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 경북교육삼락회 제7차 문화재 답사행사 여행지 밀양을 다녀왔습니다. 편집 솜씨가 미흡하지만 참고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이라 선명도가 떨어짐을 이해하여 주십시오./윤상홍
대중가요의 작곡가 박시춘의 생가터가 영남루 입구에 위치해 있는데 거기에 그의 흉상이 지키고 있었다.
영남루는 조선시대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루 이며, 누각에 올라 바라보는 풍광은 조선 16경 중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
낮 기온이 33도로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길손을 누각 마루에 붙들어 놓아 간담이 서늘하도록 시원하였다.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의 절벽위의 영남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절경
영남루는 고려 공민왕(1365년)때 부임한 밀양부사 金湊(김주)가 지었고, 현재의 건물은 1843년 李寅在부사가 중건하였다. '영남제일루'와 '영남루'는 그의 아들인 이증석(11세)와 이현석(7세) 형제가 썼다고 한다.
암반의 형상이 흡사 꽃봉오리 같다고 해서 '石花'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영남루 경내 마당에 있다.
아랑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며, 영남루 아래 죽림 속에 사당을 지어 혼백을 위로하고는데, 매년 '밀양아리랑축제'때 선발된 모범 규수들이 제관이 되어 아랑이 죽은 음력 4월 16일 제를 올리고 있다. 아랑 영정은 육영수 여사가 이당 김은호 화백의 솜씨를 빌어 1963년에 하사한 것이다.
아랑이 죽은 곳 '아랑 遺址'
김종직(金宗直)은 누구인가?
선생 생가
강호 김숙자가 처음 거처를 정했던 곳이 '추원재'이다. 아들 점필재 김종직이 나서죽은 곳. 묘소가 뒷산에 있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전후하여 비석에 구슬 같은 땀이 흐르는 신비한 비석.이곳 사람들은 나라와 겨레를 염려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하여 신성시한다. 임진왜란 때 승려로서 국난을 극복한 사명당(1544-1610)의 충의의 높은 뜻을 새긴 비석으로서 영조 18년(1742년)에 대사의 5대 법손 南鵬이 건립. 재질은 오석. 전면엔 松雲대사(四溟)의 행적, 후면엔 스승이신 西山대사의 공덕을 적었다.
사명대사의 생가터
사명대사 기념관
사명대사 친필
승병활동 시의 활
염주
일상 용품
일본에 건너 가 납치, 억류 중이 조선 인재 3500여명을 구해서 돌아 왔다.
조선초 장수였던 어변당 朴坤장군이 무예와 학문을 닦던 곳. 박곤은 무과에 응시 초시, 복시, 전시를 거쳐 21세에 장원급제, 세종1년(1490년) 최윤덕 장군의 막하로서 대마도 정벌, 남해 왜구 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 중앙에는 忠孝祠가 있고, 어변당 앞에는 박곤이 부모 공양에 필요한 고기를 길렀다는 연못, 赤龍池가 있다.
卞季良(1369(공민왕 18)~1430(세종 12).)
조선 초기의 문신.
정도전·권근의 뒤를 이어 조선초 관인문학을 좌우했던 인물이다. 20년 동안이나 대제학을 맡고 성균관을 장악하면서 외교문서를 쓰거나 문학의 규범을 마련했다. 본관은 밀양. 자는 거경(巨卿), 호는 춘정(春亭). 아버지는 검교판중추원사(檢校判中樞院事) 옥란(玉蘭)이며, 어머니는 제위보부사(濟危寶副使) 조석(曺碩)의 딸이다. 1385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교주부(典校主簿), 비순위정용랑장(備巡衛精勇郞將) 겸 진덕박사(進德博士)가 되었다. 1392년 조선 건국 때 천우위중령중랑장(千牛衛中領中郞將) 겸 전의감승(典醫監丞)이 되었다. 1407년(태종 7) 문과중시에 을과 제1인으로 뽑혀 당상관이 되고 예조우참의가 되었다. 태종말까지 예문관대제학·예조판서·의정부참찬 등을 지내다가 1420년(세종 2) 집현전이 설치된 뒤 집현전대제학이 되었다. 당대의 문인을 대표할 만한 위치에 이르렀으나 전대의 이색과 권근에 비해 격이 낮고 내용도 허약해졌다는 평을 받았다. 그에게 있어 문학은 조선 왕조를 찬양하고 수식하는 일이었다. 〈태행태상왕시책문 太行太上王諡冊文〉에서는 태조 이성계를 칭송하면서 조선 건국을 찬양했고, 경기체가인 〈화산별곡 華山別曲〉에서는 한양도읍을 찬양했다. 정도전에게 바친 〈봉정정삼봉 奉呈鄭三峰〉에서도 정도전이 완벽한 인재라고 칭송했다. 〈태조실록〉의 편찬과 〈고려사〉를 고치는 작업에 참여했고, 기자묘(箕子墓)의 비문과 〈낙천정기 樂天亭記〉·〈헌릉지문 獻陵誌文〉을 편찬했다. 저서에 〈춘정집〉 3권 5책이 있다. 거창의 병암서원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내해 죠타 하고/변계량 내해 죠타 하고 남 슬흔 일 하지 말며 남이 한다 하고 의(義) 아니면 좃지 말니 우리는 천성(天性)을 직희여 삼긴 대로 하리라.
작원관(鵲院關 ) 밀양 삼랑진 검세리에는 작원관이 있다. 영남지방의 동·서와 남북의 중요한 교통의 요지로 이곳은 여행하는 관원의 숙박소 기능과 왜적을 공격에 방어하는 기능, 작원진이라는 나루터로 출입하는 사람들과 화물을 검문하는 기능을 하였다. 즉 원(院), 관(關), 진(津)의 역할을 겸한 곳이었으며 임진왜란 때는 밀양부사 박진 장군이 몰려오는 왜적을 맞아 결사적으로 항전을 펼친 곳으로도 유명하다.
혹시 경부선 열차를 타고 삼랑진역에서 부산방향으로 1분정도 가면 좌측에 작원관의 항일운동 기념탑을 볼수 있으니 참고 하였으면..... [교통]55번고속도로 삼랑진IC하차/삼랑진발전소방향/검세리입구에서 우회전(고속도로에서 5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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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윤상홍의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召湖 尹相洪
첫댓글 소호선생! 좋은곳을 다녀 오셨습니다. 자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