 사과, 말로 끝나는 사과, 그 뒤엔 다시 달라지지 않는 정치 등 국민 여러분들은 사과받기에 지치고 짜증이 나는 일인지 모르겠다. 저는 오늘 사과를 다르게 하겠다. 책임지겠다고 약속드린 바와 같이 앞으로도 책임지겠다. 그리고 진지한 자세로 책임을 이행하겠다. 같은 일로 다시 사과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10분의 1 넘지 않아
먼저 대선자금을 비롯한 정치자금과 유용 혐의가 있는 금액 등 돈의 성격에 관해서는 검찰발표와 다소 다르다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서 제가 추측하고 또 부분적으로는 확인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자금규모는 거의 다 밝혀진 것 같다.
검찰의 능력에 대해서 참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보기에 따라서는 소름이 끼친다고 할 만큼 검찰은 유능했다. 때로는 너무 한다 싶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러한 검찰이 한편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하고 그간의 노고를 치하한다.
대선자금이 10분의 1을 넘었는가 넘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를 얘기하기가 참 구차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시비가 되고 있고 또 논의방향이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방향으로 갈 우려도 있기 때문에 나중에 질문하면 소상하게 답하겠지만, 대체적으로 10분의 1을 넘지 않는다.
성격에 약간의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것이 포함되느냐 않느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넘더라도 수억원을 넘지 않는다. 넘느냐 넘지 않느냐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그것이 현저히 넘어서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될 수준이라면 상응하는 책임을 질 각오를 가지고 있다.
비난하되 희망은 버리지 말아야
저의 선거참모들이 모두 구속됐다. 선거대책위원장과 선거대책본부장, 유세본부장이 구속됐다. 참으로 죄송하기 짝이 없다. 국민을 볼 면목이 없다. 그들과 그들의 가족에 대해서도 한없이 미안하다. 대통령은 내가 당선되고 감옥은 그들이 가 있으니 제 처지가 민망하기 짝이 없다. 제가 대신 벌을 받을 수 있다면 한참 마음이 가벼울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더 무겁다. 굳이 그들을 위해 한마디 변론을 한다면 횡령이 없었다는 것이다. 비록 법을 어겼으나 선거를 위해서 노력한 일이고 개인적으로 착복하거나 치부하지 않았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들에게 다시 한번 신뢰를 보낸다.
야당쪽 구속자들에 대해서도 마음이 무겁다. 옛날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일이 이번에는 문제가 됐다. 그동안 익숙했던 선거제도, 선거문화가 만들어낸 희생자라고 말할 수 있다. 가슴아프게 생각하고 그러나 달리 도와줄 방법이 없어 안타깝다.
고통을 받고 있는 우리 모두가 더 나은 내일로 한 발짝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 되었으면 한다. 진통과 아픔을 겪고 오늘과 다른 내일이 됐으면 좋겠다. 바라보는 국민의 고통도 오죽하겠나. 그러나 앞으로 좋아질 것이다.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은 앞으로 달라지기 위해서 모두 함께 겪는 진통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벌할 것은 벌하고 비난할 것은 비난하되 내일에 대한 희망, 내일에 대한 믿음만은 버리지 말고 도와 달라. 열심히 하겠다.
정치적 비난은 저에게
측근문제에 관해 말씀드리겠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인 최도술 비서는 15년 넘게 20년 가까이 일을 맡았고, 안희정 씨는 15년 가까이 됐다. 제가 감독하고 관리할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잘못은 제가 책임져야 한다. 거듭, 거듭 사과드린다. 이들이 조달하고 사용한 대선자금은 저의 손발로서 한 것이다. 법적인 처벌은 그들이 받되 정치적 비난은 저에게 하기 바란다.
그러나 이들이라 할지라도 대통령 선거 이후에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대해서는 저도 마음이 아프다. 용서하기 어렵다.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 아직도 그들에 대한 신뢰를 거두기 어렵다. 아직도 보관하고 있었던 돈의 용도에 관해서 그들의 선의를 믿는다. 개인적으로 치부하고 축재하기 위해 모아둔 돈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체면치레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관리하고 있었던 돈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믿는 근거는, 그들은 십수년 동안 한번도 저를 속이지 않았다. 부득이한 사용이 있을 때는 반드시 승낙을 받았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안희정 씨가 2억원을 유용해서 아파트를 샀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확인해 본 결과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옛날 집을 팔고 새집을 사는 과정에서 일시 자금을 융통해서 지급한 것은 사실이나, 옛날 아파트를 팔아서 다시 제자리에 채워 놓았다. 법적으로 엄격하게 보면 유용에 해당될 수 있겠으나 착복의 고의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벌은 받을 것이다. 너그러운 평가가 있기를 바란다.
건평씨 세차례 청탁 모두 거절
이판에 제 형 노건평 씨까지 끼어들어서 참 미안하기 짝이 없다. 대우건설이 워크아웃 기업인데 대우건설 사장의 유임을 청탁하려고 3000만원을 받았다, 어떻든 그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 돈은 이미 돌려주었다고 한다. 아울러 1억원을 주는 것을 받지 않고 거절했다. 함께 모아서 판단해주기 바란다. 어떻든 죄송하다.
지금까지 제 형님 노건평 씨는 저에게 세 번의 청탁을 했다. 결과는 모두 성사되지 않았다. 한 번의 청탁은 제가 관여할 일이 아니어서 외면했다. 성사, 불성사는 아직 결론나지 않았지만 일절 아는 척하지 않고 있다.
또 한번은 청탁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 잘 될 수도 있는 것이 안 됐다. 그냥 안된 것이 아니고 제가 안되게 했다. 청와대의 인사사항은 아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데까지 행사해서 연임되지 않도록 하라고 민정과 인사수석실에 직접 지시했고 뒤에 확인까지 했다. 형님의 실수가 있더라도 제가 잘 관리할 터이니 그렇게 이해해 주기 바란다.
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뒤에 형님 집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청탁을 가지고 와서 괴롭혔겠나. 그러나 세 번 이외의 아무런 청탁도 제게 전달하지 않았다. 그 중에는 거절하거나 괄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형님은 지금까지 그 정도는 지켜주었다. 대우건설 사장 연임 청탁 건은 민경찬 씨가 (사업에) 실패하고 빚에 쪼들리면서 병원을 지어 회복하려고 하는데 제가 도와주면 혹시 병원 짓는 데 공사비라도 좀 싸게 할 수 있을지, 또는 외상으로 공사할 수 있을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아마 자형을 조른 것 같고 그것을 못이긴 형님이 제게 전화를 한 것 같다. 돈을 탐해서 전화할 사람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
청와대와 사전조율 있을 수 없는 일
형님은 오래 전부터 건설업 면허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제가 경선후보가 되면서부터 일거리를 딸 수가 없었다. 일거리를 따지 못하니 아주 어렵다. 남들이 보기엔 수단깨나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려운 것 같다. 딸은 시집갔고 아들은 아직 취직을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의혹에 많이 시달리고 있다. 좀 도와주시기 바란다. 노건평 씨는 아무런 힘이 없다. 대통령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 가만 좀 내버려두면 좋겠다. 어떤 청탁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좋은 학교 나오고 크게 성공한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는 일은 이제 없었으면 좋겠다.
민경찬 씨는 경선할 즈음 김포에 짓다만 병원을 인수한다는 말을 들었다. 참 재주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후보가 된 이후 찾아와 병원이 어려워졌으니 융자 좀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제가 거절했다. 금융기관도 누구 부탁으로 돌아가는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아예 알아보지 않았고 도와주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때때로 감시했지만 그때는 이미 수십억원의 빚을 짊어지고 일어설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었다. 뒷조사를 계속 하니까 민정팀과 아주 갈등이 많았다. 그 사이에 일이 터진 것이다.
대통령 친인척 특별취급 않는 문화 정착돼야
왜 다 감시하지 못 했느냐 비난을 받았지만 민정실 인력이 많지도 않고, 그 사람에게도 사생활이 있어 졸졸 따라다니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할 수 없는 일이다. 때때로 챙겨보는 수준이다. 650억원 펀드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 청와대와 조율했다는 소문이 났지만 펀드가 조성됐다면 어떻게 청와대가 조율해서 숨길 수 있다는 얘긴가. 숨기거나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불러서 사실관계를 자세하게 확인하라고 했다. 그보다 훨씬 더 작은 일도 숨기지 않았거나 숨기지 못하고 다 노출시켰다. 아무 것도 숨기려고 시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친인척 관리에 골치가 아프다. 관리대상이 수백명이라고 한다. 아는 친척은 수십명에 불과한데 관리대상은 수백명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살기 힘들어서 그랬는지 사촌 이상이면 얼굴도 자주 보지 못하고 살았다. 가끔 5촌 넘는 사람들이 저와의 관계를 들먹이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있다. 경고 외 달리 제재할 방법이 없다. 잡아 가둘 방법도 없다. 그냥 접근하지 말고 속지 말고 의연하고 합리적으로 대해 주기 바란다.
후보가 되니까 취직을 못하고 있던 조카 하나가 갑자기 조그만 회사에 부사장이 됐다. 저도 놀랐다. ‘네가 무슨 실력으로 부사장이냐’며 관두라고 했더니 ‘그렇지 않다, 내 친구인데 저 실력 있습니다’라고 하더라. 민정에서 ‘그 회사가 민영화된 큰 기업에 납품하려는데 특혜를 주지 말도록 미리 경고해야겠다’고 해서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냥 내버려두면 되지 않겠나’ 했더니 ‘아닙니다, 악용될지 모릅니다’며 혹여 특별한 혜택을 주지 말라고 사전경고를 했다고 한다.
누님은 분해서 제게 와서 울며불며 ‘도와주지 못할망정 왜 사업을 훼방 놓느냐. 네가 먹여 살릴 것이냐’고 항의했다. (그렇지만) 제가 맞다. 누님이 틀리다. 그러나 인간의 정이 그렇지 않아 무척 곤란했다. 지금은 실직 중에 있다.
조카가 KT에 다니다가 나와서 무슨 회사에 사장으로 영입된다고 했다. 주식도 좀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불러서 못하게 했다. ‘네 깜냥이면 기껏 잘해야 이사 정도 할 수 있을까 하니 이사 이상은 절대 하지 말아라. 하면 세무조사하고 그냥 안 둘 테니까 하지 마라’고 했다. 그래서 기술이사를 하고 있다. 마음이야 명함 들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덕 좀 보고 싶겠지만 잘 안되는 모양이다. 지금은 중국 영업에 전념하고 있다고 듣었다.
아들과 딸은 대통령의 자녀로 행세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별로 걱정 안하고 있다. 그래도 이것저것 걱정되고 불편하다. 잘 관리하겠다. 민정수석실도 다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고, 제발 (대통령 친인척을)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되도록 모두 노력해 주면 고맙겠다.
구차하게 잔꾀 부리지 않을 것
책임지겠다고 한 데 대해서 말하겠다. 이 정도 과오와 허물이 드러나면 뭔가 책임을 져야 한다. 당연한 도리다. 게다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재신임 받겠다고 약속하고 아직 그 일을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10분의 1 약속’ 또한 해놓고 있는 상태다. 엊그제 이회창 후보께서 책임질 것을 요구했고 지금은 탄핵이 발의돼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책임을 이행할 것인가에 대해 고심을 많이 했다. 야당은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고 저도 자리를 걸고 책임지겠다고 했으니 자리를 걸고 책임지는 결단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자리에 집착하지 않겠다. 구차하게 잔꾀를 부리지도 않겠다.
권력은 마약이라고 한다. 잡으면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저는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의 성격도 달라졌다. 옛날처럼 사리사욕을 위해, 친인척을 위해 마구 쓸 수 있는 권력은 아무 데도 없다. 미운 사람 불러내 혼내주고 정치인 뒷조사해서 정계개편하고 당적을 옮기게 할 만한 어떤 위력도 남아 있지 않다.
총선 결과 존중해 진퇴 정치적 결단
강렬한 포부와 열정, 그리고 한국과 국민의 미래에 대한 사명감이나 책임감 아니면 하루하루가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의 연속일 수 있다. 오늘 한국의 대통령 자리가 그렇다. 사심을 가지고 연연할 이유가 없는 자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단히 무거운 자리다. 국가의 안위를 관리하고 국민생활의 안정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자리이다. 진퇴를 걸고 책임을 지되 국정혼란과 국민들의 불안이 없도록 신중하고 질서있게 해나가겠다.
제 결론은 총선 결과를 존중해서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뜻을 심판으로 받아들이고 그 결과에 상응하는 정치적 결단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단의 내용과 절차는 오늘 말씀드리기에는 너무 중대한 문제여서 입당을 한다든지 입당을 안 한다든지 그런 또 다른 계기에 소상하게 말씀드리겠다. 이미 마음의 방향은 대개 서 있다. 그러나 말씀은 그때 드리도록 하겠다.
왜 그렇게 하느냐면 다른 방법이 없다. 국민투표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이미 좌절됐다. 또 다시 그 카드를 끄집어낼 수 없다. 그냥 넘어갈 수도 없다. 현실적으로 갈등과 혼란을 매듭짓고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안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 나가겠다.
국민 여러분, 저에게 허물과 잘못이 있는 만큼 바른 자세로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보상하도록 하겠다. 몇 배 더 성실히 보상하겠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수준이 노무현처럼 선거과정에서 또는 그 이후에 과오와 허물이 있어서 ‘떳떳치 못한 사람을 그 자리에 두기에는 곤란하다’고 국민이 인식할 때 언제든지 결단을 내리겠다. 일단 이번 총선에서 판단을 해주기 바란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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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대통령 특별기자회견 문답
▲ 노무현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유감표명 의사 : 이제 당장 몇 시간 후면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표결처리가 예상돼 있고 지금 온 나라가 위기감에 휩싸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지금 까지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탄핵을 강행하려는 야당에 대한 반대와 비판도 많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대통령께서 경위야 어찌됐든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사과를 하고 유감표명을 통해서 어쨌든 파국만은 막아야 된다는 의견이 상당히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그런 의향이 있으신지를 말씀해 달라.
탄핵 모면하려는 사과는 안돼
사과하라는 여론이 많은 것을 잘 알고 있다. 잘못이 있어 국민들에게 사과하라면 언제든지 사과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이 뭔지 잘 모르겠는데 시끄러우니까 그냥 사과하고 넘어가자거나 그래서 탄핵을 모면하자는 뜻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원칙이 있고 또 각기 책임을 질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
시끄러우면 대통령이 원칙에 없는 일을 해서 적당하게 얼버무리고 넘어가고 호도해 가는 것은 좋은 정치적 전통이 아니다. 탄핵은 헌정이 부분적으로 중단되는 중대한 사태다. 이와 같은 중대한 국사를 놓고 정치적 체면 봐주기나 흥정하고 거래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은 한국정치 발전을 위해서 결코 이롭지 않다. 사과할 일이라면 탄핵문제가 끝난 뒤에, 그리고 선관위 해석을 둘러싼 저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해도 사과를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사과하겠다. 아직은 국민 여론이 그것은 아닌 것 같다.
▶▶▶ 탄핵사태 원인 : 탄핵 관련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국가적 위기상황이라고 한다. 세시간반 후면 탄핵이 현실화된다. 우리가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탄핵이라는 정치용어가 현실화되는 시간이 세시간반 남았다. 사람들은 국민들이 착하디 착한 국민들만 불쌍하다고 한다. 국정최고 책임자로서 대통령께서는 사태가 이렇게까지 오게 된 데 대해 원인이 무엇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소견을 밝혀 주시기 바란다.
대통령 인정않는 태도서 비롯
(야권이) 제출한 탄핵발의 내용을 보면 선거법을 위반했고, 선관위 경고에 불복했으며 부정부패하고 경제파탄에 책임있다는 것이다. 뒤의 두 가지는 아마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 같고 선거법 위반이 핵심적인 것 같다.
선거법 위반에 대한 선관위의 판단을 한번 자세히 들여다 봤다. ‘2004년 2월 24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대통령 취임 1주년 특별회견에서의 발언과 관련하여 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이에 대하여 3월 3일 전체회의에서 논의한 바 기자회견에서의 대통령님의 발언이 사전선거운동 금지규정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께서는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가지는 공무원이므로 앞으로 선거에서의 중립의 의무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이대로다.
많은 언론은 경고라고 보도했지만 저는 경고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의견표명 아닌가. 위반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얘기했다. 그리고 앞으로 중립의무를 지켜 시비 걸리지 않도록 유의해 주기 바란다는 권고 아닌가.
이 권고가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크고, 국민에게는 경고받은 것으로 전달됐기 때문에 대변인에게 ‘일단 존중한다. 그러나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선관위 결정은 법적인 효력은 없는데도 정치적으로 대통령이 선관위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은 것 같은 결과가 됐기 때문에 대통령의 품위가 많이 손상됐다. 그래서 왜 그런 정치적 결정을 하는가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정치적 중립 문제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96년 총선 때다. 당 총재로서 모든 당직과 공천심사위원을 임명하고 전체를 공천한 다음 이회창 후보를 직접 만나 설득해서 당에 영입하고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돈도 당에 내려 보냈다. 이것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아닌가?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돈은 안 내려 보냈지만 특보단장 내세워 사람을 영입하고 당을 새로 만들고, 역시 공천을 다 했지 않나.
저는 전혀 안하고 있다. 공무원 단 한 사람에게도 선거와 관련된 어떤 눈치를 준 일도 없다. 완전히 중립에 서 있는 대통령이다. 다만 대통령도 정치인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왜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을 공격하겠나. 이유는 대통령의 정치적 상징성 때문이다. 대통령을 공격해야 열린우리당이 공격받는 것이고 그래야 선거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저를 공격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은 이렇듯 정치인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때로 정치적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총선이라는 중요한 국면에서 대통령은 정국구상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대통령이 책임있게 국정을 주도할 수 있게 하든지 아니면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하기 때문에 야당을 키워서 꼼짝 못하게 발목을 묶어줘야 할 것인지를 판단할 것 아닌가.
9시 뉴스에서 일제히 대통령에 대한 선관위 경고가 보도되던 지난 9일, 케이블방송인 캐치온에서는 10시쯤 미국 백악관의 대통령과 참모들의 얘기를 다룬 ‘웨스트 윙’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됐다. 드라마 속의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제47번 선거구에 출마한 자기당 소속 의원의 후원회에 지원 유세를 하러 갔다. 현장에서 연사로 소개받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드라마여서 끊어졌지만 연설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이중적 사고, 이중적 태도를 빨리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한국의 인식과 정서가 있기에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한다. 그러나 납득하기는 어렵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논평하고 입장을 표명한다. 존중한다고 했는데 마치 존중 안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야당이 계속 주장했고, 그 주장이 보도돼 국민들은 대통령이 선관위의 결정을 거부한 것으로, 앞으로도 선거에 관련된 정치적 발언을 계속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이 국민에게 다시 바르게 전달돼야 한다. 이것을 갖고 탄핵사유로 얘기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그리고 대선자금은 어떻든 법률적으로 직무상의 불법행위가 아니며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 경제파탄도 본시 탄핵사유에 해당 안된다. 대통령이 실시하려는 경제정책이 하도 위험해서 그대로 두었다가는 그야말로 큰 위기가 올 수 있는 정책이 있다면 그 정책을 적시해 줘야 한다.
말하자면 엉뚱한 FTA를 체결하려는데 그것이 체결되면 내용이 아주 잘못돼서 바로 잡지도 못하고 경제위기가 올 수 있어 그것을 중단시키기 위해 한다면 경제파탄이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이것은 탄핵의 이유가 될 수 없다. 경제를 빨리 회복시키지 못한 책임은 있지만 파탄에 대해서 제가 책임질 이유가 없다. 경제에 관련된 하나하나의 변수들을 저는 잘 관리해 왔다. 북핵문제, 이라크 문제, 사스 문제, 카드문제, 카드회사 부실문제, 가계 부실문제 등 어떤 경제 전문가도 약간의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큰 흐름에서 관리에 큰 과오가 없다고 하고 있다.
어제 페르손 스웨덴 총리가 다녀갔다. 94년 재무부장관을 하며 긴축재정을 썼을 때 국민들이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6년 뒤에 성과가 나타나니까 수상을 시켜주더라고 얘기했다. 아일랜드의 노사정 합의는 87년에 이루어졌으나 효과가 나타난 것은 93년이다. 제대로 된 정책은 빨라도 3년 보통은 5년 가야 비로소 효과가 나타나게 돼 있다. 너무 성급하게 그래서는 안된다.
탄핵발의의 원인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책임이라면 책임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재임 5년을 봤다. 반대하던 사람들이 끝까지 흔들었다. 저도 비슷한 처지 아니겠나. 완전히 떨어지는 것처럼 됐다가 갑자기 뒤집어지는 바람에 아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잘못이 있다면 당선된 원죄, 갑자기 모든 예측을 뒤집어엎고 당선된 원죄가 있고 그래서 저를 인정하지 않고 탄핵얘기가 진작부터 나온 것 아닌가 생각한다.
또 지역구도에 안주하지 않고 신당을 창당해서 지역구도 한번 해소해보자고 하고 열린우리당을 지지한 것, 그것이 또 하나의 죄다. 의석이 불리하게 된 것을 감수하면서 지역구도 극복이라는 정치개혁을 시도한 것이 원인 아니겠나. 대선자금 수사가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탄핵까지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대선자금 수사는 제가 하자고 한 것은 아니지만 어떻든 대선자금 수사가 벌어지게 된 것이 저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 아닌가.
검찰총장을 임명하고 검찰청 인사를 할 때 여러 사람이 경고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검찰만은 쉽게 말해 틀어쥐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무슨 소립니까? 지금 검찰이 어느 검찰인데 틀어쥐다니요, 우리가 중립·독립하기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렇게 해서 검찰에서 모두 인정하는 사람들이 전부 간부로 된 뒤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뒤늦게 가끔 후회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시대의 대세를 어떻게 하겠나.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이리로 가고 있다. 후회할 수 없다. 다시 검찰인사를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역사흐름이다.
이것을 제가 어떻게 좌지우지하겠나. 그래서 제게 책임이 ‘있다, 없다’보다는 큰 정국의 흐름이 있는 것이고 이 흐름이 너무 아프니까 야당은 야당대로 저항하는 것 아니겠나. 그 저항이 도를 넘어가는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야당이 (탄핵발의를) 그냥 철회하면 만사는 다 해결된다.
농성을 지시하거나 요청한 바 없지만 열린우리당이 농성하고 있는데 야당에서 한발 물러서주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러면 저도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야당과 협의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하겠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굴복을 강요하는 정치는 반복되면 안된다.
▶▶▶ 선거 중립성 : 대통령께서는 총선 결과를 국민심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사실상 총선 결과와 재신임을 연계했다. 일단 그러려면 일차적으로 입당을 하셔야 할텐데 열린우리당 입당은 언제 하실 것인지? 대통령께서 총선결과와 재신임을 연계시킬 경우 공정선거관리나 이런 부분과 마찰이 생길 소지도 있다고 제 개인적으로 생각되는데 이 부분을 해소해 나갈 것인지, 그리고 대통령께서 직접 밝히시기는 아직 상황이 안된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래도 워낙 중대한 문제이고 앞으로 탄핵정국이나 향후 총선판도에도 굉장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질문을 안 드릴 수가 없는데 대략적인 총선결과와 어떤 식으로 연계시킬 것인지에 대한 큰 윤곽이라고 조금 그려주셨으면 좋겠다.
참여정부에 관권·공작선거 없다
정부 특히 공권력의 정치적 중립은 이미 다 돼 있다. 어느 부처의 어느 공무원이 선거에 개입할 것 같나. 단 한 사람의 공무원에게도 선거를 도와달라고 지시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어느 공무원을 어떻게 알아서 선거에 개입해 달라고 말할 수 있겠나. 그렇게 하면 하루도 못지나 말썽이 돼 터져 나올 것이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수상이 직접 선거하고 다니고 대통령이 선거운동을 하고 다녀도 공무원은 중립을 지킨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는 선진 사회에서 공무원 조직은 그렇게 한다.
대통령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고, 입당을 하느냐 안 하느냐로 정부의 중립성이 훼손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공작을 했다. 이제는 공작하지 않는다. 어느 지역구에 누가 유력한지 여론조사조차 보고받지 않는다. 국정원, 비서실도 보고하거나 여론을 조사하지 않는다. 이것이 진실이다.
저의 입당 및 정치적 견해 표명과 선거는 별개의 것으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분명히 말한다.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겠다.
입당 시기는 당과 의논하겠다. 특검이 좀 일찍 끝날 줄 알았는데 특검수사가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서 늦지 않게 입당시기를 결정하겠다. 그리고 총선결과, 재신임, 탄핵 등 모든 것을 다 모아서 총선결과를 존중하고 그에 따른 결단을 함으로써 재신임 문제를 해소해 나가겠다. 진퇴까지를 포함하는 결단이다.
내용을 애매하게 해 놓고 국민을 헷갈리게 한다거나 또는 협박한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하겠다. 명확하게 조건과 결과를 이해할 수 있게, 혼돈이 없게 밝히겠다. 대개 입당하는 시기쯤 밝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 10분의 1 발언에 대해 : 조금 전에 모두 발언에서 10분의 1 발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대통령께서는 지난해 12월 4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직을 걸고 정계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최근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에 의하면 언론이 대부분 집계했지만 한나라당의 불법자금은 823억원, 노무현 캠프의 불법자금은 113억원 가량으로 집계하고 있다. 그럴 경우 8분의 1을 조금 넘는 것으로 돼 있다. 대통령께서는 10분의 1 발언과 관련해서 이러한 판정기준이 어떤 것이고, 그리고 그 발언과 관련해서 어떠한 해석을 하고 계신지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다.
우연 아닌 피나는 노력의 차이
참모들은 대통령이 언론회견에 나가서 돈과 관련한 그런 시비를 하지 말라고 품위문제라고 조언한다. 오늘 기자회견도 모두 발언만 하고 질문 받지 말고 끝내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 질문과 답변이 하도 구차할 것 같아 고심하는 문제다. 그러나 대통령의 품위도 중요하지만 진실보다 더 큰 품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 의견을 말하겠다.
10대 1이라는 것은 비교다. 비교는 비교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같은 것끼리 비교하는 것이다. 대통령선거 불법자금, 그것끼리 비교해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선자금끼리 비교해야 된다. 그러면 검찰이 발표한 113억 중에서 상당히 많은 금액이 아마 제외될 것이다. 제외되는 금액이 약 30억원 가까이 된다. 대선 후에 측근들이 받았다는 등등의 돈을 제외해야 10대 1의 의미가 있다.
두 번째는 영수증을 변칙으로 발급했다는 것인데 그것을 엄밀히 보면 불법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것은 신고되고 공개된 자금이다. 당시의 관념으로는 영수증을 발급하고 회계보고서에 공개하는 정도면 합법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부분까지 불법자금에서 빼면 훨씬 더 줄어든다. 약 73억원 수준으로 내려온다. 이 금액이 16억 6000만원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이 왔다갔다 하면 아마 몇 억 차이가 난다. 그 몇 억원이, 대통령이 은퇴약속을 지켜야 될 만큼 무거운 것이면 은퇴해야겠죠.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대통령과 참모들은 불법자금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10분의 1 논의 자체에 대해서 한때 말실수로 몰렸는데 말실수한 것이 아니다. 며칠을 고심하다가 마음먹고 한 얘기다. 왜 극단적인 표현을 했는가 하면, ‘절반은 받았지 않았겠나, 700대 0이 말이 되느냐’ 등이 기정사실로 당연한 진리처럼 덮여가는 상황에서 이것을 반전시키지 않고는 어려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절반 아니다, 차이가 많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10대 1과 은퇴’라는 도수 높은 말을 썼다. 위험부담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는 마구 덮어씌우는 그 보자기를 벗겨낼 수 없었다.
또 저에게 허물이 있으나 다른 허물과 차별화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차별성을 부각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하고 준비해서 한 발언이다. 그런데 말실수처럼 돼서 한때 우스갯감이 되고 말았다. 말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중요한 것은 차이다. 10대 1이라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냥 어쩌다보니까 우연히 10대 1이 생긴 것이 아니다. 이것은 피나는 노력의 결과다. 그것도 한평생 정치를 하면서 이 차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가 10대 1이다.
13대 때 처음으로 국회의원 선거할 때 10대 1이 아니라 수십대 1의 비용 차이에서 눈물겹게 선거해 이겼다. 그 이후 선거도, 14대 선거 낙선했지만, 엄청난 선거자금, 소위 금력의 차이에 맞서 싸워왔다.
부산시장 선거 때도 비슷했을 것이다. 증거는 없지만 그 당시 상황을 저는 안다. 선거를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얼마나 돈을 쓰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저는 항상 10대 1의 자금과 싸워왔다고 감히 생각한다. 지난 번 종로선거는 그렇지 않았지만, 우연한 결과가 아니고 뜻을 가지고 해왔던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에 부끄러운 가운데서도 내세우고 싶은 자랑이라서 내세운 것이다. 이 점은 정확하게 이해되는 것이 필요하다.
김경재 의원이 삼성그룹에서 사람만 지명해 주면 돈을 주겠다고 해서 대통령께 보고했노라고 폭로한 일이 있다. 사실이다. 김 의원이 와서 ‘사람을 정해 주면 돈을 주겠다고 하니 사람을 한 사람 정해 주십시오, 저를 지명해도 좋습니다’고 해서 제가 ‘두고 봅시다’고 묵묵부답했다. ‘그러지 마십시오’ 해야 하는데 사람에게 그렇게 면박주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해서 그것이 성사되지 않았다.
그밖에도 막판에 몇몇 기업에서 접촉제의가 있었다. 만나지 않았다. 다 거절했다. 단 한군데도 전화하지 않았다. 당에서는 후보가 직접 전화해야 돈이 모일 것 아니냐며 후보가 직접 전화 좀 하라고 성화가 빗발쳤지만 끝내 버티었다. 단 한군데도 전화하지 않았다. ‘지구당에도 돈 내려보내지 마라, 돈 없으면 광고하지 마라’며 버틴 결과가 이것이다.
선거운동을 조직적으로 돕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선거비용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한나라당이 많은 돈을 모을 때 이회창 후보가 다 몰랐다고 저는 생각한다. 다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기들이 다 분배해 거둔 것 아닌가. 후보가 그것을 어떻게 다 알겠나. ‘후보는 가만히 계십시오, 꼭 필요할 때는 전화나 한 통 해 주십시오’ 그런 것 아니겠나. 다 된 마당인데 전화하고 말고 할 것 뭐 있었겠나. 그래서 저는 선거를 도와줬던 선거대책본부 사람들에게 아직도 믿음과 존경을 가지고 있다. 그 분들이었기 때문에 이만큼에서 끝내줬다.
그 이전에 재계에 발이 넓다는 사람들을 재정참모로 기용하라는 당의 권고를 제가 뿌리친 사실은 기자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재정참모를, 재정책임자를 뿌리쳤기 때문에 후보로서 고초를 겪었지만 선거자금을 지금 10분의 1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 아니겠나. 이 차이는 대단히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오를 전부 내놓고 고해성사하자고 했지 않았나.
털어 내놓고 국민들에게 심판 받고 그리고 이제 다시는 이런 선거하지 말자, 그것을 지금 하고 있는 것 아니겠나. 이 의미를 크게 생각해주기 바란다. 애써 무시하고 싶은 사람들은 10분의 1을 5억 넘었느냐 10억 넘었느냐며 얘기를 끌고 가고 싶어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이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평가하고, 올바르게 미래의 제도를 개혁해 나가고, 정치를 개혁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이해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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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대통령 특별기자회견 마무리 발언
투명하고 당당하게 정치할 수 있어야
▲ 노무현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마음을 비우겠다. 10년간, 15년간 제 딴에는 정치를 참 열심히 했다. 항상 새로운 길을 가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길이 무조건 좋아서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걷고, 걸어가고 있는 길이 이대로 계속 가서는 안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를 고쳐보자고 새로운 길을 가려고 노력했다.
지역간 분열에 반대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극복해보고자 몸을 던져 노력했다. 정치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낙선이 아니다. ‘세금 얼마 냈느냐’, ‘생활비는 무엇으로 쓰느냐’, ‘경선을 무슨 돈으로 했느냐’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다. 지금도 대답할 수 없다. 우리 정치인들이 이에 대해 대답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지금 몇 가지 정치개혁법이 만들어졌지만 그렇게 해서 안 된다. 제대로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제가 쓴 선거비용이 제 생각보다 좀 많다. 그러나 비용의 액수만 가지고는 선진국 어디에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다. 문제는 편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도를 잘 만들면 얼마간은 고쳐가고 해소될 수 있다. 이보다 더 많은 자금을 떳떳하게 쓰면서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당당하게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
측근 수백명 수사 처음이자 마지막 되기를
다만 이제 100만원 이상은 다 공개해야 되는데, 그러면 선거자금을 과연 모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국민들의 정치참여 문화로 극복해 나가야 된다. 제가 부끄러우면서도 열심히 변명할 수 있는 것은 지난번 대통령선거 때 50억원이 넘는 소액성금이 있었고, 그들의 발품팔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께 그나마 설명드릴 수 있었다. 정치문화가 그렇게 바뀌어가야 한다. 그렇게 가기 위해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투명하게 하지는 못했으나 남다르게 하려고 노력했던 점을 헤아려주시기 바란다.
다음 정치인들은 정치자금을 가지고 치부하는 일도, 부당하게 돈을 많이 쓰게 해서도, 돈으로 사람과 표를 매수해서도 안 되게 해야 하지만 아울러 떳떳하게 할 수 있는 길도 열어주어야 한다. 겪어본 일이기에 제대로 한번 정치를 개혁해 보고 싶다.
편파수사 얘기가 있다. 본래 그렇게 보이는 것이 이치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이해가 간다. 제 주변사람들이 수사를 받는 모습을 전해 듣고, 너무 가혹해서 ‘억지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쥐어짜는 것 아니냐’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야당 쪽인들 오죽 가혹한 수사를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그러다 보니 지나치다고 느낄 것이지만, 편파수사는 아니라 생각한다.
제 측근들은 수백 만원 짜리까지 다 조사하는 모양이다. 수백 명이 수백 회 소환됐고, 압수수색이 또 수백 회 이루어졌다. 통계를 좀 뽑아달라고 했더니 너무 많아 아직 정리가 안돼 있다고 해서 못밝히지만 여러분이 관심을 가지고 한번 조사를 해달라.
정치가 투명하면 기업·경제도 투명
헌정사에서 대통령과 관련된 측근비리를 수사하면서 수백 명이 소환되고, 한 사람이 수십 번씩 소환되고, 수백 회의 압수수색이 이루어지고, 친구의 친척의 친구 집까지 수색하는 일이 있는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기를 바란다.
다만 이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말고 다시는 없도록 하자. 저도 인간적인 수모, 대통령의 품위, 그리고 수사하는 내용과 과정에 불만이 있다. 그러나 불만의 요소는 작은 문제다. 큰 것은 우리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뛰어넘자는 것이다. 이것을 거치지 않고 뛰어넘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문민정부도 국민의 정부도 이것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뛰어넘지 못했다. 이번에는 뛰어넘어야 한다. 이것을 거치고도 뛰어넘지 못하면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나. 학벌사회이자 연고사회다. 일류학교를 나온 사람들 사이에 잘 짜여진 우리사회 각계의 판에 제가 한 척의 돛단배처럼 떠있지 않나.
편파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세부적인 면에서 오히려 역편파가 있지 않을까. 이제 편파시비, 이런 것 다 뛰어넘어서 새로운 시대로 가야 한다. 정치가 투명해지면 경제도 투명해질 것이다. 기업이 투명해지면 경제가 좋아진다고 모두 얘기한다.
그동안 벌인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면 신명을 다바쳐 소명의식을 갖고 열심히 하겠다. 그러나 ‘그만 두라’고 하면 혼란스럽지 않은 적절한 시기에 국민의 뜻을 받들어 모시겠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