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갈기
먹을 가는 방법은 '이 방법이다.'하고 한가지로 일러 줄 법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먹을 간다는 것은 우선 벼루와 먹의 만남이므로 벼루의 석질에 따라 먹의 선택이 다를 수 있다.
이를테면 돌이 단단하고 날이 실팍한 해주석 벼루에는 단단한 유연묵(씨앗 기름을 태워서 얻은 그을음으로 만든먹)을, 부드럽고 날이 약한 위원석 벼루에는 부드러운 송연묵(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으로 만든 먹)을 쓰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먹의 선진국이었던 옛날과는 달리 요즘의 우리나라 먹은 열개면 열개가 카바이트를 태워서 얻은 그을음에 인공 향료를 넣어 만든 화학묵이므로 벼루의 석질이 어떻고 막의 성분이 어떻고 할 일이 못된다.
다만 중국의 먹이나 일본 먹을 구해다 쓰는 화가나 서예가라면 벼루와 먹의 궁합을 따지기 마련이다.
대체로 단계석벼루에는 부드러운 송연먹을, 흡주석 벼루에는 단단한 유연먹을 쓰는 것이 상식이겠지만 날이 단단하고 결이 고운 보령 남포석 벼루의 상품이라면 송연먹이든 유연먹이든 가리지 않아도 된다.
먹을 갈아 보아서 예리한 칼로 싹뚝 자른 듯이 단면이 반듯하게 갈리는 벼루라면 대체로 좋은 벼루이고 먹과의 궁합도 맞다고 볼 수 있다.
"먹을 쥐면 병자처럼, 붓을 쥐면 장사처럼" 이라는 말이 있다.
붓글씨를 쓸때는 글씨에 기운이 가득차야 되지만 먹을 갈 때는 병자나 노약자처럼 힘을 주지 말고 슬슬 갈라는 뜻이다.
먹을 갈때 힘을 주게 되면 먹이 거칠게 갈려서 먹물을 걸쭉하게 되고 따라서 먹빛도 좋지 않다.
벼룻물은 벼루의 물집에 물을 한꺼번에 많이 부어 갈기보다는 벼룻물을 몇 방을 벼루 바닥에 떨어뜨려서 적당한 농도로 간다음 물집에 밀어 넣고 또 몇 방울 떨어뜨린 다음 먹을 갈아서 필요한 양만큼의 먹물을 얻는 것이 시간도 덜 걸리고 먹물도 좋다.
먹을 쥐는 방법은 사람 나름이겠지만 대개는 엄지를 먹의 앞쪽 중간쯤에 대고 검지와 중지와 약지를 먹의 뒤쪽에 대고 갈되 먹을 직각으로 바로 세우는 경우와 먹을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눕혀서 가는 경우가 있다.
먹을 세워서 갈면 먹 갈린 자국은 평면이 되고, 먹을 눕 혀서 갈되 앞뒤로 번갈아 갈면 먹이 갈린 자국이 V자가 되는데 너무 흐느적하게 쥐면 갈린 자국은 U자가 되기 마련이다.
3가지 방법중 마지막 방법은 피할 일이다.
먹과 벼루의 접착 부분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먹물이 바라는 대로 갈리지 않기 때문이다.
<묵경>에 먹을 바로 세워서 갈면 먹물이 튀고 찌꺼기가 많이 생기므로 피하라고 적혀 있으나 대개는 먹을 바로 세워서 가는 것 같다.
그리고 먹을 앞뒤로 밀고 당겨서 갈기보다는 먹을 시계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천천히 돌려 갈고 손끝으로 갈기보다는 팔 전체로 가는 것이 낫다.
물에는 수돗물, 우물물, 강물, 계곡물, 빗물, 증류수, 끓인 물 등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칼슘이나 마그네슘과 같은 소금기가 많은 경수보다는 그 반대인 연수가 좋다.
하지만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이면 벼룻물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수돗물은 사람이 마시기에 적당히지 않을 정도로 해로운 물이 되어 버렸으나 깨끗한 수돗물을 병에 담 아 하룻밤 재운 다음 쓰는 것도 무방한 방법이 되겠다.
탄산을 섞지 않은 생수면 더욱 좋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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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0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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